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청년(악!!) 시절에 누군가 간혹 이상형을 물으면 윤동주를 꼽곤 했었어요. 

대개 돌아오는 반응은 

"에? 시인?" 이런 식이었죠. 

윤동주를 이상형으로 간직하면서 만약 시인이 살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시인은 변함없이 괴로워 했겠지만요, 적어도 우리는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조금 더 향유할 수 있었을 거예요. 지금 존재하지 않기에 더 아름다운 것들은 시리도록 애처로웠습니다. 이만저만 안타깝지 않았지요. 


나는 친구를 잃어야 하겠지만 조선인 죄수들은 현명한 동료를, 간수장은 용서를 빌 대상을, 간수들은 온화한 모범수를 잃을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조선인들은 위대한 스승을 잃을 것이고, 태어나지 않은 일본인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증언할 지식인을 잃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가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지지 못할 순결한 시인을 잃어야 할 것이다. - 2권, 240쪽



제 닉네임 [동섣달꽃]은 시인 정지용이 윤동주를 일컬어 했던 '동(冬) 섣달의 꽃,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鯉魚)'라는 말에서 따 온 겁니다. 

12월 추운 겨울에 피는 꽃.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 강물 아래 헤엄치는 잉어. 어두운 시절에 눈부신 작품을 썼던 시인을 참으로 생각하게 하는 아주 매력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시절, 저는 <윤동주 평전>을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남몰래 통곡하던 어머니를 읽으면서 함께 울었고요. 그리고 조금씩 잊히는 첫사랑 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이 책을 만났네요? 하하. 

처음에는 몰입하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좋아하던 연예인의 사생활을 알게 되면, 왜 좀 실망하게 되잖아요. 같은 사람이라는 게 낯설기도 하고요. 그런 느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가도 '인간 윤동주'를 그리는 데 적잖이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제가 그린 인간 윤동주는? 더 말수가 적고 단어를 아끼고 아껴서 말하는 사람이요. 어쨌든,)

오랜만에 시인의 삶도 상상해보고 중간 중간 시도 감상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시간이었습니다. 설레기도 했고요, 후반부 그의 죽음이 가까워 올수록 많이 슬펐습니다. 


책은 [열도 안의 가장 위험한 병균들을 모아 놓은 곳], 즉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통의 한 형무소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진행됩니다. 일제시대, 후쿠오카 형무소에는 조선인들이 모여 있어요. 당시 조선인은 병균이고 암세포이며 돼지였죠.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시간 낭비일 뿐이야. 조선 놈들은 똑같아. 더 나쁜 놈도 없고 덜 나쁜 놈도 없어. 모두가 주모자고 모두가 동조자지. 돼지는 돼지일 뿐이야. 더 잘생긴 돼지도 없고 덜 못생긴 돼지도 없다고!" -  2권, 165쪽


그런데 궁금합니다. 이런 횡포가 과연 '전쟁의 광기' 때문이었을까요? '악마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라 그랬던 걸까요? 

사실 제가 좌절하는 건, 지나간 사건과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며, 결국 악한 것은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악한 사람들 덕분에 늘 어둡죠. 어두운 시대라서 사람들이 악한 게 아니라. 지금도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요? 


다시 책으로 돌아와, 살인사건을 맡은 유이치는 사건을 추적하다가 의외로 떠오르는 인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윤동주. 어두운 시절에 탁월하게 맑은 영혼입니다. 그나마 세상에서 숨 쉬고 살게 하는 것은 이처럼 드물게 아름답고 타협하지 않는 영혼일 거예요. 이 영혼은 너무나 빛나고 깨끗해서 시대에 가려지지도, 녹아들지도 않아요. 유이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동주와 책을 매개로 마음을 나누죠. 시인은, 윤동주는 그런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를 통해 시와 음악과 삶을 생각하게 되는 영혼. 


소설 속에는 윤동주 보다는 덜 하지만 괴로워해서 악하고, 악해서 더욱 괴로워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사실 저는 이게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실제로 인간은 [괴로워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서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게 대부분이잖아요? 그럴 이유는 많으니까요. 가족들, 생계, 책임감 등등. 그것이 상식선인데요. 


무엇보다 자신이 상식에 의거해 살아가는 평범한 일본인이라고 굳게 믿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이 전쟁을 막지 못했는지...... - 2권, 224쪽


소설 속 몇몇 주요 등장인물은 결코 그렇지가 않단 말입니다. '살아남은 것이 부끄러운' 일본인 간수는 특히요. 스기야마나 유이치 모두 그런 인물인데요. 이들의 내면이 의외로 너무 아름다워서 지나치게 소설 같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에나 있는 인물이라고요. 괴롭지만 너무 괴로워지기 전에 잊는다, 가 많은 사람들의 태도니까요.  

(반면 형무소장이나 간수장, 병원장은 철저한 전쟁광에 악한이잖아요. 이런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 주요 인물 몇을 제외하고는 착하거나, 악하거나, 좀 단편적인 모습만 보여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아름답습니다. 

매일 악(惡)을 확인하면서도 희망을 갖게 하거든요. 순수한 선(善)이 있다는 것, 그래서 삶을 낙관할 수 있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살아남아야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고 더러운 시대에 침을 뱉을 수 있어. 명심해라. 살아남는 게 승리하는 거야. 시체는 결코 만세를 부를 수도 침을 뱉을 수도 없어." - 2권, 168쪽



저는 아직 윤동주처럼 빛나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제가 속해있는 어둠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못했어요.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탁월한 영혼을 가진 사람을 볼 수 있고 

그 사람 덕분에 어두움을 괴로워하고 

악화가 아닌 '선화(善貨)'가 양화를 구축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어둠에 가보고 싶다는 쓸데없고 위험한 소망을 해봅니다. 


<별 헤는 밤>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아래에 전문입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들의 이름과,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볕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이제 나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 1권, 9쪽


사라진 저작물 중에는 한 조선인 미곡상의 외상 장부도 있었다. 소각 이유는 '진위를 해독할 수없는 의미 없는 숫자의 무한반복'이었다. - 63쪽


그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망가뜨린 인간과 같은 인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린 아들을 안아 주는 아버지, 망가진 주방의 선반에 못질을 해주는 남편, 친절한 이웃일 그가 자신과 같은 아버지, 남편, 이웃을 개처럼 패고 있었다. - 115~116쪽


얼어붙은 밥덩이라도 주린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그들은 기꺼이 시체와 함께 잠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 2권, 72쪽


전쟁이 우리를 무릎 꿇게 만들고, 세상이 우리를 더러운 짐승처럼 만들어도 우리의 영혼을 훼손할 수 없음을. - 95쪽


"말하지 못한 사랑도 사랑이야. 말해 버린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일지 모르지." - 137쪽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건 조선 놈들이 아니다. 나쁜 놈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어떤 민족이든 나쁜 놈들은 있다. - 159쪽


고통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죽음을 택한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겪어 온 그에겐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의미였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이기는 것이니까. -184쪽



p.s. 어쩐지 어색할 것 같아 책장에서 놀렸던 구효서 작가의 소설 <동주>를 꺼내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시인을 추억하는 게 좋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총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적도에 묻히다- 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
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 / 역사비평사 / 2012년 7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2년 08월 10일에 저장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한일 젊은 세대를 위한 서경식의 바른 역사 강의
서경식 지음, 형진의 옮김 / 반비 / 2012년 8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2년 08월 10일에 저장

다크 존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7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2012년 08월 07일에 저장
품절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8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2년 08월 07일에 저장



총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이 때, 일상을 지키고 있는 건 어딘가 어색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지키고 있을 때 떠나는 것만큼이나요. 그 어느 때보다 실컷 여름을 즐겼지만 역시 책만 한 게 없네요. 돌아다니면서도 책방 찾는 것을 보면요. 아직도 동네 책방이 건실하게 살아있는 도시에 다녀오니 그곳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엔 어떤 신간들이 가슴을 설레게 하나요? 




우연히 미술관에서 독일의 화가 '임멘도르프(Jorg Immendorf)'의 작품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보는 순간 매료되고 말았죠. 작가나 작품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석이 가능했어요. 원숭이, 돼지, 공연과 친구들이 불규칙적으로 뒤엉켜서 한 편의 작품이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했달까요. 

홀로코스트에 관심 있는 저에게 임멘도르프의 작품이나 <나치와 이발사> 같은 작품은 반드시 알아야 할 목록이겠죠. 이 작품에 담겨 있는 진실과 대면하면 '이것이 인간인가'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하게 될 겁니다. 






믿고 보는 이름들이 있죠? 저의 경우 '밀란 쿤데라'가 있고요. 돌베개 출판사(전혀 관계 없는 사람입니다;)도 있네요. 그 중에 하나가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입니다. 독파한 것은 아니고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과 <표백> 정도입니다. 둘 다 최근작이군요. 

어쨌든, 그래서 <굿바이 동물원>은 기본은 할 거라는 게 제 믿음입니다. 살면서 최소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짚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즐거움! 매력적인 작품이 되겠네요. 








정말 이렇게 되는군요. 스크린셀러라고 하지요? 나는 작품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가진 독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가 봅니다. 한 시사지에서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리뷰를 보았어요. 모성애에의 강요나 환상이 얼마나 현실과 다른지 잘 그렸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꼭 영화 때문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전 그다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내 자식이 착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 해본 적 없는지요. 전 많아요. 책을 읽고 나면 또 어떤 생각으로 자식이라는 존재를 싫어할 이유를 찾게 될지 궁금하네요. 


 





요즘 빠져있는 웹툰이 있어요. <미생>. 많이들 보시죠? 이 책 소개를 보니 그 웹툰이 떠오르더군요(사실 제게는 바둑이나 장기에 큰 차이가 없어요. 켁.). 

인생을 '게임의 법칙'으로 해석하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에요. 게다가 그 인생이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치열한 경쟁의 삶이라면?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실제로 우리 삶은 그런 경쟁에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 당하지 않나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이 작품에 매료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이니까, 영화 <쏘우>시리즈도 다시 보고 <큐브>도 보고 어쩐지 닮았을 것 같은 이 작품도 봐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알렉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알렉스 ㅣ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루고 또 미루다가 이제야 서둘러 책을 끝냈습니다. 해는 져버린 지 오래고 집에는 아직 혼자 있습니다. 저는 지금, 마음이 아주 으스스합니다. 방마다 불을 다 켜고 말았습니다. 

저, 추리소설 아주 좋아하고 잔혹한 작품도 꽤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으스스한 기분은 처음이네요.(이게 마감에 대한 초조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렉스>에 집중하며 왜 그런가, 곰곰이 따져보려 합니다. 


무엇보다 <알렉스>가 인상적인 것은 세밀한 장면 묘사입니다. 특히 쥐 장면! 많은 분들이 읽기 힘드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주 괴로웠습니다. 작가가 납치당한 여자의 심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주 공들인 장치로 보여요. 비대하고 징그러운 쥐가 호시탐탐 나를 노린다... 아주 끔찍하죠.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이 외에도 살해 장면, 파리 시내 장면 등 <알렉스>는 전체적으로 영상적인 소설이에요. 책의 두께도 두께거니와 지나치게 섬세한 심리 묘사가 힘든 분들에게는 언젠가 개봉될(희망사항입니다. 오해 마시길.) 영화를 기다려도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렇게 으스스한가 봅니다. 아이고...


<알렉스>라는 흥미로운 작품의 핵심은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나 합니다. 

'중요한 건 의도'라는 알렉스의 말. 


그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있을지에 관해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려나 상관없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중요한 건 의도이니까. -366쪽


줄거리로 아시겠지만 주인공이자 책의 제목을 장식하는 '알렉스'는 소설 시작과 더불어 납치를 당합니다. 대부분은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끼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녀를 납치한 남자에 집중하고 그를 괴물로 상상하기 쉽죠. 실제로 좀 괴물 같아요. 납치한 여자를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새장에 가둬 알 수 없는 곳에 매달아 놓으니 말이죠. 그러면서 보이는 반응도 아주 단순해요. 

하지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주인공은 이 남자가 아니라 '알렉스'라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알렉스의 의도'입니다. 


납치범은 경찰에 쫓기다가 자살하고, 극적으로 새장에서 탈출한 여자는 다시 연쇄 살인을 저지릅니다. 알렉스는 왜 그토록 지독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걸까요? 그녀의 잔혹함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복잡하게 얽힌 등장인물들을 지켜봐야 비로소 알렉스의 의도를 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의도를 갖는다는 것은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옳은 방향이든 틀린 방향이든 삶을 지탱하는 엄청난 힘입니다. 모든 영화와 소설의 주인공들이 가진 것이 의도고요.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도 의도죠. 의도를 통해 '진실'과 '정의' 사이에 좌표를 찍을 수 있게 될 겁니다. 실패한 것 같던 주인공의 삶이 복수의 칼날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 주인공의 명확한 의도 덕분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희열이지요. 이 소설엔 그 '의도'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의도는 소설 말미에 가서야 겨우 모습을 비칩니다. 아주 설득력 있고 강력한 반전이기 때문에 비밀로 묻어 두고 싶네요. 

하지만 제가 <알렉스>를 문제적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또한 이 부분에 있습니다. 다른 방향에서 결말을 읽으면 새로운 의미가 나타나요. 이 소설을 닫힌 결말로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전 좀 다르게 읽었습니다. 그물망 같은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큰 물고기는 꽤 잡았지만 작은 물고기들이 빠져나가는 그물이요. 

그것이 정말 그녀의 의도였을까요? 아니면 경찰이 본 것 그대로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알렉스>는 단순한 납치범과 연쇄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선, 악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잖아요. 절대 나쁜 사람도, 무조건 착한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 점을 정확히 짚어줬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설입니다. 


이자를 죽도록 증오한다. 실제로 그는 이자를 죽이고 싶다. 이자를 언젠가 죽이고야 말 것 같다. 그는 몇 주 전 예심판사 비다르에 대해 이런 살의를 품은 적이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중얼거린다. 우연히 여기 끼지 않은 것일 뿐, 너는 잠재적인 살인자야. -486쪽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단연 빛나는 인물로 아르망을 꼽고 싶습니다. 좀도둑 형사라니. 소리 없는 아우성입니까? 찬란한 슬픔의 봄이에요? 캐릭터 강한 조연으로 등장한 아르망이지만 제게는 가장 소중한 캐릭터입니다. 아르망이 보여주는 사소한 인간의 역설이야말로 우리 삶의 또렷한 진실 아니겠냐,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인간을 어떻게 한 가지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우리 모두는 양극단의 어떤 것을 다 지닌 채 사는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그녀는 팔뚝으로 몸을 가려보지만, 이 순간, 자기가 모든 것을 잃었으며, 이런 상실감이 언제까지도 아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그녀의 이 참담한 몰락은 절대적이다. 되도록 빨리 옷을 벗어던지면서 그녀는 무엇이든 응하고 말았으며, 모든 요구에 "네"라고 답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방금 전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52쪽


그녀는 이제 울지도 못한다. 그저 오들오들 떨 뿐이다. 그러면서 해방처럼 죽음을 생각한다. -154쪽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용기를 되찾기 위해 그녀는 그 말을 자꾸만 주절거린다. -363쪽




아 참, 

이 책이 재미있었다면 소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강력 추천합니다. 저는 신혼여행에 가져가서 다 읽고 말았답니다. 하하핫.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나는 계속 제자리에 있었는데 계절은 어느 덧 여름이네요. 사람들은 휴가를 준비하고 장마를 얘기하고 바삐 바삐 흘러갑니다. 책도 열심히 나오고 있고요. 이런 여름에는 심농이나 해리포터 같은 여행을 하면 좋겠다, 하는 현실성 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에 추천하고 싶은 소설들은, 국내 작가의 소설이 많네요! 기분 좋은 일입니다.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 네오픽션


사심으로 추천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절대로. 하핫-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되어 '작품'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리가 그렇고 삶이 그렇고, 소설이 그렇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그래요. 사랑스런 시선 때문에 미소짓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 책, <지구에서 한아뿐>은 작가가 말하듯 '달고 또 단 이야기'라니까, 어떤 것에도 집중하기 힘든 무더위에 그늘 밑 바람 쐬면서 읽기에 딱이지 않겠어요? 생각만해도 간질간질 한 걸요! 





별을 스치는 바람 1, 2 / 이정명 / 은행나무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윤동주 평전>을 읽고 눈물 흘린다면 문학을 계속 하라"고요.(앗, 지금 생각하니 엄청 닭살 돋네요!) 숙제를 하듯 평전을 읽다가 시인을 짝사랑 하게 됐죠. 그리고 또 읽고, 또 읽고, 간직했습니다. 그저 유명한 시인인 '윤동주'가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거든요. 그래서 꼽았습니다. 

<별을 스치는 바람>에서 시인이 어떻게 살아 있는지, 생명력 있는 시인을 만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설레기도 하고요. 흔들리고 괴로워 했던 문학청년을 더 많은 소설로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은닉 / 배명훈 / 북하우스


보자마자 '엇! 읽고 싶어!' 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왜' 읽고 싶은지 알 수 없는 책들이 있습니다. 배명훈 작가의 소설을 대부분 그런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신의 궤도>도 아직 1권 중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요. 그래도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왜' 읽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저와 같이 답을 찾으실 분? 안 계신가요...?








N을 위하여 / 미나토 가나에 / 재인 


또 미나토 가나에입니다. 지난 달에도 <왕복 서간>을 추천했었는데요, 대단합니다. 작품이 많이 소개 되는군요! 

갑작스레 올 여름에는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습니다, 결심했어요!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양파 껍질 같은 이야기는 단연코 이 작가가 탁월하다고 믿거든요. 짧은 작품을 읽고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 뿐이니 철저한 확인 작업을 하고 작가에 대한 생각을 정립해둬야 겠네요. 불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