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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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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칼 포퍼)'이라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산다는 게 흡사 장애물 달리기 같아서 연달아 다가오는 문제들을 힘겹게 뛰어넘어 드디어 끝났나 싶어도 어찌된 게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음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그런 게 삶'이라지만 해도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살면서 느끼는 평화와 안정감은 찰나에 불과하고 장애물은 늘, 지겹도록,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서글픈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들이 뒤섞이고 얽혀 있는 곳. 예민하고 치열하고 욕망이 넘치는 이 세상. 긍정하려야 차마 긍정하기가 어려운 이 죽일 놈의 세상. 그곳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욕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에게 별다를 것 없는 세상을 물려주면서 말이지요.

어쩔 수 없겠지요. 이게 세상이라면. 인간 본성이 그런 것이라면.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정말로, 인간이라는 동물이 이기적이고 악하게 생겨먹은 것인가. 세상은 본디 이렇게만 생겨먹어야 하는가. 다른 세상은 불가능한가.

저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한 가족이 있습니다. 독립운동에 관련돼 패가망신을 한 할아버지의 자손들, 그들의 시골생활, 딸들과 아들들의 뭉쳐지지 않는 각자의 삶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마을의 자랑이 되는 큰형도, 아버지(할아버지)에 대한 반발감에 그와 전혀 다른 삶을 택하는 상농사꾼 아들(아버지)도, 다른 형제를 위해 희생하는 형제들도 모두가 너무나 친숙합니다. 그들은 무척이나 친숙하고 돌아보면 바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가까워서 그들이 가지는 감정, 슬픔,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내 것, 내 부모의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 사실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하고 또한 너무도 쉽게 수긍이 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며 이들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지요(이 지점에서 소설이 무척이나 빛납니다).

 

그리고 만수가 있습니다. 너무도 사랑스러워 안타까운 그 사람, 만수.

제가 앞서 한 질문, '인간은 과연 악한 존재인가'에 대해 만수는 조용히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제게 적극적으로 인간 본성을 해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다정하게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이런 선의가 있어 세상이 여기까지 왔다고,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참... 눈물 나게 반가운 존재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식구들 건강하고 하루하루 나 무사히 일 끝나고 하면 그게 고맙고 행복한 거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도 가만히 참고 좀 기다리다보면 훨씬 나아져요. 세상은 늘 변하거든. 인생의 답은 해피엔딩이 아니지만 말이죠, - 367쪽

만수의 말이 마음을 크게 움직여 저는 이내 울컥합니다. 냉소적인 눈을 하고 팔짱을 끼고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탓하던 저는 이토록 진심으로 선의에서 우러난 다정한 만수의 말이 참으로 놀랍고 반갑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렇고말고요. 고맙고 행복한 거죠. 좀 기다리면 나아지는 거죠. 세상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피와 맞바꾼 엄청나게 소중한 가치들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되죠. 아무리 세상에 대해 냉소해도, 무작정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는 없어도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잖아요. 만수가 아니었음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을 소중한 사실을 자꾸만 매만집니다. 닳고 닳도록 매만지고 잊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저는 그렇게 몇 번이고 만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만수는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로 상관도 않고서 이 세상에 만연한 위악을 위로하고 자신이 평생을 잃지 않고 가꿔온 진심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아주 착하게.

 

우리는 어쩌면 이런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꼭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을 확인하고 그렇게 위로받고 다시 세상을 살 힘을 얻고 싶었는지도요.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사는 어느 평화로운 마을을 희망하게 됩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투명인간들만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 있을지도 모른다. - 367쪽

그리고 만수처럼, 착하고 우직한 사람들의 행운을 빌게 돼요.

 

언젠가는 돼지저금통의 황금 돼지처럼 부유하고 걱정 없이 살게 되기를, 착한 너는 꼭 그렇게 복을 받으리라. 나는 남몰래 손을 모았다. - 55쪽

 

오랜만에 찡하고 따뜻하고 서글픈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것이 참 기뻐 이 여름이 아무리 무더워도 짜증나지 않았습니다. 더 착해지고 싶고 조금이나마 세상을 긍정하고 싶었으니까요. 세상에 흩날리는 슬픔과 고통스런 소식을 잠깐이라도 견딜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소설이야말로 우리 삶을 다만 조금이라도 빛나고 편안하게 해주는 소중한 예술이니까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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