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사력을 다해 쓰는 사람.

이번 책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거쳐간 사람들과의 소설 같은 추억들을 어렵게 꺼내 보인다. 때로는 너무 그리워서 수년간 입에 올리지 못했던 사람을, 서럽고 고달파서 쉬이 삼키기 어려운 주방노동자들의 사연을, 또 때로는 서울 변두리 동네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내기도 하면서 연신 사라져 가는 것들을 어루만진다. 갈수록 냉기가 도는 세상에 기어이 차오른, 철없지만 다정했고 눈물 나게 고마웠던 음식과 사람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독자들의 마음에도 울컥, 치미는 그리움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종족은 먹으면 저장하려고 든다. 유전이다. 언제 또 먹을지 모르니까. 고지혈증은 그러니까 원래는 좋은 시스템이다. 당대에 와서 언제든 먹을 수 있게 되니 병이 되었다. 맞다. 우리는 잘 먹는다. 많이 먹는다. 그렇지만 흘러간 기억 안의 사람들과 먹을 수는 없다. 그게 그립고 사무쳐서 잠을 못 이룬다.

기억해야 할 사람들 얘기를 쓰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죽은 사람이 여럿이다. 혼자서 막걸리를 마실 때면 그들이 더 생각난다. 그 기록이다. 《시사IN》에서 귀한 지면에 받아주었고, 독자들의 독촉으로 다음 이야기를 썼다. 책 한 권이 되어서 낸다.


2024년 1월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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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한 해 선배였다. 우리 중학교는 명찰 색으로 학년을 구분했다. 교내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쳤지만 우리는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사이였다. 너도 나도 그저 흔해 빠진 소년 소녀였다. 특출난 재능도 없었고 눈에 띄는 외모도 아니었다. 성적도 평범하고 성격도 모나지 않았다. 우리는 한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 말을 걸어볼 생각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내가 세계문학 전집을 읽을 때 너의 손에는 항상 너덜너덜한 무협 소설이 들려 있었다. 나는 네가 유치한 어린애처럼 보였다.
나는 하교 후에 읍내 공립도서관에서 한두 시간 책을 읽다 집에 돌아갔는데 그곳에서도 너를 보았다. 너는 만화 잡지를 펼쳐놓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조그만 소리로 낄낄댔다. 바보처럼 풀어진 하얀 얼굴이 조금은 신경 쓰여 간혹 너를 흘끔거렸다.

그날을 계기로 우리는 도서관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고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함께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너는 읍내에 살았고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촌 동네에 살았다. 너는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기 시작했다. 학교와 가까운 정류장에는 알고 지내는 얼굴들이 한둘씩은 있었다. 우리는 얄궂은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아 한 정거장 앞을 이용했다. 그곳은 읍내의 초입이라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정류장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매일매일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왜 그리도 많은지 저 멀리 내가 탈 버스가 오면 아쉬움에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의 배차 간격은 한 시간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려다가도 너의 아쉬운 표정을 보면 다시 의자에 앉아버렸다. 그러면 너는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시간을 보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우리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간간이 문자메시지로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은 것이 전부였다. 개학하고 다시 만난 너는 무언가 변해 있었다. 부쩍 자란 키 때문도, 살이 빠져 날카로워진 얼굴 윤곽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너의 힘겨웠던 여름방학을 듣고서야 네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어."
위로하는 방법은 학교에서 가르쳐 준 적 없었다. 너의 고백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뻔한 위로의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너의 구겨진 교복 셔츠가 안쓰러웠다. 너는 계속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릴 적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고 했다. 단칸방에 세를 얻어 살았지만 자상한 아버지 덕분에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껴본 적 없었다고. 아버지마저 떠나버린 지금은 근처에 사는 작은아버지 가족이 종종 들여다봐 주신다고 했다.

두 달 전까지 소년이었던 너는 어른의 얼굴을 하고 나를 내려다봤다. 그러나 흔들리는 눈동자는 아직 어린아이의 것이었다. 우리는 도서관 정원의 나무 벤치에 앉아 한동안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던 가을 하늘은 깊고 새파랬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올렸다. 손가락 틈새로 하늘이 쏟아졌다. 나는 허공을 움켜쥐듯 주먹을 쥐었다가 눈앞에다 손바닥을 펼쳤다.

그해 여름, 나에게도 잃어버린 것이 있었다. 나는 어둠이 두려웠다. 야맹증이 심해져서 여름방학 때 도시에 있는 병원을 다녀왔다. 그러나 어둠이 더욱 두려워졌을 뿐이었다. 캄캄한 곳에서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팠던 여름을 다 털어놓은 너와 달리 나는 말하지 않았다. 너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생긴 것이다.
날이 서늘해질수록 해는 빨리 저물었다. 내가 볼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짧아졌다.

너는 날이 갈수록 야위었고 얼굴이 상했다. 행색도 볼품없어졌다. 작은아버지께서 돌봐주신다 하지만 제대로 식사를 챙겨 먹을 리 없었다. 겨우 열여섯 소년이었다. 홀로 살아가기엔 이른 나이였다

회색 하늘에서 눈발이 하나둘 날리기 시작했다. 나에 관한 생각은 지금 하고 싶지 않았다. 너를 떠올렸다. 차가운 단칸방에서 홀로 추위를 견디고 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방금 헤어졌는데 벌써 네가 보고 싶어졌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너는 읍내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도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학교가 달라지자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부쩍 짧아졌다. 하교하고 도서관에서 너를 기다렸다. 네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읍내와 떨어진 외곽에 있었고 너는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다. 내가 기다리던 도서관은 너의 학교에서 보면 집과 반대 방향이었다.

주말에 너는 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다. 여전히 단칸방이었고 단층에 여러 가구가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주택이었다. 마당도 거의 없고 붉게 녹슨 철 대문이 기울어진 채 힘없이 흔들거렸다. 다행히도 이번 집은 내부에 작은 욕실 겸 화장실이 있었다.
너는 나를 새로운 둥지에 초대했다. 대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첫 번째 집. 불투명한 유리창이 달린 얇은 철문이 현관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이 현관 겸 부엌이었고 왼편이 욕실이었다. 단출한 짐 때문인지 방은 좁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창문이 손바닥만 해 낮에도 전등을 켜고 생활해야 했다. 주인이 도배며 장판을 새로 해줬다는데 집에서는 오래된 다락방 냄새가 났다.

언제부턴가 너는 나를 데려다주며 너의 꿈을 이야기했다. 자동차 정비 자격증을 최대한 빨리 따겠다. 졸업하자마자 취업하고 돈을 모아 우리 집 옆에 집을 지어 살겠다. 마당에는 커다란 개를 키우고 아이는 네 명 정도 낳으면 좋겠다. 나는 가만히 너의 꿈을 들어주었다. 호응도 첨언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듣고만 있었다.

지난여름, 나는 캄캄한 미래를 선고받았다. 야맹증이 심해져 방문한 안과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완전히 시력이 상실될 거라는 판정을 받았다. 진부한 드라마 같았다. 인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잘 보이는데. 오진일 거라 믿고 싶었다. 그런데 시력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는 걸 느꼈다. 네가 그리는 미래를 들을 때마다 견딜 수 없게 슬퍼졌다. 그 미래에 정말로 내가 함께 있을까. 너는 완전히 시력이 소실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눈먼 장애인이 너를 욕심내도 되는 걸까. 그래서 나는 네가 더 망가지길 바랐다. 네가 나만큼 망가지면 당당히 네 옆에 있을 수 있을 텐데.

너에게 나의 미래를 상의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네 얼굴을 마주하면 내일 하자, 모레엔 말하는 거야, 하고 미뤄버리기 일쑤였다. 영악한 나는 알았다. 이 관계가 내 고백으로 깨질 것이라는 것을. 내 캄캄한 미래를 너는 결코 감당할 수 없음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지금 이대로라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떴을 때 기적처럼 시력이 회복돼 있다면. 내게 다가올 영원한 어둠이 없던 일이 돼 있다면. 잃어버릴 모든 것을 붙들 수 있다면. 나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쏟아지는 전등 불빛에 눈이 시렸다. 샘물이 터지듯 눈물이 흘러넘쳤다. 쌓였던 억울함이 목구멍을 뚫고 나왔다.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억눌렀던 고통이 폭풍우가 되어 나의 세상을 흔들었다. 큰 꿈을 가져본 적도 넘치는 욕심을 부려본 적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평범한 열여섯 중학생 소녀였다.

더 이상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네 아내 노릇에 빠졌다. 네가 자고 일어난 이불을 마당 빨랫줄에 내다 널고 간단히 찌개를 끓여놓고 너를 기다렸다. 네가 좋아질수록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도 지루해졌다. 습관처럼 수십 번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며 응답 없는 너를 야속해했다. 어느 순간 그런 내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네게 이유 없이 화를 내고 토라졌다. 그러면 너는 잘못한 게 없으면서도 내게 빌고 매달렸다. 기분을 맞춰주려 애를 쓰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기뻤다. 유치한 내 마음이 짜증 났다. 변덕스러운 마음을 나조차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곪아 터지기 직전의 고름 덩이였다. 그리고 그 고름 덩이는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네가 잡아주길 바랐다. 영영 볼 수 없다고 해도 네가 내 옆을 지키며 내 눈을 대신하겠다는 맹세를 기다렸다. 그러나 너는 어둠처럼 침묵했다.
너를 남겨두고 왔던 길을 천천히 되짚어 걸었다. 익숙한 길이었지만 너를 의식해서였는지 발을 헛디뎌 휘청거렸다. 몸이 풀숲으로 쓰러지려 했다. 그때 네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너를 힘껏 뿌리쳤다. 이 상황에서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내 처지에 화가 났다. 치욕스러웠다.

가로등 아래만 골라 동네를 빙빙 돌았다. 수도 없이 너를 저주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발을 옮겼다. 움직이지 않으면 온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열병에 걸린 듯 피부가 화끈거렸다. 턱 끝에 차가운 땀이 고였다가 땅에 떨어졌다. 무릎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몸의 고통으로 마음의 고통을 잊고 싶었다. 심장이 터지게 달리고 싶은데, 눈앞의 어둠은 두려웠다. 미움과 원망의 대상은 어느새 나로 바뀌었다.
"왜 나만 이 꼴로 살아야 해. 왜 나만."
억울해 미칠 것만 같았다.
"너무 억울해. 다 죽어버려."
내 안의 새카만 어둠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 모두가 지옥에 빠지길 바랐다. 세상을 향한 저주의 언어를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발끝에는 감각이 없었다. 몸은 더 이상 내 의지에 따라주지 않았다. 더 걷고 싶은데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하늘을 바라봤다. 까만 하늘에 아스라이 반쪽 달이 떠 있었다.
"네가, 불행해졌으면 좋겠어."
내가 말해놓고 마음이 서늘했다. 스스로가 형편없는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땀으로 진득했던 목덜미에 서늘한 가을바람이 와 닿았다. 들끓던 분노가 점차 가라앉았다. 폐허가 된 마음속에 허무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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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힘든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무언가에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며 그래서 불안하다. 기후 위기와 전쟁을 두려워하며, 이미 전염병 대유행을 겪은 바 있고 이런 전염병 대유행이 또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제까지 당연했던 많은 것이 불확실해졌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기에 우리는 쉽게 무기력해지고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불안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보호하는 감정이다. 불안은 우리가 위협받고 있으며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하지만 너무 큰 불안은 우리에게 방해가 된다.

불안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저 스트레스가 평소보다 조금 더 심한 경우도 포함해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많은 경우에 우리 모두가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은 과장되거나 병적이라기보다 적절한 감정일 때가 많다.

나아가 불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불안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을 배워야 한다.

불안에 대처하는 법은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다만 여러 사람이 함께 느끼는 공동의 불안에 관한 최근의 논의와 성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안에 대처하는 법은 우리에게 더욱 중요해졌다.
불안을 직시하고 이에 적절히 대처할 때 비로소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창의력과 자기 효능감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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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온(on) 시리즈 5
안온 지음 / 마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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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지 책 제목에서부터 뭔가 먹먹해지는…
그녀가 가난에 대해 한 글자, 한 글자 사실 그대로 꾹꾹
눌러 담은 걸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난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마음이 아팠다.
다만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현실적인 구조제도를 마련해 줄 수 있기를…
또 안타까운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부를 쌓는 도서는 매년, 매달 수 없이 쏟아지는데 반해 이런 내용을 다루는 도서는 상대적으로 출판률이 떨어지는 건 수익률이 좋지 않아서일까, 관심이 많지 않아서일까, 씁쓸하다.
그래서 난 비판하고 딴지를 걸기 보다는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조금은 성숙한 독자이기를 선택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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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관 룸메이트들과 살면서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은 ‘잘자’였다. 학교로 출근했으나 아르바이트 직장을 거쳐 퇴근해 돌아오면 언제나 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대충 씻고 늦게까지 과제를 했다. 몇 시간이나 잘 수 있을지 계산하는 날들을 반복하며 노동시간만큼만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면이 극도로 부족했다.

사실 진짜 부족한 것은 시간이라는 자원이었다. 다음 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질 좋은 식사를 할 시간, 질 좋은 수면을 할 시간, 질 좋은 대인관계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되찾을 시간이 없었고, 미래를 계획할 시간도 없었다.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도 돈과 시간은 필수다. 내가 각종 행사를 거절하는 상용구는 하나였다. 시간이 없어서요. 이 말은 곧 돈이 없어서요, 와 동의어였다.

청년의 빈곤에 대해 질적 방법론을 시도한 연구는 매우 적은데, 연구 대상자들은 하나같이 시간 자원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은 누구보다 강력하게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누구보다 강하게 현실에 묶여 있다. 살기 위해 했던 학원 일로 이력을 채워온 나는 언젠가 학원을 창업하겠다고 생각한다. 이 계획이 의외로 자연스러워서 깜짝깜짝 놀란다. 학원 일이 언제부터 나의 장래 희망이 되었나.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사람으로 살지 고민을 이어갈 시간이 없다. 내가 미래를 고민하다가 써버린 시간에 돈을 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13시간씩 일했던 주말엔 버거도 씹지 않고 삼켜야 했다. 나가기조차 귀찮으면 학원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학원강사의 주식은 사실 컵라면이다. 스물부터 스물한 살까지 1년을 이렇게 지냈더니 「생로병사의 비밀」에 섭외될 몸뚱이가 됐다. "빈곤한 식사는 쌓이고 쌓여 어느 날 질병이라는 청구서로 날아"왔다. "배만 채우는 식사는 건강을 담보로 잡힌 후불 결제"35였던 것이다.

10킬로그램이 쪘고 생리가 끊겼다. 다낭성난소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젊음은 수면 부족, 불규칙적이고 질 낮은 식사, 과로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정이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설상가상 성대결절까지 왔다. 그런데 성대결절인 줄도 몰랐다. 매일 6~7시간 연강을 해서 그냥 목이 쉰 줄로만 알았다. 어릴 때부터 달고 살던 편도염이 재발할 우려가 있어 편도 수술을 했는데, 대신 강의를 해줄 강사가 없어서 수술 후 2일차에 9시간 연강을 한 것이 목에 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살과 병을 얻고도 나는 가난했으므로 쉬지 않았다. 학업을 그만두지 않았고 학원도 그만두지 않았다. 생리불순이 심각해서 어쩌다 한 번 하는 생리는 거의 하혈 수준이다. 10대 때 그다지 심하지 않았던 생리통도 극심해져 응급실에 가 링거를 맞아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체력과 정신력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지금은 믿을 만한 자원이 아니게 됐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싶어 과외를 하나둘 정리했다. 마지막 과외를 갔는데 학생이 자기가 다니는 영어학원의 원장님이 심정지로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 주 일요일, 학원 수업과 수업 사이에 잠깐 외출을 했는데 갑자기 구토가 올라왔다. 가로수에 몸을 기대고 토악질을 하다가 13시까지만 진료한다는 병원에 사정해 링거를 맞았다. 13시 반에는 수업을 다시 시작해야 해서 13시 20분까지, 3분의 2만 맞고 나왔다. 링거를 끝까지 맞는 것이 사는 쪽인지, 학원에서 잘리지 않는 것이 사는 쪽인지 저울질해볼 틈도 없었다.

대학(원)생과 학원강사, 과외 선생을 병행하던 6년의 최근 2년에는 이 책을 쓰는 일이 추가되었다.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 메모장에라도 몇 줄씩 썼다. 생명수가 될 줄 알았는데, 글쓰기까지 겸하면서 시름시름 앓는 일이 늘었다.

무기력했다. 나는 새는 중이었다.36 돈을 벌어도 벌어도 불안해서 나를 몰아붙이며 일했던 날을 버티게 한 것이 정신력이라고 믿었기에 이 무기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

글을 쓰려고 퇴사한 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꼴이 우스웠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무기력, 퇴사, 하기 싫어 등을 검색하니 번아웃이 나왔다.

뇌파 검사상 나는 번아웃이 맞았다. 우울증도 있지만 심각하지는 않다고 했다.

나의 뇌가 감정적 회로보다 이성적 회로를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가 상담의 피치를 올렸다.환자분은 비범한 사람이에요. 괴로움을 처리하는 방식이 남들과는 달라요. 덜 슬픈 거죠. 적당히 기쁜 겁니다. 스스로를 달랠 줄 알아요. 얼마나 좋습니까.

왜 저는 덜 슬픕니까. 덜 슬프고 적당히 기쁜 것이 좋은 겁니까. 제가 대단히 슬프고 끝장나게 기쁜 것을 잘 모르는 게 좋은 것이냔 말입니다. 의사의 어깨를 흔들며 묻고 싶었다.

노동 환경이나 강도를 차치하고 연봉 숫자로만 보면, 나는 꽤 잘 버는 축에 속하는 6년차 학원강사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먹방 유튜버에게 대리를 맡길 수 있는 여유분의 만족감이란 것이 별로 없다. 누텔라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이 없는 것처럼, 가난이 그렇기 때문이다. 한번 맛보면 가난의 맛은 잊히지 않는다. 그 정도 수입이면 넉넉한 편이라고 주위에서 날 추어올려도 내 기분은 전혀 넉넉하지가 않다. "가난은 헤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 인력에서 벗어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그것은 헤어날 길 없이 우리를 집어삼킨다."40

만약 통장에 찍히는 0이 총탄이 되어 가난의 공포를 쏴 죽여줄 수 있다면 몇 개의 0이 필요할지 따지며 탄창이 넉넉하기만을 빈다. 연 1억을 벌어도 총알은 여덟 발뿐이니 가난의 공포는 쉽게 죽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같잖은 위안거리가 있다면, 그 빌런을 상대하는 내가 하릴없이 버텨낸 히어로라는 점이랄까. 오늘도 이 액션 스릴러 시리즈는 절찬 상영 중이다. 폐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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