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존재 방식에 대한 고민

Aegrimonia de esse et modo essendi.
애그리모니아 데 에쎄 에트 모도 에쎈디.

분명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이들의 과격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있는 것을 논외, 별종, 변태 취급하고,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무화시킬 때 인간다움은 퇴보합니다. 수많은 소수와 경계를 더는 아무렇지 않게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소수와 경계들을 우리는 더 호명해야만 합니다.
이 사회에서 말하는 보편의 개념은 아직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보편의 울타리에서 밀려난 수많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 불완전을 메꿔가며 새로운 보편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일이 곧 역사의 진보일 것입니다.

미래 사회를 상상하다.

Invenire societatem futuram.
인베니레 소치에타템 푸투람.

우리의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저는 우리의 미래 사회가 ‘꼴값을 떨며 인정머리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냥 좋게 좋게 가자’ 같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둥글게 둥글게’ ‘좋게 좋게’라 말하지만 그것은 그 말을 하는 자의 입장에서의 ‘좋음’일 뿐, 상대방이나 전체 사회에는 해악이 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간의 인정과 후덕함 속에서 따스하게 좋게 좋게 만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때로는 그 온기 속에서 많은 부조리함이 곰팡이처럼 번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 부조리와 비리는 결국 조직과 사회를 질식시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을 살해합니다.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인정의 올가미 속에서 개인이 죽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이 저마다 꼴값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도래하길 꿈꿉니다. 당신이 그리는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고요한 밤!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Nox silens!
녹스 실렌스!
Est quod habemus.
에스트 쿼드 하베무스.

우리는 누가 우리의 좋은 점을 말해주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장점을 말해주어도 듣기 좋으라고 하는 형식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요. 내가 떠올린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제안, 어깨를 펴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들도 지나친 겸손이나 조심스러움으로 오히려 낮춰서 평가하는 것을 차라리 편안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깎아내릴 이유도 없고 우리가 애초에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헛되고 헛되다.

Vanitas vanitatem.
바니타스 바니타템.

땅 위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그러나 권좌의 정점에 있던 인간도, 부와 존귀함의 바닥에 깔려 있던 이도 결국 숨이 다하면 같은 곳에서 만날 것입니다.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Adulescentia enim et
아둘레쉔티아 에님 에트
voluptas vana sunt.
볼룹타스 바나 순트

젊은 날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눈이 이끄는 데로 가서 몸과 마음이 기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무심히 한 어떤 말과 행동이 예기치 않게 커다란 고통과 괴로움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때 시간이야말로 가장 상급심의 재판관임을 절감하지요. 그러므로 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다 해서도 안 됨을 아는 것이 청춘의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달란트를
잊지 마세요.

Ne obliviscaris talentorum tuorum.
네 오블리비스카리스 탈렌토룸 투오룸.

재능을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만 측량한다면 정말 아무런 재능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노래 부르는 재능, 그림 그리는 재능, 남을 웃기는 재능, 운동 잘하는 재능 등 이런 또렷한 재능은 없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떤 재능은 범용적이어서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힘들어할 때 유머러스해지는 재능, 무뚝뚝해도 한두 마디에 진심을 잘 담는 재능, 조용히 누군가를 응원하는 재능…… 사실 우리 사회엔 이런 조용한 일상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활약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이런 재능, 당신 안에도 있습니다.

이것이 끝입니다.

Iste finis.
이스테 피니스.

모든 터널에 끝은 있습니다. 다만 끝까지 간 사람에게만 한해서. 이것이 터널의 끝입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래서 스스로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마다 제가 기도하듯 읽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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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타인의 증오에
짓눌리지 말아야 한다.

Non debet aliquis alterius odio
논 데베트 알리퀴스 알테리우스 오디오
praegravari.
프래그라바리.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입니다.

Imperare sibi maximum
임페라레 시비 막시뭄
imperium est.
임페리움 에스트.

인간에게는 삶을 ‘막 살아갈’ 자의적인 권리도, ‘아님 말고 식’의 태도로 타인의 삶을 침해할 권리도 없습니다. 인생에서 흔히 주관과 의지와 가능성을 강조하지만, 저는 진짜 인간다움은 나의 권리가 아닌 것을 헤아리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인생에서 겨우 다스릴 수 있는 것은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입니다.

너는 네가 키케로임을 잊지 마라.

Neli te oblivisci Ciceronem esse.
넬리 테 오블리비쉬 키케로넴 에쎄.

키케로는 성공한 변호사이자 정치가였으나 철학자로서 더 큰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가 쓴 글들은 읽노라면 지성과 품격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정치적 야심이 강해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Interarmasilentleges;인테르 아르마 실렌트 레제스"●는 현실에서 자신이 로마 공화정을 구할 적격의 인물이라고 자신했습니다. 끊임없이 생生을 갈망하면서도 사死에 집착하는 마음처럼 그는 시골에서 조용하게 사는 즐거움에 대해 아름다운 문체로 글을 써내려갔지만, 현실적으로는 원로원과 법정의 고위직을 갈망했습니다.
● 키케로, 『밀로를 위하여ProMilone』, IV, 11; 직역하면 "팔 사이의 법은 침묵한다"인데 ‘전시에 법은 침묵한다’는 뜻이다. 의역하면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로 옮길 수 있다.
생각하는 나와 현실의 나는 언제나 갈등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거룩하지도 항상 완벽할 수도 없기에 그렇게 부딪치는 마음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순과 고뇌까지도 철학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키케로의 글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새롭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때로 누추한 외투 속에도
지혜가 깃들어 있다.

Saepe est etiam sub palliolo
새페 에스트 에티암 숩 팔리올로
sordido sapientia.
소르디도 사피엔티아.

지혜에는 발이 달려 있어서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이를 찾아갑니다. "누추한 외투 속에도 지혜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깨어 있는 영혼에게 지혜는 스스로 걸어가 자신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위대한 신성이 있는데,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내면의 ‘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깊은 곳까지 가보면 얼룩이 먼저 보입니다. 진정 위대한 첫걸음은 그 얼룩을 마주한 뒤에 신성을 향해 다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때 인간은 나를 붙잡고 있는 깊은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사람들이 말씀에 목말라했고 오늘의 우리 역시 말씀이 간절한 이유는 바로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서이듯, 우리가 깊은 데로 가는 것은 그 심연으로부터 다시 빠져나오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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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사건/무왕의 중국 침공

무황(7~957년)은 발해의 2대왕이자 대조영의 아들로, 대당 강경책을 펼쳤던 인물이다 해가 건국된 후에도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위태로웠다. 돌궐과 당나라의 갈등이 심각해졌고 발해가 흥기하자 신라도 이에 대응하여 강릉 일대에 장성을 쌓는 등 당, 신라 그리고 돌궐, 발해, 왜 사이에서 복잡한 국지전과 외교전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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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담이 존재합니다.

Saeptum est inter hominem
샙툼 에스트 인테르 호미넴
et hominem.
에트 호미넴.

타인과 나의 경계엔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담이 있어, 나와 너의 자의식만으로는 그 담을 결코 넘어갈 수 없습니다. 담 안쪽의 내가 유일하다는 자의식을 버리고, 담 너머의 세상을 탐구하고 고민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공부라 말합니다.

대중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중은 진리로부터는 조금,
소문에 의해 많이 판단합니다.

Sic est vulgus: ex veritate pauca,
시크 에스트 불구스: 엑스 베리타테 파우카,
ex opinione multa aestimat.
엑스 오피니오네 물타 애스티마트.

소문을 뜻하는 라틴어 ‘rumor(루모르)’는 원래 ‘소란한 소리’라는 의미였습니다. 그 이유는 ‘rumor’라는 것 자체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이 소문이라면, 나 역시 들을 의지를 발휘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요?
근거 없는 낭설과 소문은 계속 흘러가게 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소문은 날아간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Fama volat.
파마 볼라트.

소문은 확실치도 않은 일을 크게 과장하는 것이 예사입니다.Ferreinmajusincertasresfamasolet;페레 인 마유스 인체르타스 레스 파마 솔레트."(리비우스)
소문은 시편 59장 14절의 말씀처럼 "마치 개들처럼 허기져 못 견디고 성 안을 싸돌아다닙니다Famem patientur ut canes, et circuibunt civitatem;파멤 파티엔투르 우트 카네스, 에트 치르쿠이분트 치비타템". 소문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고 일파만파 퍼집니다.

어리석음은
모든 재앙의 어머니요 구실입니다.

Stultia est mater atque materies
스툴티아 에스트 마테르 아트퀘 마테리에스
omnis perniciei.
옴니스 페르니치에이.

어리석음은 무지와 다릅니다. 무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순간에도 드러나곤 하지만, 어리석음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에,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에 비로소 드러납니다.

오만이 오면 수치도 오지만
겸손한 이에게는 지혜가 따른다.

Venit superbia, veniet et contumelia;
베니트 수페르비아, 베니에트 에트 콘투멜리아;
apud humiles autem sapientia.
아푸드 후밀레스 아우템 사피엔티아.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과감히 버려야 할 것들이 생겼습니다. 오만이라는 옷을 벗어던져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지닌 물건만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몸과 습관에 달라붙은 감정과 태도는 그보다 훨씬 더 버리기 어려웠습니다. 늘 불편함과 구속감을 느꼈지만, 이전에 타인과 세상을 향해 내가 친 벽이 나의 연약한 부분을 지켜주는 기능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고 난 뒤에는 나 자신을 어떻게 지킬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이 세상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이 저를 오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오만의 옷을 벗어던지자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우정의 온기와 다정의 눈물겨움을 깨달았습니다.

자녀를 기르는 부모님은 잘 아실 것입니다.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들어주는 귀, 믿어주는 눈빛, 이해하는 말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타인의 생각을 먼저 잘 듣고 헤아려야 그의 마음을 열 수 있고 돌릴 수도 있습니다. 정보가 부족해서 마음이 열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혜량하는 태도의 온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돌아서지 않는 것입니다.

대침묵

Altum silentium
알툼 실렌티움

침묵이 위대한 건 사람의 시선을 철저히 자기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자신이 살아온 동안 야금야금 키워왔던 생각의 나무에 전지가위를 들이대는 것입니다. 위대한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면 세상의 비난과 멸시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던 자신의 시선은 내면으로 향하게 되고, 절대 침묵은 모난 나를 둥글게 깎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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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금이야 2024-01-01 18:13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루피닷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일본 외상 다나카 마키코는 말한다. "인간은 세 종류뿐이다. 가족과 피고용인, 그리고 적이다. 피고용인은 나를 충실히 따라라." 그가 말한 피고용인은 외무성 간부들을 의미한다.

아내는 자신이 이 세상 어떤 여자보다도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만 가지면 무엇이든 참아 낸다. 작은 꽃, 전화 한 통, 손수건 하나, 카드 한 장, 향수 한 병 … 이런 것이 아내를 기쁘게 하는 이유는 남편이 그것을 사려고 시간을 내고, 아내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가장 가까운 고객인 가족부터 만족시켜라. 그래야 마음 놓고 일에 미칠 수 있다.

누군가와 갈등이 있다면 자신과 상대방의 논리유형을 파악하라. 서로 다른 유형이라면 차라리 더 이상 만나지 말거나 그것이 어려우면 침묵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다. 당신에게는 당연한 말이 상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인정하며 살자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전세든 구입이든 최대한 일터와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30대 중반까지는 자기 투자를 할 여유 시간이 충분히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는 부부 중 경제활동의 대가와 미래 발전가능성이 큰 쪽의 직장 근처로 이사를 하는 게 좋겠다. 일터는 도심에 있는데 가격이 싸고 평수도 넓다고 해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면 출퇴근에만 하루 2, 3시간을 소비하게 돼 자기투자를 할 여유가 없다. 출퇴근 시간에 외국어 등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사실 실천하기 쉽지 않다. 차 안에서는 쉬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는 퇴근하느라 지쳐 또 쉬게 된다. 일주일을 출퇴근에 시달렸으니 일요일에도 쉬게 된다. 그러니 책 한 권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가용을 사지만 도로는 여전히 막혀 짜증만 난다. 자가용이 있으니 주말에는 놀러 가기가 좋고 결국 돈 쓸 일만 생긴다. 돈이 모이지 않으니 점점 더 싼 지역으로 이사 가게 되고 자기에게 투자를 할 시간은 갈수록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나는 성실하게 살고 있는데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돈은 새끼를 치고 기회를 주지만 살림살이는 고물이 된다. 게다가 대다수 상품값은 날이 갈수록 싸진다. 나는 20대에는 시간도 돈도 아까워 아예 TV를 사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거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졸부는 운이 좋으면 되지만 진짜 부자는 그래서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외모도 중요하고 실력도 중요하다.
나는 도덕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람들의 말을 크게 믿지 않는다. "교통신호를 지켜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생활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의 이중성이다. 이러한 이중성이 나타나는 것 중의 하나가 "외모는 중요하지 않으며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외모를 본다. 중국 당나라의 관리 선발기준이었고 조선시대의 인재 판별기준이라는 신언서판身言書判에서도 외모가 첫째 조건이었다.

셋째,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형. 이런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당사자에게 태연하게 행동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하소연을 늘어놓는데 오해, 과장, 축소, 은폐, 모함이 따른다.

부자가 원하는 것을 알아라.
부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주머니에 있는 돈이 그들의 ‘자발적 의사’로 당신 주머니 속으로 들어와 쌓인다는 뜻이다. 만약 흉기를 들면 강도가 되는 것이고, 속임수를 쓰면 사기꾼이 되며, 연고에 호소하면 상대와의 친분을 이용하는 것이 된다.

처세술 저자들은 친구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라고 말한다. 데일 카네기의 처세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 목적이 뻔하다. 실리적 도움을 받기 위함 아닌가. 나쁘게 말하면 이용하기 위한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과연 우정일까? 도움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명함에 찍힌 내용에 따라 만들어 가는 인간관계가 어떻게 우정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그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인정하라. 살다 보면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해 마주치기조차 싫은 사람들이 주변에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서로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얘기를 나눠도 매듭이 풀리지 않거나 대화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나는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갈등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형. 문제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하면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식으로 덮어 버리려고 한다.

부자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라. 당신이 부자가 아니라면 부자들은 당신이 먹어 본 음식, 당신이 받아 온 서비스, 당신이 느끼는 기분, 그 이상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다. 당신에게 괜찮아 보이는 수준 정도라면 그들이 지갑을 열 까닭이 없다.

부자가 되는 것은 천재들이 아니라, 바로 다른 보통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임을 잊지 마라.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다.

나는 친구와의 동업을 절대 권장하지 않는다. 동업자들 간에 중요한 것은 신뢰관계가 아니라 능력의 균형이며 능력에 따른 정확한 계산이다. 특히 당신은 아는 것이 없는 분야에 돈만 대고 일은 친구가 하는 식의 동업은 우정을 파괴하는 지름길이다. 이것은 미국경영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진리이다. 친구를 돕는다는 생각에 능력이 없는 친구를 고용하지도 말라. 당신은 베푼다고 생각하지만 그 친구는 자신을 당신과 동등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몇 년 후 당신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감동적인 우정을 보여주는 수행자 싯다르타와 뱃사공 고빈다 사이에는 아무런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었음을 기억하라.

돈은 재테크로 버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의 당신의 몸값을 스스로 비싸게 만들어 버는 것이며 그렇게 마련된 돈을 비로소 재테크로 불리는 것이다. 이 순서를 반대로 생각하게 되면 허망한 꿈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아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확신만 있다면 지옥불이라도 참아 낼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수없이 "자기, 나 사랑해?"라고 묻는다. 사랑의 증거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 증거만 확고하게 제공된다면 아내는 남편을 자유롭게 놓아둘 수 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라도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둘째, 문제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권위나 지위에 의존하는 형.

나는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고 검소하지도 않으며 사는 모습도 이른바 ‘국민정서’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치열한 실전을 치러 온 경험자로서 구체적인 길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그것도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믿으며 내게는 큰 기쁨이다.

넷째, 책임을 밝히려고 하는 형. 보통사람들은 입으로 직접 거론하기 힘들어하는 것들도 거침없이 끄집어내어 밝히고자 한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건 아니건 간에 그것은 당신 자유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두어라. 삶의 진정한 가치는 내가 나 자신을 직시하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끄집어내면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경험의 연장선상에 녹아 있다. 생의 현장에 부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온전히 체험할 때에 생의 의미가 깊어진다고 믿는다. 나는 그렇게 더운 숨을 몰아쉬어 가며 수없이 넘어지고 피를 흘리면서 삶을 살아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행운아다. 이제 당신의 행운을 빈다!

2023년 1월 28일
서울에서, 세이노

어떤 사람은 돈을 벌고 어떤 사람은 돈을 못 버느냐는 거예요. 그러면 그 차이가 어디 있냐는 거예요. 재테크를 잘해서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일단은 종잣돈이 있어야 되고, 여유자금으로 할 수 있는 자금이 있어야 됩니다. 여유자금이 없게 되면 투자를 하더라도 시간에 쫓기게 됩니다. 모든 투자에서 시간에 쫓기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투자는 망하고 맙니다. 누구한테 돈을 기증하는 셈이 되느냐, 저같이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이른바 큰손들이 전부 그 돈을 노립니다. 빚을 내서 한 것은, 이것은 재산이 아니에요. 이건 빚입니다.

나는 당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면 현재의 삶을 부끄럽게 여기고 엎어버리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을 중간에 던져버리지 않고 다 읽었다면 내 글이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차갑고, 어떤 독자에게는 귀를 막고 피하고 싶어할 정도로 몰상식하고 듣기 싫은 말들의 연속임을 알 것이다.
하지만 내 의도는 마비된 줄도 모르고 그저 눈감고 있던 당신의 삶 구석구석을 바늘로 찔러 "아하, 그런 거였구나" 하고 깨달을 자각(에피파니epiphany)이 생기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당신이 이제 가늘게나마 실눈을 뜨고 몸을 1미리라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기를 바랐다.

장담하건대 당신이 재미있는 것만 즐기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당신의 삶 자체가 조만간 재미없어질 것이다.
명언 두 개. "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그렇게나 원했던 내일이었다." "오늘은 당신에게 남아 있는 생의 첫날이다."

외모가 주는 이점利點은 남들보다 앞선 출발선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신을 질주하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실력이다. 외모만 믿고 능력개발을 등한시하면 생명이 결코 길지 않다. 외모에 자신이 전혀 없다고? 그렇다고 좌절하지 말고 실력을 두 배로 길러라. 이 세상은 당신이 넘어지면 잔인하게 짓밟고 지나가지만 당신이 일어서면 우러러본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찰스 왕세자가 왜 젊고 아름다운 다이애나를 좋아했다가 턱 주름 가득한 파커 볼스를 사랑하는지도 한 번쯤 생각해 보라.

나는 경제적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가짐부터 가다듬을 것을 권유한다. 그 어떤 재테크보다도 먼저 자신의 삶과 세상을 직시해야 성공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나 희망찬 덕담 혹은 재미를 기대하면 안 된다. 내 글은 차갑고 싸늘한 내용들이고 독자의 삶을 찌르려는 바늘이다. 그 바늘에 찔려 독자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릴 때 비로소 내가 말하는 재테크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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