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죄악에 얽혀든 나를 기다리는 것은 적의 협박과 위협, 공포와 치욕뿐이었다. 모자와 양산, 오래된 고급 사암이 깔린 마룻바닥, 마루 장식장 위에 걸린 커다란그림, 안방에서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그 어느때보다 더 사랑스럽고 소중했다. 그러나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내게 위로가 아니라, 오로지 질책일 뿐이었다. 나는 그 밝고 고요한 세계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나는 내 구두에 더러움을 묻혀 왔다. 발깔개에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더러운 발. 나는 우리 집의 세계에 전혀 알 수 없는 그림자를 몰고 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비밀과 불안을 가졌다 해도 오늘 내가 가져온 것에 비하면 모두 장난이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운명이 뒤쫓아와 내게 손을 뻗쳤다. 운명의 손아귀에서 어머니도 나를 구할 수 없고, 어머니가 내가 처한 상황을 알아서도 안 되었다. 내 죄가 도둑질이든 거짓말이든 (나는 신의 이름을 걸어 거짓맹세를 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였다. 나의 죄는 내가 악마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그 애를 왜 따라갔을까? 왜 아버지 말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크로머를 따랐을까? 왜 그 따위 도둑질 이야기를 억지로 꾸며 내고 영웅이 된 것 마냥 으스댔을까? 악마가 나를 꽉 움켜쥐었다. 적이 등 뒤까지 바짝 쫓아왔다.

이제까지의 체험들 중 가장 중요하고 영원할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권위가 최초로 찢긴 자국이니까. 유년기를 지탱하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 되려면 반드시 무너뜨려야만 하는 기둥들에 생긴 최초의 균열이니까. 운명의 핵심적인 길은 이런 보이지않는 체험들이 그려 간다. 찢김과 균열은 계속 생긴다. 아물고 잊혀진다지만, 마음속 가장 후미진 은밀한 곳에서는 여전히 피흘리며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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