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41085 

pc통신으로 애니메이션, 만화, 대중 음악, 유머, 채팅방에서 여자나 꼬시고 다니고 

게임과 도박과 술에 빠져 대학생활을 보내던 내게 

대학생이라면 "시사잡지"정도는 읽어줘야 한다라는 인식을 가지게 한 글. 

이후 강준만의 "김대중 죽이기", 김규항의 "B급 좌파",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을 

읽으며 머리에 빨간물을 들이다.

 

<김대중 지지자가 본 노무현과 이인제> - 전대원

노무현과 이인제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88년에 개최되었던 5공비리와 광주 청문회를
통해서였다.

한 사람은 5공비리 청문회를 통해서
나머지 한 사람은 광주 청문회를 통해서
나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와 잘 모르겠다는 일관된
증인들의 답변을 끝까지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증인들을 매섭게 몰아세우던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는 흥분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노무현과 이인제.

이 두사람의 이름을 알게 된 계기가 비슷해서인지
많은 정치적 격변 속에서 이 두사람의 정치적 행동을
비교해서 보곤 하던 습관이 있었다.

청문회 정국으로 유명해진 두 사람은
똑같이 YS의 정치적 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인제가 김영삼 대통령과 정치적 부자관계라는
이야기는 이미 식상할 정도로 유명한 사실이며

노무현 역시 88년 4.26 총선때
당시로서는 고졸학력의 풋내기 정치인으로서
3허 중의 하나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허삼수를 이기고 부산에서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킨데는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순전한 도움때문이었다.

그리고 똑같이 김영삼씨가 총재로 있는 통일민주당의
국회의원으로서 청문회에 특위 위원으로 참가해
일약 대중적 정치인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 둘의 정치적 행로가 갈라진 것은 3당합당이었다.

노무현은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임에도
김영삼의 정치적 변절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이인제는 명분없는 3당합당에 참여하는데 주저하였으나
이내 김영삼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노무현은 정치적인 명분을 택하였고
이인제는 정치적인 실리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나에게 두 사람에 대한
평가에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나는 노무현이 3당합당에 반대한 것을 보면서
무한한 존경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고

이인제가 3당합당에 따라가는 것을 보면서
기대했던 정치인에 대한 처절한 실망감을 맛본 것이다.

그러나 명분을 택하였던 노무현은
부산에서 김대중 깃발을 들고 출마하여
낙선의 쓴 맛을 보아야하만 했다.

자신과 행로를 같이 했던 꼬마민주당 출신의 후보들이
다른 지역에서 줄줄이 당선의 축하를 받을 때
비슷한 처지의 동료 김정길과 함께
낙선의 고뇌를 되씹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인제는 경기도 안양에서
손쉽게 재선의 고지에 올랐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산 출신 노무현은
전라도 출신 김대중의 당선을 위하여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지 연설을 하였다.

자신의 국회의원 낙선이 바로 김대중 때문이란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임에도
그는 아직도 남아있는 카랑카랑한 경상도 억양으로
김대중 지지를 역설하고 다닌 것이다.

92년 지지연설 때 들었던,
"니 와(왜) 대중이한테 붙었노?"라는 비난을
부산의 죽마고우들에게 듣는다는
노무현의 지지연설 중 나왔던 뼈가 섞인 농담은
지금도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내게 남아 있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고
이인제는 노동부 장관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고
노무현은 낙선 정치인으로 세월을 지내야 했다.

그리고 이후에 실시된 지자제 선거에서도
둘은 똑같이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로서
한 사람은 경기도지사로 한 사람은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리고 예외없이
이인제는 경기도 지사에 당선되었고
노무현은 부산시장에 떨어지고 말았다.

명분보다 정치적 실리를 택한 정치인의 연전연승이요
실리보다 정치적 명분을 택한 정치인의 연전연패인 것이다.

경기도 지사직을 중도 사퇴하고
전국을 돌며 약속했던 경선승복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리는 이인제를 보면서

노무현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난친 비약이 될까?

한겨레21이라는 주간지에
"이인제가 출마하면 나도 나가겠다"라고 말한
노무현의 기사가 실린것을 우연히 보았다.

이인제는 세대교체를 말할 자격이 없다면서
이인제가 세대교체의 대표주자가 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끔 현실 정치에서 나의 이상과 똑같이 행동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것은 노무현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일치했다.

김대중 반대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김대중을 지지하면서 다른 후보 지지자들에게
도덕적 열등감을 느껴본 적은 전혀 없다.

어쩌면 오히려 도덕적 우월감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이 나온 다면
그 어떤 후보가 나와도 굳건했던 나의 한표가 흔들릴 것이고

만약에 노무현이 대선후보로 나오는데도
김대중을 지지하게 된다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도덕적 열등감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노무현은 그동안의 정치적 행보를 평가해 보건데
오직 이미지와 대중적 인기만을 추구하는 많은 정치인들과
분명한 선을 긋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보기 드물게 현실 정치인 중에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는 정치인인 것이다.

나는 이인제가 세대교체의 대표주자가 되는데
무척 비애감을 느끼고 있다.

만약에 세대교체가 정권교체보다 중요한 명제라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 대표주자 자리는 이인제가 아니라
노무현이 차지해야 한다.

만약에 세대교체 대표주자가 이인제가 아니라
노무현이 된다면 나는 미련없이 김대중을 버리고
노무현을 지지할 것이다.

 

- 1997년 10월 경, PC통신 하이텔 게시판 플라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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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8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풀먹는사자 2009-06-04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에 드는 글 1.
딴지일보 추모사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한줌 부끄러움에 몸을 떨던 자 결국 그 자신을 버림으로써 마지막 남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추도사는 이 한줄로 족하리라.

'정치인 노무현'을 위한 추도사는 한줄로 부족하다.

지역주의, 권위주의, 보스정치, 계파정치에 맞선 그의 도전과 그 한계까지도, 그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서 밝힌 대로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딴지 편집부 일동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56&article_id=4385

풀먹는사자 2009-06-0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에 드는 글 2.
김어준 추모사 - 먼저 읽어서 그런가? 한겨레에 실은게 더 맘에 듦.

[근조] 나는 그를 남자로 좋아했다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56&article_id=4398


[매거진 esc] 나는 그를 남자로 좋아했다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357349.html

풀먹는사자 2009-06-05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에 드는 글 3.
김규항 블로그에서

무사의 죽음

어리석은 형제와 아내와 자식들이 연루된 일로
그의 오랜 정적들이 그를 죽이려 악귀처럼 달려들었다.
몇몇 옛 동지들이 그를 팔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신문들은 역사적 책임이라도 질세라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고함치며 발을 뺐다.

신중하고 또 신중했어야 할 측근들은
“생계형 범죄”니 “순수한 정치 보복” 따위 모자란 말이나 일삼아
그를 더욱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노란 손수건을 든 모든 사람들은 그를 구하는 일보다는
그를 향한 제 감정을 발산하는 일에 충실했다.
결국 그를 도울 아무 것도,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절대 고독 속에서
그는 깊은 침묵의 마지막 칼을 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비루한 것들을 단번에 베어냄으로써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갔다.
무사의 죽음이었다.

사람들아,

그 죽음 앞에서
한 달을 지속 못할 입에 발린 칭송도
싸구려 신파조의 추억담도 모두 접고
깊은 침묵으로 예를 갖추자.
아직 순전한 이상주의자이던 시절 그가 꾸었던 꿈만을 되새기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http://gyuhang.net/entry/무사의-죽음-1


정중한 침묵을
http://gyuhang.net/entry/정중한-침묵을

용서와 기억
http://gyuhang.net/entry/용서와-기억-3

눈물
http://gyuhang.net/entry/눈물-3

꿈을 잇는 사람들
http://gyuhang.net/entry/꿈을-잇는-사람들
 

6월 말에 있을 국방개혁기본계획 에서 첨단 무기 줄줄이 연기되면 

비무력 평화 정권 탄생인가? ㅋㅋ 

 

 국방과학硏 인원 절반감축

최대 1000명 감원…

방산기술개발 차질우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많게는 연구인력 1000명에 대한 초대형 인력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그동안 국산 방위산업 기술 개발의 ‘산실’ 역할을 해온 ADD전체 연구원 가운데 무려 절반 정도를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력 감축이 이뤄질 경우 방위산업 기술 개발에 차질이 우려된다.

12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조만간 ADD가 연구원 400명에 대한 명예퇴직을 실시하고 추가로 400~600명을 방산업체 등에 이관하기로 하는 등 800~1000명에 달하는 연구인력에 대한 감원을 단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ADD의 연구원 총원이 2000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적게는 40%, 많게는 50%의 연구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ADD에서 대규모 감원은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시절 이후 처음이다.

당초 ADD는 오는 2012년까지 연구원이 퇴직해도 신규 채용하지 않는 식으로 자연 감소분을 통해 구조조정하려 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구조조정 요구가 거세, 명예 퇴직자를 400명 받고 추가로 400~600여명을 퇴직시킨 후 방산업체(S사 등)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ADD의 인원감축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연구소장은 크게 칭찬을 들었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의 얘기다.

하지만 ADD 관계자는 “그간 명예퇴직을 시행 중이며 추가적인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할 것이라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편 ADD 말고도 정부 산하기관들은 대통령 지시로 2010년까지 ‘적어도’ 20% 이상 인원 감축 계획을 세우는 등 정부 출연연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대우ㆍ김재현 기자/dewkim@heraldm.com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5/12/200905120467.asp
  

짤린애들이 일본, 중국, 대만 취직하기를 원하시는 2mb 각하??  

 

 

MB정부, 제2 롯데월드 끝내 허용

"안보는 재벌에 종속…'롯데월드 리스트' 나돌 수도"

기사입력 2009-03-31 오후 2:39:55 
 

 정부는 항공기 안전성 문제 등으로 논란을 거듭하던 서울 잠실 '제2 롯데월드' 건축을 허용키로 31일 최종 경정했다.

정부는 이날 세종로 중앙청사에서 권태신 국무총리 실장 주재로 민관합동 행정협의조정위원회 본회의를 열고 이같은 방침을 확정했다.

사업주체인 롯데물산은 연내 서울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고 착공에 돌입해 향후 5년 내 112층(555m) 규모의 제2 롯데월드 건축을 마무리짓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롯데 측은 4조8400억 원의 생산 유발, 연인원 250만 명(인건비 4300억 원)의 고용 창출 등 기대효과를 대대적으로 앞세우고 있지만, 서울공항을 이착륙하는 항공기들의 안전성 문제 등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2007년 "초고층 건물을 건립할 경우 비행안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국방부의 의견을 수용해 제2 롯데월드 건축을 불허했던 정부는 이번에는 활주로 방향을 3도 변경할 경우 비행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검증용역 결과를 근거로 사업허용을 강행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같은 결정의 근거로 삼은 <제2롯데월드 관련 성남 서울공항 안전성 검증보고서>에는 중간보고서에선 언급된 문제점이 삭제되는 등 부실검증 논란에 휩싸여 있다.

또 15일에 불과했던 검증 용역기간, 검증 8일 만에 나온 중간 보고서 등도 꿰어맞추기 검증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역시 재벌정부"…"롯데월드 리스트 나올라"

정치권을 중심으로 '특혜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제 국가안보는 재벌 이익의 하위개념으로 종속됐다"면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거짓도 진실로 바뀌는 막무가내, 안하무인 정권"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그 동안 제2롯데월드 신축과 관련한 비행안전성 문제에 대해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정부는 반대하는 국방부를 윽박지르고 지적된 문제들을 왜곡하면서까지 신축허가를 결정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재명 부대변인은 이 대통령과 고대 경영학과 동창인 롯데 장경작 총괄사장의 인연을 겨냥해 "대통령의 친구와 재벌을 위해서라면 수도방위의 중핵인 서울공항이 망가지고 국가안보에 구멍이 나도 상관없는 것이 이 정부"라며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고 제2롯데월드를 둘러싼 검은 의혹을 반드시 규명하고 그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제2 롯데월드 리스트'가 불과 몇 년 후에 나돌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제2 롯데월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비트는 바벨탑"이라고 비난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성명을 통해 "이는 지난 40여년 간 고통을 감내해 온 성남시민의 정서를 외면하고 특정기업을 먼저 고려한 처사"라면서 "우선적으로 성남지역의 고도제한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호균 기자  uknow@pressian.com 

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90331142758&Sectio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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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26020&PAGE_CD=S0300 

 고향 사람을 의식적으로 피했던 TK 출신 기자의 고백
출처 : 나는 보수주의자로 전향하고 싶다 - 오마이뉴스  

09.05.07 09:44 ㅣ최종 업데이트 09.05.07 10:49

나는 보수주의자로 전향하고 싶다 
고향 사람을 의식적으로 피했던 TK 출신 기자의 고백
출처 : 나는 보수주의자로 전향하고 싶다 - 오마이뉴스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을 경계로 북쪽이 선산, 남쪽이 칠곡이다. 지금 선산은 구미시에, 칠곡은 대구시에 많이 편입됐다. 대구나 구미는 신흥 도시다. 원래 이 지역의 본향은 칠곡과 선산이다. 이 곳 사람들은 영주·봉화·안동으로 이어지는 경북 동북부와 비교되는 것을 싫어한다. 족보 타령에 익숙한 고을이라 그렇다. '돔배기'라고 불리는, 소금으로 간한 상어 고기가 이 동네 제사상에 올라간다. 안동 간고등어의 대당이다. 돔배기 맛이 그립다는 이곳 출신 사람들이 간혹 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소금 섞은 모래 같다고 생각했다. 짜고 퍽퍽했다.

 

칠곡-선산 지역은 이른바 'TK'의 본류다. 멀리 갈 것 없이 신현확, 박정희, 김제규, 김윤환, 이수성 등이 모두 이 동네에서 났다. 이들 모두 선산 사람이라는 이도 있고, 천만에 칠곡 사람이지라며 핏대 올리는 이도 있다. 나는 이들이 '범 칠곡'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자랐다. 내 본적이 칠곡이다. 할아버지들의 무덤이 금오산 자락에 있다. 아버지는 지금도 금오산에서 나무하던 이야기를 한다. 세상의 본류는 TK이고, 그 배후는 다시 칠곡이던(누군가에겐 선산이던) 시절, 박가네 정희, 김가네 윤환, 신가네 현확, 이가네 수성 등이 출세했던 것처럼 안씨 집안에서도 누군가 칠곡을 빛내어야 마땅하다는 게 금오산 정기 받은 칠곡 타령의 결론이었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을 움직이는 건 출세 욕망

 

 
  
▲ 뉴라이트전국연합, 국민행동본부, 북한민주화위원회,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조갑제닷컴, 노노데모 등 100여개 보수단체들이 1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개최한 공동후원행사에서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김진홍 
 
 


대학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이후 나는 동향 사람 만나길 피했다. 고등학교 동문회 따위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 어쩌다 같은 술자리에 어울려도 가급적 잔을 섞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서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투부터 바꿨다. TK 이야기가 나오면 일부러 열을 올려 돔배기처럼 퍽퍽한 정치적 낙후성을 비판했다. 나에게 서울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프랑스의 파리와 비슷했다. 자유와 저항의 도시였다. 완전히 젖어들어 저 금오산 자락, 박정희의 초가 생가에서 검박한 유품 사이를 거닐며 경건하게 고개 조아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모두 잊고 싶었다. 대신 백낙청, 장정일, 유시민 등을 마음으로나마 응원했다. 그들로 말미암아 고향을 말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꿈꾸었다.

 

어찌저찌 하여 기자가 된 뒤, 묘하게도 나는 한국 보수 집단을 담당할 일이 많아졌다. 한나라당을 출입했고, 뉴라이트 단체들을 취재했으며, 보수 인사들도 조금 알게 됐다. 자유의지와 무관한 일이었다. 고향이 TK이면, 'TK 당'을 출입하는 게 이 바닥의 생리다. 지금 청와대에는 고대 아니면 TK 출신 기자들로 버글거린다. '고소영'이 '고소영'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다. 간혹 '고소영'이라서 그냥 넘어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처음엔 사투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조금 지나자 흥미가 동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의 '보수 돋보기'가 생겼다. 출세주의다.

 

정치인이건 지식인이건 한국 보수 인사들을 움직이는 '리비도'는 출세의 욕망이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긴 한데, 특별히 TK 인사들은 그 욕망의 작동방식이 노골적이면서도 당당하다. 이게 뭐 대단한 발견인 것은 아니다. 출세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셈하면, 그의 다음 행보가 대충 도출되더라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여기서는 '비TK' 사람들을 뜻한다)은 출세 말고도 권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좋은 평판'까지 고려하는데, 내가 지켜본 TK 보수 인사들은 그런 것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세속의 권력은 세간의 평판까지 다스릴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 무덤 앞에 세워질 비석에 어떤 '자리'까지 올라갔는지를 아로 새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배움! 금오산(또는 팔공산, 혹은 소백산) 정기 받아 출세하는 일의 사명감을 돔배기 앞에 두고 체득한 부류였다.

 

그 돋보기는 처음엔 신기했지만 이내 싫증이 났다. 원내대표 출마하신다고요? 아, 큰 결심 하셨네요. 원내정책은 둘째 치고 고향이…. 아, 칠곡 옆 구미시군요. 어쩜, 정말 정말 원내대표 하고 싶으시겠네요. 대권까진 아니어도 나중에 국회의장 한번 하실 욕심도 있으시겠고. 그럼요. 이번에 떨어져도 일단 TK 대표주자가 되면 시장이나 도지사도 가능하지요. 하하, 그 마음 제가 젠장 맞게 잘 알지요. 이래봬도 박통 생가에도 찾아가던 소싯적이 있답니다. 뭐, 그렇다고 손까지 잡아주실 필요야….

 

아, 참, 그런데 서민들 생각은 애시당초 없었으면서 왜 정치는 시작하셨나요, 하고 옆구리 찔러 보는 게 소원이었다. 결국 지루함이었다. 내가 보수주의를 들여다보기로 마음먹게 된 것은 출세주의 무한반복의 권태감 때문이었다. 타자배려 결여, 당연히 약자는 타자에 포함되니 약자 배려도 결여. 공동체 의식 결여, 당연히 국가도 공동체니까 국가권익에 대한 의식 결여. 포용력 결여, 붉으죽죽한 것들은 전부 권력 쟁투의 상대니까 당연히 혁신파 포용력도 결여. 사상 결여, 사상이 밥 먹여주지 않고 게다가 권력자원이 될 가능성도 희박하니 마르크스는 물론이고 하이에크도 들여다볼 생각 자체가 결여…. 이런 따위의 수미일관한 출세주의로 한국 보수집단을 해석하는 일은 절대로 절망스런 일이 아니라(기대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하품 나오는 일이었다.

 

보수당 세운 디즈레일리에게 배워라

 

그래도 어딘가에 '별종'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족보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보수주의의 족보 말이다. 공부가 짧아 긴 이야기하면 무식이 탄로 날 것이다. 예전 무심히 봤던 책을 다시 읽다가 벤자민 디즈레일리를 발견했다. 그는 19세기 말 영국 보수당 당수였다. 프랑스는 혁신파의 나라고 영국은 보수파의 나라다. 프랑스는 루소의 조국이고, 영국은 버크의 조국이다. 그랬던 영국도 19세기에는 자본주의(당시에는 신흥 산업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였다) 세력에 밀려 보수파가 고전하고 있었다. 그랬던 보수당을 다시 일으킨 게 디즈레일리다.

 

그는 1872년 '수정궁'(런던 하이드파크에 세워진 만국박람회용 유리 건물이다) 연설에서 보수당의 주요 목표를 천명했다. 핵심은 인민의 생활조건 고양이었다. 노동조건의 개선 없이 인민의 조건이 개선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일을 외면하는 당시 자유당을 맹렬히 비난했다. 노동자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고 공장주의 잔혹 행위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보수당의 전통이자 핵심 임무라고 말했다.

 

뒤이어 일련의 개혁입법을 추진했다. 노동자에게 선거권을 줬다. 노동조건·공장환경·공중보건·공공교육 등에 걸친 사회개혁입법도 완성했다. 자산가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적 자선뿐만 아니라, 국가를 통해 그 책임을 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민의 상태가 정치의 중심과제라고 주장했다. 그가 이끈 보수당의 개혁입법은 이후 20세기 영국 복지국가로 이어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불리는 영국 복지 시스템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에 의해 완성됐다.

 

 
  
▲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사랑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건국60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과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이승만
 
 

 

물론 디즈레일리가 개혁입법을 추진한 것은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노동계급의 지지 따윈 필요 없으니 아예 친 자산가 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물론 디즈레일리는 인민을 진정으로 아끼고 보호하는 것은 국왕과 교회라면서 군주제와 종교제도의 영속성을 지키려 했다. 그래도 나라가 온통 하느님의 것이라고 봉헌만 하고, 정작 하느님의 어린 양들이 어찌 지내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자세보다야 훨씬 경건하지 않은가.

 

물론 디즈레일리는 대영제국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수용했다. 그래도 식민 상태의 경제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리는 무개념 시장개방보다는 훨씬 현명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디즈레일리는 급진파들이 나라를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귀족층의 '온정주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버크식 보수주의에 적잖게 기대고  있었다. 그래도 데모하는 인민을 때려잡아 없애야 한다고 이를 부득부득 가는 '배타주의'보다야 훨씬 탁월한 선택이 아닌가.

 

보수주의의 전통은 에드먼드 버크가 세웠지만, 디즈레일리야말로 보수주의를 정치 현실에 구현한 '보수당의 아버지'로 불린다. 1874년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이후 1906년까지 30년 보수당 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물론 노동계급을 비롯한 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가 바탕이 됐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인데, 이런 식의 보수주의 장기 집권이라면 춤을 추며 표를 주고 싶다. 흥미롭게도 디즈레일리가 내걸었던 모토 가운데는 'One Nation Tory'라는 게 있다. '토리'는 보수당의 별칭이다. 특권층과 노동계층으로 이분화된 나라가 아니라 이들 모두가 하나의 나라에서 공존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이라는 뜻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한나라당'이 될 것이다.

 

진정한 보수파 한 사람이 더 필요한 건 아닐까

 

촛불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히스테리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만의 하나,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 있어 그걸 어딘가 보탤 일이 있다면, 그건 혁신파가 아니라 혹시 보수파에 대한 것이 되어야 옳지 않을까. 개인의 입신양명 이후에 대해선 전혀 배우고 익힌 바 없는 한국 보수 세력에게 온정적 버크, 인민적 디즈레일리, 애국적 처칠, 공화적 케인즈 같은 보수주의자를 소개하는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똑똑한 혁신파가 더 많아지는 것보다, 진정한 보수파가 한 사람이라도 생겨나는 게 혹시 더 절실한 일은 아닐까. 이런 수준의 보수주의자들과 같은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과 비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면, 차라리 내가 그냥 보수주의자로 전향하는 게 더 나은 일은 아닐까. 금오산 정기 받은 내 안의 보수주의가 이 봄날, 자꾸 그렇게 묻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안수찬씨는 현재 한겨레21 기자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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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unn.net/News/Detail.asp?nsCode=51839 

 
대학 도서관 수준 천차만별, 일부는 질 저하 심각

학생 1인당 도서구입비 포스텍 94만원 최고 ... 남부대·한북대 6~7만원대 가장 적어
지난해 도서관 본예산 연세대 112억원 최대 ... 탐라대는 600만원 그쳐
본지, 전국 국공·사립 4년제 231개 대학 도서관 현황 비교 분석 결과

대학 마다 도서관의 한해 예산을 비롯해 장서수, 도서구입비 등에서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등 도서관 수준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대학 도서관의 경우 상황이 심각해 질적 수준에 의구심마저 더해지고 있다.

학생 1인당 도서구입비는 포스텍이 94만원으로 가장 많은 반면 남부대·한북대 등의 일부 대학은 6~7만원 선에 그쳤다. 학생 1인당 장서 수는 영산선학대가 1150권으로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극동대·남부대· 한북대 등은 20권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도서관 본예산은 연세대의 경우 112억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반면 탐라대는 600만원에 그쳐 연세대 대비 1866분의 1에 불과했다. 대학 총 예산 대비 도서관 예산비율은 한국기술교대가 9.3%로 가장 높았지만 극동대· 남부대· 예원예술대 등은 0.1%에도 미치지 못했다.

본지가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를 통해 전국 국공·사립 4년제 대학 231개 대학 캠퍼스 도서관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 학생 1인당 도서구입비 '단 1만원'도 안되는 대학 5곳 = 전국 국공·사립 231개 대학 캠퍼스 도서관 가운데 학생 1인당 도서구입비는 포스텍이 94만 6000원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전가톨릭대가 56만 9000원으로 그 뒤를 이었으나 포스텍에 비하면 38만원 가량의 차이를 보였다. 인제대(부산)가 51만 7000원, 영산선학대가 50만원으로 최상위권에 포함됐으며 △광주가톨릭대 45만 1000원 △금강대 42만 2000원 △가톨릭대 34만 7000원 △ICU 33만 4000원 △KAIST 33만 3000원 등의 순이었다. 20만원 이상은 24개교로 자료를 미공시한 21개 캠퍼스를 제외하고 전체의 11.4%에 불과했다.

학생 1인당 도서구입비가 가장 적은 곳은 남부대로 6800원에 그쳤으며 한북대가 7800원, 경북외대가 8900원, 극동대가 9300원, 탐라대가 9800원으로 단 1만원이 안되는 곳이 5곳이었다. 이외에도 예원예술대(1만 1300원)·아세아연합신학대(1만 3300원)·대구외대(1만 4800원)·경동대(1만 8000원)·초당대(1만 8100원)·한중대(1만 8700원) 등도 1만원대에 그쳤으며 3만원 미만인 곳은 20개교나 됐다.



◆ 학생 1인당 장서수 많게는 1150권, 적게는 15권 = 분석대상 가운데 학생 1인당 장서 수는 영산선학대가 1150.1권으로 월등히 많았다. 광주가톨릭대가 945.3권으로 그 다음으로 많았고 대구가톨릭대(신학)가 852.9권, 대전가톨릭대가 683.9권, 가톨릭대(성신)가 584.9권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편에 속했다. 200권 이상인 경우는 9개교에 불과했고 이들을 제외하고 100권 이상 200권 미만인 경우는 22개교에 머물렀다.

단 10권대에 그친 곳도 있다. 극동대가 15.4권으로 가장 적었고 남부대가 16.8권, 한북대가 19.0권, 건양대(대전)가 19.5권 등 4곳은 20권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외에도 △경인교대(경기) 21.3권 △명신대 23.2권 △가천의과학대 23.3권 등을 포함해 40권 미만인 곳은 22개교로 9.6%였으며 50권 미만도 이들을 포함해 49개교, 21.5%였다. 10개 대학 중 2곳 이상이 학생 1인당 장서수가 50권 미만에 그친 셈이다.



◆ 본예산 규모 연세대 112억 최대, 탐라대 600만원 최소 = 예산규모에서는 연세대가 112억 9900만원으로 단연 앞섰다. 91억 5300만원인 서울대보다도 22억 가량이 더 많았다. 서울대보다 약 17억원이 적은 고려대가 73억 9100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중앙대 69억 300만원 △한국기술교대 62억 6000만원 △이화여대 60억 6700만원 △한양대 60억 1000만원 등의 순으로 많았다. 이들을 비롯해 성균관대(47억 6500만원), 가톨릭대(41억 1800만원), 부산대(40억 1900만원) 등 16개교가 35억원 이상의 규모로 본예산을 책정했다.

한해 대학 도서관 본예산이 1000만원도 안되는 대학으로는 600만원의 탐라대, 770만원의 예원예술대, 852만원의 대구외대 등으로 이들 대학 도서관은 이 예산으로 지난해 도서구입과 도서관 운영까지 해야했다. △남부대·경북외대 각 1500만원대 △건동대 1700만원 △성민대 2000만원 △루터대 2900만원 △광신대·한북대 각 3000만원 등 5000만원 미만에 불과한 대학 도서관이 15개교인 것으로 나타났다.



◆ 총 예산 대비 도서관 본예산 0.1% 미만 4곳, 20개교는 0.5% 못 미쳐 = 지난해 대학의 총 예산 중 도서관 본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9.308%인 한국기술교대였다. 전주교대가 3.733%, 호남신학대가 3.656%, 중앙승가대가 3.616%, 광주가톨릭대가 3.507%로 그 뒤를 이었다. 연세대가 2.999%로 비교적 상위권에 포함됐다. △부산장신대 2.743% △영산선학대 2.402% △중앙대 2.348% △가톨릭대 2.302% 등 2% 이상은 17개교로 전체 대학의 8.1%에 그치는 등 10곳 중 1곳도 채 안됐다.

대학 총 예산 대비 도서관 본예산의 비중이 가장 낮은 곳은 0.080%의 극동대로 남부대·예원예술대(이상 0.087%)·탐라대(0.094%) 등과 함께 0.1%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천중문의대 0.216% △초당대 0.221% △제주대 0.243% △건동대 0.249% 등의 순으로 도서관 본예산 비중이 낮았다. 이들을 포함해 0.5% 미만은 20개교로 전체의 9.5%나 됐다.



이번 분석과 관련 본예산은 도서구입비와 운영비를 합한 비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부 대학의 경우 반드시 필요한 교육자료 보유는 고사하고 단순 독서실에도 못 미칠 만큼 심각한 상태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회장 곽동철 청주대(문헌정보학) 교수는 “절대적으로 대학 예산 규모가 적은데다 일반적으로 총 예산 중 3~6% 가량을 대학 도서관에 책정하는 선진국의 사정과 우리는 다를 수 밖에 없다”면서 “대학이 제역할을 하기 위해서 도서관의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대학도서관진흥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수준을 끌어올려야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학 도서관의 예산규모나 장서 수, 전문사서 등에 대한 관련 법령은 전무한 상태다. 결국 대학 도서관의 질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편 이번 분석에서 활용된 지표 가운데 도서구입비는 도서를 비롯해 CD, 정기출판물 등 비도서자료 등의 구입비이며 장서 수는 논문을 포함한 단행본에 한한다. 장서 수의 경우 가야대, 학생 1인당 도서구입비와 도서관 예산은 가야대 본·분교를 비롯해 단국대(천안), 중앙대(안성), 전남대(여수) 등 제2·3캠퍼스 중심으로 20여개 대학 캠퍼스가 정보를 별도로 공시하지 않아 이번 분석에서 제외됐다. 
 

윤지은 기자 (alice@unn.net) | 입력 : 09-01-16 오후 2:39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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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우리다 / 마르틴 니묄러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발췌

시사인 46호 2008년 8월 2일
정연주 몰아내고 낙하산 앉히고 예산을 틀어쥔다
고재열 기자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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