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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거야
하야세 구미 지음, 황소연 옮김 / 책씨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냉랭하다.
앞에 있는 사물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둠이 깔린 밤에, 눈이 없다면 얼마나 막막할까? 생각했었다. 신체의 모든 기관이 있기에, 건강하고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신체의 기관 중 한 곳이 불편한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며 안쓰럽고 마음이 불편했다. 장애우가 보통사람들과 달리 힘들꺼라는 생각이 처음 깨진건 오토다케씨의 '오체 불만족'을 읽고 나서이다. 장애인이 힘든게 아니라, 장애라는 편견과 사회의 배려 없음이 강물이 되어, 장애우와 보통 사람들의 대화의 건널 수 없는 강으로 흐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것저것 버리지 못하는 성격에 이동을 할 때면 큰 캐리어 가방 하나를 들고 이동했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 지하철을 탔을 때, '지하철의 벤처사업가' '노마진'이냐고 묻거나, 말없이 힐끔힐끔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불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더 불편했던건 엘리베이터 없는 공간에 캐리어 가방을 들고 올라가야 했던 일이다. 평소 다닐때 아무렇지도 않았던 턱이 짐을 끌고 다닐 때 큰 장벽이 된다는 걸 몸으로 느꼈었다.
횡단보도 없는 육교가 장애우에게 큰 폭력이라는 걸 알게되고, 그걸 고치도록 노력한 글들을 보면서 배려에 대해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장애우가 되지 않으면 장애우의 슬픔을 알기 어렵다. 난 정상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을 이해할 순 없다. 하지만 같이 함께 생활해야 할 같은 인간으로서의 배려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 청각장애인이 힘든건 들을 수 없는 게 아니에요. 소리 있는 세상에 사는 당신의 마음의 장벽 때문이에요!!
지하철 안내방송과 경적소리를 느끼지 못하는 그녀는 전철 안내방송 대신 자막을 보고, 경적 대신 소리를 진동으로 알려주는 장치를 이용해 생활한다. 좀 더 편리해 졌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괴롭거나 불행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불행하다고 느꼈던 때는 들리지 않는 다는 사실이나, 들을 수 없다는 물리적인 장벽이 아니라, 소리 있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장벽에 부딪쳤을 때라고 한다.
들을 수 없기에 헬스클럽 가입을 거부당하고, 여행사에서 청각장애인 혼자 떠나는 여행은 안된다고 한다. 결혼을 하기 위해 찾아던 호텔에서는 장애인이 오면 호텔격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글을 보았을 때,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장벽이 여전히 존재하다는 걸 알게되었다.
타인의 마음의 장벽을 만날을 때 지지않고 조목조목 차분히 설명하고 그 마음이 전해져 따듯한 결과를 많이 했던 그녀에게 약사법 결격조항이라는 장벽은 큰 장애물이었다. 간절히 원하는 꿈이 법으로 가로막힌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불운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슬픔에 잠기지 않았을까? 나였다면 그런 장벽이 가로 막았을 때 우울함에 뭔가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녀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약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도 결격사유로 기각된 현실에 맞서,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고, 그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220만 이상의 서명을 이루어 냈고, 약사 면허시험에 합격하고 4년 뒤, 약사법이 개정되어 약사면허를 취득하게 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변에 그녀를 응원해 주는 많은 이들의 지원과 격려를 받으며,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소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글을 '슈퍼스타 감사용' 영화 첫 시작화면에서 본 기억이 떠오른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슬픈게 아니라, 오래 그릴 꿈을 찾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꾸준히 그려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행복하지 않았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거야' 라는 제목처럼 다시 시작할 희망을 주는 책을 만났다.
# 그녀가 꿈을 이룰 수 있었던 하나, 그 꿈을 지원해 주는 따뜻한 주변 사람들..
그녀가 꿈을 잃지 않았기에 약사법 개정과 함께 약사라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었다. 내가 더 감명받았던 건 히로세 구미, 그녀가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부터 면허 기각이라는 처분을 받았을 때, 늘 그녀 주변에서 꿈을 잃지 않게 든든하게 지탱해 주셨던 그녀의 부모님과 지금의 남편,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였다.
선천성 난청이란걸 알게 되었지만 "소중한 우리 아이잖아. 열심히 이 아이를 길러 보자고"라고 말하며 구미의 탄생을 축복했다. 특수학교를 보내야 하는 어려운 환경과 여건도 잘 감내했다. 구미가 처음 약사의 꿈을 꾸었을 때 "결격 사유가 잇어 불가능해. 안돼"라고 말하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을 치를 때까지 10년이나 남아 있으므로, 그 동안 결격조항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꿈을 잃지않게 도와준 부분도 멋졌다. 약사법 결격조항에 대해 대처하는 3가지 갈림길에서 경우에 따라서 다른 방법도 택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선택은 구미가 하는거야. 약사가 될 수 있다, 될 수 없다의 문제보다는 스스로의 인생에 책임을 갖고 결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는 구미를 엄마 아빠는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몰라." 말해주는 부모님과
"후생노동성이 뭐라고 하든 구미는 구미야! 구미의 생각과 마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그들한테 전하는 거야. 난 그런 구미를 언제나 응원해 줄 거야. 구미 파이팅!" 라고 말해주는 벗이 있었기에
'약사가 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내 마음을 누군가에 전하는 일은 절대 포기하지 마'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약사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약사가 됨으로써, 그녀 이후의 약사를 꿈꾸는 청각장애인들에게 도전해 볼 수 있는 꿈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의 시선과 내적 두려움, 공포감에 지지 않고 끝까지 소통하려는 구미를 보면서,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의 귀머거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잠에서 깨어나 부스스한 얼굴을 거울로 보는 듯한 느낌이다. 부끄럽다.
부끄러운 마음에 져서 울고 싶지 않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고 그녀가 소리치는 것 같다. 힘을 내야 겠다. 서랍속에 숨겨두었던.. 마음속에 꿈을 찾아봐야 겠다. 그리고 다시 색연필을 잡았을 땐, 다시는 놓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 이 책을 보면서 힘을 낼거라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