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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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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물소, 악어에 관한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우리 상식이 현실과 얼마나 멀리 있는지 상상도 못하실 걸요?). 이들이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사자가 물소와 악어를 이기지 않겠어요? 물소는 잡아먹힐 테고요(당연하잖아요? 채식동물인데요.). 악어에겐 강한 이빨이 있긴 하지만... 동물의 왕 사자잖아요!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더군요. 잠시 들어 보세요.


뜨거운 아프리카, 싱싱한 풀이 자란 풍요로운 강가예요. 여기서 물소 떼가 풀을 뜯고 있습니다. 선제공격은 사자입니다. 물소 새끼 한 마리를 암사자들이 공격 했어요. 당황한 물소 떼는 우왕좌왕 도망가기 바쁩니다. 이 때, 물가에 악어 몇 마리가 등장해요. 이 얄미운 악어들이란! 물소 새끼를 두고 악어와 사자의 힘겨루기가 시작됐습니다. 사자는 물소 새끼의 목을, 악어는 다리를 물고 줄다리기라도 하는 걸까요? 불쌍한 물소 새끼는 질긴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요. 사자가 이겼습니다. 악어는 당분간 버티긴 해도 물 밖에 오래 나와 있으면 피부가 말라 버려서 위험하니까요.

반전은 이제 시작합니다. 사자들이 겨우 한숨 돌리려는데 이게 웬일인가요? 몸집 큰 물소 떼가 다가옵니다. 그리고 사자를 위협하기 시작해요. 사자보다 먹이 사슬의 아래 단계에 있는 물소가요. 사자는 그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소의 덩치는 사자보다 크고 뿔은 위협할만한 무기니까요. 이제 사자들이 도망을 갑니다! 불쌍한 물소 새끼는 다치긴 했지만 어른들의 품으로 돌아갔고요.

놀랍지 않습니까?

해설자는 전에 보고된 적 없는 아주 놀라운 광경이라고 흥분했어요. 그렇지만 악어와 사자, 물소는 해설자만큼 흥분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야생이란, 그런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니까요.


<개의 힘>은 동물의 왕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죠.


독자들은 이 책이 영화 같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흥미롭고 거친 사내들의 이야기라고요. 조직의 권력과 신흥 세력의 암투, 마약과 매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죠? 그런 소설을 원하는 분들에게 걱정 없이 추천해도 좋겠네요.

그렇지만 저는 <개의 힘>을 읽는 동안에도 TV에서 보도되는 이런 저런 뉴스를 보면서 '저 뉴스들의 잘 설명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0명 사망, 00명 부상' 이들의 가족과 상대에 대한 증오, 복수심이 아주 잘 표현된 이야기라고요.

(이 글 맨 아래 뉴스 링크 몇 개 있습니다.)


인간이란 대체로 이기적이죠. 내 이익을 위해서 얼마든지 타인의 이익을 해칠 수 있고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요. 책 속에 담긴 먼 나라, 마약 동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좀 더 싼 가격을 찾아 동네 슈퍼 대신 대형마트에서 장을 봅니다(그러면서 '유기농'이라고 붙어 있는 좀 더 비싼 채소에도 기꺼이 돈을 써요. '유기농'이 뭐죠?).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은 아르바이트생의 급여를 최소한으로 주고요. 여러 나라와 FTA를 맺어서 돈을 많이 벌면 됩니다.


자유무역은 꽃이 필 터였다.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국경 도처에 들어설 것이고 저임금 멕시코 노동자들은 우리가 쓸 테니스화, 유명 의류, 냉장고, 소형가전제품을 우리가 지불할 만한 가격대로 만들 것이다.-1권, 265쪽


자본주의는 이런 인간의 이기심을 극대화 한 시스템일까요. 이기심을 인정하고 이기심을 부추깁니다. 열심히 이기적으로 살면 이른바 '성공'한 삶으로 인정받을지도 몰라요(S사 회장님처럼요.).

책 속 등장인물들은 '성공'을 위해서, 내 이익을 위해서 쉽게 다른 가치를 저버립니다. 때론 고문도 하고 살인도 해요. 그게 어린이든 관광객이든 존경해 마지않는 신부님이든지요.


때때로 일주일에 200명의 비율로 사라지기도 했다. 보수파 암살부대에게 체포되어 그냥 사라졌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그 일에 대해 너무 많은 질문을 한다면 그 사람도 사라져 버렸다.-1권, 321쪽


집 없는 아이들은 거리에서 총에 맞아 쓰러졌다. 대학생들도 살해되었고 대학교수 한 명도 강의실 복도에서 칼에 맞았다. 미국인 수녀는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되어 다른 시신들 위에 던져졌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미군들은 훈련과 조언과 장비를 제공하였고 죽음의 땅에 킬러들을 이송할 헬리콥터까지 제공하였다.-2권, 168쪽


그러면서 내가 당한 피해는 견딜 수 없어 하죠. 아주 단순한 우리 모습 아닌가요? 인간은 이기적인 동시에 '나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가혹하'잖아요. 게다가 전쟁 통에 있으면 아군과 적군은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나를 빼곤 다 적이다! 하는 수밖에요.


잔혹한 마약 전쟁은 미국과 멕시코 각각의 내부 사정 때문에, 혹은 서로에 관계된 사정 때문에, 또는 그 안에 있는 인간들의 이기심 때문에 끝나지 않고 십 수 년 동안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걸 끝내려는, 동시에 개인적인 복수를 완성하려는 주인공 아트 켈러를 쫓다 보면 장장 2권에 걸친 거대한 이야기의 줄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아트 켈러는 끊임없이 괴로워합니다. 자기 때문에 학살이 일어났다고 자학하고 복수를 위해 가족을 떠나면서 마음 아파합니다. 복수의 순간에도 망설입니다. 상사에게 입 바른 소리를 했다가 무시당하기도 하고요. 독자 입장에서 아주 귀찮고 우유부단한 캐릭터 아닌가요? 그렇게 목숨 걸고 기다린 순간에! 그야말로 '문제적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습니다. 그가 뭐 얼마나 대단한 성자냐는 거죠.


"자네는 동정녀 마리아가 아니야, 아트. 자네도 숱하게 저질러 온 일이야."-1권, 90쪽


아트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현기증이 났다. 마약 단속국의 모든 직원들과 셰그는, 특히 셰그는 더욱 아트가 오랜 관례대로 시행하기를 기대했다. 경찰을 죽은 살인자는 경찰서에 끌려오지 않았다. 항상 달아나려고 시도하다가 죽었다.-1권, 326~327쪽


"거 보시오, 내가 뜻하는 건 정확히 그런 게 아니라니까. 당신은 너무 물러 터졌소이다. 복수를 원하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못되는 거지. '공정한 재판' 따위로 복수를 위장해야 하니까. 그 자식을 쏴버리는 게 더 쉬울 거요." -2권, 19쪽


그렇긴 하지만 아트 켈러야 말로 인간답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단순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아트 켈러는 하고 있으니까요. 진짜 인간이라면 아트 정도의 망설임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회사에서 잘린 동료가 있다고 가정해 봐요(해고는 살인이니까).

1. "회사가 부당한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당장 갚아야 할 대출금에다가 아이들 교육비, 부모님 용돈까지 '생활'은 나를 자유롭게 하지 않으니 동료 너에겐 미안하지만 너의 편이 되어 줄 수 없다."

고 하는 사람과 2. "지금 우리가 너의 편이 되지 않으면 회사는 언제 또 부당한 결정으로 우리를 위협할지 몰라. 우리 모두 함께 항의하자."고 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더 현실적인가요? 1? 2?

지금 세상은 연대를 원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순수한 도덕심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아트의 망설임이 국가에 위협이 되고 현실적이지 않다며 나무라는 것처럼요.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먼저 희생한 사람들에게 진 빚을 우리 아이들에게 갚을 날이 과연 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멀리 간 것 같네요;)


책은 거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마약을 비롯한 국제 경제, 자본주의와 격동하는 정치와 음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요. 현실과 아주 닮아 있고 그래서 냉소적인 마음을 거두기가 힘듭니다. 절대 악한 자도 없고 무조건 선한 사람도 없어요. 혼란한 세상에 지킬 것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연옥]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죽기 전까지 겪는 고통. 순간마다 즐겁기도 하고 행복할 때도 있겠지만 대개는 고통이에요. 고통의 선택은 인생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데려갑니다. 단순히 친구를 구하려고 했던 칼란을 킬러로 만들고, 홀로 서기 위해서 매춘을 시작하던 노라를 고급 매춘부로 만들어요. 동생의 복수를 위해 적의 애인을 죽이려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위험에 몰아넣습니다. 필요하다면 과거 적이었던 사람도 지금 내 편이 될 수 있고요. 이 혼란한 세상. 죽기 전까지 겪는 고통들.


"좋아. 근본적으로 그 둘은 모두 고통스럽지. 하지만 연옥에서 보내는 시간은 결국엔 끝나. 그에 반해 지옥은 영원히 지속되지. 난 자네에게 지옥과 연옥을 두고 선택할 기회를 주려고 왔어."-2권, 393쪽


그러나 그 안에서 좀 덜한 고통을 찾는 게 우리네 삶 아니겠어요? 무너지는 댐을 두 손으로 막을 순 없지만 무너진 댐을 모두의 두 손으로 고칠 수는 있을 거고요. 우리 사는 곳이 [동물의 왕국]이나 [연옥]이 아니라고 누군가 홀연히 나타나 증명해 주는 날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책을 보고 있자니 갈 길이 멀지만요. 


[1권]

정작 문제 되는 것은 점잖지 못한 세상에서 점잖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이 망할 놈의 전쟁. -26쪽


콘도르와 피닉스,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이름이 뭐가 되었든 지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73쪽


"얘야. 섹스 얘기가 아닌 건 없단다." -170쪽


커피 재배에 더 많은 땅이 쓰일수록 식량을 재배할 땅이 줄어든다는 뜻이었고, 19세기 중반까지도 힘든 일을 하는 대부분의 엘살바도르 인 소작농들은 기본적으로 굶주리고 있었다. -316쪽


교회는 그들에게 돈을 줄 것이다. 교회는 부유했다. 가난하고 독실한 신자들에게서 수 세기 동안 모은 돈이었다. 헌금 접시의 동전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많은 벌이에 투자되었다. -371~372쪽


[2권]

이상하게도 득표수를 세던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며칠 사이, 컴퓨터 득표수 감시 책임을 진 상대편 후보 경비원 두 명이 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42쪽


더 '능률적인' 거대한 대농장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석유 채굴은 물론이고 더 큰 커피 대농원, 채굴산업, 벌채 공사를 위한 길을 열기 위해서. '그 모든 것을 자본주의 제단에 산 제물로 바쳐야 한단 말인가?' -61쪽


미국인은 말 그대로 나무에서 자라는 생산물을 따서 값비싼 원자재로 탈바꿈시켰다. 그들이 없으면 코카인과 마리화나는 밀수입으로 수억 달러를 버는 대신 어느 캘리포니아 들판에서 허리 굽혀 일하는 노동자들을 등쳐먹으며 푼돈을 버는 오렌지 같은 작물이 되었을 것이다. -147쪽


"자넨 정말 바보 같군, 아트. 그리고 경험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군.(...)" -475쪽


아트는 마약 전쟁이 외설스런 부조리인지, 부조리한 외설 행위인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477쪽



*이 뉴스 어떤가요?

1) 케냐 총리 헬기 추락사(6/10):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221934

2) 시리아 내전, 어린이 방패(6/13):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2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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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데 마땅히 취향 맞는 사람 찾기는 어려워요. 취향에 안 맞는 책 읽는 것도 어렵고요. 하하. 그렇지만 제 세상은 덕분에 계속 넓어지고 있습니다. 6월에는 또 어떤 책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늘 기대되는 심정으로 삽니다. 



지난 4월에 부산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보수동 책골목 유명하잖아요. 그곳에 위치한 북카페에 갔다가 미나토 가나에 작품, <고백>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맑지만 서늘한 봄바람에 아이스 커피 한 잔 곁들여 미나미에 대한 유코의 이야기를 읽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약속 시간이 되어 이어지는 단편을 읽지 못하고 덮었는데요. 아.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 때, 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날카롭다는 게 중요해요. 책에서 읽지 않으면 애써 생각하지 못할 것들이 많이 있거든요. 이 작가는 그래서 아주 기대가 됩니다. 

<왕복 서간>이 엄청나게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또 어떤 날카로움을 보여 줄지 설레기까지 하네요.  





음모론은 매력적이지만 쉽게 관심 받고 쉽게 잊혀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입니다. 어떤 현상을 두고 해석이 분분할 때 결국 각자가 원하는 것을 바라 보게 되죠. 아직도 여러 방면에서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일텐데요. 거장의 미해결 사건 조사 논픽션이라니요. 이거 흥미롭지 않습니까? 

저는 작가의 사회적 관심에 늘 아쉬운 독자예요. 마쓰모토 세이초 같은 거장이 진실을 탐구한다! 대단합니다. 이런 논픽션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해석은 분분할 수 있어도 논의는 계속 되어야 하고 그렇게 이야기 하다 보면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니까요. 






최근에 부모님이 귀농을 하셨습니다. 평생 혼자 살아본 적이라곤 없는 저에게 이건 엄청 큰 변화였어요. 막상 그 순간에는 별 감정이 없더니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서운함이 커져만 갑니다. 요즘은 잠 들기 전 삼십 분씩 꼬박 한 여자(엄마)를 생각하곤 해요. 작가 아니 에르노처럼 언젠가 나의 어머니에 대해 쓴다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아마 이 책은 지금 같은 때 제가 읽으면 안 될 책일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도전해 보렵니다. 솔직한 고백을 듣고 있으면 저도 용기가 나서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죠. 같이 읽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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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원조- 아프리카 경제학자가 들려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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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고 숨쉬는 것들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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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체트 넘어서기- 칠레 민주화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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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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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들 하지요. 왜일까요? 그만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기 자신은 지켜내기가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유가 없잖아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는. 희한하게도, 살펴보면 사랑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시작됩니다. 마거릿이 셀리나의 제비꽃을 보았던 것처럼요. 책장을 덮을 때, 마거릿의 사랑을 감히 누가 어리석다고 나무랄 수 있을까요? 


<끌림>은 사랑과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마거릿 프라이어는 아버지의 죽음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큰 상처를 안은 채 겨우 살아내고 있는 연약한 숙녀입니다. 그녀와 지적이고 깊은 유대감을 나눈 두 사람이 모두 그녀 곁을 떠났어요. 마거릿은 삶의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다른 숙녀들(가령 어머니)처럼 결혼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 같은 것이 그녀의 삶의 이유가 되진 않거든요. 

이 지점에서 저는 기시감에 빠집니다. 희한하죠. 작품의 시대 배경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입니다. 제가 사는 21세기 한국과는 닮은 구석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기시감이 듭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억압. 100년 전 저 먼나라와 제 주변의 모습이 어쩜 이렇게 닮아 있을까요? 한 인간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받아 들이는 사회란 불가능한 걸까요? 역사는 과연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삶은 돌고 도는 걸까? 이런 오만가지 생각을 잠시 하게 됩니다. 


외롭고 괴로운 와중에도 삶은 계속 됩니다. 괴롭다고 스스로 삶을 멈추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지요. 마거릿은 밀뱅크 감옥에 방문하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더 우울한 삶을 보면서 자신을 위로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감옥 방문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지만 그녀에게는 운명적 사건이에요. 약한 뿌리를 가진 연약한 주인공이었기에 감옥이라는 자극은 주변의, 독자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주인공을 흔든 것 같습니다. 하긴, 관계라는 화학 작용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뿌리 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어젯밤 다짐도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는 법인 걸요. 마거릿의 동요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이상하겠네요. 

그리고 여기서, 운명의 여인 셀리나를 발견합니다. 묘한 끌림이었어요. 사랑이 시작되는 걸 누군가 알려 준다면 이 세상에 사랑은 훨씬 적을 거란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모른 채 시작하기에 사랑이 점점 더 커지니까요. 덕분에 마거릿은 다시 열정이란 것을 자기 삶에 들입니다. 셀리나를 향한 알 수 없는 열망도 함께요. 이는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만 마거릿에겐 놀랍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마거릿일지도 모르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변호한 건 내 삶이었다. 그리고 내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다른 이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379쪽


마거릿의 일상이 계속 진행되면서, 셀리나를 만나고 아버지를 생각하고 사랑했던 헬런과도 점차 거리를 지킬 수 있게 되면서 책은 아주 예민하고 세심하게 마거릿의 마음을 따라갑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려는 마거릿과 끌리는 대로 하고 싶은 마거릿이 부딪히고요. 부딪히고 갈등할수록 셀리나에게 더 강하게 끌립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더 없는 괴로움이 됩니다. 마거릿의 삶은 밀뱅크 감옥에서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어요. 자유롭지 않은 삶, 고독한 삶, 사소한 폭력에 잔인하게 노출된 삶. 마거릿은 셀리나에게서 바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그녀를 보며 연민이 솟구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당신은 나와 같군요.>-122쪽


사랑은 연민에서 시작해서 자기 연민으로 확인되는 것일까요? 동일성에 대한 확인으로 사랑은 크게 한 발짝 나아갑니다. 


책을 덮고나서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둔한 편에 속하는 저라는 독자는 후반부 반전에 놀라기도 했고요. 그래서 한 두 번 책을 다시 뒤적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마거릿과 셀리나, 사랑과 삶에 대해서.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 끌림이 결과적으로 마거릿을 파멸에 이르게 했을지 모르나 그녀를 꿈꾸게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요. 우리 삶은 이런 필요가 엄청나게 큰 원동력이 되잖아요. 우리는 일상에서 작은 계획이나 사소한 일정에도 크게 설레고 힘을 얻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힘들고 지친 채 살고있지요. 그 속에서 외롭던 자신에게 진정한 반쪽을 찾아주려 노력하는 것이 허황된 꿈이란 말인가요? 차라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 전 낭만주의자는 아니지만 마거릿이 삶의 끈을 놓지 않길 바랍니다. 좌절 속에서 더 튼튼하게 뿌리 내렸으면 좋겠어요. 삶은 계속되고 사랑은 또 찾아 올테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으시시한 감옥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말하길, 이곳 죄수들은 머리를 짧게 잘랐기 때문에 책에서 찢어 낸 종이를 말아 머리털에 굴곡을 주고 그 위에 모자를 쓴단다.-97쪽


이 대목에 밑줄을 긋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재미있지요? 


갈증이 나서 차를 마시고, 심심해 책을 읽거나 추워서 숄을 걸치고, 아름다운 단어들의 발음을 듣고 싶어 시를 낭독하는 따위 평범한 행동을 하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그 사람들을 생각한다. 지금까지 몇천 번은 해온 일이다. 하지만 죄수들은 이런 행동들을 전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떠올린다.-52쪽


하지만 셀리나가 바뀐 게 아니었다. 바뀐 건 새로운 지식을 얻은 나였다. 마치 와인 한 방울이 평범한 물을 바꾸듯이, 이스트가 평범한 반죽을 발효시키듯이, 그 지식은 비밀리에 그리고 미묘하게 나를 바꾸어 놓았다.-233쪽


그 순간, 단지 밀뱅크뿐 아니라 셀리나에게서 떨어져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속에서 뭔가 꿈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뱃속에서 아기가 처음으로 발길질을 했을 때가 바로 이런 느낌이리라.-295쪽


셀리나를 만날수록 내가 낯설어지고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상황은 그보다 더 심각해서, 셀리나를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더 나다워졌고, 예전의 나, 벌거벗은 오로라다워졌다.-142쪽


헬런이 말했다. 「왜 그래, 마거릿? 지금의 너는 평소의 너와 너무나도 달라. 네가 이러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363쪽


「(...)오로라, 그 사람들은 당신의 그림자였어요! 저는 단지 당신을 찾아다닌 것이었어요. 당신이 저를 찾듯이요. 당신은 저를 찾아다녔어요, 당신의 반쪽을요.(...)」-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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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몬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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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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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백혈병의 진실 세트 - 전2권- 사람 냄새 + 먼지 없는 방
김수박.김성희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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