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죄악에 얽혀든 나를 기다리는 것은 적의 협박과 위협, 공포와 치욕뿐이었다. 모자와 양산, 오래된 고급 사암이 깔린 마룻바닥, 마루 장식장 위에 걸린 커다란그림, 안방에서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그 어느때보다 더 사랑스럽고 소중했다. 그러나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내게 위로가 아니라, 오로지 질책일 뿐이었다. 나는 그 밝고 고요한 세계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나는 내 구두에 더러움을 묻혀 왔다. 발깔개에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더러운 발. 나는 우리 집의 세계에 전혀 알 수 없는 그림자를 몰고 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비밀과 불안을 가졌다 해도 오늘 내가 가져온 것에 비하면 모두 장난이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운명이 뒤쫓아와 내게 손을 뻗쳤다. 운명의 손아귀에서 어머니도 나를 구할 수 없고, 어머니가 내가 처한 상황을 알아서도 안 되었다. 내 죄가 도둑질이든 거짓말이든 (나는 신의 이름을 걸어 거짓맹세를 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였다. 나의 죄는 내가 악마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그 애를 왜 따라갔을까? 왜 아버지 말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크로머를 따랐을까? 왜 그 따위 도둑질 이야기를 억지로 꾸며 내고 영웅이 된 것 마냥 으스댔을까? 악마가 나를 꽉 움켜쥐었다. 적이 등 뒤까지 바짝 쫓아왔다.

이제까지의 체험들 중 가장 중요하고 영원할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권위가 최초로 찢긴 자국이니까. 유년기를 지탱하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 되려면 반드시 무너뜨려야만 하는 기둥들에 생긴 최초의 균열이니까. 운명의 핵심적인 길은 이런 보이지않는 체험들이 그려 간다. 찢김과 균열은 계속 생긴다. 아물고 잊혀진다지만, 마음속 가장 후미진 은밀한 곳에서는 여전히 피흘리며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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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살아 숨 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요즘은 그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대자연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을 무더기로 쏘아 죽이기도 하니까. 만일 우리가 귀하고 유일무이한 목숨들이 아니라면, 총알 하나면 세상에서 간단히 제거해버릴 수 있는 존재들에 불과하다면, 이 이야기는 써 내려갈 이유가 전혀 없다.

정말 이상한 점은 두 세계의 경계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
두 세계가 너무나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 집 가정부 리나는 저녁 기도 때 거실 문가에 앉아 깨끗이 씻은 두 손을 단정하게 매만진 앞치마 위에 올려놓고 맑은 목소리로 우리와 함께 찬송가를 불렀는데, 그럴 때 리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계, 밝고 진실한 세계에 속했다. 하지만 부엌이나 헛간에서 내게 머리 없는 난쟁이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푸줏간에서 이웃 여자들과 싸울 때면,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고 비밀에 싸여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모두가 그랬고, 특히 내가 그랬다. 분명나는 밝고 진실한 세계에 속했지만(나는 내 부모님의 자식이었으니까!)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는 곳마다 다른 세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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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고세는 조금 전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아직 아르바이트에 익숙하지 않아 긴장한 낌새는 있었지만, 딱히 시바에게 유별난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게 보통 아니야?"
그러자 고제키가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보통이라... 보통이라는 말, 왠지 이상한 것 같아. 보통이 뭔지, 사람마다 다르잖아.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아."
야스오가 말했다. 주변을 한번 둘러봐.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사는 사람들은 사실, 놀라울 정도로 적어. 우선 기회를 얻는 것부터가 어렵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에 놓이는 것도 좀처럼 쉽지 않고 재능도 어느 정도는 필요해. 안 되겠다, 더 이상은 못 해, 하고 좌절하면 거기서 끝이니까.

처음으로 들은 고제키의 고백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렴풋하게 보이던 것이 비로소 선명해진 느낌이랄까.
그리고 반성했다. 고제키를 그저 어른스럽게만 보고 있었는데, 자신과 다를 바 없이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했던 것이다. 알고 있다며 묻지 않는 것은 오히려 고민만 쌓이게 할 뿐이다. 어디에선가 토해 낼 수 있게 도와줬어야 했다. 자신은 고제키에게 무엇이든 상담해 왔으니,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수 있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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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버킷리스트들은 실행에 옮겼어?"
다키지가 질문을 던지자 "그게 말이야" 하고 준코가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생각나는 대로 그냥 했어. 체크한 리스트도 꽤 있고. 근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모르겠더라고. 이렇게 하면 정말 행복해지는 건지."
나미에가 적은 리스트에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거든. 준코가 말을 덧붙였다. 남편 데쓰야 씨랑 같이할 일들만 잔뜩 적혀 있었어. 그 노트를 떠올리니까 뭔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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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강하잖아. 그렇게 혼잣맛을 하는데 갑자기 배 속이 요동쳤다. 요즘 들어 계속되는 돌발성 통증이다. 배를 움켜쥐고 장수풍뎅이 애벌레처럼 몸을 움츠린다. 미즈키의 얼굴, 나유타의 얼굴, 그리고 인상 좋아 보이는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머리를 흔들며 아니야, 아니야 하며 억지로 생각을 떨쳐 낸다.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통증을 견디며 아즈사는 울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비겁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툭 내뱉는 듯한 말투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나유타는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쓰레기통에 빈 캔을 던진다. 아즈사가 그 모습을 눈으로 좇자, 몸을 휙 돌린다.
"뭐라고 하든 난 괜찮아. 남의 눈치를 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들이 있으니까. 그런 하찮은 이유로 소중한 것들에 소홀했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
단호하게 말한 나유타가 그대로 자리를 떴다. 얼마 안가 자전거를 타고 멀어지는 뒷모습이 보였다. 사라져 가는 나유타를 보면서 아즈사는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 나는 남의 눈치만 살피고 있지 않은가. 그럴 리 없다는 생각과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교차한다. 나유타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떠올린 사람이 바로 미즈키였다. 나는 미즈키의 안색과 기분을 살피고 있지 않나. 그래, 분명 눈치를 보고 있어.

"나가사키의 학교에 완전히 적응을 못했거든. 힘들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그 동네의 텐더니스에 가. 텐더니스 디저트를 먹으면 아즈사랑 같이 먹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이상하지? 하고 수줍은 듯 나유타가 뺨을 긁적인다. 뭐가 이상해, 하고 아즈사가 답한다.
"나도 그래. 나유타라면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 줬을까 생걱하면서 먹곤 했어."
"그럼, 우리 둘이 똑같네."
나유타와 아즈사가 목소리를 겹쳐 가며 웃는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두 사람은 같은 디저트를 먹으며 서로를 떠올렸던 것이다.

아즈사와 나유타는 함께 달콤한 디저트를 베어 물었다. 행복한 달콤함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텐더니스가 있는 한, 그곳에 가기만 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분명 이어질 수있다. 그런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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