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인물/이봉창

이봉창은 독립운동사에서 예외적이며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애초에 독립운동의지가 없었고 식민지 조선 아래서 개인적인 출세를 염원했다. 기노시타 쇼죠를 비롯한 여러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만주와 일본 본토에서 10여 년간 개인적 영달을 위해 노력했다. 이 와중에 이봉창은 식민지 모순에 눈을 뜨게 된다. 조선인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신분적 한계에 대한 자각, 일본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극도의 무례함과 차별적인 처우에 크게 좌절한 것이다. 이때 상해에 임시정부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봉창은 망명을 결심한다. 독립운동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살고 싶은 개인적 욕망 때문이었다.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능숙했고 일본 문화를 향유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독립운동가에게 의심받았으나 결국 그는 민족 문제 앞에 자신을 던지기로 결심한다. 그의 결기를 인정한 김구는 자금과 폭탄을 건넸고 1932년 1월 도쿄에 잠입하여 천황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다. 하지만 폭탄의 성능이 약해 거사는 실패한다. 이봉창의 거사는 항일 여론이 뜨거웠던 중국인들을 감복하게 했다. 한편 김구는 폭탄 성능 개선에 주력하여 이후 윤봉길 의거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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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존재 방식에 대한 고민

Aegrimonia de esse et modo essendi.
애그리모니아 데 에쎄 에트 모도 에쎈디.

분명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이들의 과격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있는 것을 논외, 별종, 변태 취급하고,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무화시킬 때 인간다움은 퇴보합니다. 수많은 소수와 경계를 더는 아무렇지 않게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소수와 경계들을 우리는 더 호명해야만 합니다.
이 사회에서 말하는 보편의 개념은 아직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보편의 울타리에서 밀려난 수많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 불완전을 메꿔가며 새로운 보편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일이 곧 역사의 진보일 것입니다.

미래 사회를 상상하다.

Invenire societatem futuram.
인베니레 소치에타템 푸투람.

우리의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저는 우리의 미래 사회가 ‘꼴값을 떨며 인정머리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냥 좋게 좋게 가자’ 같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둥글게 둥글게’ ‘좋게 좋게’라 말하지만 그것은 그 말을 하는 자의 입장에서의 ‘좋음’일 뿐, 상대방이나 전체 사회에는 해악이 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간의 인정과 후덕함 속에서 따스하게 좋게 좋게 만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때로는 그 온기 속에서 많은 부조리함이 곰팡이처럼 번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 부조리와 비리는 결국 조직과 사회를 질식시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을 살해합니다.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인정의 올가미 속에서 개인이 죽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이 저마다 꼴값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도래하길 꿈꿉니다. 당신이 그리는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고요한 밤!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Nox silens!
녹스 실렌스!
Est quod habemus.
에스트 쿼드 하베무스.

우리는 누가 우리의 좋은 점을 말해주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장점을 말해주어도 듣기 좋으라고 하는 형식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요. 내가 떠올린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제안, 어깨를 펴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들도 지나친 겸손이나 조심스러움으로 오히려 낮춰서 평가하는 것을 차라리 편안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깎아내릴 이유도 없고 우리가 애초에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헛되고 헛되다.

Vanitas vanitatem.
바니타스 바니타템.

땅 위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그러나 권좌의 정점에 있던 인간도, 부와 존귀함의 바닥에 깔려 있던 이도 결국 숨이 다하면 같은 곳에서 만날 것입니다.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Adulescentia enim et
아둘레쉔티아 에님 에트
voluptas vana sunt.
볼룹타스 바나 순트

젊은 날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눈이 이끄는 데로 가서 몸과 마음이 기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무심히 한 어떤 말과 행동이 예기치 않게 커다란 고통과 괴로움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때 시간이야말로 가장 상급심의 재판관임을 절감하지요. 그러므로 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다 해서도 안 됨을 아는 것이 청춘의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달란트를
잊지 마세요.

Ne obliviscaris talentorum tuorum.
네 오블리비스카리스 탈렌토룸 투오룸.

재능을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만 측량한다면 정말 아무런 재능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노래 부르는 재능, 그림 그리는 재능, 남을 웃기는 재능, 운동 잘하는 재능 등 이런 또렷한 재능은 없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떤 재능은 범용적이어서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힘들어할 때 유머러스해지는 재능, 무뚝뚝해도 한두 마디에 진심을 잘 담는 재능, 조용히 누군가를 응원하는 재능…… 사실 우리 사회엔 이런 조용한 일상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활약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이런 재능, 당신 안에도 있습니다.

이것이 끝입니다.

Iste finis.
이스테 피니스.

모든 터널에 끝은 있습니다. 다만 끝까지 간 사람에게만 한해서. 이것이 터널의 끝입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래서 스스로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마다 제가 기도하듯 읽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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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타인의 증오에
짓눌리지 말아야 한다.

Non debet aliquis alterius odio
논 데베트 알리퀴스 알테리우스 오디오
praegravari.
프래그라바리.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입니다.

Imperare sibi maximum
임페라레 시비 막시뭄
imperium est.
임페리움 에스트.

인간에게는 삶을 ‘막 살아갈’ 자의적인 권리도, ‘아님 말고 식’의 태도로 타인의 삶을 침해할 권리도 없습니다. 인생에서 흔히 주관과 의지와 가능성을 강조하지만, 저는 진짜 인간다움은 나의 권리가 아닌 것을 헤아리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인생에서 겨우 다스릴 수 있는 것은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입니다.

너는 네가 키케로임을 잊지 마라.

Neli te oblivisci Ciceronem esse.
넬리 테 오블리비쉬 키케로넴 에쎄.

키케로는 성공한 변호사이자 정치가였으나 철학자로서 더 큰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가 쓴 글들은 읽노라면 지성과 품격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정치적 야심이 강해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Interarmasilentleges;인테르 아르마 실렌트 레제스"●는 현실에서 자신이 로마 공화정을 구할 적격의 인물이라고 자신했습니다. 끊임없이 생生을 갈망하면서도 사死에 집착하는 마음처럼 그는 시골에서 조용하게 사는 즐거움에 대해 아름다운 문체로 글을 써내려갔지만, 현실적으로는 원로원과 법정의 고위직을 갈망했습니다.
● 키케로, 『밀로를 위하여ProMilone』, IV, 11; 직역하면 "팔 사이의 법은 침묵한다"인데 ‘전시에 법은 침묵한다’는 뜻이다. 의역하면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로 옮길 수 있다.
생각하는 나와 현실의 나는 언제나 갈등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거룩하지도 항상 완벽할 수도 없기에 그렇게 부딪치는 마음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순과 고뇌까지도 철학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키케로의 글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새롭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때로 누추한 외투 속에도
지혜가 깃들어 있다.

Saepe est etiam sub palliolo
새페 에스트 에티암 숩 팔리올로
sordido sapientia.
소르디도 사피엔티아.

지혜에는 발이 달려 있어서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이를 찾아갑니다. "누추한 외투 속에도 지혜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깨어 있는 영혼에게 지혜는 스스로 걸어가 자신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위대한 신성이 있는데,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내면의 ‘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깊은 곳까지 가보면 얼룩이 먼저 보입니다. 진정 위대한 첫걸음은 그 얼룩을 마주한 뒤에 신성을 향해 다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때 인간은 나를 붙잡고 있는 깊은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사람들이 말씀에 목말라했고 오늘의 우리 역시 말씀이 간절한 이유는 바로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서이듯, 우리가 깊은 데로 가는 것은 그 심연으로부터 다시 빠져나오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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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사건/무왕의 중국 침공

무황(7~957년)은 발해의 2대왕이자 대조영의 아들로, 대당 강경책을 펼쳤던 인물이다 해가 건국된 후에도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위태로웠다. 돌궐과 당나라의 갈등이 심각해졌고 발해가 흥기하자 신라도 이에 대응하여 강릉 일대에 장성을 쌓는 등 당, 신라 그리고 돌궐, 발해, 왜 사이에서 복잡한 국지전과 외교전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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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담이 존재합니다.

Saeptum est inter hominem
샙툼 에스트 인테르 호미넴
et hominem.
에트 호미넴.

타인과 나의 경계엔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담이 있어, 나와 너의 자의식만으로는 그 담을 결코 넘어갈 수 없습니다. 담 안쪽의 내가 유일하다는 자의식을 버리고, 담 너머의 세상을 탐구하고 고민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공부라 말합니다.

대중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중은 진리로부터는 조금,
소문에 의해 많이 판단합니다.

Sic est vulgus: ex veritate pauca,
시크 에스트 불구스: 엑스 베리타테 파우카,
ex opinione multa aestimat.
엑스 오피니오네 물타 애스티마트.

소문을 뜻하는 라틴어 ‘rumor(루모르)’는 원래 ‘소란한 소리’라는 의미였습니다. 그 이유는 ‘rumor’라는 것 자체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이 소문이라면, 나 역시 들을 의지를 발휘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요?
근거 없는 낭설과 소문은 계속 흘러가게 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소문은 날아간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Fama volat.
파마 볼라트.

소문은 확실치도 않은 일을 크게 과장하는 것이 예사입니다.Ferreinmajusincertasresfamasolet;페레 인 마유스 인체르타스 레스 파마 솔레트."(리비우스)
소문은 시편 59장 14절의 말씀처럼 "마치 개들처럼 허기져 못 견디고 성 안을 싸돌아다닙니다Famem patientur ut canes, et circuibunt civitatem;파멤 파티엔투르 우트 카네스, 에트 치르쿠이분트 치비타템". 소문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고 일파만파 퍼집니다.

어리석음은
모든 재앙의 어머니요 구실입니다.

Stultia est mater atque materies
스툴티아 에스트 마테르 아트퀘 마테리에스
omnis perniciei.
옴니스 페르니치에이.

어리석음은 무지와 다릅니다. 무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순간에도 드러나곤 하지만, 어리석음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에,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에 비로소 드러납니다.

오만이 오면 수치도 오지만
겸손한 이에게는 지혜가 따른다.

Venit superbia, veniet et contumelia;
베니트 수페르비아, 베니에트 에트 콘투멜리아;
apud humiles autem sapientia.
아푸드 후밀레스 아우템 사피엔티아.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과감히 버려야 할 것들이 생겼습니다. 오만이라는 옷을 벗어던져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지닌 물건만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몸과 습관에 달라붙은 감정과 태도는 그보다 훨씬 더 버리기 어려웠습니다. 늘 불편함과 구속감을 느꼈지만, 이전에 타인과 세상을 향해 내가 친 벽이 나의 연약한 부분을 지켜주는 기능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고 난 뒤에는 나 자신을 어떻게 지킬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이 세상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이 저를 오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오만의 옷을 벗어던지자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우정의 온기와 다정의 눈물겨움을 깨달았습니다.

자녀를 기르는 부모님은 잘 아실 것입니다.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들어주는 귀, 믿어주는 눈빛, 이해하는 말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타인의 생각을 먼저 잘 듣고 헤아려야 그의 마음을 열 수 있고 돌릴 수도 있습니다. 정보가 부족해서 마음이 열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혜량하는 태도의 온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돌아서지 않는 것입니다.

대침묵

Altum silentium
알툼 실렌티움

침묵이 위대한 건 사람의 시선을 철저히 자기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자신이 살아온 동안 야금야금 키워왔던 생각의 나무에 전지가위를 들이대는 것입니다. 위대한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면 세상의 비난과 멸시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던 자신의 시선은 내면으로 향하게 되고, 절대 침묵은 모난 나를 둥글게 깎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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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금이야 2024-01-01 18:13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루피닷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