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팅Quitting(그만두기)은 사랑이다.
비상구이자 지름길이자 대담한 모험이다. 그만두기 덕분에 창의력이 급상승하고, 반항심에 벅차 주먹을 치켜들기도 하고, 최악의 상황도 면한다.
퀴팅은 재난도 될 수 있다. 하던 일을 그만둠으로써 경력이 망가지고 관계가 파탄 나는 등 엄청난 역효과로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을 구할 수도 있다.

특히 나 자신이 싫었다.
스스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퀴팅은 생존 본능이다.
하지만 나는 그만두면 과연 어떨까를 생각하기보다 먼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많은 메시지를 무시해야만 했다. 그 메시지는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공허할 때조차 ‘그만두는 것은 나약하고 수치스럽고 비겁하다’라고 소리 지른다.

우리는 스스로 멈추어 세밀하게 점검하지 않으면 휘청대면서 계속 가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가봤자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실 그쪽으로 가면 몹시 비참해지는데도 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만두다quit’라는 말을 몹시 나약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말의 뿌리는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어원이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가라앉히다, 잠재우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quietare’에서 왔다는 추측이 가장 그럴듯하다. 이 말은 여느 단어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언어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뜻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딕셔너리닷컴Dictionary.com에는 다음 세 가지 의미가 등록되어 있다.
‘멈추다, 그치다, 중단하다.’
‘출발하다, 떠나다.’
‘포기하다, 물러나다.’
내게는 이 중 어떤 것도 순하게 들리지 않는다. 모두 단호한 느낌이고, 앞으로 나아가거나 어딘가에서 풀려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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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학문•철학/과거제도

과거제도는 중국 수나라 때 시작됐다. 신분이 아닌 학문적 능력을 바탕으로 인사를 선발하는 제도로, 당나라를 거쳐 송나라 때 관료 선발 제도로 확실히 정착한다. 특히 송나라 때는 시험이 엄격하게 치러졌고 일부 천민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광종 때 처음 실시됐고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다. 문신 관료를 뽑는 문과 무신을 뽑는 무과, 각종 전문직을 뽑는 잡과 마지막으로 승려 관리를 뽑는 승과가 있었다. 고려 시대 때는 무과가 없었고 조선 시대에는 승과가 폐지됐다. 법적으로 양인 이상 응시가 가능했고 서얼의 경우에는 과거 시험의 꽃인 문과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다. 중국보다 과거 응시의 제한이 높았고 3년에 한 번 시험 보는 것을 기본으로 했지만 왕실의 축일이나 국왕의 필요에 의해 임의적으로 과거 시험을 치른 경우가 너무 많았다. 소과를 통과하면 생원 혹은 진사라 불렀고 성균관에 입학한 후 대과에 붙어야 정식 관료가 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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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문화/동아일보

1920년 창간된 신문으로, 민족지이자 애국 계몽지로 시작했다. 1920년 <조선 부모에게 고함>이라는 6회짜리 논설에서는 유교문화를 맹렬히 비판했다가 유림에맹비난을 당하기도 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한글보급운동을 위해 노력했고 심훈의 <상록수》가 이때 <동아일보>에서 연재됐다.
<동아일보>는 애초에 젊은 신문으로 창간됐다. 창간 당시 사주인 김성수가 29세, 주간 장덕수가 26세, 편집국장 이상협이 27세, 논설위원 겸 정치부장 진학문은 26세, 송진우가 32세였고 유학생들이 많아서 ‘와세다대학파‘라고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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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유적•유물/석굴암

통일신라 때 만든 석굴 사원, 애초에 산을 파서 석굴을 만드는 행위는 거주를 위함이었다. 하지만 건축기술이 발전하면서 석굴은 수행자의 공간으로 의미가 바뀐다. 수행을 위해 어둡고 고독한 공간을 만든 것인데 불교가 발전하면서 더욱 특별한 장소가 됐다.
기원전 3세기경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은 불교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는데 이미 이때부터 석굴 사원이 만들어졌다. 데칸 고원에도 여러 석굴 사원이 남아 있다.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석굴 사원은 아잔타다. 5세기경 굽타 왕조 시대 때 만들어진 곳인데, 버려졌다가 1819년 영국군에 의해 발견됐다. 30여 개의 석굴사원은 위대한 불교 예술로 치장됐는데 벽화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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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열쇠 자물쇠‘ 게임을 잘해야 합니다. 이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열쇠‘의 다양한 쓰임새를 파악해 머리에 기억해야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학생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공부 모습입니다. 새로운 개념을 배우고 이를 열심히 정리해서 까먹지 않게 잘 기억하는 것 말입니다.

평소에 꾸준히 새로운 문제를 풀어보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면서 직접 해결해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훈련‘이라는 단어입니다. 어떤 문제를 맞닥뜨리더라도 머릿속 개념을 이용해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 나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언가 내 머리에 더 많이 넣으려고 하는 일반적인 공부가 아닌, 문제 풀이 경험을 통해 처음 본 문제라도 겁먹지 않고 대처해내는 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운 유형의 문제에 당황해보고, 실마리를 찾아 풀이를 만들어보고, 처참히 틀려보기도 하는 그런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궁리해서 만들어놓은 정리된 풀이는 아무리 많이 구경한다고 해도 내 점수는 단 1점도 결코 오르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틀리든 맞든 내가 직접 고민하고 풀어봐야 합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야 새로운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는 경지로 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문제 풀이는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혼자서 새로운 문제를 파악하고 필요한 개념을 떠올려 깊이 생각해 한 글자 한 글자 풀이를 만들어봐야 합니다.

언젠가는 보게 되더라도 처음에는 답지의 존재 자체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답지에 손이 쉽게 가지 않고 문제를 푸는 데 온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남김없이 시도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발 문제 풀이 양에 대한 강한 집착과 과도한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단 한 문제를 풀더라도 앞서 말한 문제 풀이 훈련을 위해 올바른 방법을 지키며 묵묵히 풀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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