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존재 방식에 대한 고민

Aegrimonia de esse et modo essendi.
애그리모니아 데 에쎄 에트 모도 에쎈디.

분명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이들의 과격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있는 것을 논외, 별종, 변태 취급하고,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무화시킬 때 인간다움은 퇴보합니다. 수많은 소수와 경계를 더는 아무렇지 않게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소수와 경계들을 우리는 더 호명해야만 합니다.
이 사회에서 말하는 보편의 개념은 아직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보편의 울타리에서 밀려난 수많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 불완전을 메꿔가며 새로운 보편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일이 곧 역사의 진보일 것입니다.

미래 사회를 상상하다.

Invenire societatem futuram.
인베니레 소치에타템 푸투람.

우리의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저는 우리의 미래 사회가 ‘꼴값을 떨며 인정머리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냥 좋게 좋게 가자’ 같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둥글게 둥글게’ ‘좋게 좋게’라 말하지만 그것은 그 말을 하는 자의 입장에서의 ‘좋음’일 뿐, 상대방이나 전체 사회에는 해악이 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간의 인정과 후덕함 속에서 따스하게 좋게 좋게 만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때로는 그 온기 속에서 많은 부조리함이 곰팡이처럼 번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 부조리와 비리는 결국 조직과 사회를 질식시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을 살해합니다.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인정의 올가미 속에서 개인이 죽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이 저마다 꼴값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도래하길 꿈꿉니다. 당신이 그리는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고요한 밤!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Nox silens!
녹스 실렌스!
Est quod habemus.
에스트 쿼드 하베무스.

우리는 누가 우리의 좋은 점을 말해주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장점을 말해주어도 듣기 좋으라고 하는 형식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요. 내가 떠올린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제안, 어깨를 펴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들도 지나친 겸손이나 조심스러움으로 오히려 낮춰서 평가하는 것을 차라리 편안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깎아내릴 이유도 없고 우리가 애초에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헛되고 헛되다.

Vanitas vanitatem.
바니타스 바니타템.

땅 위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그러나 권좌의 정점에 있던 인간도, 부와 존귀함의 바닥에 깔려 있던 이도 결국 숨이 다하면 같은 곳에서 만날 것입니다.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Adulescentia enim et
아둘레쉔티아 에님 에트
voluptas vana sunt.
볼룹타스 바나 순트

젊은 날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눈이 이끄는 데로 가서 몸과 마음이 기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무심히 한 어떤 말과 행동이 예기치 않게 커다란 고통과 괴로움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때 시간이야말로 가장 상급심의 재판관임을 절감하지요. 그러므로 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다 해서도 안 됨을 아는 것이 청춘의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달란트를
잊지 마세요.

Ne obliviscaris talentorum tuorum.
네 오블리비스카리스 탈렌토룸 투오룸.

재능을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만 측량한다면 정말 아무런 재능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노래 부르는 재능, 그림 그리는 재능, 남을 웃기는 재능, 운동 잘하는 재능 등 이런 또렷한 재능은 없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떤 재능은 범용적이어서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힘들어할 때 유머러스해지는 재능, 무뚝뚝해도 한두 마디에 진심을 잘 담는 재능, 조용히 누군가를 응원하는 재능…… 사실 우리 사회엔 이런 조용한 일상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활약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이런 재능, 당신 안에도 있습니다.

이것이 끝입니다.

Iste finis.
이스테 피니스.

모든 터널에 끝은 있습니다. 다만 끝까지 간 사람에게만 한해서. 이것이 터널의 끝입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래서 스스로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마다 제가 기도하듯 읽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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