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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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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의 단편선(앤솔로지도 비슷하고요...)에 몇 번이고 실패한 경험이 있는 저는, 이 책 <기 드 모파상> 역시 '소장용' 책으로나마 욕심이 났을 뿐 작품 하나하나에 매료되리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대가라 하더라도 모두가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고,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은 작품이 도리어 대가를 만든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들 앞에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약간 서글픈 심정으로 수긍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독자 한 사람에 불과하고 기대하고 고대하던 유명 작가의 단편선에 실린 작품들이 어느 하나 빠짐없이 특별한 영감을 주었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단편선들에 실망하고 심지어 원망스럽게 느끼기까지 했더랬습니다.

이렇게 구구절절 저의 실망담을 서술하는 이유는!

<기 드 모파상> 만큼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책. 진짜 좋습니다!

 

모파상은 우리에게 <여자의 일생>이나 <벨아미>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근대 단편소설의 창시자'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을 만큼 탁월한 단편소설을 썼고 또한 많은 단편소설을 남겼지요. 10년 동안 300여 편의 단편과 6편의 장편, 시집과 기행문까지 남겼다면 알만 합니다. 그 열정과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잘 알려진 바와 같이)방탕한 생활로 지낸 와중에도 말입니다. 작가의 사생활은 논외로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고 건넌 이 자리에 앉은 독자인 저는 그저 이런 작품들을 만난 것이 기쁘기 그지없을 따름입니다. <기 드 모파상>에 실린 60편이 넘는 단편들로 모파상의 단편을 모두 말할 순 없겠지만 저로서는 놀랍도록 만족스런 책읽기였다고 또다시 강조하고 싶네요.

 

책 소개에도 있듯이, 단편은 크게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을 다룬 이야기('비곗덩어리', '미친 여자', '발터 슈나프스의 모험' 등)부터 파리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목걸이', '승마', '크리스마스 만찬' 등),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어느 농장 아가씨 이야기', '오르탕스 여왕', '술통' 등)처럼 말이지요. 그 중에서 제가 특히 매력을 느낀 단편들은 다름 아닌 '사랑'을 다룬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모파상은 '마드무아젤 페를'처럼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애정사를 폭로하기도 하고, '행복'처럼 모두가 꿈꾸는 진정하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의자 고치는 여자'처럼 미련하리만치 순정적인 짝사랑의 가련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인간과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에 대한 모파상의 예민한 감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 중, '달빛'은 짧은 작품이지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사랑에 대해, 흔들림이나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재치가 무척이나 공감 됐거든요.

 

언니,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사랑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 그리고 그날 밤 언니의 진정한 애인은 달빛이었던 것 같아. - 213쪽, '달빛' 

또한 모파상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비곗덩어리'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을 만큼 좋은 작품입니다(만일, 아직 모파상을 모르거나 모파상에 관심이 없는 주변인이 있다면, 그래서 그에게 딱 한 편만 소개해야 한다면 저는 이 단편을 추천하겠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 위급한 상황 앞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그렸습니다. 점잖은 사람이나 저속한 사람이나 그 순간에는 모두 똑같이 이기적이고 냉정해져요. 정작 존경 받아야 할 사려 깊고 선한 사람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당합니다. 그리고 이토록 불합리한 말,

 

그녀에게는 그런 일이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 41쪽, '비곗덩어리'

따위의 말을 내뱉기도 하죠.

 

모파상의 작품들은 '과연 보석처럼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섬세함과 명쾌함이 어떤 갈증을 해소해주는 느낌이었달까요. 그만큼 멋진 책이어서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해서 책을 들춰보고 있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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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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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칼 포퍼)'이라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산다는 게 흡사 장애물 달리기 같아서 연달아 다가오는 문제들을 힘겹게 뛰어넘어 드디어 끝났나 싶어도 어찌된 게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음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그런 게 삶'이라지만 해도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살면서 느끼는 평화와 안정감은 찰나에 불과하고 장애물은 늘, 지겹도록,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서글픈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들이 뒤섞이고 얽혀 있는 곳. 예민하고 치열하고 욕망이 넘치는 이 세상. 긍정하려야 차마 긍정하기가 어려운 이 죽일 놈의 세상. 그곳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욕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에게 별다를 것 없는 세상을 물려주면서 말이지요.

어쩔 수 없겠지요. 이게 세상이라면. 인간 본성이 그런 것이라면.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정말로, 인간이라는 동물이 이기적이고 악하게 생겨먹은 것인가. 세상은 본디 이렇게만 생겨먹어야 하는가. 다른 세상은 불가능한가.

저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한 가족이 있습니다. 독립운동에 관련돼 패가망신을 한 할아버지의 자손들, 그들의 시골생활, 딸들과 아들들의 뭉쳐지지 않는 각자의 삶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마을의 자랑이 되는 큰형도, 아버지(할아버지)에 대한 반발감에 그와 전혀 다른 삶을 택하는 상농사꾼 아들(아버지)도, 다른 형제를 위해 희생하는 형제들도 모두가 너무나 친숙합니다. 그들은 무척이나 친숙하고 돌아보면 바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가까워서 그들이 가지는 감정, 슬픔,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내 것, 내 부모의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 사실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하고 또한 너무도 쉽게 수긍이 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며 이들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지요(이 지점에서 소설이 무척이나 빛납니다).

 

그리고 만수가 있습니다. 너무도 사랑스러워 안타까운 그 사람, 만수.

제가 앞서 한 질문, '인간은 과연 악한 존재인가'에 대해 만수는 조용히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제게 적극적으로 인간 본성을 해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다정하게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이런 선의가 있어 세상이 여기까지 왔다고,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참... 눈물 나게 반가운 존재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식구들 건강하고 하루하루 나 무사히 일 끝나고 하면 그게 고맙고 행복한 거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도 가만히 참고 좀 기다리다보면 훨씬 나아져요. 세상은 늘 변하거든. 인생의 답은 해피엔딩이 아니지만 말이죠, - 367쪽

만수의 말이 마음을 크게 움직여 저는 이내 울컥합니다. 냉소적인 눈을 하고 팔짱을 끼고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탓하던 저는 이토록 진심으로 선의에서 우러난 다정한 만수의 말이 참으로 놀랍고 반갑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렇고말고요. 고맙고 행복한 거죠. 좀 기다리면 나아지는 거죠. 세상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피와 맞바꾼 엄청나게 소중한 가치들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되죠. 아무리 세상에 대해 냉소해도, 무작정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는 없어도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잖아요. 만수가 아니었음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을 소중한 사실을 자꾸만 매만집니다. 닳고 닳도록 매만지고 잊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저는 그렇게 몇 번이고 만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만수는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로 상관도 않고서 이 세상에 만연한 위악을 위로하고 자신이 평생을 잃지 않고 가꿔온 진심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아주 착하게.

 

우리는 어쩌면 이런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꼭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을 확인하고 그렇게 위로받고 다시 세상을 살 힘을 얻고 싶었는지도요.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사는 어느 평화로운 마을을 희망하게 됩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투명인간들만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 있을지도 모른다. - 367쪽

그리고 만수처럼, 착하고 우직한 사람들의 행운을 빌게 돼요.

 

언젠가는 돼지저금통의 황금 돼지처럼 부유하고 걱정 없이 살게 되기를, 착한 너는 꼭 그렇게 복을 받으리라. 나는 남몰래 손을 모았다. - 55쪽

 

오랜만에 찡하고 따뜻하고 서글픈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것이 참 기뻐 이 여름이 아무리 무더워도 짜증나지 않았습니다. 더 착해지고 싶고 조금이나마 세상을 긍정하고 싶었으니까요. 세상에 흩날리는 슬픔과 고통스런 소식을 잠깐이라도 견딜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소설이야말로 우리 삶을 다만 조금이라도 빛나고 편안하게 해주는 소중한 예술이니까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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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엔 어른들이 하는 말, 그러니까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가 어찌나 길고 한 계절은 또 어찌나 더딘지 '대체 어째서 시간이 빠르다는 거야?' 의아하기만 했었죠. 나이를 먹고 보니 그 말이 정답이었습니다. 찜통 더위 속에서도 곧 가을이 오고, 견딜 수 없는 추위도 오리란 걸, 익숙하게 짐작하니까요.

더워도 그렇게 위로합니다. 곧 추워질 거다. 

아파도 위로합니다. 곧 나아질 거다.

 

 

책 좋아하는 사람 셋 중에 한 명은 이 작가, '밀란 쿤데라'를 꼽더군요(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저도 그런 인간 중 하나입니다. 뜻도 모르고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반해 쿤데라의 책을 탐독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의 새 책이 나왔다지요.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단연 제일 먼저 읽어야 할 목록입니다!

 

 

 

 

 

 

 

 

 

 

누구는 삼십 대 이후에는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하던데, 변함없이 소설에 매료되고 앞으로도 매료될 거라는 예감이 드는 저는 어쩔 수 없이 소설광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설정, '극한'과 '공포', '인간본성'을 따지는 이야기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욱 기대되는 것은 국내소설이라는 점, 전에 경험하지 않았던 작가라는 점인데, 하지만 기대하고 있습니다!

 

 

 

 

 

 

 

역사란 알면 알수록, 들여다 보면 볼수록 흥미롭습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계, 시대를 소설로 만난다는 건 그래서 특별한 일이고 기쁜 일이겠죠. 그래서 이 책을 꼽아둡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니 모리슨', 식민지 시대 아메리카 대륙, 노예 같은 핵심 단어들이 이미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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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devous 2014-08-01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의 인기가 압도적이군요 ㅜ 아마도 선정될 것 같은데 쿤데라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해줘야 겠습니다 ^^

동섣달꽃 2014-08-04 16:52   좋아요 0 | URL
오호- 사실 그런 분들이 벌써 여럿 계시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선정되면 좋겠어요! 친구분에게도 기쁨을 나누게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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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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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이나 영화, 음악과 미술에 감명 받고 그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간직하게 되는 이유는 그 안에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예술은 그 안에 '개인'의 삶과 정서를 녹이는데 그것이 '세계'의 삶과 정서와 연결이 되지요. 아주 매끄럽고 놀랍게 말입니다. 그리하여 시간이나 공간마저 무색하게 만든 다음 예술이라는 경지에 이름을 새깁니다.

독특하고 비범해서 그저 낯선 작품들이 예술이라는 범주에 굳게 자리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작품을 왜 좋아할까요. 그 불편하고 어색한, 피하고 싶은 이야기(혹은 음악, 미술, 영화 등등...)가 가진 힘은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긴 인간, 삶의 보편성 때문일 겁니다.

보편성. 그것이 제가 <미국의 목가>를 읽으며 말하고 싶었던 핵심 단어입니다.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 동네는 '이방인'들의 집단입니다. '자유'로 상징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미국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그대로 잇고자하는 그러나(혹은 그렇기 때문에) 결코 완벽하게 미국인은 아닌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주인공 '스위드'는 그 동네에서 가장 '미국인다운', '미국인에 가까운' 영웅적 인물입니다. 훌륭한 외모와 뛰어난 운동 신경, 무엇보다 스위드의 인생에 원인인지 결과인지 알 수 없게 작용한(!) 그의 모든 방식, 모든 것에 대한 순응적이고 모범적인, '착한(nice)' 태도. 그것이 시모어 레보브를 스위드로 만들고 그는 완벽한 스위드가 되었습니다. 스위드는 그 동네의 상징이자 자랑입니다.

 

그는 그 별명을 보이지 않는 여권처럼 가지고 다녔다. 그러면서 미국인의 생활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 거리낌 없이 크고 부드럽고 낙관적인 미국인으로 진화해갔다. - 1권, 313쪽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이른바 '상식적'인 사람은 어디에서나 사랑받지요. 그들은 인기가 많고 누군가의 환상이 되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줍니다. 이 시대에 크게 사랑받고 있는 연예인들이 좋은 예지요. 유재석이나 원빈 같은 사람들(저도 물론 그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그들처럼 하면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괜찮은 평판을 얻으려, 칭찬을 듣고 싶어 사회의 규범에 최선을 다해 순응한 경험 또한 누구에게나 있어요. 그러니 스위드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아니, 되려 '스위드처럼 산다면 참 행복하겠다'고 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은 언제까지고 그의 편인 것처럼 보입니다. 스위드는 그에게 주어진 행운을 공기처럼, 피부처럼 간직하고 살죠. 그에게는 품위를 유지하고 보기에 좋아 갈등이 없는 - 사실 그 갈등은 보이지 않는 곳에 빼곡히 쌓여 있지만, - 자신의 삶이 도대체 왜 이상한 것이고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삶을 이루는 조건들이 대부분 충족된 사람들이 어째서 또 다른 것을 원하고 꿈을 꾸고 뛰어 넘지 못할 경지에 가고 싶어 하는지 그는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토록 모범적인 스위드입니다.

 

왜 이런 아무것도 아닌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할까? - 2권, 138쪽

행복하고 아름다운 스위드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던 소중한 딸 메리. 스위드는 사랑하는 딸 메리가 저지른 사건으로 인해 이제 완전히 무너집니다. 처절히 부서지는 그의 성. 견고하고 우뚝 선 아름다운 그의 풍경이 잔혹하게 해체됩니다. 스위드는 전에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성공해왔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선의로 사람을 대하면 항상 그에 대한 보답을 받아왔기 때문에 메리가 저지른 테러를 받아들이지도, 소화시키지도 못합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원인을 따지고 다른 이를 탓할 뿐입니다. 어리석게 보일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대개의 '스위드'들이 내놓을 수 있는 보통의 반응이지요.

하지만 그 사건은 일어나고 말았고, 범인은 그의 딸 메리가 맞고, 메리는 그가 상상도 하지 못한 삶의 궤적을 그리며 삽니다. 그는 그것을 제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걸(없었다는 걸, 없을 거라는 걸) 힘겹게 깨닫습니다.

 

그는 대부분이 질서이고 아주 작은 부분만 무질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는 환상을 만들었는데, 메리가 그를 위해 그 환상을 해체해주었다. - 2권, 281쪽

그리고 언제나 반항적이던 그의 동생 제리, 거침없이 독설을 내뱉는 제리, 스위드에 대한 제리의 냉혹하고 거친 비난이 쏟아집니다. 그는 왜 자신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제리를 그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말,

 

바로 그거야! 맞았어! 우리는 충분치 않아. 우리 누구도 충분치 않아! - 2권, 77쪽

을 남깁니다.

 

기대하는 것과 달리,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우리 누구도 충분'하지 않지요. 스위드는 그저 행운아였고 그 행운아에게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이 찾아올 수 있는 게 이놈의 세상, 이렇게 생겨먹은 세상입니다. 착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성공하고 친구가 배신하고 가족이 해체되고 억압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낭만적이고 이상을 꿈꾸던 사람이 가지려 했던 '미국의 목가'는 한낱 먼지처럼 작은 한숨에도 저 멀리 휘날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엄청나게 기쁠 때도 다음을 준비하고, 바닥에 있다가도 더 내려갈 곳은 없을 거라고 자신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주변을 생각하고 함께 분노하고 더불어 움직여야하는 것이겠지요.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는 치열하고 냉정합니다. 읽을 때보다 읽고 나서가 더 좋은 소설입니다. 다시 꺼내들기는 쉽지 않겠지만 꼭 한 번 읽어야 할 좋은 소설입니다. 한가로운 전원에 지어진 오래된 돌집, 그곳에 사는 완벽한 가족을 따라 삶의 애환을 함께 겪고 나니 어쩐지 스위드, 메리, 제리, 스위드의 아내 돈까지 모두가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자, 이제 스위드로 분한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영화를 기다리며! 지내기로 합니다.

(언제 개봉하나요...)

 

 

덧붙이기 하나.

저는 이 소설이 엄청나게 매력적인 인물, '제리'를 화자로 등장시켰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합니다. 모두를 비난하고 세상을 등지고 제멋대로 살고 대체로 비관적이고 불가해하게 긍정적이고 모범적인 친형을 항상 비난하는 제리 말입니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는 하지만 '미국의 목가'라는 제목과는 도무지 어울릴 수 없겠죠...

 

덧붙이기 둘.

철저하게 인물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미국의 근현대사, 그 다양한 사건들이 정말이지 '모범적으로' 작품 안에 함께 그려집니다. 그 세세한 역사적 사건이 익숙지 않았던 저는 때로 그런 대목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지만요. 막상 책을 덮고 나니 바로 그 지점이 이 작품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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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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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중에서

 

때때로 '평화'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른 손을 잡고 유치원 가는 아이들과 철마다 모습 바꾸는 나무들, 뭉게구름과 고추잠자리 같은 것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소곤거림, 신체에 대한 어떤 강제나 억압도 없고 자유와 권리에 대해 당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기, 어디서 시작된, 어떻게 구축된 '평화'인지 궁금해 할 틈도 없는 그런 '평화'에 대해 말입니다.

요즘 같은 계절에 맹렬하게 우는 매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또 그렇게 평화를 생각하다 시간이란 개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기억과, 나라는 존재 단둘만 그 자리에 남곤 합니다. 내 속에 쌓인 내 부모들의 피와 그 부모들의 피와 그 부모들의 피... 그 안에 아로새겨진 과거를 조금 선명하게 느끼는 순간 나는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작아지는 걸 느껴요. 역사란 그토록 거대해서 먼 곳에만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여기, 완전히 다른 곳에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딛고 선 평화 - 과연 현재에도 완벽한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잠시 접어두기로 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압도적인 상황과 지금은 분명 차원이 다르니까요. - 를 한 꺼풀만 걷어내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 선연한 핏빛 기억이 채 위로도 받지 못하고 빳빳하게 고개 들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거들, 새카만 가슴을 안고 겨우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정형화되는 혹은 왜곡되는 과거의 기억들 때문에 고통 받는 건 그들뿐이 아닐 겁니다. 우리만이 아닐 겁니다. 해결되지 않는 것들은 반드시 곪아 터지기 마련이니까요. 내 피에 새겨진 경험들이 그대로 자식들에게, 또 그 자식들에게 전해지겠지요. 이대로라면 그들 역시 과거에 산 사람들과 똑같이 고통 받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평화가 그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결코 기대만큼 팽창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슬프고, 미안한 일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윤동주의 시가 생각납니다.

 

체육관이 있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 있다고 결코 말 못하는 경악스러운 광경이 체육관 안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있습니다. 밀려들어오는 시체들을 기록하고, 닦고, 체육관에 눕히는 사람들은 모두 어제까지도 평범했던 시민들입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런 험한 일을 맡았습니다. 아무리 양초를 태워도 지워지지 않는, 지워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지기만 하는 부패한 냄새 속에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을 위로합니다. 시체들은, 어제까지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그 시체들은 누구의 총에 죽었나요. 누가 총을 쐈나요. 누가 총을 쏘라고 명령했나요.

 

죽어서도 자기 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살아서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담담한 목소리 안에 들어있는 공포와 질문이 낱낱이 만져집니다. 그것들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져서 공포를 느끼고 질문을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나는 2014년 여름에 있지만 1980년 5월에 시청 앞에 나가 총 맞은 친구를 두고 도망쳤다가 그 친구를 찾으려 시체를 보관하던 체육관에서 지내다가 친구를 따라 죽고 만 소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화자가 들려주는 같은 날의 기억은 도처에서 강렬하게 펼쳐집니다. 그리고 저는 언제나 '어머니'에서 눈물이 납니다. 애지중지 키운 착한 막내아들이 아까워 반쯤은 넋이 나가 더운 여름에도 추위 타는 몸속에 사는 어머니("몸이 추와서 글제. 여그가 얼마나 따땃한지 아냐. 삭신이 따땃해야." - 180쪽)에서, 밥을 먹고 일상을 지내는 평범한 일이 괴롭고 미안한 어머니("목숨이 쇠심줄 같어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제. - 187쪽)에서, 젖먹이였던 어린 아이의 웃음을 떠올리며 어쩔 줄 모르는 어머니("어쩌끄나,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는디. - 191쪽)에서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이 소설을 얼마나 힘들게 읽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지하철에서 울다가 서둘러 내리기도 하고, 혼자 있는 집 안에서조차 차마 소리 내어 울 수 없어 숨죽이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저의 이런 경험은 불과 몇 십 년 전 있었던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공선옥 작가가 말했습니다. '광주는 아직 얘기되지 않았다'고요. 더 늦기 전에, 완전히 늦어버리기 전에 계속 얘기되어야 할 뼈아픈 이야기를 피하지 않고, 공부하고, 더 열심히 기억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 130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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