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오늘날,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이 스트레스라는 괴물은 어디서나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은 스스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를 방치해두면 결국 신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외부에서 압박이 오면 견딜 수 있는 만큼은 견뎌보아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구부러지는 쪽을 택해야 한다. 히말라야삼나무처럼 한발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스트레스에 짓눌리거나 부러지지 않을 수 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스트레스와 필연적으로 직면한다. 이때, 히말라야삼나무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깨 위에 쌓인 부담을 내려놓자. 그래야 부러지는 일 없이 다시금 허리를 곧게 펼 수 있다.

스트레스가 범람하는 오늘날,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때로는 구부릴 줄도, 돌아갈 줄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곧은 나무는 부러지기 쉽다. 태풍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고집스레 곧게 뻗은 큰 나무가 아니라 바람에 따라 몸을 휠 줄 아는 유연한 나무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에게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상황에 맞게 구부릴 줄도, 펼 줄도 아는 사람은 삶의 어느 순간에서도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낸다.

삶은 거울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얼굴로 있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도 달라진다.

똑같은 일을 당해도 그 일을 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르냐에 따라 부자가 될 수도, 거지가 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생은 없다. 당연히 불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단,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에게는 불행이 복제되며 그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을 얻는 가장 좋은 비결임을 잊지 말라.

신은 세상에 고통과 기쁨을 동일한 비율로 흩뿌린다. 그래서 늘 행복하기만 하거나 항상 불행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 어려울 때가 있으면 순조로울 때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어려울 때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에 인생 전체의 모양이 달라진다.

역경과 고통은 한 사람의 정신적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한다. 그래서 사람의 진가는 모든 일이 순조롭고 평탄할 때가 아니라 온갖 고난과 역경이 몰려올 때 비로소 드러난다. 어떠한 시련에도 끝까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밝은 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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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세로가 아닌 가로로 비교해야 한다. 지금의 자신을 예전의 자신과 비교하고, 현재를 과거와 비교하라는 것이다. 비교 대상이 자신의 과거가 되면 삶은 훨씬 풍성하고 행복해진다.

오늘 하루가 평범하게 지나갔다면 지루하다고 불평하는 대신 무사히 하루를 보냈음에 감사하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일상의 행복은 따로따로 흩어진 구슬과 같기 때문에 하나하나 주워서 감사라는 실로 엮어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지금부터 주의 깊게 자신의 주변에 흩어진 작은 행복이라는 구슬을 찾아보자.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건강이 그렇고,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가 그렇다.

현대인이 피곤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근원을 파고들면 의외의 답이 튀어나온다. 바로 욕심이다. 좀 더 높은 자리를 바라는 욕심, 더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갖고 싶다는 욕심, 체면을 차리고 싶다는 욕심 등······. 많은 사람이 이런 수많은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극도로 피곤해하면서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운다.

행복은 단순하다.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이, 우리 곁에서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맹목적인 비교는 하면 할수록 피곤하고 괴로워질 뿐이다. 지금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면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돌아보자. 혹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무조건 남을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이 가진 명예나 물질, 지위는 모두 나와 무관하다. 이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만족하는 비밀을 깨우치면 더 이상 맹목적인 비교를 하지 않게 된다.

평안함은 축복이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들 머리로만 알 뿐, 가슴으로 절감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조용하고 평안한 나날이 지속될 때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고 누리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어쩔 수 없지만, 이것도 잘 활용하면 삶의 지혜가 된다. 단, 비교의 목적은 자기계발과 만족이어야 한다. 비교 후에 얻어지는 것 없이 무조건 불쾌한 감정적 반응만 남는다면 바른 비교라고 할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생활에서는 아래를, 일에서는 위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는 동시에 더 나은 실적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다.

인생의 참모습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때가 많다.

위와 아래를 균형 있고 바르게 비교하면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자신을 죽이는 비교가 아닌, 살리는 비교를 시작하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어째서 우리는 낯선 사람이 잠시 베푼 친절에는 고마워하면서 낳고 수십 년 동안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일까? 어쩌면 모든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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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폭력이나 교제살인과 관련해, 왜 피해자들이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을 만나는지 의아해하며 은근히 피해자를 비난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가해자들이 처음부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자상함과 예의 바른 태도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해자에게 ‘왜 나쁜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비난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여성차별적 문화의 태도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다 보면 ‘나쁜 남자를 피하면 되겠구나’ ‘폭력적인 사람을 처음부터 안 만나면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나쁜 남자를 좋아하지도 않고, 폭력적인 남자라면 질색이기 때문에 결코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을 거고, 그래서 교제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 성차별적 사회는 이처럼 여성들에게 잘못되고 위험한 신호를 준다. 단언컨대 교제폭력, 교제살인에 희생된 여성들은 남성의 공격성과 폭력성을 매력으로 여긴 사람들이 아니다.

상대를 존중하기 때문에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과,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러는 것을 처음에는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가까워지고, 성관계를 맺는 친밀한 사이가 된다면 점차 폭력적인 성향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둘 것이 있다. 의심과 집착은 연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유형의 애정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의 시작이자 징후다.

가해자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의심이다. 이를 사랑이라고 포장하거나, 애정 관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거짓말하기도 한다.

가해자는 이미 폭력을 행사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어떻게 대응하든 폭력을 피할 수 없다. 피해자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폭력은 시작되고 점점 심해진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린다.

가해자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가해자들이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인격이기 때문이다.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으로 착각될 때도 있지만,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인격인 것이 전부다.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들은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만약 당신이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늘 눈치를 보고 있고, 지금은 잠시 평온해 보여도 언제 상대가 돌변해 화를 낼지 몰라 늘 불안하다면, 이미 폭력의 피해자다. 어떻게 맞춰줄지 고민하거나, 상대를 화나게 한 자신을 자책할 일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관계를 어떻게 단절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폭력은 여성을 빈곤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폭력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 특히 경제 활동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자살 협박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력성과 비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결별 의사를 밝힐 때 자주 벌어진다. 이때 가해자의 협박은 이별 통보의 충격으로 인한 진정한 자살 의도라기보다는 상대에게 심리적 부담을 전가해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통제의 수단인 경우가 많다.3 따라서 이러한 위험 신호를 인지하고, 피해자의 주변 사람이나 수사기관은 적절한 대응과 지원을 해야 한다.

경찰의 위험 불감증은 가해자 대면 이후의 조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찰 수사 과정들을 살펴보면, 경찰이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가해자는 경찰 앞에서는 대체로 온순한 태도를 보인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했던 것처럼 난동을 부리거나 위협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경찰은 자신들 앞에서 온순하고 때로는 협조적으로 보이는 가해자를 임의로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경찰의 태도와 인식 수준으로는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 피해자의 입장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해자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평가해야 함에도, 경찰은 이러한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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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폭력만을 학대로 인식한다면, 이는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의 극히 일부분만을 이해하는 것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단순한 걱정이나 염려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심각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신호인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일상을 통제하고, 명령하거나 지시하며,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드는 이러한 비신체적 학대 역시 신체적 학대만큼이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만약 상대가 "제발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우리 관계는 아무 문제가 없어"라는 말을 한다면, 그때가 바로 관계에서 벗어나야 할 신호다.

‘폭력적인 사람을 대체 왜 만나?’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해자도 나쁘지만 피해자 역시 현명하지 못했다’는 식의 비난도 있다. 또 근육질에 우락부락하고 사나운 인상을 지닌 사람이 폭력적일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는 편견이자 무지일 수 있다. 실제 사례를 보면 자신이 폭력적인 사람을 절대 만나지 않을 것이며 알아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도 자만일 수 있다.

‘강압적 통제’란 연인, 배우자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조종하려는 행동을 말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의 개인적인 활동을 대신 결정하거나, 명령하고 지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본성’을 가시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신체적 폭력’으로만 이해한다면 폭력 피해자 중 소수만을 보호할 수 있을 뿐이다. 현행법하에서 교제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가 결국 구호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고 있는 것은 폭력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가 그 배경에 있다.

그러나 통제 행위가 미래의 신체적 학대를 예견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전조이자 피해자 살해의 위험 요인이라는 것은 관련 학계의 정설이다.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 살해가 통제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결별의 맥락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감지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함을 의미한다.1

‘강압적 통제’가 시도되는 관계의 초기에는 ‘강압’이나 ‘강제’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상대방이 염려하고 걱정하며 보살피는 척하는 경우가 많다.

강압적 통제는 일련의 행동 패턴으로, 상대를 장악하고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통제를 시도한다.

때로 피해자가 이러한 통제 행위가 싫고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고 항의하면, 가해자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피해자를 가스라이팅한다.

누구도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 책임감을 느끼거나, 상대방의 치유와 회복을 자신의 의무로 여길 필요는 없다. 과거에 상처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 다른 누군가를 학대할 이유가 될 수 없다.

강압적 통제를 하는 과정에는 상대방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이 있다.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술수이며, 가스라이팅의 방식이기도 하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게 되고, 남들에게 민폐나 끼치는 하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욕에 가까운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고, 이유 없이 구타당하더라도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거라 받아들인다.
이렇듯 강압적 통제를 행하는 가해자는 상대의 자존감을 짓밟고 의도를 왜곡하고, 상대를 세상 가장 나쁜 짓을 한 사람인 양 취급한다. 이와 같은 비난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면 그 사람은 빠른 속도로 무너진다.

이제 혼자 결정할 수 없고, 무언가를 결정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가스라이팅은 대략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근거 없고 악의에 찬 비난을 ‘내가 잘되라는 진심 어린 격려’로 생각하게 된다. 나를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모욕하는 사람에게 점점 더 의존하고 그의 말을 믿게 된다.
결국 이 모든 못된 말과 행동은 상대를 굴종시키기 위해서다. 스스로를 혐오하도록 만드는 것, 점점 위축시키고 자신감을 잃게 해 가해자의 말을 다 믿도록 하는 것, 더 통제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가해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를 비난하고 원망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자신의 비난과 원망을 정당화하는 데 몰두한다. 이런 가해자의 특징은 주로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불쾌하게 했다는 데 집중하고 이에 과하게 몰입한다는 것이다. 마치 상대가 자신의 좋은 기분을 유지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니 상대의 감정과 기분마저 통제하려 들고, 그래도 된다고 여긴다.

만약 눈치 보게 만들고, 언제 무엇을 가지고 화를 낼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면, 그 관계에는 미련을 가지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친밀한 관계는 그 누구보다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사이다. ‘다 그런 거 아닌가?’ ‘내가 연애에 유독 서툴러서 상대의 기분을 맞추지 못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미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중이라 생각하는 게 맞다.

통제 행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러한 행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각한 학대와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미 폭력과 통제가 시작된 관계에서는 다른 사람 앞에서 연인의 체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인을 망신 주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연인이 친구, 이웃, 지인 등 다른 사람 앞에서 얼마나 무안하고 망신스러울지, 창피할지를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오히려 그 상황을 이용해 상대가 굽히고 들어가는 것을 유도한다면 그 사람은 통제 가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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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너무 많은 여성이 다쳤고, 숨졌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로 여러 방안에 무책임하게 고개를 젓는 모습도 빈번히 마주했다. 그러나 지치지 않을 것이고 낙담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 날카롭게 비판하고, 토론하고, 글 쓰고,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들을 지속하면서 주어졌던 삶을 미처 살아내지 못한, 마땅히 살아 있어야 했던 그 여성들의 소중한 삶의 의미를 이어나갈 것이다.

방어폭력이란 친밀한 관계 폭력 피해자가 자신을 치명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정폭력인 경우에는 함께 있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걷어차여 넘어진 상황에서 마지막 힘을 내 가해자의 다리를 힘겹게 물거나, 고통에 못 이겨 손톱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는 것, 공격을 막으려고 상대의 팔을 강하게 붙잡는 행동 등이 해당될 수 있다.

피해자들의 방어행위는 생존 본능에 가깝지만, 경찰 수사에서 이들은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폭력을 행사한 사람, 즉 서로 싸운 동등한 당사자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들이 맞대응, 즉 방어폭력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친밀한 관계 폭력에 대해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경찰은 이러한 상황을 쌍방폭행으로 판단하기 쉽고, "둘이 알아서 하라"라거나 "서로 처벌 의사가 없으니 이쯤에서 정리하라"라고 조언하며 사건을 종결한다. 11번의 신고에도 피해자를 구하지 못한 데는 ‘방어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비전문적 수사기관의 책임이 크다. ‘폭력을 사용한 건 모두 잘못’이라는 경찰의 협소하고 무지한 판단은, 피해자에게 맞아 죽을 때까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반복되는 신고는 피해자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찰은 이러한 반복 신고를 위험 신호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단순히 피해자가 습관적으로 신고하는 것으로 치부하며 사안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동일한 주소지와 전화번호에서 반복적으로 신고가 접수될 때, 경찰은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기보다는 번거로운 일로 여기며 소홀히 대응했다. 마치 별것 아닌 문제로 공권력을 낭비한다는 인식이 내재된 행동 반응이다.
이처럼 반복된 경찰 신고가 아무런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할 때, 이는 단순히 피해자가 도움을 받지 못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는 점점 더 절망에 빠지고, 가해자는 오히려 자신감과 대담함을 얻는 왜곡된 상황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 교제폭력을 규율할 수 있는 법률이 없지는 않다.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통상적인 폭행 및 협박죄로 가해자를 신고하고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피해자가 과연 사건을 ‘접수할지’ 경찰이 궁금해하는 이유는 〈형법〉의 폭행 및 협박죄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할 의사가 없다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가해자가 분명히 범죄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 가해자 모두 피해자의 입을 바라보면서 피해자의 결정을 기다린다.
친밀한 관계의 그 ‘친밀성’이 피해자를 얼마나 취약하게 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는 이러한 규율은 피해자를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

가해자 처벌 여부가 가해자의 범죄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의 처벌 의사에 달려 있다는 것은 가해자를 의기양양하게 만든다. 자신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은근한 경고를 주어 사건을 무마하는 일 따위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신고 과정에서 경찰이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 의사를 묻는 관행의 문제점은 오랫동안 지적되어왔다.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처벌 의사를 쉽게 밝히기 어렵다.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모든 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되어 있어 신고 이후에도 안전을 보장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정폭력과 교제폭력의 높은 현장종결률은 가해자 처벌에 대한 피해자의 상당한 부담감을 방증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한마디에 따라 경찰 수사를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황이 정리될 수도 있다.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가해자의 처벌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피해자가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제도는 피해자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경찰이 "가해자 처벌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을 때, "네, 엄하게 처벌해주세요. 제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정말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피해자는 많지 않다. 이는 가해자를 여전히 사랑해서도, 피해가 가벼워서도, 연인과의 관계가 어색해질까 걱정해서도 아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무섭다. 처벌을 원한다고 답하면 "네가 나 전과자 만들고서 무사할 것 같아?" "내가 널 가만둘 것 같아?" "너뿐만 아니라 네 가족도 다 죽여버릴 거야. 너 이거 거짓말 같지?"와 같은 가해자의 협박을 마주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간의 경험을 통해 가해자가 실제로 잔인한 방식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가해자는 내가 사는 집, 친구들의 집, 부모님의 집, 학교, 직장 등 내가 다니는 동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 조항은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개인 간의 경미한 다툼을 원활히 처리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사소한 시비나 분쟁이 있었다가 화해하고 합의할 의사가 있는 경우 법정까지 가지 않고 개인 간 해결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은 서로 모르는 타인 사이에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에서는 피해자를 취약하게만 한다. 보복폭행의 두려움으로 피해자가 진정한 의사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명백히 시스템의 문제다. 미국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주별로 현장 조치의 수위가 다를 수 있으나, 최소 23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의무체포 제도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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