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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4.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후기 인상주의
반 고흐는 색 중에서도 노란색에 아주 푹 빠진 화가였다.
새로운 예술을 발견하고자 무작정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상경한 33세 반 고흐. 그가 파리에 도착할 당시 파리를 접수한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녹색 요정’이라 불리는 술 압생트다.
높은 도수와 저렴한 가격으로 가성비 있고, 독특한 향으로 애주가들을 사로잡는데에 그치지 않고 물과 설탕을 등장시켜 감성까지 갖춘 술이 된다.
이 녹색 요정을 파리의 예술가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녹색 요정이 반 고흐도 접수한다.
고흐가 파리에 머문 2년 반 동안 230여점의 작품을 만들만큼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몰두했다. 더불어 압생트에도.
이미 삶과 육체 모두 극단까지 끌고 간 반 고흐. 압생트의 산지인 아를에서 색이 이끄는 예술의 극단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기 시작한다.
불멸의 명작을 쏟아낸다. 정물도, 풍경도, 카페도, 심지어 자신의 집까지 온통 샛노랗다. 노란색에 대한 몰입일까, 강박이었을까?
녹색 요정을 마시고 또 마신 이유로 산토닌에 중독되고 만다.
산토닌은 압생트의 주 원료인 향쑥의 주요성분으로 과다복용 시 부작용인 황시증(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것)으로 모든 대상을 노랗게 보게 된다. 노란색이 아닌 것도 노랗게 보이고, 노란색은 더욱 샛노랗게 보이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색을 표현해야 하는 화가가 색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저주같지만 고흐는 그것을 영감의 원천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부를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고음의 노랑’을 찾아낸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던 반 고흐가 생명을 태우며 꽃피운 대표작이 바로 <해바라기>다.
압생트의 남은 한 가지 저주가 있었으니 바로 튜존이다.
이 성분은 뇌 세포를 파괴하고 정신착란과 간질발작을 일으킨다. 고흐의 몸과 마음을 뿌리부터 파괴시킨 ’녹색 악마‘였다.
점차 격렬해지는 정신착란과 귀를 막아도 끊임없이 들리는 환청으로 결국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르고 만다. 그 때 고흐가 그린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은 유례없는 것이 되었다.
이 사건 후, 그는 압생트로 인한 온갖 중독 증세를 떨쳐 내고자 노력하며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압생트를 끊고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하며 사투를 벌인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강렬히 몰두하는 만큼 그는 끝을 모르고 빛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탄생한 작품이 <별이 빛나는 밤>과 <붓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지독한 고통은 그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고 그 끝에 최후의 고통이 찾아온다.
마음껏 창작 활동을 하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던 동생 테오의 상황이 극도로 나빠진 것이다. 동생의 불행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긴 고흐는 더 이상 세상에서 숨 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테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다 말고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 작별을 고한다.
결국 고흐는 압생트의 저주를 극복하지 못했다. 요정의 탈을 쓰고 날아온 녹색 악마 압생트는 고흐의 영혼을 갉아 먹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우리는 반 고흐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노랑을 볼 수 있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