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로 들어가지 못하던 때, 그 문장들은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었고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북극성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둑한 공부방에서 그 문장들은 실제로 별처럼 빛나며 피로에 지쳐 흐릿해지는 제 눈에 안광을 되찾아주었습니다. 낡은 스탠드 대신 인생의 등대가 되어준 것도

요즘 젊은이들이 몸에 새기는 타투 문구 가운데 라틴어 문장이 자주 보여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아모르 파티Amor fati, 카르페 디엠Carpe diem,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처럼 널리 알려진 말 외에도 우리가 새겨야 할 라틴어 문장들은 별처럼 많습니다. 이 책에서 평생 암호처럼, 주문처럼 읊조릴 만한 한 문장, 당신의 마음과 인생에 영영 지워지지 않도록 타투처럼 새겨둘 만한 문장을 만난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Ad astra per aspera
아드 아스트라 페르 아스페라

우주뿐만 아니라 인생의 별에 이르는 길에도 언제나 고난이 뒤따릅니다. 닥쳐오는 고난들을 직면하고 견뎌내는 이들은 결국 자신의 별에 가닿을 것입니다. 역경에 짓눌려 별에 이르는 길을 잊지 않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나는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고 싶다.

Volo esse ut vivam,
볼로 에쎄 우트 비밤,
non vivere ut edam.
논 비베레 우트 에담.

하나의 명문, 한 폭의 명화, 한 소절의 아름다운 음악이 때론 오늘이 없는 인간을 일으켜 내일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나는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고 싶다"는 이 짧은 문장이 제겐 그랬습니다. 미래도 안 보이고, 그저 열등한 저 자신에 대한 답답함으로 가득했던 제게 하나의 문장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너, 어떻게 살래?’ 하고요. 어떻게 살지에 대한 해답은 없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물음은 계속해서 제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위로해줄 이들을 바랐건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Sustinui qui simul contristaretur, et non fuit.
수스티누이 퀴 시물 콘트리스타레투르, 에트 논 푸이트.
(시편69,20)

시편의 이 고백처럼 위로해줄 이도 없고, 제게 내일이 존재할지도 알 수 없었지만 저는 ‘될 때까지’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살기 위한 것입니다. 먹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그 밖의 모든 활동도 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짧은 명문이 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할지라도, 내일이 없을 것만 같은 내게 내일을 생각하게 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 힘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또 하루를 더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의지입니다

너와 함께 살 수도
너 없이 살 수도 없네.

Nec tecum possum vivere
네크 테쿰 포쑴 비베레
nec sine te.
네크 시네 테.

성경은 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어느 특정인의 탓으로 몰아감으로써, 불행의 책임을 계속해서 남에게 뒤집어씌우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대속 심리를 보여줍니다. 그럼으로써 나는 죄 없는 선량한 사람이라 믿으며 현재 벌어진 눈앞의 문제들은 나와 무관한 양 외면하려 하지요. 이는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에서도 쉽게 드러나는 인간의 허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꼭 역사상 어느 한 시대, 한 사회만의 문제였을까요?
가정에서도 유난히 튀는 가족 구성원 한 명을 콕 집어 문제아 취급할 때가 많고, 직장에서도 그 대상이 상사든 말단사원이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를 어느 한 사람의 문제로 몰아가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만 없어지면 정말 내가 편하고 행복해지나요? 지금 제 곁에는 그때 불편했던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나는 그 사람이 없어져서 행복한 걸까요? 그대가 지금 죽도록 미워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혹시 나는 인생에서 사라지면 짜릿할 듯한 누군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며 내 불행의 핑계를 전가하는 것은 아닐까요?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내키지 않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

Qui quae vult dicit,
퀴 퀘 불트 디치트,
quae non vult audiet.
퀘 논 불트 아우디에트.

이제 공부든 어떤 분야든 경쟁상대를 가까이에 있는 학급 동료나 친구, 주변 사람이 아니라 책 속의 인물이나 세계적인 인물로 설정하고 자기 자신을 담금질해가면 어떨까요? 주변 인물을 경쟁상대로 여기면 친구를 사귀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없으면 사람은 결코 행복해지기 힘듭니다. 하물며 주변 인물을 모두 경쟁상대로 돌리면 친구는 고사하고 본인조차 숨쉬기 힘들어질 겁니다. 내가 숨쉬고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주변인을 경쟁상대로 몰아가는 풍토와 태도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합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법을 배운 사람은
행복하다.

Felix est,
펠릭스 에스트,
qui didicit contentus vivere parvo.
퀴 디디치트 콘텐투스 비베레 파르보.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과 기쁨,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시간?이런 시간은 짧지만, 이 짧은 시간의 총량이 행복의 얼굴입니다.

약한 사람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 강하다.

Infirmi tantum valent iis
인피르미 탄툼 발렌트 이이스
qui sunt proximis.
퀴 순트 프록시미스.

절박한 처지에 놓이다보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것을 해결책으로 믿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또 너무 절박해지다보면 현재 상황을 결코 호전시키거나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에 붙들리기도 하지요. 두려움은 늘 더 나쁜 믿음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가난한 처지와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면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가장 힘들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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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12-12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쳐주신 글들 중에 굉장히 공감되는 문장들이 많네요 섣불리 한두개 꼽기 힘들정도로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억울한홍합 2023-12-12 20:09   좋아요 1 | URL
별 말씀을요~ 부끄러워요.. 오히려 제가 즐라탄님 보고 반성하는걸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12-12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뭐라고 반성까지..ㅠ 제가 더 부끄럽네요.. 아무쪼록 하루 마무리 잘하시고 남은 12월도 즐거운 독서하시길 바랍니다!

억울한홍합 2023-12-13 22:12   좋아요 1 | URL
제가 코바늘로 조금 꼼지락꼼지락하느라 지난달부터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어서 찔렸나봐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셔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12-13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홍합님도 하루 마무리 잘하시고 평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