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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출판 - 북페뎀 09
강주헌 외 21명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2월
평점 :
번역이란 무엇일까? 한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로 된 글로 옮기는 작업? 맞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정의이다. 번역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에게 번역이란, 좁게는 '의미'를, 조금 더 나아가면 한 나라의 '문화'를 옮기는 작업이다. 광의(廣義)적으로는 '창작'이라고 한다.
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문화와 정서 등이 다르다. 그것을 나타내는 표현법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비가 내린다고 하자. 나는 그것을 보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라고 표현을 했다. 영어로 옮겨보자. It is raining. 그렇다면 '추적추적'은? 그것과 의미가 정확히 맞는 영어 단어는 없다. 따라서 그 의미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영어 표현을 찾아야 한다. 의역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번역은 창작이라고 하는 것이다.
번역은 상당히 고된 작업이다. 위와 같은 일로 인해 과중한 지적 노동이 이루어지고, 종일 앉아서 해야 하기에 육체 노동까지 병행된다. 그 노력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대접은 여전히 변변치 않다. 이웃 나라 일본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일본은 근대화와 함께 번역을 큰 과업으로 삼았다. 덕분에 오늘날 일본의 번역 수준은 상당히 높고, 번역작가들에 대한 대우와 인식도 좋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두 수준이 낮다. 그로 인해 번역에 대한 교육과 정보가 빈약하다. 물론 몇몇 대학과 학원 등을 통해 그것이 보충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책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격주간 잡지, '기획회의'에 계간인 '번역출판'의 2008년 분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더불에 '북페뎀'이라는 '출판 전문 무크지'의 9호로 출간된 단행본이다. 물론 그렇다고 '번역출판'의 모든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책의 기획에 맞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면 구성을 보자.
구성은 총 5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번역의 의의, 2부는 번역출판의 현재, 3부는 번역가의 출판기획 경험기, 4부는 번역, 나는 이렇게 한다, 마지막 5부는 번역은 나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글이 에세이 형식이라 딱딱하지 않다.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본인은 번역에 매우 관심이 있는지라 읽기 전에 많은 정보를 얻길 바랐고, 그럴 것이라 기대 했다. 하지만 막상 첫 장을 펼치니 내용 형식이 기대 했던 바와 달라서 - 설명문일 줄 알았다. - 과연 이 책을 통해 기대 했던 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 의심과 실망이 들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까지는 속단은 금물! 그래서 끝까지 읽었고, 역시나 기대 했던 대로 많은 것을 얻고, 생각할 수 있었다.
번역에 관심이 있는 이가 이 책을 집어 든다면, 그 이유는 아마 나와 같이 번역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원하는 정보를 속시원히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가령 번역가로 데뷔하는 방법, 번역가의 수입, 일감 구하는 법, 번역하는 노하우, 번역을 하기 위한 공부 등과 같은 실용적 정보는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할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대부분 에세이 형식이기에 그러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지 않다. 정보들이 각각의 글에 산발적으로 조금씩 녹아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속시원히 얻지는 못할 것이다. 일부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대신 그보다 더 값진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작가들이 번역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나 애환 등 번역작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 어쩌면 위에서 말한 정보보다는 더 현실적이고, 유용한 정보 -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것들은 번역작가 지망생들이 원하는 실용 정보보다 더 값진 정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너무나 귀하게 느껴진다.
세상에 고충이 없고,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어떠한 일이든 일 그 자체는 힘들다. 다만 그것을 자신이 즐기며 할 수 있느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냐에 따라 그 일을 하는 게 힘든지, 즐거운 지가 결정될 것이다. 번역 또한 마찬가지다. 원하는 만큼의 수입을 거두기 위해서는 다른 일과 마찬기지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수입의 유지가 아니라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노력은 필요하다. 일감을 얻는 게 때론 치사하고, 아니꼬우며 비굴하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일이 고되지만 번역작가들이 그것들을 감내하는 것은 번역 그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 이 책에 그 마음이 잘 드러난다. - 수입이 얼마나 되든 - 물론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수입이 적으면 당장 그만 두겠지만 - 일이 얼마나 힘들든 그것을 계속 하는 것은 그 일을 어떻게 시작 했든 결국에는 일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번역작가가 되어 이 일이 즐겁기 때문에 하노라고 고백 하는 나를 머리 속으로 항상 그려본다. 훗날 언젠가 그 고백을 실제로 하는 나를 보게 될 것을 바라고, 그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