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 다녀 온 후 오늘에야 한국에서 아침다운 아침을 맞으니 이런 메일도 보이네요^^;다른 분들 활동에 비하면 작은 거지만 자랑해 보아요~ :D
언제부터인가 나는 무엇을 하든 뜨개를 빼놓을수 없게 됐지만, 내 일상이 이렇게 바뀐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이따금 처음 뜨개를 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조용히 찾아온다고했던가. 뜨개를 시작한 데에는 특별한 계기랄 게 없었다. 내가 뜨개를 선택한 게 아니라 뜨개가 나를 찾아왔다고 할 수밖에. - P17
부유하든 가난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누구나 정해진 만큼의 밥을 먹고 숨을 쉬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고 인생이 된다.한 번에 한 걸음씩을 좋아하는 내가 뜨개를 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뜨개는, 아니 뜨개야말로 한 번에 한 코씩만 뜰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 P38
애호하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겹겹의 우주가 있다는 걸 안다. 믿는 것이 아니라 안다. 그리고 나의 그우주 안에서 깊은 안정감을 느낀다.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의 우주를 가진 사람이다. 우주를 부유할 때만 알 수 있는 가치와 시간이 있다. 지구에서 보기에는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거리를 하염없이 떠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를 몸소 가로지르는 이들은 정교하게 계산한 시간표에 맞춰도착 지점에 근접하겠다는 목표하나로 온 하루를쓴다. 그런 하루가 모여 달이 되고 해가 된다. - P43
새 실의 라벨을 풀어 코를 잡으려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묻는다. 이어지는 질문."저번에 뜨던 목도리는 다 떴어?"앞선 질문보다 한층 호기심 어린 목소리다.‘당연히 다 안 떴지. 그걸 꼭 물어봐야겠어?‘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소리 내어 말한 대답은 이거다."목도리는 겨울 거고 이제 여름이니까 여름 거먼저 하나 뜨려고."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코를 잡기 시작한다. 먼저 뜨던 걸 다 떠야 새걸 시작할 수 있다고 법에 정해져 있기라도 한가. 뜨고 싶으면 뜨는 거지.그때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남편이 뉴스를 보며 기도를 하고 있다. TV에서 안타까운 뉴스를 볼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는 건 얼마 전천주교 세례를 받은 남편에게 생긴 새로운 습관이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뜨던걸 완성하지 않은 채 새로운 걸 시작해도 되느냐는 질문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남편의 목소리로 재생한 것이었다. - P55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하루가 짧다. 아마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의 범위를 좁히지는 못할 것이다. 더 넓어진다 해도 자제할 마음은 없다. 기꺼이 잡스럽게 거침없이 산만하게 좋아하는 일을 늘려갈 생각이다.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재미있는 건 뭐든 다. - P66
엉킨 실을 풀다 보니 요령이 생긴 것도 같았다.그 요령이란 엉킨 한가운데, 즉 카오스의 핵부터 건드려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손가락도 아프지만, 어쩌다 매듭 하나를 풀었다 해도금세 다른 매듭에 가로막혀 인내심이 바닥나기 쉽다. 가위로 싹둑 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달콤한 유혹이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엉킨 실을 푸는 데 가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엉킨 실 한 덩이를 두 덩이로 나눠놓을 뿐. - P73
지퍼백에 담은 손 염색실은 여전히 서랍 안에 잠들어 있다. 그런 실도 있다. 뜨개는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풀지 못한 실로는 뜨개를 할 수 없다. 풀어낸 해봤자 얼마 뜨지 못하고 카오스를 만날 테니까. 그런 실로 하는 뜨개는 흉내일 뿐이고,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더는 예쁘지도 부드럽지도 않지만 내 소란했던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잠든 실. 그런 실이 있다. 그 곁에 나와 함께 엉킨 실을 풀어보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 P77
‘존버‘는 뜨개에서도 진리다. - P139
뜨개를 안 해보셨군요?책이 인생을 바꾼다고요? 뜨개를 안 해보셨군요서평가 금정연은 원고지 1매의 가치를 택시비로 헤아리고, 작가 구달은 원고료 1매의 가치를 양말값으로 가늠한다. 나는 원고지 1매의 가치를 실과 바늘값으로 셈한다. 원고지 1매로는 여름이라면 면 100퍼센트 오가닉 실 한 볼을, 겨울이라면 메리노울에 아크릴이 조금 섞인 트위드 실 한 볼을 살 수 있다. 손잡이가 실리콘으로 마감된 코바늘 두 자루, 전체가금속으로 된 코바늘 네 자루, 대나무로 만들어진 중간 두께의 줄바늘 네 개를 살 수 있다. - P7
나는 뜨개 덕분에 다른사람을 숨 막히게 하지않는다. 오랜 취미 방랑에 종지부를 찍고 뜨개에 정착한 비결이 바로 이 문장 안에 담겨 있다. 거창한이야기를 하려니 부끄럽지만, 나는 뜨개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고, 불안감에 못 이겨 주변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힘들게 하지 않게 됐고, 그런 면에서 뜨개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 P8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뜨개를 만났고, 나는 뜨개인이 됐다. - P9
자고로 착한 아이는 성실해야 하고, 훌륭한 사람은 바빠야 하는 법. 착하기 위해 성실한 아이였던 나는 훌륭하기 위해 바쁜 사람이 됐다. 하지만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만큼 열심히 일하고도 그 끝에 남는 건 뿌듯함이 아니라 불안감이었다.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고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 P10
이대로 백수가 되면 오쩌지. 경제활동이 가로막힌다는 실질적 불안감도 없지 않았지만,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을지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감이 더 컸다. 그러다 우연히 뜨개를 시작했고, 뜨개빠졌고, 더는 다른 취미를 찾아 헤매지 않게 됐다. - P11
소크라테스가 말한 영적인 것, 즉 다이모니온은 뭐죠?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학자들도 갈리지만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어요. 양심, 내면, 그리고 귀신같은 것인데 이것들 모두 물질적인 것은 아니죠. 다이모니온이 육체의 현상인지 육체와는 별개, 가령 영적인 것의 현상이거나 영 그자체인지에 대해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네요. 하지만 소크라테스 이전, 그러니까 호메로스 시대에 그리스인들은 ‘내면의 소리‘를 신의 목소리라고 여겼어요. - P115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신이든 인간이든 더 훌륭한 이를 따르지 않는 것과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나쁘고 수치스러운 짓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쁘다는 것을 제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보다는 사실은 좋은 것일 수도 있는 것(죽음)을 더두려워하거나 회피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 P127
"여러분, 진리는 이렇습니다. 자기 자신이 최선의 장소라고 여겼기 때문이든 지휘관이 특정한 곳에 머물라고 해서든, 자리를 잡은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그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 P128
"재산에서 사람의 훌륭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훌륭함으로 인해 재산과 그 밖의 모든 것이 좋은 것이 된다." - P133
일반 사람들이 이 과정을 진득하니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자기 자신이 알고 있다고 여기던 것들은 무참히 깨지고, 대신 엉뚱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으니, 소크라테스와 ‘묻고 답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그에게 적개심을 품기까지 했다. 페르시아를 몰아낸 뒤, 동맹국들을 쥐어짜서 이룬 풍요와 번성함을 누리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아테네인들이었기에 소크라테스의 말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 P9
"젊은이건 늙은이건 간에 자신의 육체와 재산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최선에 이르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 재산에서사람의 훌륭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훌륭함으로 인해 재산과 그 밖의 모든 것이 좋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훌륭하고 지혜로워지도록 하는 일에 마음을 쓰기 전에는 자신의 소유물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우두커니 서서 ‘사람이 어떤 모습이었을 때 가장 좋고 아름다운지, 그래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하며 물음을 이어간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 P10
‘진실‘, ‘진실‘ 하더니만 ‘진실의 힘‘을 믿지도 않은 거야?어떤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지.진실의 힘을 믿지 않는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 대한 편견에 노출된 지는 수십 년이 되었지만, 자신이 그것을 방어할 시간은 너무 짧다는 소리겠지. - P45
신의 뜻을 알기 위해 캐묻고 다닌 결과, 저는 다음과 같이 느꼈습니다. ‘명성이 드높은 사람일수록 사실은 흠이 많고, 못났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리에 더 밝구나!’ -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