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5.로맨틱한 그림의 정수 클림트/미술계의 제임스 딘, ’희대의 반항아‘
클림트의 어린 시절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두 가지가 있었다. 성공에 대한 끈기와 열정 그리고 귀금속 세공사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을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
이 두 가지가 결합돼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성공의 쾌속질주를 시작하는데…

청년사업거로 승승장구하던 당시 그의 그림에 빼어난 기교는 있었지만 자신만의 철학과 개성은 빠져 있었다.
그림으로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하고 싶었기 때문에 왕실과 주류 미술계가 원하는 전통을 고수하는 당시의 대세를 따르고 있었다. 권력의 지시에 따라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클림트의 나이 서른,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그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아버지와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큰 충격과 슬픔으로 절망의 수렁으로 빠진 그때, 자신의 삶과 예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제야 자신의 그림을 깨닫고 세기말 오스트리아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시대의 반항아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그의 반항에는 신사다운 품격이 있었다.

그 첫번째 고품격 반항은 19세기 말, 빈의 미술을 쥐락펴락하던 ‘빈 미술가협회’권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반항아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다.
주류 미술 세력으로부터 분리주의 그룹을 통해 반항의 서막을 알린 클림트는 이제 그만의 두번째 고품격 반항으로 고정관념으로 가려져 있던 진실을 벗긴다.
반항아의 마지막 고품격 반항, 자신의 관점에서 인간이 만든 학문이라는 것의 진실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성과 학문의 한계, 법의 부조리를 고발했다.
학계와 언론, 대중들은 하나같이 클림트를 비난하기 시작하고 결국 클림트는 작품들을 철수시킨다.
작품들이 흑백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소실되었기 때문인데 1946년 히틀러가 퇴폐미술로 낙인찍어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원본 대작이 없다는 말이다.

예술가답게 표현의 자유를 고집했던 강심장의 반항아도 온갖 반발과 저항을 이겨내고 결국 새로운 예술의 씨앗을 심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뇌졸중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그렸던 <아기(요람)>이다. 클림트는 평생 ‘여성’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몰두했는데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주제가 아기라는 사실은 뜻밖이라고 입을 모은다.

클림트는 기꺼이 고난의 사막을 걸었고 문제가 있다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외치며 투쟁했다. 그리고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으로 자신의 삶을 놀이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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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행동과 예술 작품으로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다면 소수의 사람을 만족시켜라.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 P109

"지금 나는 용기도 재능도 부족하다. 곡물 창고로 가서 목을 매는 게 낫지 않은가 매일 자문한다. 그림만이 나를 지탱해준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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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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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후기 인상주의
반 고흐는 색 중에서도 노란색에 아주 푹 빠진 화가였다.
새로운 예술을 발견하고자 무작정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상경한 33세 반 고흐. 그가 파리에 도착할 당시 파리를 접수한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녹색 요정’이라 불리는 술 압생트다.
높은 도수와 저렴한 가격으로 가성비 있고, 독특한 향으로 애주가들을 사로잡는데에 그치지 않고 물과 설탕을 등장시켜 감성까지 갖춘 술이 된다.
이 녹색 요정을 파리의 예술가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녹색 요정이 반 고흐도 접수한다.
고흐가 파리에 머문 2년 반 동안 230여점의 작품을 만들만큼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몰두했다. 더불어 압생트에도.

이미 삶과 육체 모두 극단까지 끌고 간 반 고흐. 압생트의 산지인 아를에서 색이 이끄는 예술의 극단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기 시작한다.
불멸의 명작을 쏟아낸다. 정물도, 풍경도, 카페도, 심지어 자신의 집까지 온통 샛노랗다. 노란색에 대한 몰입일까, 강박이었을까?
녹색 요정을 마시고 또 마신 이유로 산토닌에 중독되고 만다.
산토닌은 압생트의 주 원료인 향쑥의 주요성분으로 과다복용 시 부작용인 황시증(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것)으로 모든 대상을 노랗게 보게 된다. 노란색이 아닌 것도 노랗게 보이고, 노란색은 더욱 샛노랗게 보이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색을 표현해야 하는 화가가 색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저주같지만 고흐는 그것을 영감의 원천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부를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고음의 노랑’을 찾아낸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던 반 고흐가 생명을 태우며 꽃피운 대표작이 바로 <해바라기>다.

압생트의 남은 한 가지 저주가 있었으니 바로 튜존이다.
이 성분은 뇌 세포를 파괴하고 정신착란과 간질발작을 일으킨다. 고흐의 몸과 마음을 뿌리부터 파괴시킨 ’녹색 악마‘였다.
점차 격렬해지는 정신착란과 귀를 막아도 끊임없이 들리는 환청으로 결국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르고 만다. 그 때 고흐가 그린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은 유례없는 것이 되었다.

이 사건 후, 그는 압생트로 인한 온갖 중독 증세를 떨쳐 내고자 노력하며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압생트를 끊고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하며 사투를 벌인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강렬히 몰두하는 만큼 그는 끝을 모르고 빛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탄생한 작품이 <별이 빛나는 밤>과 <붓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지독한 고통은 그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고 그 끝에 최후의 고통이 찾아온다.
마음껏 창작 활동을 하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던 동생 테오의 상황이 극도로 나빠진 것이다. 동생의 불행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긴 고흐는 더 이상 세상에서 숨 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테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다 말고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 작별을 고한다.
결국 고흐는 압생트의 저주를 극복하지 못했다. 요정의 탈을 쓰고 날아온 녹색 악마 압생트는 고흐의 영혼을 갉아 먹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우리는 반 고흐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노랑을 볼 수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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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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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발레리나의 화가 에드가 드가/인상주의자인 동시에 인상주의자가 아닌 드가?
원조 독신주의자로 예술 때문에 사랑을 포기했다. 파리 한복판에서 수도승의 삶을 살았던 드가. 그는 평생 여성을 그리는 데 자신의 모든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러던 중 19세기 후반 파리의 평범한 여성을 그렸는데 그 중 대표적인 여인이 발레리나다. 어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때부터 발레리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드가는 왜 유독 발레리나에게 몰두했을까?
무대 위에서는 더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발레리나지만 뼈가 성장해 굳기 전에 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인생에 대한 선택권 없이 가혹한 훈련을 버텨야 내야 하므로 선택된 것은 빈민가 소녀들이었다. 이런 극한 직업임에도 소녀들이 버텨냈던 이유는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라고…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학하지 않았다.
무대 위는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발레리나지만 무대 뒤편의 삶은 어둡고 탁했다.

드가는 ‘있는 그대로의’ 발레리나를 보았다고 한다. 화려한 무대 뒤편, 치열하고 은밀한 그녀들의 삶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무대 위 발레 리허설>에서 리허설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실크해트를 쓴 부유한 두 남자를 발견한다. 발레리나는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고통을 이겨내며 무대에서 춤을 추고, 그 남성들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그녀들의 무대를 찾았던 것.
노인이 된 드가는 시력을 많이 잃어 원하는만큼 예술을 표현하지 못한 답답함을 시로 대신하듯 발레리나를 주제로 많은 시를 쓴다. 그의 시에서 그가 발레리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신사 예술가의 품격이 느껴진다.

드가는 귀족 집안의 자제였는데 어째 다른 상류층들과는 다른 눈으로 그 시대의 여인들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드가가 독신남이었던 것.
성에 대한 욕구를 멀리하는 금욕주의자가 되어 남성과 여성의 ‘중간자‘가 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럼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알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실내(강간)>은 너무 충격적이고 드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렵지 않나? 이제는 이해를 해야한다. 왜 드가가 굳이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말이다. 진정으로 이해했다면 ’거장‘이라는 겉포장에 가려진 ’인간‘ 드가를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작가님은 말하신다.
드가는 이 작품을 자신이 숨 쉬던 당시 파리의 풍속을 그린거라 하여 그저 ’풍속화‘라고 했는데 작품을 본 다른 남성들이 지은 제목이 <실내(강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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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1-28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가의 시선이 권력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내용도 보았습니다. 드가의 그림에는 알수록 복잡한 상황들이 섞여있죠. 더구나 당대 예술가들의 삶을 보면 그림 이면의 생각들이 건너와서 마음을 어둡게 하죠ㅠ

억울한홍합 2022-11-28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안타까웠어요. 행복하지 않은 화가의 눈에 그림 이면의 행복하지 않은 모습이 보이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인데 같은 인간적인 마음으로 씁쓸하기도 합니다ㅠㅠ
 

1.절규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표현주의의 선구자(감정을 표출한다)
회화란 ‘눈으로 본 것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전통적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

2.미술계의 여성 혁명가 프리다 칼로
그 여자(프리다 칼로)와 그 남자(디에고),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고통의 여왕으로 등극한 21세 프리다 칼로와 취미가 불륜인 국민 화가 43세 디에고 리베라, 이 둘은 불멸의 막장 드라마를 쓰기 위해 이미 행진을 시작하고야 만다.
막장의 서막인 결혼 후 교통사고로 아이를 가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갖는 결심을 하지만 2번의 유산으로 슬픔에 빠진 프리다 칼로에게 드디어(?) 막장이 시작되었다.
디에로의 바람 외길 인생 40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진 프리다의 복수들과 막장 복수극의 결말은 부부관계로는 디에고가 가해자, 프리다가 피해자로 보는 프리다 입장에서 쓰인 것이 사실이지만 디에고가 가해자이기만 했을까라는 궁금증도 유발한다고 한다.
디에고와 프리다의 관계는 불륜 사건 이후로 계속 냉전 상태였지만 디에고가 프리다의 미술적 재능이 아까워 전시회에 전시를 가능하게 도왔고 국민 화가 디에고의 부인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라고도…
마지막 한 가지 더! 이 막장드라마가 없었다면 프리다 칼로의 명작이 과연 탄생할 수 있었을까?라며 아무래도 둘은 예술을 위해 만나야할 운명이 아니었겠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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