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999년 민주노동당의 슬로건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이었다. 2008년 창당한 진보신당의 슬로건은 '복지혁명 생활진보'였다. '복지'라는 게 소위 ‘좌파 정당’들의 공허한 외침은 아닌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12월 22일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수준에 들어가고 있다."라고 말씀했고, 2007년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외치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12월 20일 '한국형 복지국가'라며 복지를 천명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에 재직 중인 장하준 교수도 복지를 외치며 더 나은 자본주의에 대해서 말한다.
 
한국의 복지제도는 미국과 비슷하게 직장과 연계되어 있다. 정규직으로 직장을 다녀야 보험혜택을 제대로 받는다. 좋은 직장을 다니면 자녀의 학자금은 물론, 주택 대출까지 저리에 융자해준다. 큰돈이 들어가는 주택, 자녀 학자금, 의료보험이 해결된다.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 대기업과 내수 대기업 등 직종, 직업, 회사의 차이는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직장이 없으면 길거리에 나앉든지 부모에게 기생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청년들은 결혼은 훗날로 미루고 의사, 약사, 변호사, 교사, 공무원이 되거나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길 꿈꾼다. 설혹 결혼하더라도 출산은 기피한다. 출산율 급감과 고령화속도 1위의 대한민국은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이 심하게 떨어진다. 남편이 실직했다는 말에 아내가 유산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 전개는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설상가상 직장은 물론 관련 계통의 산업이 쇠퇴해서 재취업도 막혔다면 어떨까? 퇴직금과 대출금을 부어서 치킨집을 차리든 택시를 모는 방법 외에는 없다.
 
하지만 유럽이라면 어땠을까? 의료비와 자녀 학비는 공짜에 가깝다. 심지어 병원과 학교에 오가는 교통비까지 지급해준다. 국가 임대주택 혹은 주거 보조금도 유지될 뿐 아니라 많게는 실직 전 월급의 80%까지 받으면서 정부의 지원으로 1~2년의 직업 재교육을 받을 수 있고, 구직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얻는다. 때문에 해고나 실직으로 인한 노사 간의 강경 투쟁도 적고, 미국인이 기술 개발할 돈으로 무역 제재나 덤핑, FTA로 로비하고 있을 때 유럽에서는 직업적 성취를 이뤄 생산성이 높아진다. 결국 미국의 GM은 망했고, 독일의 BMW은 잘나간다.
 
세금을 많이 낼 거라고 두려워하지 말자. 누군가는 지금보다 많이 낼 수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그래서 투표가 중요하다. 착한 국회의원을 많이 뽑아서 국민의 20%는 지금보다 많이 더 내고, 20%는 지금보다 약간 더 내고, 60%는 지금이랑 비슷하게 세금을 내게 제도를 만들면 된다.
세금이 내기 싫은 사람은 아프리카 어디 나라로 가면 된다. 그곳에선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인프라 자체도 없다고 하고, 갖가지 규제도 없으니 편하게 사업을 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우리보다는 조세 부담률이 높으니 피해가길 바란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를 주면 그들이 일을 안 하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똑같은 논리로 생각해보자. 부자에게 돈을 너무 많이 주면 재능 있는(!) 부자들이 더 이상 일을 안 하게 되어서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끼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년 어떤 산업이 유망할까, 어떤 기업이 잘나갈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수혜자와 피해자가 너무 뻔한 한미FTA 같은 정책의 경우 조율 하기가 힘들다. 이럴 때 이익을 본 쪽은 세금을 많이 내서 손해를 본 쪽을 도와준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자살까지 하면서 극렬하게 저항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국가의 시혜와 은총으로 돈을 많이 번 기업과 계층의 세금을 깎아준다. 국가의 의도적인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계층에겐 복지 혜택을 줄이며 "부자들 가슴에 못을 박지 말라고", "복지를 즐기지 말라고" 훈계하는 것은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헌법 31조 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헌법 31조 5항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헌법 32조 1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헌법 119조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헌법 수호도 포퓰리즘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구판절판


이미 1881년 비스마르크는 오늘날의 복지국가라 부르는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하층 계급을 달래고 황제의 통치를 굳건히 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면서 가장 교육수준이 낮은 무산계급에게도, 국가란 필수적인 것뿐 아니라 복지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도록 해야 한다. 무산계급이 바로 혜택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 그들이 국가를 상류계급 사회만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이익도 대변하는 기관으로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스마르크가 통치한 독일을 선두로 유럽인들은, 미국의 정치체제가 그 비슷한 것이라도 생각할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뉴딜과 같은 정책을 개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영국은 1908년 제한적이나마 노인연금법을, 그리고 1922년에는 국민건강법을 제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나름대로 특색 있는 초기 복지국가 모습을 갖춘 영국·독일·프랑스는 1930년대 후반의 미국이 사회보장제도 비용으로 지출했던 것보다 국내총산생 대비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52쪽

1920년대에는 부자들에게 세금이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소득세의 상한선이 24%에 그치고, 아무리 막대한 유산을 받아도 상속세는 20% 정도로 미미해서 부자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유지하는 데 아무 문제없었다. 그러나 뉴딜정책 이후 부자들은 1920년대와 비교해서도, 그리고 현재의 기준으로도 어마어마한 세금에 직면했다. 소득세 상한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때는 63%까지 올라갔고 두 번째 임기때는 79%까지 올랐다(오늘날에는 35%). 1950년대 중반 미국은 냉전 비용 충당을 위해 91%까지 세금을 올렸다. -68쪽

게다가 이렇듯 고율의 세금은 눈에 띄게 줄어든 투기자본에 대한 수익에 부과되었다. 수익이 감소한 이유는 기업 이익이 감소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이 감소했기 때문인데, 이는 기업 이익에 대한 평균 연방세가 1929년에 14%도 안 됐지만 1955년에는 45%까지 올라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다. 투자자본에 대한 수익에 의지 하는 사람들은 세금으로 많은 소득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가 점점 더 어려워짐을 깨달았다. 상속세의 상한율은 20%에서 45%로, 그리고 60%, 70%, 결국 77%까지 올랐다. 부가 분산된 데는 이런 세율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1929년 미국의 부유층 상위 0.1%는 국부의 20%를 소유했지만, 1950년대에는 10% 정도에 그쳤다.-69쪽

1930년대에는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노동자 중 10%를 조금 웃도는 정도만 노조에 가입했는데, 이는 현재 민간부문 노동자들의 노조가입률과 비슷한 수치다. 공황이 발생한 초기 몇 년 간 노조원 수는 계속 감소해 1933년에는 최저를 기록했다.
그러나 뉴딜정책이 시행되자 노조원이 급증했고 노조의 힘도 강력해졌다. 노조원은 1933~38년 사이 세 배나 증가했고, 1947년에는 다시 그 두 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노동자 중 3분의 1 이상은 노조원이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임금도, 명백히 또는 은연중에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같은 수준으로 책정하거나 노동자들을 만족시켜 노조조직자들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정해졌다.-70쪽

루스벨트 행정부의 이념을 따르는 국가전시노동위원회가 마련한 규정은, 당연히 고소득 노동자들보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루스벨트의 지령에 따라 표준 이하 임금은 인상되어야 했고, 시간당 40센트까지(지금으로 치면 시간당 5달러와 같다) 고용주들은 위원회 승인 없이 임금을 마음껏 올릴 수 있었고, 시간당 50센트까지는 지역 국가전시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올릴 수 있었다. 반대로 그 이상 임금을 인상할 경우 정부 승인을 받아야만 했다. 따라서 고소득 노동자들보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먼저 올리려는 경향이 있었다.-74쪽

1936년 대통령 선거 하루 전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행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연설을 접하게 된다면 요즘의 진보주의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소심하며 예의바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요새 최저임금 인상 또는 부유층의 세금 인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에 대해 나쁜 감정은 없으며 계급투쟁을 선포하려는 것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막대한 부를 죄인 취급하며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화를 위협하는 적, 즉 산업과 금융 분야의 독점, 투기, 분별없는 은행의 관행, 계급 간의 대립, 파벌주의, 전쟁으로 부당이득을 챙기는 이들과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정부를 자기 사업을 돕는 조력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적으로 조성된 자금 위에 세워진 정부는 조직범죄단이 만든 정부만큼 위험한 법입니다.
미국 역사상 그들이 지금처럼 한 후보에 대항해 이렇게 힘을 모은 적이 없습니다. 그들 모두는 저를 증오합니다. 그러나 저도 그들과 싸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83쪽

남부 정치인들로서는 가난한 백인들에 대한 의료혜택 제공보다 백인들의 병원으로 흑인들이 오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94쪽

다시 말해 드수자는 4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부류로 보수주의 제도권 안에서 경력을 쌓고 출세한 직업적 보수주의 지식계층이었던 것이다.-153쪽

만약 빌 게이츠가 어떤 술집에 들어가면 그 술집 고객의 평균 재산은 급상승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술집에 이미 앉아 있던 고객들이 실제로 더 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어떤 그룹에서 아주 부자이거나 가난하지 않은 평균적인 사람들의 재산에 대해 얘기할 때 일반적으로 평균소득이 아니라 소득의 중앙값을 언급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소득의 중앙값이란 모집단의 반은 그 값보다 소득이 많고, 나머지 반은 그 값보다 소득이 적은 값을 말한다. 그 술집 소득의 중앙값은 평균소득과는 달리 빌 게이츠가 들어왔다고 상승하지 않는다.-160쪽

한때 CEO들의 과도한 보수를 비난하던 언론사는 이제 CEO들의 경영이 천재적이라고 야단이고, 한때 대중들을 선동해 덩치만 크고 비효율적인 기업을 비난하던 정치가들은 이제 선거자금을 기부하는 이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없으며, 한때 엄청난 임원진들의 보너스에 반대해 파업하던 노조는 이제 계속되는 탄압으로 온데간데 없어졌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있다.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이 1970년대 초 70%에서 현재 35%로 줄어들어 현재의 CEO들에게는 더욱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더 많은 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상위층에서 소득 불균형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84쪽

1990년대 말 부시의 세금 감면조치 이전에는 죽은 사람들 중 상속세를 내야 할 만큼 재산이 많은 사람은 전국민의 2%에 불과했다. 소득에서 상위 1%에 속하는 부유층이 상속세의 3분의 2를 내고, 상위 10%에 속하는 부유층이 상속세의 96%를 냈다.-205쪽

극우적 견해를 쓸모없는 불평이나 하면서 낭비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길 수 있는 전략으로 바꿀 수 있었던 능력이 보수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조직들을 만들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알고 있는 '거대한 극우 보수주의의 음모'다.-218쪽

메디케어가 보장하는 내용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지만 메디케어를 지원하기 위한 세금은 대부분 소득에 비례하여 부과되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서만 거둔다. 미국은 소득 면에서 워빈곤 호수(Lake Wobegon, 미국의 가상마을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이상향 - 역주)와는 완전히 반대라는 것을 기억하라. 국민 대부분의 소득수준이 평균 이하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둬 복지혜택을 준다면 국민 대부분에게 괜찮은 거래처럼 보일 것이다.-220쪽

토머스 프랭크(Thomas Frank)는 2004년 발간된 자신의 저서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나?>에서 노동자계층의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난해한 연설에 얼마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술수는 언제나 먹혀들고 환상은 통하지 않는 법이 없다. 낙태 금지를 위해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자본이익에 대한 세금인하 혜택을 누리십시오. 미국이 다시금 강력해지도록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탈산업화의 혜택을 누리십시오. 정치적으로 옳은 말만 하는 대학교수들을 무시하는 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전력산업규체 축소의 혜택을 누리십시오.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언론에서부터 육류가공까지 대기업화되고 독점화된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십시오. 테러리스트들에 당당하게 맞서는 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 혜택을 누리십시오. 엘리트주의를 타파하는 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부가 집중되고, 노동자들이 힘을 빼앗기며, CEO들이 상상 이상의 보수를 받는 사회체제를 누리십시오." - 계속 --223쪽

이 내용이 얼마나 진실과 가까울가? 나는 처음 프랭크의 책을 접했을 때도 꽤 놀랐지만 지금도 그의 책은 얼마나 보수주의 운동이 기발하게 감정적인 문제를 이용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위선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지를 너무나 훌륭하게 묘사한 글이라고 생각했다.-224쪽

만약 모든 국민들이 의료보험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 고위험 고객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 없을 것이다. 만약 정부 공부원이 보험을 관리한다면 누가 치료비를 내야 할지 싸울 일도 없을 것이다. 만약 치료가 보험약관에서 보장하는 항목에 해당한다면 정부는 그 비용을 지급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의료보험제도는 민간의료보험보다 불필요한 행정절차가 훨씬 줄어들고 관리비도 훨씬 적게 들 것이다. 예를 들어 메디케어는 재원의 약 2%만을 관리비 명목으로 지출한다. 민간 보험사의 경우에는 관리비용이 15%에 이른다. 매킨지 글로벌의 200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의료보험업계와 외국 정부가 운영하는 보험제도의 관리비를 비교한 결과 미국이 부담하는 추가 비용이 거의 840억 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 미국과 캐나다의 의료체계에서 이런 기타비용을 비교한 결과 미국의 총관리비는 (보험사와 의료기관 모두에게 드는 비용) 의료비의 31%인 데 반해 캐나다는 17% 미만이었다. 총관리비를 돈으로 환산하면 3,000억 달러에 이르며 이는 미국과 캐나다 간의 의료비 지출액 차이의 3분의 1에 해당한다.-281쪽

보수주의 운동이 볼 때, 가장 위험한 정부정책은 운영이 잘 되어 복지국가가 국민의 인정을 받게 되도록 만드는 제도다. -289쪽

그러나 워런과 티아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1970년대에 비하면 중산층 가정의 사치스러운 지출은 줄어들었다. 빚이 늘어난 이유는 주로 집을 장만하기 위해 더 많은 지출을 하기 때문이며 이는 좋은 학군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312쪽

"결과가 평등한 것보다는 기회의 평등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분히 허구적인 주장이라는 것이다. 불평등한 결과가 대단히 많은 사회는 어느 정도 기회도 불평등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정말 모든 국민들이 출발선에서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마땅하다고 믿는다면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314쪽

상류층에 대한 세율은 클린턴 시절에 39.6% 밖에 되지 않았던 반면 1970년대에는 70%였고, 1981년 레이건의 감세조치 이후 50%였다. 상류층에 대한 세율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낮다. ...... 결과적으로 영국에서 최고소득층은 거의 48%에 달하는 세율을 적용받는 셈이다. -325쪽

고용에 관해 좀더 알아보기 위해, 미국 최고의 노동경제학자인 버클리의 데이비드 카드(David Card)교수와 프린스턴의 앨런 크뤼거(Alan Krueger) 교수의 대표적인 연구를 살펴보면,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한 정도로는 실업이 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거센 비난을 받았는데 이는 경제학 원론과도 상충되고, 이념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모든 실증연구 자료등에 따르면 실제로 조정 가능한 최저임금 인상폭 정도로는 실업률이 심각하게 증가하진 않을 것이라고 한다. ...... 동시에 최저임금인상은 저소득층 임금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경제정책 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는 미국 노동인구 중 소득 최하위층 10%에 해당하는 1,300만 명의 노동자들이 얼마 전 법제화된 최저임금인상안의 득을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32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구판절판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산업의 지휘관(captains of industry)으로 불리던 전통적 의미의 자본가들이 관료들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 경영인도 민간 부문에서 일하지만 결국 관료이다.) 그렇게 되면서 고용된 경영자들이 기업의 법적 소유자인 주주들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기업을 경영한다는 우려가 높아졌다.-38쪽

캐나다 태생의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도 1950년대에 쓴 글에서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는 거대 기업의 등장은 대세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정부 규제의 확대와 노동조합의 강화만이 이런 거대 기업에 대항할 수 있는 견제 세력을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수십년 동안 사유 재산 제도를 철저하게 옹호하는 사람들은 경영자들이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경영자 인센티브가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우수 인재들이 어떻게 하면 그런 인센티브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이 '성배'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한 기업의 이윤이 낮은 이유가 경영자가 수익 지표에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불가항력적 요인 때문인지 주주들이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따라서 경영자들은 언제나 계약서의 문구를 어기지 않으면서도 계약서의 정신은 위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8쪽

전문 경영인들과 주주들 간에 결성된 이 '비신성 동맹(unholy alliance)'은 기업의 기타 이해 당사자들을 착취한 자금으로 유지되었다. 일자리는 무자비할 정도로 줄었고, 수많은 노동자들은 일단 해고당한 뒤 더 낮은 임금에 복지 혜택도 거의 없다시피 한 비노조원 자격으로 재고용되었다. 임금 인상은 중국이나 인도 같은 저임금 국가로 설비 이전이나 해외 아웃소싱을 통해, 혹은 그렇게 하겠다는 위협만으로도 억제되었고, 납품 업체와 그 종업원들은 지속적인 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정부 또한 법인세가 낮고 기업 보조금이 많은 나라로 설비를 재배치하겠다는 위협으로 인해 끊임없이 법인세 인하 및 보조금 확대 압력에 휘둘려야 했다. 그 결과 소득 불균형은 극심해졌고, 그런 속에서 미국과 영국 국민 대다수는 전례 없는 규모의 빚을 지지 않고서는 겉만 번드레한 번영에 동참할 수 없게 되었다.-40쪽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기업 이윤에서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는 비율이 5퍼센트를 밑돌았다. 하지만 이 수치는 계속 증가하여 2007년에는 90퍼센트라는 놀라운 수준이 되더니, 2008년에는 물경 280%라는 터무니없는 기록을 세웠다. GM은 2009년에 파산을 막는데 필요한 35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느라 쩔쩔맸다. 이는 미국의 기업 경제학자 윌리엄 라조닉(William Lazonick)의 추정에 따르면 GM이 1986년부터 2002년까지 자사주 매입에 투입한 204억 달러를 (세금 공제 후 2.5%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은행에 예치해 두었더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조달할 수 있는 액수이다. 주주들이 이런 식으로 흥청망청 지내는 동안 스톡옵션으로 막대한 양의 주식을 챙긴 전문 경영인들도 엄청난 혜택들 누렸다.-42쪽

이 모든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에 해를 입힌다. 고용 삭감은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노동력 부족은 노동 강도의 강화로 이어지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이 지치면 실수가 잦아져 결국 제품의 품질이 저하되면서 기업의 평판 역시 나빠진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끊임없는 해고 위협으로 인해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 노동자들이 해당 기업에 특화된 기술을 익히는 데 필요한 시간 투자를 꺼리게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기업의 생산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점이다. -42쪽

주주들이 기업의 법적 소유주이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러 이해 당사자 중에서 기업의 장기적 생존에 제일 관심이 없는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주주들이야말로 기업에서 가장 쉽게 손을 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43쪽

인류의 생산력이 크게 진보할 수 있었던 것도 유한 책임을 통해 대규모 자본 축적이 가능해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주주들은 기업의 장기적인 미래를 책임질 만큼 믿음직한 후견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영국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여러 가지 공식 비공식적 수단을 통해 부동 주주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장기 투자를 추구하는 일부 주주를 포함한 장기적인 이해 당사자 집단을 유지하거나 새로 만들어 내고자 노력해 온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44쪽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들과 붙여 놓아도 지지 않는다. 정작 자기 몫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이다. ...... 부자 나라의 어떤 개인이 비슷한 일을 하는 가난한 나라의 개인보다 실질적으로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분야에서조차, 그 격차는 개인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55쪽

유명한 투자가 워린 버핏(Warren Buffet)은 1995년 한 TV 인터뷰에서 이 점을 훌륭하게 정리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의 많은 부분이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벌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나를 방글라데시나 페루 같은 곳에 갑자기 옮겨 놓는다면 맞지 않는 토양에서 내 재능이 얼마나 꽃 피울지 의문입니다. 30년후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할 거예요. 지금 활동하는 시장은 내가 하는 일에 아주 후한 보상을 내리는 환경입니다 사실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보상이지요."-55쪽

시장에 맡겨 두기만 하면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타당하고 공평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라는 널리 알려진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 이 신화에서 벗어나 시장의 정치성과 개인 생산성의 집단적 성격을 이해해야만 더 공평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의 재능과 노력뿐 아니라 역사적 유산과 축적된 집단적 노력까지 적절히 고려해서 개인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행해지는 사회 말이다.-56쪽

고베 철강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성공적인 기업들은 의심과 이기심보다는 신뢰와 충성심을 바탕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일개미의 나라'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예라고 생각한다면 서구에서 출판된 경영 지침서 혹은 성공한 기업가의 자서전 아무거나 한 권만 들춰보라. 성공적인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농땡이를 부리고 속임수를 쓸 경우에 대비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말라고 충고하는 경영서가 한 권이라도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책에서는 어떻게 하면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을 바꾸고, 비전을 제시하고, 팀워크를 다질 수 있는지에 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을 것이다. 좋은 경영자는 사람이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편협한 시각의 로봇이 아님을 안다.-75쪽

2달러 지폐에 나오는 토머스 제퍼슨과 20달러 지폐의 앤드루 잭슨 같은 미국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수호성인들이라면 미국 재무부의 '자유 시장 신봉도'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토머스 제퍼슨은 해밀턴의 보호주의에 전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해밀턴은 특허 제도를 지지했고 제퍼슨은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제퍼슨은 아이디어라는 것은 '공기와 같아서' 누구의 소유도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현대의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특허권 및 기타 지적 소유권의 보호를 얼마나 강조하는지를 생각하면 제퍼슨의 이런 논리는 어불성설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100쪽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라틴 아메리카는 1인당 소득 기준으로 평균 3.1% 성장했다. 1980년에서 2009년 사이 성장률은 이전 수치의 3분의 1을 조금 넘는 1.1% 수준이었다. 그나마 이것마저도 2000년대 초기부터 신자유주의 노선을 노골적으로 거부해 온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에서 이루어 낸 높은 성장률 덕분에 가능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어두운 과거' 시절 1.6% 성장했던 것이 1980년에서 2009년 사이에는 0.2%로 떨어졌다.
요약해 보자. 자유무역, 자유 시장 정책은 제대로 작동한 적이 거의 없다.-107쪽

상당수의 서비스는 그 성격상 생산성을 올리기가 어렵다.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서는 쉽게 생산성을 향상 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일부 서비스 부문에서는 생산성을 억지로 높이려다가 생산물 그 자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일례로 현악 4중주단이 27분짜리 곡을 9분 만에 후다닥 연주했다고 하자. 과연 생산성이 세배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품질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서비스들도 있다. 교육 서비스의 경우 교실에 정원의 네 배에 달하는 학생들을 몰아넣으면 교사의 생산성을 네 배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교사는 예전만큼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으며, 이에 따라 그 '생산물'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133쪽

국가 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간단히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중 1인당 소득, 특히 구매력 평가지수로 표시한 1인당 소득이 그나마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득으로 얼마나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살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여가 시간의 질과 양, 직업의 안정성, 범죄의 공포로부터 해방, 의료 혜택, 사회 복지 등 '질 좋은 삶'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간과하기 쉽다.-153쪽

1970년대 중반부터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자유 시장론자들은 19세기 케케묵은 논리를 다시 들고 나와, '투자 계급'에게 돌아가는 소득 몫이 줄어든 것이 성장 감소의 이유라고 세상을 설득했다.
1980년대 이후,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부자들에게 유리한 소득 재분배(upward income redistribution)'를 신봉하는 정부가 정권을 잡았다. 토니 블레어 시절의 영국 노동당이나 빌 클린턴 시절의 미국 민주당 같은 이른바 좌파 정당조차 공공연하게 이런 정책을 지지했다.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의 복지 개혁 정책을 도입하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형태의 복지 제도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목적이라고 선언하면서 이 움직임은 그 절정에 달했다.-191쪽

대다수의 국가들이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부자에게로 소득을 옮기는 수많은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최고 소득세율 인하 등 부자를 위한 세금 정책이 시행되었다. 금융 탈규제에 따라 금융업자들은 투기 수익을 올릴 기회를 숱하게 누리고, 최고 경영자들은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게 되었다. 금융 이외의 부문에서도 규제 철폐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기업들은 더 거침없이 독점적 지위를 악용하고, 더 자유롭게 환경을 오염시키며, 더 쉽게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또 무역 자유화와 해외 투자의 증대로 기업들은 (심지어 공장을 해외로 옮기겠다는 위협만으로도) 노동 임금을 낮출 수 있었다.-192쪽

세금 징수와 소득 이전이 시행되기 전의 소득 분배를 보면 벨기에와 독일은 미국보다 더 불평등하고,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미국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서 상당한 양의 물이 밑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복지 국가라는 이름의 전기펌프가 필요한 것이다.-196쪽

워싱턴에 본부를 둔 중도 좌파 연구소인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2007년 달러화 가치를 기준으로 한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1973년 18.90달러에서 2006년 21.34 달러로 상승했다. 33년 사이에 13% 올랐으니 1년에 약 0.4% 늘어난 셈이다. 임금과 복리후생비를 합한 전체 보수를 기준으로 하면 상황은 더 좋지 않다. 경기 침체기에는 노동자들의 보수가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해서 경제 회복기만을 살펴보았는데도 1983~1989년 사이 노동자 보수의 중간값은 매년 0.2%의 비율로 증가했고, 1992~2000년 사이에는 0.1%, 2002~2007년 기간에는 그나마 거의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미국 노동자들의 보수는 1970년대 이후 실질적으로 거의 오르지 않았다. ......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논리, 즉 모든 사람은 각자의 생산성에 따라 응당의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에 충실하자면 CEO 대 노동자의 보수가 30~40배에서 300~400배가 되었다는 말은 미국의 CEO들이 1960~1970년대에 비해 10배나 더 효율적이 되었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201쪽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일을 잘못한 CEO에게 꼭 주지 않아도 될 혜택까지 주는 어리석은 기업이 있더라도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얼빠진 짓을 하는 기업은 어차피 더 계산에 밝은 경쟁사에 밀려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수 체계를 잘못 만든 기업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런 기업들은 시장의 압력에 의해 경쟁에 지고 만다는 의미이다.-205쪽

그럴듯하게 들리는 주장이다. ...... 그러나 경영진에게 공정하지 못한 보수를 주는 관행이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통해 없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 GM이 기울어 간다는 것은 최소한 30년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 이들은 서로 상대방 기업의 임원직을 겸직하고 사외 이사들에게 제공하는 정보를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사회를 장악했다. 그 결과 이사회에서 CEO가 정한 보수 체계에 이의를 제기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주주들은 배당금만 점점 많이 받으면 되기 때문에 불만이 있을 이유가 없다. ...... 미국에서는 특히 민간 부문의 CEO 출신들이 정부 부처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 즉 무슨 현상이든 그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널리 전파하는 데 자신들이 가진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206쪽

같은 자영 기업을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개발도상국에서는 선진국보다 기업가 정신을 더 발휘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일이 꼬이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전기가 나가 생산 계획이 틀어지고, 달러화 환전 허가가 지연되어 송금을 늦게 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늦게 들어온 기계 수리 부품을 세관에서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 하루 걸러 한 번씩 고장으로 서는 트럭이 오늘은 움푹 팬 도로에 바퀴가 빠져 서는 바람에 원자재 배달은 늦어지고, 하급 지방 관리들은 규정을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없던 규정을 새로 만들어내서 괴롭히며 뇌물을 요구한다. 이 모든 장벽을 헤쳐 나가려면 민첩한 판단력과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은 필수이다. 평범한 미국 기업가에게 마푸토나 프놈펜에 가서 작은 회사를 경영하라고 하면 아마도 이런 일들 때문에 일주일도 버텨 내지 못할 것이다.-212쪽

부자나라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기업가적 에너지를 집단적 기업가 정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219쪽

교육을 포함한 모든 것을 생산성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로 가늠하는 시대에 풍요로운 인생이니 더 나은 시민이니 운운하는 것이 점점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알지만 이 이유들이야말로 교육에 투자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242쪽

어떤 기업의 신임 CEO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 보자. "나는 시장의 힘을 굳게 믿습니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고정된 전략을 세우지 않고 최대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경직된 경영 계획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동하는 시장 가격에 맞춰 그때그때 대응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기업은 어떻게 될까? 21세기에 적합한 비전을 지닌 지도자라고 직원들이 환영할까? 주주들이 새로운 사장의 시장 친화적인 접근 방식에 환호하며 보수를 올려 줄까?

아마 그는 채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지도자 자질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
사람들은 새로운 CEO가 이렇게 말해 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여기가 바로 우리 회사가 오늘 서 있는 곳입니다. 저기는 바로 10년 후 내가 회사를 이끌고 가서 서게 될 곳입니다.~~"

=> 2mb 수령님의 실용주의?-272쪽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교황보다 더 독실하다.'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교황보다 더 독실하기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민족이다. ...... 공산주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북한은 러시아보다 더 철저한 공산주의를 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일본식 정부 주도 자본주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남한은 일본보다 더 철저히 정부 주도 자본주의를 실시했다. 미국식 자본주의로 스타일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은 후에는 미국인들에게 자유 무역의 장점을 설교하면서 금융 시장과 노동 시장을 사방팔방으로 완전히 개방하여 미국인들을 무색하게 했다.
그러니 중국의 영향권에 있던 19세기까지 한국이 중국보다 더 유교적이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 그 한 예로 평민들 중에서는 농부의 아들들에게만 정부 관료 시험인 과거에 응시해서 지배 계급에 편입할 기회를 주었다. ...... 공자를 낳은 중국은 유교 이데올로기를 해석하는 데 좀 더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취할 만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장인과 상인 출신들에게도 과거를 볼 기회를 주었다. -277쪽

이론적으로 알레한드로 톨레도(Alejandro Toledo) 전 페루 대통령처럼 가난한 마을 출신 구두닦이 소년이 스탠포드 대하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톨레도 같은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고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페루 어린이들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 물론 톨레도 전 대통령이 증명했듯이 노력만 하면 스탠포드도 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나머지 수백만 명의 페루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이름뱅이라고 일축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톨레도 대통령의 사례가 예외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287쪽

유럽에서는 몸담고 있던 산업이 쇠퇴해서 일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큰 타격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날 정도의 일은 아니다. 의료 혜택은 변함없이 받을 수 있고, 국가 임대 주택 혹은 주거 보조금도 유지될 뿐 아니라 많게는 실직 전 월급의 80%까지 받으면서 정부의 지원으로 직업 재교육을 받고, 구직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정부에 보호 무역을 도입해 달라는 요구를 해서라도 한번 잡은 일자리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295쪽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파산법의 배경을 이루는 논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이 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나라가 현대적인 의미의 파산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시 시행되고 있던 파산법 내에서는 파산한 기업가들이 자기 비즈니스를 다시 정비하는 동안 채권자들로부터 거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에서는 '챕터11'이라고 부르는 파산법을 통해 기업가들은 6개월간 보호를 받는다. ......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제2의 기회를 보장하지 않으면 기업가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849년 영국을 필두로 해서 많은 나라들이 파산법을 도입해서 파산 후 구조 조정 초기에 기업가들이 채권자들로부터 법원의 보호를 받도록 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채군자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법원이 채무 삭감을 명령할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296쪽

지난 30여 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2008년 위기를 불러올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사실 그들은 1982년 제3세계 채무 위기, 1995년 멕시코 페소 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1998년 러시아 위기 등 1980년대 초 이후 크고 작은 수십 개의 금융 위기에도 책임이 있다. 금융 규제 철폐와 무제한적 단기 이윤 추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해 준 것이 바로 그들이다. 더 넓게 생각하면 그들은 경제 성장의 둔화, 고용 불안과 불평등 악화, 그리고 지난 30년간 전 세계를 괴롭혀 온 잦은 금융 위기를 불러온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주장해 왔다. 그에 더해 그들은 개발도상국의 장기 발전 전망을 약화시켰다. 부자 나라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기술의 위력을 과대평가하도록 유도했고, 사람들의 생활을 점점 더 불안정하게 만들었으며,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상실되는 현상을 모르는 체하도록 했고, 탈산업화 현상에 안주하도록 만들었다. -322쪽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할 만한 경제 현상들, 즉 점점 심화되는 불평등, 지나치게 높은 경영자들의 보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극심한 빈곤 등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의 본성과 각자 생산 기여도에 따라 보상받을 필요성을 감안할 때 모두 피할 수 없는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323쪽

윈스턴 처칠이 민주주의에 대해 한 말을 빌려 자본주의에 관한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 시스템이다. 문제는 다른 모든 시스템이 더 나쁘다는 것이지만. 내가 이 책에서 문제 삼는 것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이지 모든 종류의 자본주의가 아니다.-328쪽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착한'일을 하게 하려면 금전적인 보상을 하거나 벌칙으로 위협해야 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이런 믿음이 비대칭적으로 적용되어 부자는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이 약속되어야 더 열심히 일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될 것을 두려워해야 더 열심히 일한다는 이상한 주장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331쪽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는 물질적 부를 중요시하되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 또 기업이든 정부 부처이든 모든 조직은 구성원들 간의 신뢰, 상호 연대, 정직성, 협동 등을 장려하는 형태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리고 금융 시스템 개혁을 통해 기업에서 단기 주주의 영향력을 줄이고, 그렇게 해서 기업들이 단기 이윤 극대화 이외의 목표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단기적인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전체 시스템을 파괴하게 될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332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풀먹는사자 2011-01-1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p <-> 폴 크루그먼, 미래를말하다 312p 비교
사치품은 늘지 않았다. 집값이 올랐다
 


2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일곱 도시 이야기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11년 11월 03일에 저장
품절
☆☆☆
창룡전을 마지막으로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다나키 요시키를 읽지 않았는데,
이건 재밌다.
유능한 군인과 무능한 정치인들의 이야기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 외할아버지의 손자 키우기
정석희 지음 / 황소자리 / 2011년 7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11월 08일에 저장

☆☆
어차피 육아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잊을것이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냐는 말에 할아버지, 할머니였다라는 것도 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사이였다라는 사실을 나만이라도 기억하면 족하지 않을까??

라는 선전 문구에 낚여서 읽었는데 ㅎㅎ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시대의 지성, 청춘의 멘토 박경철의 독설충고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9월
18,500원 → 16,650원(10%할인) / 마일리지 92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10월 18일에 저장

☆☆☆☆

10대 20대를 위한 ˝88만원세대˝ 유화버전
일단 나쁜 습관을 끊는 것이 핵심

394p 에필로그 부분부터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앞에 부분을 참고해서 읽으면 된다.
창세기 비밀
톰 녹스 지음, 서대경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3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1년 10월 11일에 저장
품절

☆☆☆☆

다빈치코드 보다 재밌다. 마지막 3장만 읽으면 끝난다는게 약간 허무하기도 하다.
농경 - 카인, 유목 - 아벨의 개념에서 아담-이브가 수렵채집 민족이라는 추측이 재밌다. 네피림에 대한 설정도 흥미 있다.


2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장하준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http://bookshelf.naver.com/story/view.nhn?intlct_no=56 

 

 


4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1월 06일에 저장

장하준 일생의 책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찰스 P. 킨들버거.로버트 Z. 알리버 지음, 김홍식 옮김 / 굿모닝북스 / 2006년 11월
19,800원 → 17,820원(10%할인) / 마일리지 9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1월 06일에 저장

장자- 안동림 역주, 장자색인 수록
장자 원전, 안동림 역주 / 현암사 / 2010년 7월
50,000원 → 45,0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1월 06일에 저장

장자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1월 09일에 저장



4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