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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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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프라하의 이방인
클라우스 바겐바하 지음, 전영애 옮김 / 한길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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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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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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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읽은 소설에서 제가 주로 읽었던 것은 '인간이 얼마나 악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소설이 조금 힘이 듭니다. 현실에, 악한 인간이 너무 많아서요. 그들을 '악마'로 볼 수 없기에 더 슬픕니다. 요즘은.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선배, <그레이의..> 봤어요?" 아직 읽지 못했다는 말에 흥분해서 침을 튀기며 책을 이야기했습니다. 흥행 요소를 1000% 갖고 있는 책인 것 같더군요. 

몇 해 전,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읽으며 흥분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버스에서도 읽고, 지하철에서도 읽고, 길거리에 다니면서도 읽었더랬죠. 몇 살 더 먹어 이제는 그럴 수 없지 않나 하는 불안함이 있습니다만, 마음의 준비는 됐습니다. 아나스타샤가 될, 마음의 준비. 





도서관에 갔다가 갑자기 이 작가, 필립 K. 딕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읽어야 할 목록'이었는데 막상 읽으니 단번에 매료되었어요. 작품을 쓴 것이 벌써 몇 십년 전이라는 믿을 수 없는 사실과 오히려 퇴보한 듯한 지금의 상상력에 좌절하면서요.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는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흥미롭습니다. 작가가 그렇고, 소재가 그렇네요. 

화성, 우주도 모자라 잊혀진 슈퍼스타라니 바로 읽어볼 만 하지 않나요?? 









본능적으로 비주류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감히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요. 뭐, 어렸을 때는 그랬습니다. 소수에 대한 인식, 꾸준한 시선이 좀 더 완성된 인격체로 가는 길이라고요. 

그런데 이 작품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요? 

'흰 개'로 상징되는 인종차별의 광기도 책에서 읽으면 분노할만 한 것이겠지만요, 사실 그 세상에 사는 입장에서는 분노를 논리적으로 풀기란 쉽지 않거든요. 미묘한 불평등에 불편함을 이야기 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될까요? 

전 그래서 이 작가, 이 작품이 좋습니다. 







(묘하게 표지가 비슷비슷한 느낌이네요-)

김연수, 김연수, 김연수! 세 번 불러 봅니다. 

마음을 잡아 당기는 이름인 것 같아요. 이 작가는. 물론 뭐, 개인적인 생각이니 너무 거부감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그의 작품이 갖는 잔잔함, 날카로움, 겹쳐지지 않는 지점들이 늘 균형 잡혀 독자를 만족시킨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학가 중 견고한 층이 있는 몇 안 되는 작가기도 하고요. 

라디오에 낭독되는 내용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는데 흥미롭더라고요. 읽어 봐야 할 목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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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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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이름' 목록에 [미나토 가나에]를 넣어두기로 했습니다. 


어떤 작품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충격적인 소재'라거나 '예상치 못한 반전'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많지요. 하지만 진짜 마음을 흔드는 작품은 의외로, [평범한 언어로 담담하게 삶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불편함을 보여주는 것]들이에요. 숨겨진 진실. 은폐된 것들. 

미나토 가나에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작가가 아닐까 합니다. 이 작가의 담담한 어투를 따라가자면 편하게 공감하는 마음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요. 그러다가 하나씩 드러나는 예상치 못한 낯선 장면에는 '멍~'하게 멈춰 서게 돼요. 가슴이 두근두근, 두뇌 회전이 빨라지고요. 뒤이은 부분을 읽기까지 좀 시간이 걸리죠. 만일 작가가 이런 것을 의도했다면 그야말로 성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잠시 멈춰서야 하지만, 그렇지만, 

흡입력 하나는 끝내주는 필력입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좀 쉬었다 읽고 소화가 안 된다 싶으면 다시 읽곤 하는데요, 이 작가의 책은 그런 적이 없네요. <고백>도 그랬고요. 나긋나긋, 옆에서 다정하게 이야기 해주는 것 같은 기분으로 술술~ 책을 읽고 있어요. 이 이야기의 끝이 뭘까? 걱정스런 마음으로요. 


그리고! 

책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결말이 궁금하지만 끝내 끝나지 않기를,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으로 읽었어요. 그러다가 다 읽어 버리고 나니 다시 아쉬워져서 되돌려 보고 또 보고...

(저는 영화는 몇 편 이렇게 보고 또 본 적이 있지만 책은 의외로 다시 읽은 작품이 손꼽거든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기도 하고요. 하핫-)


그러니 한 번 완독하고 계속 뒤적이는 동안에는 설익은 서평을 쓰게 되겠군요.(다시 한 번 제대로 읽는다면 또 다른 면이 보일 게 분명합니다.) 


N은 누구일까요?

책에는 네 명의 주요인물과 두 명의 주변인물이 나옵니다. 이들은 비슷한 면이 없어 보이지만 밀접하게 각자의 삶을 공유하고 있어요. 그 중심에 [스기시타 노조미]가 있습니다. 

시골 섬 출신, 가족을 배신한 아버지, 현실 감각 없는 어머니, 무너지는 시절을 버티게 해 준 사람,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 그를 위해 하려는 일들. 

'죄의 공유'를 궁극의 사랑이라 여기는 그녀는 흔히 말하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사랑'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이 믿는 사랑을 성취하려고 하죠. 


N은 '노조미'의 N일까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윗집 사는 친구 '안도 노조미'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나루세 신지'가 등장하고요. 스기시타의 옆집 미남 '니시자키 마사토'가 나타나요. 


이런. 작가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방향이 다를 뿐 서로가 N을 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스기시타뿐만 아니라 안도, 나루세, 니시자키 모두 상대에 대한 진심을 혼자 가슴에 품고 '너(N)를 위한' 선택을 합니다. 그것이 거짓말일지라도, 범죄일지라도, 선택한 진실만 말할지라도 말이죠. 

각자가 모르는 상대의 진심을 한 데 그러모아 퍼즐을 맞추면 완성된 그림이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들은 10년이 지나서야 그 '사건'을 떠올리며 퍼즐을 맞춰보려 합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독자로서 간절한 마음에 애태우게 됩니다. 조금씩 일그러지거나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그토록 깊은 사람들이라니요. 

'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말한 작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랑스런 사람들을 보며, 

개인의 경험이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나,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 경험이 자기와 닮은 사람을 순식간에 사랑하게 되잖아요. 

반대로, 증오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그리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존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조짐이라는 말은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알려 주는 사소한 사건을 뜻하지만, 그것이 조짐이었다는 것은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 그것도 시간이 상당히 흐른 뒤에야. -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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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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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청년(악!!) 시절에 누군가 간혹 이상형을 물으면 윤동주를 꼽곤 했었어요. 

대개 돌아오는 반응은 

"에? 시인?" 이런 식이었죠. 

윤동주를 이상형으로 간직하면서 만약 시인이 살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시인은 변함없이 괴로워 했겠지만요, 적어도 우리는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조금 더 향유할 수 있었을 거예요. 지금 존재하지 않기에 더 아름다운 것들은 시리도록 애처로웠습니다. 이만저만 안타깝지 않았지요. 


나는 친구를 잃어야 하겠지만 조선인 죄수들은 현명한 동료를, 간수장은 용서를 빌 대상을, 간수들은 온화한 모범수를 잃을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조선인들은 위대한 스승을 잃을 것이고, 태어나지 않은 일본인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증언할 지식인을 잃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가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지지 못할 순결한 시인을 잃어야 할 것이다. - 2권, 240쪽



제 닉네임 [동섣달꽃]은 시인 정지용이 윤동주를 일컬어 했던 '동(冬) 섣달의 꽃,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鯉魚)'라는 말에서 따 온 겁니다. 

12월 추운 겨울에 피는 꽃.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 강물 아래 헤엄치는 잉어. 어두운 시절에 눈부신 작품을 썼던 시인을 참으로 생각하게 하는 아주 매력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시절, 저는 <윤동주 평전>을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남몰래 통곡하던 어머니를 읽으면서 함께 울었고요. 그리고 조금씩 잊히는 첫사랑 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이 책을 만났네요? 하하. 

처음에는 몰입하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좋아하던 연예인의 사생활을 알게 되면, 왜 좀 실망하게 되잖아요. 같은 사람이라는 게 낯설기도 하고요. 그런 느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가도 '인간 윤동주'를 그리는 데 적잖이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제가 그린 인간 윤동주는? 더 말수가 적고 단어를 아끼고 아껴서 말하는 사람이요. 어쨌든,)

오랜만에 시인의 삶도 상상해보고 중간 중간 시도 감상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시간이었습니다. 설레기도 했고요, 후반부 그의 죽음이 가까워 올수록 많이 슬펐습니다. 


책은 [열도 안의 가장 위험한 병균들을 모아 놓은 곳], 즉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통의 한 형무소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진행됩니다. 일제시대, 후쿠오카 형무소에는 조선인들이 모여 있어요. 당시 조선인은 병균이고 암세포이며 돼지였죠.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시간 낭비일 뿐이야. 조선 놈들은 똑같아. 더 나쁜 놈도 없고 덜 나쁜 놈도 없어. 모두가 주모자고 모두가 동조자지. 돼지는 돼지일 뿐이야. 더 잘생긴 돼지도 없고 덜 못생긴 돼지도 없다고!" -  2권, 165쪽


그런데 궁금합니다. 이런 횡포가 과연 '전쟁의 광기' 때문이었을까요? '악마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라 그랬던 걸까요? 

사실 제가 좌절하는 건, 지나간 사건과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며, 결국 악한 것은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악한 사람들 덕분에 늘 어둡죠. 어두운 시대라서 사람들이 악한 게 아니라. 지금도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요? 


다시 책으로 돌아와, 살인사건을 맡은 유이치는 사건을 추적하다가 의외로 떠오르는 인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윤동주. 어두운 시절에 탁월하게 맑은 영혼입니다. 그나마 세상에서 숨 쉬고 살게 하는 것은 이처럼 드물게 아름답고 타협하지 않는 영혼일 거예요. 이 영혼은 너무나 빛나고 깨끗해서 시대에 가려지지도, 녹아들지도 않아요. 유이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동주와 책을 매개로 마음을 나누죠. 시인은, 윤동주는 그런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를 통해 시와 음악과 삶을 생각하게 되는 영혼. 


소설 속에는 윤동주 보다는 덜 하지만 괴로워해서 악하고, 악해서 더욱 괴로워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사실 저는 이게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실제로 인간은 [괴로워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서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게 대부분이잖아요? 그럴 이유는 많으니까요. 가족들, 생계, 책임감 등등. 그것이 상식선인데요. 


무엇보다 자신이 상식에 의거해 살아가는 평범한 일본인이라고 굳게 믿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이 전쟁을 막지 못했는지...... - 2권, 224쪽


소설 속 몇몇 주요 등장인물은 결코 그렇지가 않단 말입니다. '살아남은 것이 부끄러운' 일본인 간수는 특히요. 스기야마나 유이치 모두 그런 인물인데요. 이들의 내면이 의외로 너무 아름다워서 지나치게 소설 같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에나 있는 인물이라고요. 괴롭지만 너무 괴로워지기 전에 잊는다, 가 많은 사람들의 태도니까요.  

(반면 형무소장이나 간수장, 병원장은 철저한 전쟁광에 악한이잖아요. 이런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 주요 인물 몇을 제외하고는 착하거나, 악하거나, 좀 단편적인 모습만 보여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아름답습니다. 

매일 악(惡)을 확인하면서도 희망을 갖게 하거든요. 순수한 선(善)이 있다는 것, 그래서 삶을 낙관할 수 있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살아남아야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고 더러운 시대에 침을 뱉을 수 있어. 명심해라. 살아남는 게 승리하는 거야. 시체는 결코 만세를 부를 수도 침을 뱉을 수도 없어." - 2권, 168쪽



저는 아직 윤동주처럼 빛나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제가 속해있는 어둠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못했어요.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탁월한 영혼을 가진 사람을 볼 수 있고 

그 사람 덕분에 어두움을 괴로워하고 

악화가 아닌 '선화(善貨)'가 양화를 구축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어둠에 가보고 싶다는 쓸데없고 위험한 소망을 해봅니다. 


<별 헤는 밤>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아래에 전문입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들의 이름과,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볕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이제 나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 1권, 9쪽


사라진 저작물 중에는 한 조선인 미곡상의 외상 장부도 있었다. 소각 이유는 '진위를 해독할 수없는 의미 없는 숫자의 무한반복'이었다. - 63쪽


그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망가뜨린 인간과 같은 인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린 아들을 안아 주는 아버지, 망가진 주방의 선반에 못질을 해주는 남편, 친절한 이웃일 그가 자신과 같은 아버지, 남편, 이웃을 개처럼 패고 있었다. - 115~116쪽


얼어붙은 밥덩이라도 주린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그들은 기꺼이 시체와 함께 잠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 2권, 72쪽


전쟁이 우리를 무릎 꿇게 만들고, 세상이 우리를 더러운 짐승처럼 만들어도 우리의 영혼을 훼손할 수 없음을. - 95쪽


"말하지 못한 사랑도 사랑이야. 말해 버린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일지 모르지." - 137쪽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건 조선 놈들이 아니다. 나쁜 놈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어떤 민족이든 나쁜 놈들은 있다. - 159쪽


고통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죽음을 택한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겪어 온 그에겐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의미였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이기는 것이니까. -184쪽



p.s. 어쩐지 어색할 것 같아 책장에서 놀렸던 구효서 작가의 소설 <동주>를 꺼내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시인을 추억하는 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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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에 묻히다- 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
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 / 역사비평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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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한일 젊은 세대를 위한 서경식의 바른 역사 강의
서경식 지음, 형진의 옮김 / 반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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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존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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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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