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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예언서 이해
차준희 / 한국신학연구소 / 1996년 9월
평점 :
품절
오늘날 교회 강단에서는 정체성을 잃은 설교가 설파되고 있다. 설교 본연의 목적과 역할을 무시한 채 물질을 많이 얻는 방법, 복을 많이 받는 방법 등 ‘잘 사는 법’에 관한 설교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설교자에게 주신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는, 대언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한다 하더라도 성경 66권 중 한정된 본문만 설교에 인용되고 있다. 하나님은 몇 가지 본문을 통해서만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말씀 하신다. 한정된 본문 인용은 편식이 몸의 성장 불균형을 일으키듯 성도들의 영의 성장 불균형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설교에서 특히 인용되지 않는 본문은 구약에서는 예언서, 그리고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이다. 그 본문들이 인용되지 않는 이유는 분석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 해석하였을 경우 심각한 오해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인용을 꺼린다.
본 서는 인기 없는 설교 본문인 구약 예언서의 형성과 그 연구의 역사, 그리고 예언자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총 세 명의 저자의 각기 다른 글이 실려 있다. 편자의 말을 빌리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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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으로 보면 한 명의 저자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마치 한 사람의 저작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논지에 있어서는 일관성이 있다. 그 근본 이유는 세 사람이 학문적으로 같은 계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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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네 개의 글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제목은 ‘문서 예언서 이해’, ‘예언서 연구사’, ‘예언 선포의 의도’, ‘예언자들의 메시지’이다. 네 글은 모두 논문 형식을 취하고 있고,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인의 지식이 미천하고, 학문적 분석 능력이 아직은 낮아서 본 서를 학문적으로 비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마추어 수준, 본인의 입장에서 비평 및 총평, 그리고 읽은 느낌을 정리 하고자 한다.
이 책은 세 명의 저자에 의한 네 개의 글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외견으로 봤을 때는 글들의 통일성과 각각의 개연성이 낮아 보인다. 하지만 세 저자는 한 계보에 속해 있어서 학문적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연구된 예언 선포의 의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기 위함도, 단순히 잘못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함도 아닌 다가 올 멸망이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야웨의 정해진 심판임을 알리는 것이다. 야웨을 정당성을 변호하는 것이다. 이는 예언서에 대한 본인의 이해와는 달라서 새로움을 느꼈다. 본인은 예언자들의 예언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를 통한 변화를 촉구, 야웨의 진노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르게 해석하니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아직은 모르나 나와는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은 참으로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마음을 배반하듯 본인을 계속 붙들었던 의문이 있다. 과연 이 책의 내용이 우리나라 신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주장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신학의 테두리를 우리나라로 한정짓는 것은 위험하고, 올바른 행동이 아니지만 언젠가 우리나라 신학계에 몸담을 본인으로서는 그 동향에 민감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본인의 입장에서는 신학을 접함에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신학의 기초를 닦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여 지식의 확장을 꽤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성도 갖는다. 기초를 올바로 닦아 놓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 기초의 부실화, 잘못된 신학을 형성할 수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예연서와 관련된 다른 서적을 더 많이 읽고, 공부를 깊게 해봐야 해결될 것이다. 의문과 위험성은 남았지만 어쨌든 이 책의 내용이 본인의 지적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예언서는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를 꺼리는 본문인 것처럼 본인 또한 다른 성경들보다 특히 더 많은 거리를 두었다. 예언서에 대한 성경적 배경 지식이 없어서 이해가 안 되었고, 재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학문적 지식이 전혀 없는 까닭에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어려운 내용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배경 지식이 없어서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적은 분량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더 나갈지 고민했다. 하지만 참고 끝까지 읽으니 예언서 형성과 예언자 등에 대한 조금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예언서와 관련된 다른 신학 서적을 읽을 때 - 어떠한 책이든 여전히 읽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지만 이 책을 읽을 때보다는 그나마 - 조금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생소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배경 지식을 쌓고 읽으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그처럼 이 책이 배경 지식 역할을 하여 다른 책은 - 여전히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지만 -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