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들 하지요. 왜일까요? 그만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기 자신은 지켜내기가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유가 없잖아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는. 희한하게도, 살펴보면 사랑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시작됩니다. 마거릿이 셀리나의 제비꽃을 보았던 것처럼요. 책장을 덮을 때, 마거릿의 사랑을 감히 누가 어리석다고 나무랄 수 있을까요? 


<끌림>은 사랑과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마거릿 프라이어는 아버지의 죽음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큰 상처를 안은 채 겨우 살아내고 있는 연약한 숙녀입니다. 그녀와 지적이고 깊은 유대감을 나눈 두 사람이 모두 그녀 곁을 떠났어요. 마거릿은 삶의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다른 숙녀들(가령 어머니)처럼 결혼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 같은 것이 그녀의 삶의 이유가 되진 않거든요. 

이 지점에서 저는 기시감에 빠집니다. 희한하죠. 작품의 시대 배경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입니다. 제가 사는 21세기 한국과는 닮은 구석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기시감이 듭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억압. 100년 전 저 먼나라와 제 주변의 모습이 어쩜 이렇게 닮아 있을까요? 한 인간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받아 들이는 사회란 불가능한 걸까요? 역사는 과연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삶은 돌고 도는 걸까? 이런 오만가지 생각을 잠시 하게 됩니다. 


외롭고 괴로운 와중에도 삶은 계속 됩니다. 괴롭다고 스스로 삶을 멈추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지요. 마거릿은 밀뱅크 감옥에 방문하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더 우울한 삶을 보면서 자신을 위로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감옥 방문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지만 그녀에게는 운명적 사건이에요. 약한 뿌리를 가진 연약한 주인공이었기에 감옥이라는 자극은 주변의, 독자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주인공을 흔든 것 같습니다. 하긴, 관계라는 화학 작용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뿌리 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어젯밤 다짐도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는 법인 걸요. 마거릿의 동요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이상하겠네요. 

그리고 여기서, 운명의 여인 셀리나를 발견합니다. 묘한 끌림이었어요. 사랑이 시작되는 걸 누군가 알려 준다면 이 세상에 사랑은 훨씬 적을 거란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모른 채 시작하기에 사랑이 점점 더 커지니까요. 덕분에 마거릿은 다시 열정이란 것을 자기 삶에 들입니다. 셀리나를 향한 알 수 없는 열망도 함께요. 이는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만 마거릿에겐 놀랍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마거릿일지도 모르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변호한 건 내 삶이었다. 그리고 내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다른 이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379쪽


마거릿의 일상이 계속 진행되면서, 셀리나를 만나고 아버지를 생각하고 사랑했던 헬런과도 점차 거리를 지킬 수 있게 되면서 책은 아주 예민하고 세심하게 마거릿의 마음을 따라갑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려는 마거릿과 끌리는 대로 하고 싶은 마거릿이 부딪히고요. 부딪히고 갈등할수록 셀리나에게 더 강하게 끌립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더 없는 괴로움이 됩니다. 마거릿의 삶은 밀뱅크 감옥에서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어요. 자유롭지 않은 삶, 고독한 삶, 사소한 폭력에 잔인하게 노출된 삶. 마거릿은 셀리나에게서 바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그녀를 보며 연민이 솟구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당신은 나와 같군요.>-122쪽


사랑은 연민에서 시작해서 자기 연민으로 확인되는 것일까요? 동일성에 대한 확인으로 사랑은 크게 한 발짝 나아갑니다. 


책을 덮고나서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둔한 편에 속하는 저라는 독자는 후반부 반전에 놀라기도 했고요. 그래서 한 두 번 책을 다시 뒤적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마거릿과 셀리나, 사랑과 삶에 대해서.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 끌림이 결과적으로 마거릿을 파멸에 이르게 했을지 모르나 그녀를 꿈꾸게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요. 우리 삶은 이런 필요가 엄청나게 큰 원동력이 되잖아요. 우리는 일상에서 작은 계획이나 사소한 일정에도 크게 설레고 힘을 얻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힘들고 지친 채 살고있지요. 그 속에서 외롭던 자신에게 진정한 반쪽을 찾아주려 노력하는 것이 허황된 꿈이란 말인가요? 차라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 전 낭만주의자는 아니지만 마거릿이 삶의 끈을 놓지 않길 바랍니다. 좌절 속에서 더 튼튼하게 뿌리 내렸으면 좋겠어요. 삶은 계속되고 사랑은 또 찾아 올테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으시시한 감옥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말하길, 이곳 죄수들은 머리를 짧게 잘랐기 때문에 책에서 찢어 낸 종이를 말아 머리털에 굴곡을 주고 그 위에 모자를 쓴단다.-97쪽


이 대목에 밑줄을 긋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재미있지요? 


갈증이 나서 차를 마시고, 심심해 책을 읽거나 추워서 숄을 걸치고, 아름다운 단어들의 발음을 듣고 싶어 시를 낭독하는 따위 평범한 행동을 하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그 사람들을 생각한다. 지금까지 몇천 번은 해온 일이다. 하지만 죄수들은 이런 행동들을 전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떠올린다.-52쪽


하지만 셀리나가 바뀐 게 아니었다. 바뀐 건 새로운 지식을 얻은 나였다. 마치 와인 한 방울이 평범한 물을 바꾸듯이, 이스트가 평범한 반죽을 발효시키듯이, 그 지식은 비밀리에 그리고 미묘하게 나를 바꾸어 놓았다.-233쪽


그 순간, 단지 밀뱅크뿐 아니라 셀리나에게서 떨어져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속에서 뭔가 꿈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뱃속에서 아기가 처음으로 발길질을 했을 때가 바로 이런 느낌이리라.-295쪽


셀리나를 만날수록 내가 낯설어지고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상황은 그보다 더 심각해서, 셀리나를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더 나다워졌고, 예전의 나, 벌거벗은 오로라다워졌다.-142쪽


헬런이 말했다. 「왜 그래, 마거릿? 지금의 너는 평소의 너와 너무나도 달라. 네가 이러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363쪽


「(...)오로라, 그 사람들은 당신의 그림자였어요! 저는 단지 당신을 찾아다닌 것이었어요. 당신이 저를 찾듯이요. 당신은 저를 찾아다녔어요, 당신의 반쪽을요.(...)」-39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