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이나 교제살인과 관련해, 왜 피해자들이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을 만나는지 의아해하며 은근히 피해자를 비난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가해자들이 처음부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자상함과 예의 바른 태도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해자에게 ‘왜 나쁜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비난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여성차별적 문화의 태도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다 보면 ‘나쁜 남자를 피하면 되겠구나’ ‘폭력적인 사람을 처음부터 안 만나면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나쁜 남자를 좋아하지도 않고, 폭력적인 남자라면 질색이기 때문에 결코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을 거고, 그래서 교제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 성차별적 사회는 이처럼 여성들에게 잘못되고 위험한 신호를 준다. 단언컨대 교제폭력, 교제살인에 희생된 여성들은 남성의 공격성과 폭력성을 매력으로 여긴 사람들이 아니다.

상대를 존중하기 때문에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과,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러는 것을 처음에는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가까워지고, 성관계를 맺는 친밀한 사이가 된다면 점차 폭력적인 성향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둘 것이 있다. 의심과 집착은 연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유형의 애정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의 시작이자 징후다.

가해자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의심이다. 이를 사랑이라고 포장하거나, 애정 관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거짓말하기도 한다.

가해자는 이미 폭력을 행사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어떻게 대응하든 폭력을 피할 수 없다. 피해자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폭력은 시작되고 점점 심해진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린다.

가해자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가해자들이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인격이기 때문이다.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으로 착각될 때도 있지만,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인격인 것이 전부다.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들은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만약 당신이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늘 눈치를 보고 있고, 지금은 잠시 평온해 보여도 언제 상대가 돌변해 화를 낼지 몰라 늘 불안하다면, 이미 폭력의 피해자다. 어떻게 맞춰줄지 고민하거나, 상대를 화나게 한 자신을 자책할 일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관계를 어떻게 단절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폭력은 여성을 빈곤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폭력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 특히 경제 활동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자살 협박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력성과 비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결별 의사를 밝힐 때 자주 벌어진다. 이때 가해자의 협박은 이별 통보의 충격으로 인한 진정한 자살 의도라기보다는 상대에게 심리적 부담을 전가해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통제의 수단인 경우가 많다.3 따라서 이러한 위험 신호를 인지하고, 피해자의 주변 사람이나 수사기관은 적절한 대응과 지원을 해야 한다.

경찰의 위험 불감증은 가해자 대면 이후의 조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찰 수사 과정들을 살펴보면, 경찰이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가해자는 경찰 앞에서는 대체로 온순한 태도를 보인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했던 것처럼 난동을 부리거나 위협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경찰은 자신들 앞에서 온순하고 때로는 협조적으로 보이는 가해자를 임의로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경찰의 태도와 인식 수준으로는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 피해자의 입장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해자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평가해야 함에도, 경찰은 이러한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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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폭력만을 학대로 인식한다면, 이는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의 극히 일부분만을 이해하는 것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단순한 걱정이나 염려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심각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신호인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일상을 통제하고, 명령하거나 지시하며,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드는 이러한 비신체적 학대 역시 신체적 학대만큼이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만약 상대가 "제발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우리 관계는 아무 문제가 없어"라는 말을 한다면, 그때가 바로 관계에서 벗어나야 할 신호다.

‘폭력적인 사람을 대체 왜 만나?’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해자도 나쁘지만 피해자 역시 현명하지 못했다’는 식의 비난도 있다. 또 근육질에 우락부락하고 사나운 인상을 지닌 사람이 폭력적일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는 편견이자 무지일 수 있다. 실제 사례를 보면 자신이 폭력적인 사람을 절대 만나지 않을 것이며 알아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도 자만일 수 있다.

‘강압적 통제’란 연인, 배우자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조종하려는 행동을 말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의 개인적인 활동을 대신 결정하거나, 명령하고 지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본성’을 가시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신체적 폭력’으로만 이해한다면 폭력 피해자 중 소수만을 보호할 수 있을 뿐이다. 현행법하에서 교제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가 결국 구호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고 있는 것은 폭력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가 그 배경에 있다.

그러나 통제 행위가 미래의 신체적 학대를 예견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전조이자 피해자 살해의 위험 요인이라는 것은 관련 학계의 정설이다.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 살해가 통제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결별의 맥락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감지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함을 의미한다.1

‘강압적 통제’가 시도되는 관계의 초기에는 ‘강압’이나 ‘강제’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상대방이 염려하고 걱정하며 보살피는 척하는 경우가 많다.

강압적 통제는 일련의 행동 패턴으로, 상대를 장악하고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통제를 시도한다.

때로 피해자가 이러한 통제 행위가 싫고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고 항의하면, 가해자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피해자를 가스라이팅한다.

누구도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 책임감을 느끼거나, 상대방의 치유와 회복을 자신의 의무로 여길 필요는 없다. 과거에 상처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 다른 누군가를 학대할 이유가 될 수 없다.

강압적 통제를 하는 과정에는 상대방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이 있다.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술수이며, 가스라이팅의 방식이기도 하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게 되고, 남들에게 민폐나 끼치는 하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욕에 가까운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고, 이유 없이 구타당하더라도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거라 받아들인다.
이렇듯 강압적 통제를 행하는 가해자는 상대의 자존감을 짓밟고 의도를 왜곡하고, 상대를 세상 가장 나쁜 짓을 한 사람인 양 취급한다. 이와 같은 비난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면 그 사람은 빠른 속도로 무너진다.

이제 혼자 결정할 수 없고, 무언가를 결정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가스라이팅은 대략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근거 없고 악의에 찬 비난을 ‘내가 잘되라는 진심 어린 격려’로 생각하게 된다. 나를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모욕하는 사람에게 점점 더 의존하고 그의 말을 믿게 된다.
결국 이 모든 못된 말과 행동은 상대를 굴종시키기 위해서다. 스스로를 혐오하도록 만드는 것, 점점 위축시키고 자신감을 잃게 해 가해자의 말을 다 믿도록 하는 것, 더 통제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가해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를 비난하고 원망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자신의 비난과 원망을 정당화하는 데 몰두한다. 이런 가해자의 특징은 주로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불쾌하게 했다는 데 집중하고 이에 과하게 몰입한다는 것이다. 마치 상대가 자신의 좋은 기분을 유지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니 상대의 감정과 기분마저 통제하려 들고, 그래도 된다고 여긴다.

만약 눈치 보게 만들고, 언제 무엇을 가지고 화를 낼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면, 그 관계에는 미련을 가지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친밀한 관계는 그 누구보다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사이다. ‘다 그런 거 아닌가?’ ‘내가 연애에 유독 서툴러서 상대의 기분을 맞추지 못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미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중이라 생각하는 게 맞다.

통제 행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러한 행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각한 학대와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미 폭력과 통제가 시작된 관계에서는 다른 사람 앞에서 연인의 체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인을 망신 주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연인이 친구, 이웃, 지인 등 다른 사람 앞에서 얼마나 무안하고 망신스러울지, 창피할지를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오히려 그 상황을 이용해 상대가 굽히고 들어가는 것을 유도한다면 그 사람은 통제 가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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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너무 많은 여성이 다쳤고, 숨졌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로 여러 방안에 무책임하게 고개를 젓는 모습도 빈번히 마주했다. 그러나 지치지 않을 것이고 낙담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 날카롭게 비판하고, 토론하고, 글 쓰고,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들을 지속하면서 주어졌던 삶을 미처 살아내지 못한, 마땅히 살아 있어야 했던 그 여성들의 소중한 삶의 의미를 이어나갈 것이다.

방어폭력이란 친밀한 관계 폭력 피해자가 자신을 치명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정폭력인 경우에는 함께 있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걷어차여 넘어진 상황에서 마지막 힘을 내 가해자의 다리를 힘겹게 물거나, 고통에 못 이겨 손톱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는 것, 공격을 막으려고 상대의 팔을 강하게 붙잡는 행동 등이 해당될 수 있다.

피해자들의 방어행위는 생존 본능에 가깝지만, 경찰 수사에서 이들은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폭력을 행사한 사람, 즉 서로 싸운 동등한 당사자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들이 맞대응, 즉 방어폭력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친밀한 관계 폭력에 대해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경찰은 이러한 상황을 쌍방폭행으로 판단하기 쉽고, "둘이 알아서 하라"라거나 "서로 처벌 의사가 없으니 이쯤에서 정리하라"라고 조언하며 사건을 종결한다. 11번의 신고에도 피해자를 구하지 못한 데는 ‘방어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비전문적 수사기관의 책임이 크다. ‘폭력을 사용한 건 모두 잘못’이라는 경찰의 협소하고 무지한 판단은, 피해자에게 맞아 죽을 때까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반복되는 신고는 피해자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찰은 이러한 반복 신고를 위험 신호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단순히 피해자가 습관적으로 신고하는 것으로 치부하며 사안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동일한 주소지와 전화번호에서 반복적으로 신고가 접수될 때, 경찰은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기보다는 번거로운 일로 여기며 소홀히 대응했다. 마치 별것 아닌 문제로 공권력을 낭비한다는 인식이 내재된 행동 반응이다.
이처럼 반복된 경찰 신고가 아무런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할 때, 이는 단순히 피해자가 도움을 받지 못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는 점점 더 절망에 빠지고, 가해자는 오히려 자신감과 대담함을 얻는 왜곡된 상황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 교제폭력을 규율할 수 있는 법률이 없지는 않다.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통상적인 폭행 및 협박죄로 가해자를 신고하고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피해자가 과연 사건을 ‘접수할지’ 경찰이 궁금해하는 이유는 〈형법〉의 폭행 및 협박죄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할 의사가 없다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가해자가 분명히 범죄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 가해자 모두 피해자의 입을 바라보면서 피해자의 결정을 기다린다.
친밀한 관계의 그 ‘친밀성’이 피해자를 얼마나 취약하게 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는 이러한 규율은 피해자를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

가해자 처벌 여부가 가해자의 범죄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의 처벌 의사에 달려 있다는 것은 가해자를 의기양양하게 만든다. 자신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은근한 경고를 주어 사건을 무마하는 일 따위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신고 과정에서 경찰이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 의사를 묻는 관행의 문제점은 오랫동안 지적되어왔다.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처벌 의사를 쉽게 밝히기 어렵다.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모든 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되어 있어 신고 이후에도 안전을 보장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정폭력과 교제폭력의 높은 현장종결률은 가해자 처벌에 대한 피해자의 상당한 부담감을 방증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한마디에 따라 경찰 수사를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황이 정리될 수도 있다.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가해자의 처벌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피해자가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제도는 피해자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경찰이 "가해자 처벌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을 때, "네, 엄하게 처벌해주세요. 제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정말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피해자는 많지 않다. 이는 가해자를 여전히 사랑해서도, 피해가 가벼워서도, 연인과의 관계가 어색해질까 걱정해서도 아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무섭다. 처벌을 원한다고 답하면 "네가 나 전과자 만들고서 무사할 것 같아?" "내가 널 가만둘 것 같아?" "너뿐만 아니라 네 가족도 다 죽여버릴 거야. 너 이거 거짓말 같지?"와 같은 가해자의 협박을 마주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간의 경험을 통해 가해자가 실제로 잔인한 방식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가해자는 내가 사는 집, 친구들의 집, 부모님의 집, 학교, 직장 등 내가 다니는 동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 조항은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개인 간의 경미한 다툼을 원활히 처리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사소한 시비나 분쟁이 있었다가 화해하고 합의할 의사가 있는 경우 법정까지 가지 않고 개인 간 해결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은 서로 모르는 타인 사이에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에서는 피해자를 취약하게만 한다. 보복폭행의 두려움으로 피해자가 진정한 의사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명백히 시스템의 문제다. 미국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주별로 현장 조치의 수위가 다를 수 있으나, 최소 23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의무체포 제도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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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이유는 대부분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해서 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의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손을 대야 한다. 인생의 길이는 결정할 수 없어도 폭은 자신의 의지로 얼마든지 넓힐 수 있고, 타고난 생김새나 체격은 바꿀 수 없어도 마음은 얼마든지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른 시작이다.

목표는 ‘미래’라는 사진을 위한 원판이다. 오늘의 모습은 3년 전에 세웠던 목표의 결과이며, 오늘 세운 목표가 3년 뒤 자신의 모습을 결정한다. 그러니 쓸데없는 잔가지와 불필요한 욕심을 과감히 잘라내고, 명확하고 현실적이며 자신이 가장 열중할 수 있는 한 가지 목표를 세워라. 그리고 그 목표에 힘과 노력을 온전히 집중하라. 이것이 바로 자신의 손으로 미래를 만드는 비결이다.

자신의 운명을 주관하는 법은 어렵지 않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을 ‘재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일은 정말로 ‘재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만하면 괜찮다’ 혹은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다행한 일, 아무것도 아닌 일로 변한다. 인생의 희비극이 모두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 걸음은 얼핏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꾸준히 내딛다 보면 결국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반면 멈춰 서 있으면 영원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지금 그 한 걸음을 내디뎌라!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이유가 있으며, 쓸모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다. 그렇기에 맹목적으로 자신을 불신하고 부인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보여도 속지 말라. 당신은 흙 속에 묻힌 금덩어리다. 금은 어디에 있어도 금이다. 흙 속에 묻혀 있다고 해서 그 빛까지 바래지는 않는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신의 능력치를 넘어서는 인생 목표를 세우지 말고, 적절한 지점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누구나 다 장군이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은 일개 사병에 머문다. 그렇다고 사병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각자에게 맡겨진 임무가 다를 뿐이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고려해서 인생 목표를 세우라. 남과 자신을 비교해가며 허황되고 그럴싸한 목표를 세우지 말라. 헛된 꿈을 좇는 것만큼 인생을 낭비하는 일도 없다.

인생에서도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 비로소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일, 저 일에 손을 대거나 목표를 여러 개 세우면 온종일 바쁘게 눈만 희번덕거리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만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다가 결국 모두 놓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자신감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그 순간에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바뀐다. 이렇듯 자신감은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열쇠이며, 때로 상상하지도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엄청난 힘이다. 남이 자신을 믿어주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스스로 자신을 믿어주자.

언제부턴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과 욕망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좀 더 많은 재물, 좀 더 높은 지위, 좀 더 강한 권력을 추구하며 정신없이 살아간다.

믿음은 무적이다. 스스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 생각이 행동과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남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자기비하감에 빠져 스스로 행복을 걷어차지 말라. 자기 파괴적인 자기비하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행복을 붙잡을 수 있다.

자기비하란 자존감이 심각하게 떨어진 상태로, 자기 자신에 대해 뿌리 깊은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을 말한다. 대개 큰 어려움이나 좌절을 겪은 사람일수록 자기비하에 잘 빠진다. 자기비하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정도에서 마침내 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로, 사람들과의 교류를 불편해하는 수준에서 스스로를 완전히 고립시키는 상태로 악화되기 쉽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운명을 바꾸는 열쇠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연히 코끝을 간질이는 꽃향기를 만났을 때의 기분 아닐까?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번화가를 벗어나 아늑한 자신의 방에서 은은한 조명을 켜고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의 고요함과 편안함 아닐까?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하고 월급을 받은 날, 그동안 수고한 자신을 위해 작은 선물 하나를 살 때의 만족감과 기쁨 아닐까? 어쩌면 행복은 생활 속의 사소한 부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지갑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사소한 행복을 놓치고 산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영원히 알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살면서 불행을 만난 이후에도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간다. 언제나 행복하고 즐겁기만을 바라면 인생은 오히려 끝없는 불만족과 부정적 감정에 빠져버린다. 그래서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나느냐’보다는 ‘어떻게 고통을 대하느냐’가 중요하다.

돈이 유일한 신앙이자 목표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애초에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즉, 이상이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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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함은 결코 돈으로 가늠할 수 없다. 가난함도, 부유함도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비결이자 최선의 해결책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불쾌한 일을 겪는다. 일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우울할 때가 온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과 싸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애써 그 감정을 부정하다가 오히려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보다는 이런 일이 왜 생겼고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하고 나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든 일이 실은 대수롭지 않고, 또한 금방 지나가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분노는 독약과 같아서 한 번 작동하면 이성을 마비시켜 사람을 날뛰게 만든다. 분노를 한바탕 폭발시키면 기분이 나아질까? 그게 반드시 속이 후련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도, 남도 피해자가 될 뿐이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너무 바빠서 도저히 쉴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의도적으로 쉴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생활에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더 멀리, 더 높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가끔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자.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영원히 빈곤하지 않지만 자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부유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분노, 질투, 걱정, 절망, 자책, 원망 등 부정적 감정이 일어날 때 최대한 차분하게 이러한 감정이 생긴 원인을 생각해보자. 절대 다른 사람의 탓을 해서는 안 된다. 남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자기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며, 감정을 지배할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은 그 사람이 잘못한 일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벌하는 꼴이 된다.

아무리 사소한 계획이라도 일단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실현 가능성은 제로다. 반딧불이가 날갯짓할 때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보기도 전에 두려워하는 까닭은 부정적인 면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수록 두려움은 한층 가벼워진다. 또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조금씩 습관이 되면 점차 자신감과 용기가 붙는다. 많이 행동할수록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의 열쇠’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 채 살아간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그 열쇠를 절대 남에게 넘기지 않는다. 행복이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행복의 열쇠’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그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무런 의지도 없는 꼭두각시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나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게 한 사람에게는 나의 불행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가끔 화를 내거나 불쾌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도 괜찮다. 단,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게 스스로를 제어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의 ‘행복의 열쇠’는 어디 있는가? 아직도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가? 속히 그 열쇠를 찾아와 당신 손으로 꼭 움켜쥐어라!

행복은 일종의 마음가짐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길을 걸으며 마음을 단련해가다 보면 행복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행복임을 깨닫게 된다. 성공은 삶의 경유지일 뿐,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목적지다.

쉴 줄 모르는 사람은 일도 못한다.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면 적절히 쉬는 법을 배워라. 걸음을 멈추고, 숨 돌릴 여유를 가져라. 잠깐 휴식을 취하고 나면 더 멀리, 더 오래 갈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은 설령 가난해도 자신의 삶에 감사할 줄 안다. 이들은 이미 감사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고 있기에 대통령 같은 최고 자리를 우러러보지 않는다. 또한 이미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기에 돈으로 가득한 부자의 주머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인생은 아직 현상하지 않은 필름과 같다. 현상해보기 전까지는 그 안에 담긴 사진이 상상만큼 아름다울지, 아니면 엉망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은 또한 길과 같아서 결과와 상관없이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 길이 평탄하든 험난하든,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발판 삼으며 타인에게 용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좋은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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