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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이 때, 일상을 지키고 있는 건 어딘가 어색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지키고 있을 때 떠나는 것만큼이나요. 그 어느 때보다 실컷 여름을 즐겼지만 역시 책만 한 게 없네요. 돌아다니면서도 책방 찾는 것을 보면요. 아직도 동네 책방이 건실하게 살아있는 도시에 다녀오니 그곳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엔 어떤 신간들이 가슴을 설레게 하나요? 




우연히 미술관에서 독일의 화가 '임멘도르프(Jorg Immendorf)'의 작품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보는 순간 매료되고 말았죠. 작가나 작품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석이 가능했어요. 원숭이, 돼지, 공연과 친구들이 불규칙적으로 뒤엉켜서 한 편의 작품이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했달까요. 

홀로코스트에 관심 있는 저에게 임멘도르프의 작품이나 <나치와 이발사> 같은 작품은 반드시 알아야 할 목록이겠죠. 이 작품에 담겨 있는 진실과 대면하면 '이것이 인간인가'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하게 될 겁니다. 






믿고 보는 이름들이 있죠? 저의 경우 '밀란 쿤데라'가 있고요. 돌베개 출판사(전혀 관계 없는 사람입니다;)도 있네요. 그 중에 하나가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입니다. 독파한 것은 아니고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과 <표백> 정도입니다. 둘 다 최근작이군요. 

어쨌든, 그래서 <굿바이 동물원>은 기본은 할 거라는 게 제 믿음입니다. 살면서 최소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짚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즐거움! 매력적인 작품이 되겠네요. 








정말 이렇게 되는군요. 스크린셀러라고 하지요? 나는 작품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가진 독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가 봅니다. 한 시사지에서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리뷰를 보았어요. 모성애에의 강요나 환상이 얼마나 현실과 다른지 잘 그렸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꼭 영화 때문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전 그다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내 자식이 착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 해본 적 없는지요. 전 많아요. 책을 읽고 나면 또 어떤 생각으로 자식이라는 존재를 싫어할 이유를 찾게 될지 궁금하네요. 


 





요즘 빠져있는 웹툰이 있어요. <미생>. 많이들 보시죠? 이 책 소개를 보니 그 웹툰이 떠오르더군요(사실 제게는 바둑이나 장기에 큰 차이가 없어요. 켁.). 

인생을 '게임의 법칙'으로 해석하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에요. 게다가 그 인생이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치열한 경쟁의 삶이라면?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실제로 우리 삶은 그런 경쟁에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 당하지 않나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이 작품에 매료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이니까, 영화 <쏘우>시리즈도 다시 보고 <큐브>도 보고 어쩐지 닮았을 것 같은 이 작품도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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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루고 또 미루다가 이제야 서둘러 책을 끝냈습니다. 해는 져버린 지 오래고 집에는 아직 혼자 있습니다. 저는 지금, 마음이 아주 으스스합니다. 방마다 불을 다 켜고 말았습니다. 

저, 추리소설 아주 좋아하고 잔혹한 작품도 꽤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으스스한 기분은 처음이네요.(이게 마감에 대한 초조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렉스>에 집중하며 왜 그런가, 곰곰이 따져보려 합니다. 


무엇보다 <알렉스>가 인상적인 것은 세밀한 장면 묘사입니다. 특히 쥐 장면! 많은 분들이 읽기 힘드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주 괴로웠습니다. 작가가 납치당한 여자의 심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주 공들인 장치로 보여요. 비대하고 징그러운 쥐가 호시탐탐 나를 노린다... 아주 끔찍하죠.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이 외에도 살해 장면, 파리 시내 장면 등 <알렉스>는 전체적으로 영상적인 소설이에요. 책의 두께도 두께거니와 지나치게 섬세한 심리 묘사가 힘든 분들에게는 언젠가 개봉될(희망사항입니다. 오해 마시길.) 영화를 기다려도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렇게 으스스한가 봅니다. 아이고...


<알렉스>라는 흥미로운 작품의 핵심은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나 합니다. 

'중요한 건 의도'라는 알렉스의 말. 


그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있을지에 관해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려나 상관없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중요한 건 의도이니까. -366쪽


줄거리로 아시겠지만 주인공이자 책의 제목을 장식하는 '알렉스'는 소설 시작과 더불어 납치를 당합니다. 대부분은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끼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녀를 납치한 남자에 집중하고 그를 괴물로 상상하기 쉽죠. 실제로 좀 괴물 같아요. 납치한 여자를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새장에 가둬 알 수 없는 곳에 매달아 놓으니 말이죠. 그러면서 보이는 반응도 아주 단순해요. 

하지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주인공은 이 남자가 아니라 '알렉스'라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알렉스의 의도'입니다. 


납치범은 경찰에 쫓기다가 자살하고, 극적으로 새장에서 탈출한 여자는 다시 연쇄 살인을 저지릅니다. 알렉스는 왜 그토록 지독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걸까요? 그녀의 잔혹함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복잡하게 얽힌 등장인물들을 지켜봐야 비로소 알렉스의 의도를 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의도를 갖는다는 것은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옳은 방향이든 틀린 방향이든 삶을 지탱하는 엄청난 힘입니다. 모든 영화와 소설의 주인공들이 가진 것이 의도고요.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도 의도죠. 의도를 통해 '진실'과 '정의' 사이에 좌표를 찍을 수 있게 될 겁니다. 실패한 것 같던 주인공의 삶이 복수의 칼날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 주인공의 명확한 의도 덕분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희열이지요. 이 소설엔 그 '의도'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의도는 소설 말미에 가서야 겨우 모습을 비칩니다. 아주 설득력 있고 강력한 반전이기 때문에 비밀로 묻어 두고 싶네요. 

하지만 제가 <알렉스>를 문제적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또한 이 부분에 있습니다. 다른 방향에서 결말을 읽으면 새로운 의미가 나타나요. 이 소설을 닫힌 결말로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전 좀 다르게 읽었습니다. 그물망 같은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큰 물고기는 꽤 잡았지만 작은 물고기들이 빠져나가는 그물이요. 

그것이 정말 그녀의 의도였을까요? 아니면 경찰이 본 것 그대로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알렉스>는 단순한 납치범과 연쇄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선, 악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잖아요. 절대 나쁜 사람도, 무조건 착한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 점을 정확히 짚어줬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설입니다. 


이자를 죽도록 증오한다. 실제로 그는 이자를 죽이고 싶다. 이자를 언젠가 죽이고야 말 것 같다. 그는 몇 주 전 예심판사 비다르에 대해 이런 살의를 품은 적이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중얼거린다. 우연히 여기 끼지 않은 것일 뿐, 너는 잠재적인 살인자야. -486쪽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단연 빛나는 인물로 아르망을 꼽고 싶습니다. 좀도둑 형사라니. 소리 없는 아우성입니까? 찬란한 슬픔의 봄이에요? 캐릭터 강한 조연으로 등장한 아르망이지만 제게는 가장 소중한 캐릭터입니다. 아르망이 보여주는 사소한 인간의 역설이야말로 우리 삶의 또렷한 진실 아니겠냐,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인간을 어떻게 한 가지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우리 모두는 양극단의 어떤 것을 다 지닌 채 사는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그녀는 팔뚝으로 몸을 가려보지만, 이 순간, 자기가 모든 것을 잃었으며, 이런 상실감이 언제까지도 아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그녀의 이 참담한 몰락은 절대적이다. 되도록 빨리 옷을 벗어던지면서 그녀는 무엇이든 응하고 말았으며, 모든 요구에 "네"라고 답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방금 전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52쪽


그녀는 이제 울지도 못한다. 그저 오들오들 떨 뿐이다. 그러면서 해방처럼 죽음을 생각한다. -154쪽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용기를 되찾기 위해 그녀는 그 말을 자꾸만 주절거린다. -363쪽




아 참, 

이 책이 재미있었다면 소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강력 추천합니다. 저는 신혼여행에 가져가서 다 읽고 말았답니다.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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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제자리에 있었는데 계절은 어느 덧 여름이네요. 사람들은 휴가를 준비하고 장마를 얘기하고 바삐 바삐 흘러갑니다. 책도 열심히 나오고 있고요. 이런 여름에는 심농이나 해리포터 같은 여행을 하면 좋겠다, 하는 현실성 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에 추천하고 싶은 소설들은, 국내 작가의 소설이 많네요! 기분 좋은 일입니다.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 네오픽션


사심으로 추천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절대로. 하핫-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되어 '작품'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리가 그렇고 삶이 그렇고, 소설이 그렇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그래요. 사랑스런 시선 때문에 미소짓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 책, <지구에서 한아뿐>은 작가가 말하듯 '달고 또 단 이야기'라니까, 어떤 것에도 집중하기 힘든 무더위에 그늘 밑 바람 쐬면서 읽기에 딱이지 않겠어요? 생각만해도 간질간질 한 걸요! 





별을 스치는 바람 1, 2 / 이정명 / 은행나무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윤동주 평전>을 읽고 눈물 흘린다면 문학을 계속 하라"고요.(앗, 지금 생각하니 엄청 닭살 돋네요!) 숙제를 하듯 평전을 읽다가 시인을 짝사랑 하게 됐죠. 그리고 또 읽고, 또 읽고, 간직했습니다. 그저 유명한 시인인 '윤동주'가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거든요. 그래서 꼽았습니다. 

<별을 스치는 바람>에서 시인이 어떻게 살아 있는지, 생명력 있는 시인을 만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설레기도 하고요. 흔들리고 괴로워 했던 문학청년을 더 많은 소설로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은닉 / 배명훈 / 북하우스


보자마자 '엇! 읽고 싶어!' 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왜' 읽고 싶은지 알 수 없는 책들이 있습니다. 배명훈 작가의 소설을 대부분 그런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신의 궤도>도 아직 1권 중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요. 그래도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왜' 읽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저와 같이 답을 찾으실 분? 안 계신가요...?








N을 위하여 / 미나토 가나에 / 재인 


또 미나토 가나에입니다. 지난 달에도 <왕복 서간>을 추천했었는데요, 대단합니다. 작품이 많이 소개 되는군요! 

갑작스레 올 여름에는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습니다, 결심했어요!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양파 껍질 같은 이야기는 단연코 이 작가가 탁월하다고 믿거든요. 짧은 작품을 읽고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 뿐이니 철저한 확인 작업을 하고 작가에 대한 생각을 정립해둬야 겠네요.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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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예전에 '고려장' 풍습이 있었다고 하죠(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도 많네요). 아직까지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가 유지되고 있는 사회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유태인 학살이나 일본의 위안부 학대 같은 것들을 떠올려도 괜찮겠네요. 이것들이 모두 인간 사회에 있었던, 또는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기에는 말이죠.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아는 것과 경험한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합니다. 우리 상상력은 아무리 뛰어나도 현실을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처럼요. '지금'을 살면서 스스로 갖고 있는 상식이나 도덕 따위가 얼마나 상대적인지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가끔 난 그 애의 그런 여유 있는 태도가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져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의미가 있는 문제들에 대해 너무 초연하거든요. (...) 어떻게 해야 미헬의 그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애한테 책임감을 심어줄 수 있을까, 하는 거죠. -293쪽


인간의 본성은 선(善)일까요, 악(惡)일까요? 세상을 보면 '악'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요. '악'과 '선'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 없으니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사회화나 교육으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일까요? 


<디너>는 인간의 '악'과 '선', 그 경계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진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디너>가 보여주는 섬세한 통찰에 대해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신 분? 봤다면 기억하시겠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단연 그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주인공(임수정)이 세상의 갖가지에 불만을 늘어 놓는 장면이요. 그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생각하지 않았을 종류의 것들에 대해 여주인공은 사사건건 불만을 터뜨립니다. 예, 저는 이 소설에서 그 여주인공을 발견했어요. 아주 예민하게 상황을 바라 보는 주인공. 영화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하게 분석해서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하고 다시 한 번 읽은 부분이 한 두 곳이 아니랍니다. 


사람들은 면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 라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 면도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4쪽


그런 면에서 토네이도, 허리케인, 쓰나미 등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상당히 큰 위안을 준다. 맞다. 그건 아주 끔찍한 현상이다. 우리 모두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불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은 - 자연의 폭력이든 인간의 폭력이든 상관없이 -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이다. -218쪽


심지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주인공의 묘사가 아주 실감났습니다. 사람은 때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만큼 희한한 생각에 압사 당할 것 같은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잖아요.(공감하지 못하시려나? 전 공감했습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광년(光年)이라는 개념은 생각할수록 무시무시했다. (...) 난 아주 멀리 떨어진 전망대 같은 곳에 서서 하나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게 나한테는 심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227~228쪽


이런 강력한 흡입력으로 독자를 절정에 몰아 넣는 솜씨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책을 이틀만에 다 읽고야 말았거든요.(원래 저는 그리 빨리 읽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진지한 얘기를 해야겠군요. 이 '절정'이라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얄궂게도, 중요한 장치들은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하나씩 터져 나왔습니다. 주인공의 상태, 아들과의 관계, 아내의 솔직한 심정, 사건들. 때문에 책을 읽어 내리기는 쉬웠으나 질문은 아주 많아집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악'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수직선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플러스(+)영역과 마이너스(-)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0입니다. 그런데 어디부터가 플러스고 마이너스인지를 따질 때 아주 곤란해집니다. 인간 세상은 수학이 아니니까요. 대부분의 사람이 '저건 마이너스야!'라고 인정해도 당사자는 '이것까지는 플러스로 쳐줘야지.' 할 수도 있는 거고요. 때론 가장 친한 친구와도 이 경계를 따지기가 어려운 경우도 생겨요.(아주 흔한 일이기도 하죠) 


파울은 살인이나 타인에 대한 피해 보다 아들의 논리 정연함이나 우리 가족의 행복이 우선하는 인물입니다. 아들이 쓴 '사형제도'에 관한 에세이를 봐줄 때가 그렇고요, 공놀이를 하다가 어느 가게의 유리를 깨뜨렸을 때도 파울의 대응 방법은 좀 불쾌합니다. 내 아들의 논리가 옳고 내 아들이 받는 꾸지람이 싫거든요. 


상식적이지 않다고요? 물론 불편하긴 하죠. 좀 과장된 사례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오류기도 합니다. 나의 행복과 내 자식이 그토록 소중한 부모가 타인의 행복과 타인의 삶을 무시하는 것, 흔히 벌어지는 일이잖아요.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길거리나 어느 음식점에서도 이런 일은 자주 벌어집니다. 이런 오류가 바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러나 혼돈해선 안 될 겁니다. 수직선을 초월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들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우리에겐 그 가치들이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켜줄 때 주인공이 바라 마지 않았던 행복, 그것도 '진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파울 가족이 그 후 정말 행복했느냐,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프랑스와 관계된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그런 부류였다. (...) 그러면서도 정작 도르도뉴에 사는 프랑스인들은 네덜란드 사람들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79쪽


그 영화의 감독은 방송에서 인터뷰를 한 여자랑 한 치도 다를 게 없어. 사실 시드니 포에티어는 일종의 본보기 기능을 한 거야. 그는 다른 불쾌한 흑인들, 도둑이나 조폭, 마약 운반책 같은 위험한 흑인들을 대신해 본보기로 이용당한 거지. 너희들도 시드니 포에티어처럼 멋진 양복을 차려입고 모범적인 사윗감처럼 행동하면 우리 백인들은 분명 니들을 품에 안아줄 거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야.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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