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소년을 만나다 세계신화총서 8
알리 스미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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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피스 신화 이야기.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중에 이피스 신화 이야기가 이 책의 소재이자 핵심이다. 여자아이로 태어났지만, 여자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주변의 환경에 의해, 남자 아이로 길러진 이피스는 이안테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혼식을 앞두고 자신의 여성을 괴로워하던 그녀는 신에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결국 자신의 몸이 소년으로 변하면서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신화에서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말이 되었지만,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성애 공포증이라는 사회현상이 있을만큼 생소한 한국현실에서는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와 가족과의 불화, 사회의 냉대를 통한 고독과 외로움을 안고, 세상을 이겨내가야 할 것이다. 한국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동성애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주제인가 보다.

 소녀를 사랑하는 소녀 앤시아와 그녀로 인해 부모의 이혼을 겪은 이모겐이 주인공이다. 물을 팔아서 이윤을 얻는 퓨어라는 다국적 기업에 취직한 앤시아와 이모겐. 앤시아는 세상의 부조리를 페인트로 벽에 낙서를 함으로써 알리는 성적으로 여성인 로빈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의 행위를 적극 지지하게 된다. 로빈의 학창시절 친구였던 이모겐은 그녀의 만남이 당황스럽다. 퓨어 그룹에서 고속으로 승진하게 되면서, 부당한 일을 하게 될 것을 제안받은 이모겐은 그 일을 거부하고, 그 일을 계기로 좋아하지만,  게이라고 오해받을 받을만큼 여성스러운 회사 동료 폴에게 숨겨두었던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여러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이모겐은 앤시아를 이해하고 지지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 이야기의 힘! 부당한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야기들은 조금만 방심해도 우리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을 수 있다. 이것들은 슬그머니 다가와서 우리의 옷을 모두 벗겨버린다. 좋은 이야기를 써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알리 스미스

  좋은 이야기는 숨겨져있던 외면하고 싶은 진실들을 대면하게 한다.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이 구조적인 기아에 무심하고 무관심했던 내게 부끄러움을 안겨 주었듯이, 좋은 이야기는 삶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게 만든다. 사회적 소수자인 동성애자와 많이 나아졌다고 알려졌지만 아직도 차별이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전면에 등장한다.

  투표권을 얻기 위해 투쟁했던 앤시아의 할머니 세대들의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권리는 하늘에게 내려준 것이 아닌, 스스로 투쟁하고 땀흘리며 요구하면서 얻어낸 결과라는 것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불과 백년전만 하더라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지금 현실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은 예전에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실제 차별받는 당사자에게는 아직 멀었다고 할까.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또 다른 존재로 인식되지만 현실에서 꺼려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시선의 부당성이 신화의 옷을 입고 다시 재해석 되고 있다.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절박함을 느끼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 작가의 글솜씨에 끌려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 모두가 함께 꿈꾸는 세상. 신화에 머물지 않고 현실로 다가서는 날이 오기를..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작품에서 권력을 가진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대해서도 잘 드러나 있다. 부당함에 굴하지 않고 항거하는 투표권을 위한 투쟁과 단식, 방화가 예전 할아버지 세대들의 투쟁이었다면, 화려하고 보기 좋은 동상과 빌딩의 벽에 페인트를 통해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는 이안테와 이피스의 투쟁의 방법은 세련되면서도 눈길을 잡아 끈다. 불법이기에 경찰서로 가지만, 부당한 현실은 말로 이야기한다고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가 보여준다고 생각되었다. 부당함을 누군가 해 주겠지 하고 내버려두면 그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할까, 모두가 함께 꿈꾸는 것이 신화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한다면, 광고 역시 사람들이 꿈꾸는 소망을 나타내고, 함께 꿈꾸는 세상이라면, 차이와 차별이 구분되고 차이가 칵테일처럼 더욱 예쁜 빛깔과 맛을 낼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원한다.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는 신화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이지 않다.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극변하여 동조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낸 거부감과 외면의 시선이 결코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이야기는 세상을 더 나은 삶을 만든다는 작가의 이야기처럼, 작가의 글을 읽고, 조금 더 세상을 알게 되고, 바르게 보는 방법을 배운 느낌이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관용의 마음을 유지하는 일, 무심하게 빠지기 쉬운 바쁜 일상에 놓치지 말아야 할 마음을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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