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세계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페르시아 키루스Cyrus 대왕은 처음 만난 그리스의 사신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도시 한복판에다 아예 터까지 잡아놓고 떼로 모여 서로 속이고 거짓 맹세를 하는 자들이 아니냐. 짐은 지금까지 그런 자들을 두려워해본 적이 없노라." 이게 무슨 말일까?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헤로도토스의 설명은 이렇다. - 키루스 대왕은 여기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빌미로 그리스인들을 모두 싸잡아서 비아냥거리고 있다. 페르시아인들에게는 시장의 관습이 없어서 그들은 결코 열린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법이 없고, 실로 전국에 단 하나의 시장터도 갖고 있지 않다. 25) - 헤로도토스,The History I.153 tr. G. Rawlinson(Chicago : Encyclopedia Britannica Inc., 1952), 35쪽-53쪽
자급자족의 가정경제의 삶에서는 욕망의 절제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 심지어 호메로스가 그리는 영웅이나 대왕들도 가정생활에서 필수 불가결한 미덕으로 욕망의 절제를 찬양하고 있다. 32) 173p - 공화정 시기의 로마 시민은 아무리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다 해도 검소하게 생활하며 밭에서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공화정 말기로 가서 돈을 펑펑 쓰는 대토지 소유자들이 나오면서 공화정의 미덕도 사라지고 제정帝政으로 넘어가게 된다.-57쪽
우리 아테네인들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자들을 자기 용무에만 신경쓰느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신경쓸 용무가 전혀 없는 자라고 부른다. 34)
173P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Hammondsworth : Penguin, 1972), 147쪽 인용. 바보 천치를 뜻하는 영어 단어 idiot은 무지렁이 천민을 뜻하는 그리스어 idiotes에서 나왔다. 그리스어 idios란 '사적인 용무'를 뜻한다. 즉 idiotes는 원래 나라와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이나 관심 없이 그저 제 앞가림에만 정신이 없는 자를 일컫는 것이다.-60쪽
나라의 주인이 된 평민들은 조금이라도 자기들에게 경제적인 이익이 된다면 다른 폴리스에 대한 집단적인 학살조차 서슴지 않게 되었다. 한때 사회의 정신적 규범의 바탕을 이루었던 귀족적인 도덕은 조롱거리가 되거나 적대시되었다. 그 대신 모든 재판과 송사는 소피스트들의 궤변으로 채워졌다.-74쪽
첫째, 잘 산다는 것, 즉 행복한 삶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어떻게 해야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가. 셋째,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도록 교육시킬 수 있는가. ... 그리고 그런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 사람들을 이끄는 "철학자가 다스리는" 폴리스를 건설하자라는 것을 세 번째 질문의 답으로 제시한다. 마치 양떼가 자기 스스로에게 최선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물을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그것을 더 잘 알고 있는 양치기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무지하고 세속적 욕망에 눈이 멀기 쉬운 우리는 그 철학자의 손에 우리의 행복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51)
175p - 플라톤은 자신의 가장 깊숙한 진리는 직접적인 대화 속에서 피교육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불꽃처럼 전수되는 것이어서 결코 글로 써서 남기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Plato, Epistle, VII 341c, tr. R. Bury(Cambridge, Mass. : Harvard Univ. Press, 1929), 531쪽.-77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가정경제의 획득의 기술을 논하면서 다시 한번 '자연'이라는 그의 독특한 개념에 의존한다. ... 인간도 마찬가지로 생활에 필요한 것은 모두 자연에 주어져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생활 환경에 따라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발전시킨 목축, 농업, 수렵, 어로, 약탈과 같은 것들 또한 모두 자연적인 것이다. 69)
- 180p 여기서 약탈이란 주로 노예 사냥이었던 것 같다. ...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북부 그리스에서는 떼강도질이나 해적질이 아주 흔했고 강도가 존경할 만한 직업으로 여겨졌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는 어쩌면 당시의 상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윤을 남기는 상업을 비자연적인 것이며 일종의 도둑질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도둑질도 용감하게 창칼을 휘두르며 하면 자연적인 것이지만 치사하고 쩨쩨하게 판매자, 구매자를 등치는 식으로 하면 비자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상업은 그야말로 "강도질만도 못한 도둑질"이 되는 셈이다.-96쪽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활동에서 목적의 추구는 무한하지만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를 보았다. 또한 정말 제대로 사는 법을 아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폴리스의 운영기술politikon과 가정관리 기술을 상위의 기술로 삼고, 거기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획득의 기술은 그 하위의 기술로 종속시킨다고 하는 그의 주장도 보았다. ... 수술을 위해 마취를 하는 경우 마취약이 무한정 필요하지는 않다. 무한정 마취약을 가지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목적은 분명 수술이 아니라 자살이거나 환각 상태일 것이다. -97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활동을 프락시스 praxis와 포이에시스poiesis로 구별한다. 후자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행위'이고 전자는 '행위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좋은 테니스 라켓을 만드는 행위는 상당히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활동이지만, 그 행위의 목표가 테니스 라켓이라는 결과물을 낳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프락시스가 아닌 포이에시스일 뿐이다. 그 행위의 목표는 라켓이 얼마나 좋은가이지 생산 과정이 얼마나 훌륭하고 즐거웠는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 앞잡 아줌마가 어느날 갑자기 가슴에 차오르는 인생의 기쁨과 환희를 표출하느라 세 시간 연속 디스코를 추었다면 이는 프락시스가 된다. 하지만 만약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살을 빼겠다는 목적으로 에어로빅을 하며 이를 악물고 세 시간 동안 똑같은 일을 했다면 이는 포이에시스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연중에 이 포이에시스를 프락시스보다 낮은 것으로 보려는 경향을 보인다.-111쪽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수출과 고도 성장이라는 것을 위해 희생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겨레의 통일이나 민주주의 같은 이상은 파괴되고, 고도의 인간성 완성을 목표로 해야 할 교육제도는 일등에서 꼴찌까지 줄세워서 일 시킬 놈과 일할 놈을 나누는 모욕적인 제도가 되지 않았는가? 윤리적 가치와 인간 존중의 마음씨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그러한 가치를 밝히고 고민해야 할 학문과 문화는 돈벌이와 자랑의 수단으로 타락하지 않았는가? 누구나 즐겨 입에 담는 우리 사회의 천민성이라는 것은 한국형 수출 주도 정치경제의 귀결이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패러다임이 앞으로 지속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 결국 1997년과 같은 경제 위기를 간헐적으로 반복하고 서민들은 고용불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 21세기 '수출 주도형' 모델 앞에 놓인 운명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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