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그 사랑 - A.B. 심슨 시리즈 1
A.B.심슨 지음, 김애정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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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형벌은 로마가 고안한 형벌 중 최악의 형벌이었다.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A급 죄인에게 가하는 사형 방법이었다. 그것은 매우 큰 육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극악의 형벌이었다. 죄인은 자신이 매달릴 나무를 어깨에 진 채 형장까지 스스로 운반해야 했다. 마침내 형장에 이르러 탈진 상태가 되면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두 손과 두 발은 나무에 못 박히게 되었다. 진정한 고통의 시작인 것이다. 몸이 수직으로 들어 올려지면 온 몸의 무게를 벌린 양 팔, 못박힌 두 손으로 지탱해야 했다. 손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극심한 탈진으로 숨이 가빠오게 되었다. 날아오는 새들에게 살이 여기저기 뜯겨도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잔인한 십자가 위에서 청초한 생을 마감하였다. 십자가에 달린 모든 이들은 결국 죽음을 맞이 했지만 예수만은 달랐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눈을 감았지만 다시 살아났다! 그것은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고,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예수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유대인은 자신들을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멸시하던 동네에서 태어난 별볼일 없는 한 청년이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불리니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낮고 낮은 자에 불과한 이가 메시아라니... 그래서 유대 지도자들은 그 청년을 반란과 선동 죄로 나무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상 예수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었다. 죄악에 물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너무도 고귀한 희생이었다. 그것은 세상 무엇보다 뜨거운 사랑의 발로였다.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그만의, 하나님만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러한 십자가 사랑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찬송가 ’주와 같이 길가는 것’ 등의 작사가인 알버트 벤자민 심슨(A. B. Simpson)이다. A. W. 토저의 영적 스승으로도 알려진 그는 여러 찬송가를 작사한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본문은 총 10장으로 구성 되어 있다. 얼핏 보면 10장의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듯 하지만 잘 보면 한 흐름을 유지한다. 십자가 현장에 다가가는 것을 시작으로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 부활의 메시지로 내용이 이어지고, 그리스도의 임재에 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전체적으로 십자가의 사랑을 잘 설명한다. 내용의 호흡이 짧아서 지루함이 없다. 반면 그것이 단점이기도 하다. 각 장에 담긴 내용들의 길이가 짧은 까닭에 십자가 사랑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쉬움이 있다. 어쨌든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을 ’모든 날들 동안’ 경험하라 이다." 

 사순절 묵상 도서로, 아니 어느 때고 십자가의 능력과 사랑을 묵상하기 위한 책으로 읽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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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황 1 ======================================

아침에 학교가기 전에 일기예보를 살펴 보았습니다.

"@#$% 비는 안 오겠으나 흐리고 @#@$%"

’음... 다행이군.’

비는 안 오고 흐리기만 한다기에 우산은 놓고(전 날 비온다고 해서 우산을 들고 갔더니 비가 안 와서...)
신을 신은 후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헉...!

"뭥미!!!"

왜 놀랐냐면 비가 오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_-;
물론 이슬비이긴 했지만 ’흐림’이라던 일기예보는
도대체 뭘까요? 제 눈이 이상해서 잘못 본 것일까요?

일기예보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비난은 그렇다 치
겠습니다. 미래의 일을 맞추는 건 쉬운 게 아니니까
요. 그런데 지금 비오고 있는데 그것과 틀리게 예보하는 건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 상    황 2 ======================================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천안 역 플랫폼에 대기 했습니다. 몇 분 후에 방송이 나오
길 가산디지털 역 부근에선가 신호기 고장(?) - 노래를 듣고 있어서 정확하게 못 들었습니다. - 으로 전
철 운행이 지연 된 까닭에 용산행 급행 열차가 조금 후에 온다더군요. 용산 급행이 15시 49분에 지나 갔
어야 했으나 제가 플랫폼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정도, 열차가 도착한 시간은 16시 10분이 조금 넘어...
원래 급행을 못 타는 거였으나 운 좋게 타고 올라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뻤죠.

그러나 기쁨도 잠시...

구로에서 동인천행 급행 열차를 탔는데 동암역에서 멈추더니 출발을 하지 않지 뭡니까. 이
윽고 방송이 
나왔습니다. 주안역 신호기 고장으로 열차 운행이 지연 되고 있어 죄송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요.
헉... 천안서도 그러더니 인천에서도! 그런 상황을 한번 겪는 것도 힘든데 연달아 두번이나 겪다니 정말
놀랍고, 기가막힐 따름이었습니다!

아무튼 천안에서처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지... 싶어 - 물론 저야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나 다른 
분들은 오래 기다렸을테죠. - 기다렸습니다. 몇 분 지나서 방송이 또 나오더군요. 앞서의 문제로 열차 
운행이 지연 된다고요. 때문에 급하신 승객들은 요금을 환불해 줄테니 다른 이동수단으로 갈아 타시라
더군요. 저는 어차피 약속도 없고, 집에 일찍 들어가나 앉아서 기다리나, 어디서든 할 일은 같고, 할 거 
리를 가지고 있기에 여유있게 기다렸습니다.

한참 기다린 끝에 드디어 출발 했는데 시간을 보니 1시간 조금 넘게 대기 했지 뭡니까! 헐~ 저야 집에 
가는 길이니 괜찮았는데 급한 일이 있던 분들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상하행선 모두 지연 됐으니 말
이죠.



===================================== 정    리 =======================================

아무튼 어제 희안한 일을 세번이나 겪은 정말 희안한 하루였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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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육 교수-학습론 - 교사교육시리즈 7
임영택 지음 / 종로서적성서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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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과 백과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각각 정의한다.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행위 또는 그 과정.” 혹은 이렇게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 지식과 인격을 함양(涵養)시켜주는 행위.” 아니면 “한 사회의 올바른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 이상의 정의들은 사회 교육에 해당한다. 그러한 교육 외에 또 다른 교육이 있는데 그것은 종교 교육이다. 그것의 범위를 축소시켜 기독교 교육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기독교 교육을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여 그분의 실존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행위”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학습자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지 알게 하고, 그렇게 살도록 제안하는 데 있다.    

 교회에서의 교육은 참으로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가장 먼저 주일학교 교사들에 대한 체계적인 기독교 교수-학습 교육이 부족하다. 그리고 날로 급변하는 세상의 물결에 그대로 노출되어 가치관의 충돌을 일으키는 학습자들에게 무엇이 바른 가치관인지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학습자들에게 바른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자질을 향상과 체계적인 교수-학습법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 서는 기독교 교수-학습의 이론과 과정 등을 다루고 있다. 기독교 교수-학습의 이론과 과정을 제시하여 실제의 교수-학습 현장에서 그것들을 적용하고, 더 나은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돕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더불어 그 적용 과정을 통해 교사의 자질과 교육의 변화를 꽤한다.  

 내용 구성은 총 4장으로 되어 있다. 제 1 장은 ‘학습 이론의 유형’으로 몇 가지 학습 이론의 유형을 소개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기독교 교육 과정에 적용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제 2장의 제목은 ‘기독교 교수-학습론의 가능성’ 이다. 이 장에서는 신학과 학습론을 접근시켜 본다. 그 후 앞 장에서 소개한 몇 가지 학습 이론 중 ‘형태학설’과 ‘신학’의 융합을 통해 ‘기독교 교수-학습’이 가능한지 알아본다. 제 3 장 ‘교수-학습이 일어나는 클래스룸’에서는 1장과 2장에서 알아본 이론들이 실제 학습 현장인 ‘클래스룸’에서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와 클래스룸의 형태, 그리고 ‘만남의 클래스룸’에 대해 살핀다. 마지막 제 4장은 ‘교수-학습의 과정’으로써 교사가 ‘교수-학습‘을 위한 계획, 진행, 평가의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룬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주입식 교육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이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창의성 개발의 부족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교사 당 학생 수가 선진국에 비해 높은 우리나라의 교육 여건상 현재의 교육 방식에 변화를 가져오기는 힘들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시설확충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기독교 교육, 다시 말해 주일학교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주일학교 또한 교사 당 학생 수가 많다. 물론 공교육과 비교하면 적당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기독교 교육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어쨌든 학생 수의 많음은 개개의 이해력에 차이가 있음을 뜻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이해력이 다른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려하면 주입식 교육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교육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온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원하는 수준과 원하는 만큼의 교육을 할 수가 없다.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교육은 하나님과 교수 및 학습자 사이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만나게 하는데 있다. 하지만 현재의 주일학교 교육 여건은 그것에 많은 지장을 주고 있다. 

 기독교 교수-학습의 질적 향상은 학습자의 기독교에 대한 지식의 증대만을 돕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 했듯이 학습자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분을 만나도록 한다. 그것은 곧 세상 가치관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고, 반대로 하나님 안에서의 바른 가치관의 확립을 뜻한다. 그렇기에 기독교 교수-학습, 다시 말해 주일학교 교사들의 자질 향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 한 권의 작은 책에 나타난 교수-학습론과 그 과정이 그와 관련된 내용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한정된 분량에도 불구하고, 일반 학습론에서부터 그것과 신학의 만남의 가능성, 그리고 교수-학습의 과정 등을 살펴보는 데 상당히 유용한 정보와 도움을 준다. 그리고 내용이 상당히 알차고, 설명에 충실하다. 이론서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배경 지식 없이도 이해는 가능하지만 그것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낫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 책의 내용이 가장 좋은 답은 아닐 것이기에 관련된 다른 책과 비교하며 무엇이 가장 좋은지를 살피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각자의 몫일 것이다. 또한 분량의 한계만큼 깊이도 한정되어 있다는 게 아쉽다. 이는 이 책만으로는 관련된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관련 사항을 좀 더 깊게 숙고하기에는 제공된 내용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 책의 한계이다. 따라서 더 나은 기독교 교수-학습을 위해 이 책을 기본 개론서로 삼고, 관련된 책으로 더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연구한 내용을 현장에 적용시켜 나간다면 교사와 기독교 교육의 질적 향상은 조금씩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주일학교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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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예언서 이해
차준희 / 한국신학연구소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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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교회 강단에서는 정체성을 잃은 설교가 설파되고 있다. 설교 본연의 목적과 역할을 무시한 채 물질을 많이 얻는 방법, 복을 많이 받는 방법 등 ‘잘 사는 법’에 관한 설교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설교자에게 주신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는, 대언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한다 하더라도 성경 66권 중 한정된 본문만 설교에 인용되고 있다. 하나님은 몇 가지 본문을 통해서만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말씀 하신다. 한정된 본문 인용은 편식이 몸의 성장 불균형을 일으키듯 성도들의 영의 성장 불균형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설교에서 특히 인용되지 않는 본문은 구약에서는 예언서, 그리고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이다. 그 본문들이 인용되지 않는 이유는 분석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 해석하였을 경우 심각한 오해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인용을 꺼린다. 

 본 서는 인기 없는 설교 본문인 구약 예언서의 형성과 그 연구의 역사, 그리고 예언자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총 세 명의 저자의 각기 다른 글이 실려 있다. 편자의 말을 빌리자면,  


   
  “형식적으로 보면 한 명의 저자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마치 한 사람의 저작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논지에 있어서는 일관성이 있다. 그 근본 이유는 세 사람이 학문적으로 같은 계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총 네 개의 글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제목은 ‘문서 예언서 이해’, ‘예언서 연구사’, ‘예언 선포의 의도’, ‘예언자들의 메시지’이다. 네 글은 모두 논문 형식을 취하고 있고,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인의 지식이 미천하고, 학문적 분석 능력이 아직은 낮아서 본 서를 학문적으로 비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마추어 수준, 본인의 입장에서 비평 및 총평, 그리고 읽은 느낌을 정리 하고자 한다.

 이 책은 세 명의 저자에 의한 네 개의 글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외견으로 봤을 때는 글들의 통일성과 각각의 개연성이 낮아 보인다. 하지만 세 저자는 한 계보에 속해 있어서 학문적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연구된 예언 선포의 의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기 위함도, 단순히 잘못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함도 아닌 다가 올 멸망이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야웨의 정해진 심판임을 알리는 것이다. 야웨을 정당성을 변호하는 것이다. 이는 예언서에 대한 본인의 이해와는 달라서 새로움을 느꼈다. 본인은 예언자들의 예언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를 통한 변화를 촉구, 야웨의 진노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르게 해석하니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아직은 모르나 나와는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은 참으로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마음을 배반하듯 본인을 계속 붙들었던 의문이 있다. 과연 이 책의 내용이 우리나라 신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주장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신학의 테두리를 우리나라로 한정짓는 것은 위험하고, 올바른 행동이 아니지만 언젠가 우리나라 신학계에 몸담을 본인으로서는 그 동향에 민감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본인의 입장에서는 신학을 접함에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신학의 기초를 닦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여 지식의 확장을 꽤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성도 갖는다. 기초를 올바로 닦아 놓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 기초의 부실화, 잘못된 신학을 형성할 수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예연서와 관련된 다른 서적을 더 많이 읽고, 공부를 깊게 해봐야 해결될 것이다. 의문과 위험성은 남았지만 어쨌든 이 책의 내용이 본인의 지적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예언서는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를 꺼리는 본문인 것처럼 본인 또한 다른 성경들보다 특히 더 많은 거리를 두었다. 예언서에 대한 성경적 배경 지식이 없어서 이해가 안 되었고, 재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학문적 지식이 전혀 없는 까닭에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어려운 내용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배경 지식이 없어서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적은 분량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더 나갈지 고민했다. 하지만 참고 끝까지 읽으니 예언서 형성과 예언자 등에 대한 조금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예언서와 관련된 다른 신학 서적을 읽을 때 - 어떠한 책이든 여전히 읽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지만 이 책을 읽을 때보다는 그나마 - 조금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생소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배경 지식을 쌓고 읽으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그처럼 이 책이 배경 지식 역할을 하여 다른 책은 - 여전히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지만 -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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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출판 - 북페뎀 09
강주헌 외 21명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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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이란 무엇일까? 한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로 된 글로 옮기는 작업? 맞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정의이다. 번역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에게 번역이란, 좁게는 '의미'를, 조금 더 나아가면 한 나라의 '문화'를 옮기는 작업이다. 광의(廣義)적으로는 '창작'이라고 한다.

 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문화와 정서 등이 다르다. 그것을 나타내는 표현법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비가 내린다고 하자. 나는 그것을 보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라고 표현을 했다. 영어로 옮겨보자. It is raining. 그렇다면 '추적추적'은? 그것과 의미가 정확히 맞는 영어 단어는 없다. 따라서 그 의미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영어 표현을 찾아야 한다. 의역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번역은 창작이라고 하는 것이다.

 번역은 상당히 고된 작업이다. 위와 같은 일로 인해 과중한 지적 노동이 이루어지고, 종일 앉아서 해야 하기에 육체 노동까지 병행된다. 그 노력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대접은 여전히 변변치 않다. 이웃 나라 일본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일본은 근대화와 함께 번역을 큰 과업으로 삼았다. 덕분에 오늘날 일본의 번역 수준은 상당히 높고, 번역작가들에 대한 대우와 인식도 좋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두 수준이 낮다. 그로 인해 번역에 대한 교육과 정보가 빈약하다. 물론 몇몇 대학과 학원 등을 통해 그것이 보충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책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격주간 잡지, '기획회의'에 계간인 '번역출판'의 2008년 분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더불에 '북페뎀'이라는 '출판 전문 무크지'의 9호로 출간된 단행본이다. 물론 그렇다고 '번역출판'의 모든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책의 기획에 맞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면 구성을 보자.

 구성은 총 5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번역의 의의, 2부는 번역출판의 현재, 3부는 번역가의 출판기획 경험기, 4부는 번역, 나는 이렇게 한다, 마지막 5부는 번역은 나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글이 에세이 형식이라 딱딱하지 않다.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본인은 번역에 매우 관심이 있는지라 읽기 전에 많은 정보를 얻길 바랐고, 그럴 것이라 기대 했다. 하지만 막상 첫 장을 펼치니 내용 형식이 기대 했던 바와 달라서 - 설명문일 줄 알았다. - 과연 이 책을 통해 기대 했던 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 의심과 실망이 들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까지는 속단은 금물! 그래서 끝까지 읽었고, 역시나 기대 했던 대로 많은 것을 얻고, 생각할 수 있었다.

 번역에 관심이 있는 이가 이 책을 집어 든다면, 그 이유는 아마 나와 같이 번역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원하는 정보를 속시원히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가령 번역가로 데뷔하는 방법, 번역가의 수입, 일감 구하는 법, 번역하는 노하우, 번역을 하기 위한 공부 등과 같은 실용적 정보는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할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대부분 에세이 형식이기에 그러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지 않다. 정보들이 각각의 글에 산발적으로 조금씩 녹아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속시원히 얻지는 못할 것이다. 일부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대신 그보다 더 값진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작가들이 번역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나 애환 등 번역작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  어쩌면 위에서 말한 정보보다는 더 현실적이고, 유용한 정보 -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것들은 번역작가 지망생들이 원하는 실용 정보보다 더 값진 정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너무나 귀하게 느껴진다.

 

 세상에 고충이 없고,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어떠한 일이든 일 그 자체는 힘들다. 다만 그것을 자신이 즐기며 할 수 있느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냐에 따라 그 일을 하는 게 힘든지, 즐거운 지가 결정될 것이다. 번역 또한 마찬가지다. 원하는 만큼의 수입을 거두기 위해서는 다른 일과 마찬기지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수입의 유지가 아니라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노력은 필요하다. 일감을 얻는 게 때론 치사하고, 아니꼬우며 비굴하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일이 고되지만 번역작가들이 그것들을 감내하는 것은 번역 그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 이 책에 그 마음이 잘 드러난다. - 수입이 얼마나 되든 - 물론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수입이 적으면 당장 그만 두겠지만 - 일이 얼마나 힘들든 그것을 계속 하는 것은 그 일을 어떻게 시작 했든 결국에는 일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번역작가가 되어 이 일이 즐겁기 때문에 하노라고 고백 하는 나를 머리 속으로 항상 그려본다.  훗날 언젠가 그 고백을 실제로 하는 나를 보게 될 것을 바라고, 그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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