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아픔을 환자와 함께 나누었던 의사, 장기려

 

<소설 동의보감>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서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와 처방전을 기록해 놓은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의 일대기와 그의 스승 유의태와의 인연들이 잘 구성되어 있었다. 수많은 의원이 존재하고 존재했지만, 그가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건, 가난한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잘 드러났기 때문이라 믿는다. 일제 시대, 서양 의학이 들어왔지만, 배우는 것도 쉽지 않고, 의원을 만나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엄두를 못 낼 형편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를 읽었는데, 캄보디아에 30달러가 없어, 한 달 생활비에 육박하는 돈을 구하지 못해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형편의 아이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국 역시, 일제 시대 아래, 광복 이래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아팠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환자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했던 노력하는 천재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는 뉴스에서 종종 본 기억이 난다.   할머니의 따뜻한 성품을 이어받아, 신앙의 힘으로 평생 자신이 서원한 약속을 지켰던 의사 장기려. 종교를 너머, 자신이 세운 약속을 끝까지 지켜낸 그는 멋지고 존경할 만한 위인이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의사 장기려.

  
  소설은 사회주의 성향이 가득 지배했던 송도고보 2학년 시절부터 시작했다 그의 어린시절로 돌아갔다가 그가 남한으로 내려올때까지의 일을 그리고 있다. 할머니의 따뜻한 성품을 이어받고, 할머니 임종시에 교회에서 울렸던 종과 비슷한 종소리를 듣고 세례를 결심하고 이야기들, 동맹휴업을 통해 여러가지 꿈을 꾸었던 사람들의 모습, 그 당시 일어났던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별 대우 등이 소설속에 잘 드러나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일본인 간호사에게 손찌검을 하고 자신을 후회했던 그의 모습과 종기를 치료하는 동양의 외과의인 종기의 박의원과의 만남, 박의원 아들과의 악연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일제시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모습에서, 자기 자리에서 여러가지를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그의 모습이 그를 더욱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아내의 따뜻한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장기려 박사도 있을 수 없을거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가난하고 나눔의 삶을 원하지만, 많은 이들을 그의 결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익을 더욱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방해도 만만치 않았지만, 어려운 여건에 지지 않았다. 꾸준히 의학에 매진해서 많은 이들을 구해내는 그의 모습은 참 멋졌다. 멋진 말은 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멋진 행동을 꾸준히 실천하는 건 힘든 일이다. 의료사고와 치료할 수 있지만 피가 부족한 상황에서 절망하는 모습 등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왔다.


# 그의 삶을 흔들었던 명사들과의 만남.
 

  중매 결혼을 했지만, 그 이후 부인을 사랑하게 된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가 이광수의 소설 '사랑'으로 만들어진 경위도 알 수 있다. 결혼은 사랑이자 의무라고 했던 장기려의 말과 그의 권유로 치료를 받고, 소설을 집필하게 된 이야기와 명사라고 더 위해주지 않고 환자 한 사람 한 사람 따뜻하게 기도를 해 주었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함석헌과 김교신과의 만남과 기독교 박해, 그리고 김일성과의 인연까지, 다시 부산으로 내려오게 될 때까지,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 환자에 집중했던 그의 모습은 의사들의 귀감이 될 수 있다 확신한다.

   옛 위인과 영웅들은 인간미가 없어 매력이 없다 생각한다. 모든 것에 뛰어나고 자신을 헌신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모습 뒤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국가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할까. 영웅과 표창은 전쟁터에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글을 읽은 후 영웅을 좋아하지 않는다. 낮은 자리에서 환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의사 장기려! 많은 의사가 장기려처럼 자신의 재산을 버리고 의술에만 전념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를 생각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려 했던 그 마음, 환자를 인격적으로 존중했던 그 마음은 함께 간직해 주면 좋겠다고 믿는다. 

 
  너무나 뛰어난 인물은 인간미가 없어, 멀어 보이지만 장기려 박사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고뇌했던 아픔과 고민들 속에는 나라를 잃은 조선의 아픔과 동족끼리 칼을 겨누어야 했던 민족의 슬픔이 함께 어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잃지 않고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환자와 함께 살아왔던 그의 모습은 오랬동안 내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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