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유적•유물/명동성당

1886년 조선과 프랑스가 통상을 맺을 당시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수교 조건으로 내걸었고 조선 조정은 이를 수용한다. 이듬해 블랑 주교는 명례방 일대의 토지를 매입하여 성당 건축을 시작했고 12년 만에 완공했다.

명동성당은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의 성지로 기능했다. 1976년 유신 체제에 항거하며 민주구국선언문을 발표했던 장소이기도 하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규탄 범국민대회가 선포된 곳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권리 투쟁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고 6월 항쟁 당시에는 명동성당에서만 127차례 연 인원 6만 명이 참여하여 집회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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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앞에 놓인 오르막길을 오르기만 할 뿐, 나중에 내려갈 생각을 미리 해놓지 않는다. 오르막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남들과 경쟁하는 데 정신이 팔려 길의 이모저모를 유심히 살피지 않는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내려가야 할 때에야 뒤바뀐 풍경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기세 좋게 오르던 오르막이 가파르고 위험한 내리막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이제 엉거주춤 우물쭈물 내려가기 시작한다. 미끄러지고 자빠진다. 내려가는 것을 염두에 둬본 적이 없으니 내려가는 연습을 해본 적도 없다.
등산도 그렇지만, 인생도 마찬가지다. 불행한 사고는 오르는 길이 아니라 내려가는 길에서 발생한다. 급성장으로 이루어낸 성공이 추락과 폭락이라는 실패로 끝을 맺는다.

사실상 상식이란 것도 내 안경으로 바라본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 편견은 집단적일 때 커다란 문제를 유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한 것이 더 이상은 ‘그렇지 않을 때’ 심각한 문제가 된다.

통념을 깨지 않으면 눈앞에 다가온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변화한 현실에 대한 저항은 언제나 일방적인 게임으로 결말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세상에는 온갖 분야에서 활약한?다양한 영웅들의 기록이 있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과 맞서 싸워 이긴 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격동기의 승리자들은 둘 중 하나다. 세상의 흐름을 만들었거나 그 흐름을 자기편으로 이용했거나.

지금은?하루하루 견디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래도 틈이 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지금의 판단들은 혹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깨어야 할 통념은 아닌지.

통념을 깨고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봐야만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본질에 대한 각성은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준비에 나서도록 한다. 편견과 선입견도 내가 그동안 키워온 개 이름이라고 한다.?30년 이상 세상을 나의 주관적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나도 모르게 생긴 편견과 선입견이야말로 내 생각을 옭아매서 타성에 젖도록 유도하는 장본인이 아닐 수 없다.

핵심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있다.
결국 모든 성공과 실패는 사람의 문제다. ‘무엇을 해서’ 성공 또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상일 뿐이다. ‘무엇을 해서 성공했다’는 해석은 ‘무엇을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낳을 수 있다. 위험한 관점이다.
본질은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해서 성공 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어떤’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살아남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흐름을 읽어내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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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장소/DMZ

DMZ는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의 약자로, 남북한의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위해 만든 공간이다. 최근에는 그 생태적 가치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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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그렇다. 필사적으로 살아왔다. 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남의 위기는, 나의 위기다

건너편 집에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든다. 소방차가 도착해 진화에 나서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는다.

사람들이 ‘불구경’을 하면서 감탄한다. 어떤 사람들은 소방관들의 위험천만한 인명 구조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집주인은 인생을 포기한 것 같은 표정. 그러나 불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구경거리’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가 남의 불행을 즐기는 사이, 불행의 불이 우리 쪽으로 옮겨 붙기 시작한다. 소방관들이 진화에 실패하자, 불은 옆집으로 옮겨 붙은 데 이어 그다음 집을 성난 파도처럼 차례로 덮친다. 그리고 그 옆의 우리 집. 뒤늦게 세간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부리나케 움직이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는 남의 집 불구경을 즐기다가 피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우리들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어리석은 인간일 따름이다. 잘못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도 코너로 몰린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지금의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남의 위기가 곧 나의 위기다.

지금의 공포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변화의 시작’이다. 아니, 그것은 진즉에 시작되었다. 더욱 더 두려운 것은 앞으로 계속 닥쳐올 변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언제 어떤 형태로 귀결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뿐이다.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확신할 수 없다. 과연 이 추위가 물러갈 것인지, 그래서 우리가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지.

봄을 포기해야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위기의 ‘현상’만이 아니다. 그 위기 이면에 있는 본질적 변화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른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우리는 이제 관점을 바꿔야 한다. 빙하기는 지금 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곁에 슬금슬금 와 있었다. 몇 차례의 거품과 간빙기를 겪으며 우리가 착각했을 뿐이다.

우리는 위로 오르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다. 그것도 남들보다 앞서 빠르게 오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어릴 때부터 주입받은 경쟁의식 때문이다.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안전장구까지 팽개치면서 무게를 줄인다. 맨손 암벽 오르기에 도전한다. 무모할 정도의 ‘오름 경쟁 중독’이다.
빠르게 오르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으니 속도가 조금만 느려져도 조급증에 빠진다. 기대 수준이 워낙 높아서 차근차근 오르는 것을 굼뜨다고 여긴다.

우리가 틀렸다. 성공에는 오르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 이면에는 무수한 내리막길과 교훈이 깔려 있었다.

어쩌면 봄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의 따뜻했던 추억들을 가슴속에 묻어두어야 한다. 차라리 봄을 포기하자. 역설적이게도 희망은 포기로부터 시작한다.
‘조금 지나면 좋아질 것’이란 헛된 기대부터 버리자. 그리고 길을 찾아 나서자. 빙하기에도 살아갈 방법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지구상 생물의?90퍼센트 이상이 멸종하는 와중에도 의연하게 살아남아 오늘의 문명을 일구어냈다. 우리는 살아남는 데서만큼은 지구상 최고의 생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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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인물/연산군

연산군(1476년~1506년)은 조선 10대 왕으로, 1494년부터 1506년까지 재위했다. 여전히 폭군의 대명사다. 그도 그럴 것이 집권 기간 내내 온갖 폭정을 일삼았다. 사람을 함부로 죽였고 사치와 향락이 끝도 없었다.

‘흥청망청‘이라는 말은 연산군 때문에 생겨났다. ‘흥청‘과 ‘운평‘으로 불리는 기녀를 천 명 넘게 모았고 마음에 드는 흥청에게는 엄청난 재물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신하들의 처자를 건드리는 등 폐륜적인 행위를 일삼았고 궁궐에 인공 동산과호수를 파서 노는 등 각종 기행을 벌였다. 이를 비판하는 신하들을 탄압했고 백성들이 한글로 벽서를 붙여 비판하자 한글 사용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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