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가 살아야 회사가 산다
페트릭 렌시오니 지음, 김정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회의는 기업이든 어디든 한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그 시간을 통해서 집단의 유지를 위한 건설적인 계획들이 오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의는 지겹다. 회의는 곤욕스럽다. 무엇 때문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안건과 상관 없는 대화들이 회의의 반을 채우기 때문이다. 
 회의가 시작 되기 전에 오늘은 무슨 이야기가 오갈지 기대 된다. 어떠한 계획들로 우리가 더 이로워질지 기대된다. 하지만 막상 회의가 시작되면 그 기대들을 언제 했냐는 듯 감쪽같이 사라진다. 시간은 흐르는데 안건에 대한 얘기보다는 불필요한 농담이 주를 이루니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도대체 회의를 왜 하는가라고 자조 섞인 한숨이 절로 나온다.
 회의가 지루한 또 다른 이유는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사람이 한정 되어 있기 때문이다. 늘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만 참여한다.
 회의에서 다른 이의 어떠한 아이디어가 나를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들으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러나 정작 나오는 아이디어의 수는 기대에 못 미친다. 항상 말하는 사람만 말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데, 좀더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은데 다른 입들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덕분에 회의는 점점 생동감을 잃는다.

 

 이 책에서 회의는 영화보다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회의는 태생적으로 영화보다 더 열정과 몰입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에 대한 근거로 "회의는 쌍방향이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회의를 하는 동안 우리는 능동적인 참여자가 된다고 말한다. 
 두 번째 이유로, "회의는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회의 끝에 우리가 내린 결정들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런 회의가 안고 있는 문제가 두 가지 있다고 말한다. 첫째로 회의는 지루하다고는 것이다. 그리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왜 회의를 지루하게 느낄까? 역시 저자는 '극적 요인' 혹은 '갈등'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회의에 갈등이 있으면 "참석자들의 관심을 계속 붙들 수 있고 더욱 열정적인 토론을 촉발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회의가 비효율적인 이유는 "맥락에 따른 구조를 결핍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다양한 종류의 회의를 준비하되 목적과 형시그 시간을 기준으로 각각의 회의들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보다 나은 회의를 위해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일일 보고 회의',' 주별 전술 회의', '월례 전략 회의', '분기별 사외 평가회'이다.
 일일 보고 회의의 목적은 하루 일정과 활동을 공유하는 것으로 5분 동안 진행 할 것을 말한다, 그리고 주별 전술 회의는 주별 활동과 분석 도구를 통한 회사의 위치를 평가하고, 전술적인 장애 요인과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45~90분의 시간 제한을 둔다. 원례 전략 회의는 장기간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주제들에 대해 논의하고, 분석 하고, 브래인스토밍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데 시간은 2~4시간 사이로 정한다. 끝으로 분기별 사외 평가회는 전랙, 산업 경향, 경쟁사 조망, 핵심 인력, 조직 발달을 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1~2일에 걸쳐 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 제시한 방법들을 우리에 맞게 모두 다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들을 상황에 맞게 변형시키거나 참고하여 응용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책의 내용은 스토리텔링 형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초반에는 조금 지루한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책에서 말하는 '첫 10분 휘어 잡기'에 실패 했기 때문이다. 그것과 연관되어 초반이 너무 장황했다. 그래서 회의를 지루하고 비효율적으로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의 전반부를 읽는 것이 지루하고 비효율적이라 느껴 본격적인 내용으로 넘어 갈까 생각했지만 마음을 진정 시켰다.



 회의에서 결정되는 사항들은 우리의 삶과 직접 맞닿아 있다.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들은 현실에 직접 바로바로 적용이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회의는 지루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와는 먼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거기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잘못된 결과가 발생되고,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은 물론 나까지 타격을 받게 된다.

 아무리 회의의 구조와 요소를 바꾸어도 그것에 임하는 나의 자세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내가 회의에 관심이 없으면 회의는 역시 지루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회의! 다시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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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6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경은 가공되지 않은 원석과 같다.
 
그래서 그것을 자기 스스로 가공하면 지금까지
다른 누군가 가공한 보석과는 다른 빛과 가치를
드러낸다.
 
그리고 스스로 가공했을 떄 지금까지 가공된 다
른 것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만의 다른 맛이
우러 난다.
 
성경을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나만의 보석으로
만들라!!!
 
그것은 평생에 걸쳐 해야 할 방대한 작업이지만,
작업이 진행 될수록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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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다음은 미국에서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이고, 사회비평가이며 희곡 작가 등으로 유명한 하워드 진의 말이다.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고 싶다면 우리를 대신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일부 종교 지도자에게 무작정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정말로 생각하는 존재라면 혼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가운데 놓여 있다. 하루에 인터넷에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정보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고, 그런 까닭에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거두어 들인다. 그런데 그렇게 얻는 모든 정보에 대한 진위 여부를 100% 판가름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정보의 은폐 및 조작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민감한 정보일 수록 더욱 그렇다.

 지난 세기들에서 국민들은 대개 정보 습득자에 불과 했다. 중요한 정보일수록 더욱 그랬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배포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등 기술 문명이 진보한 덕분이다. 그것은 곧 정보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부와 언론이 결탁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철저한 정보 조작과 은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 정부의 첫 과업이 언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건 암묵적으로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어느 언론은 정부에 동조하고, 또 어느 언론은 반기를 든다. 어쨌든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다. 언론의 생명은 사실 보도인데 정부의 편에 선다는 것은 그것을 어기겠다는 결심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힘으로 정부와 언론의 결탁을 견재한다. 그것의 단적인 예가 지금은 약간 수그러들었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촛불 집회이다. 그것은 가히 정보 생상자 및 감시자 역할의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정부와 언론의 정보 조작 및 은폐에 국민은 맞대응하여 그들의 행태를 힐난하고, 그들만이 힘과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국민은 정부에 반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이어서도 안 된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입바른 말을 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일정한 거리가 유지해야 바른말을 하기가 쉽다.

 정부가 아무리 밉상을 보이더라도 국민은 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마틴 루터가 애써서 개인에게 준 성경 해석의 권리를 일부 종교 지도자들에게 빼앗겨 다시금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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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데이비드 바사미언.하워드 진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미국에서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이고, 사회비평가이며 희곡 작가 등으로 유명한 하워드 진과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영어권에 방송되는 얼터너티브 라디오의 진행자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대담을 담은 책이다.
 미국의 정치와 역사, 예술 등을 주요 골자로 하여 '자본주의의 위기는 구조적 위기다', '예술가들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역할이 있다', '역사는 기억되어야 한다' 등 총 8개의 주제로 세 장소에서 각기 다른 날 이야기 하였다. 
 내용은 참으로 흥미로웠는데, 두 사람과의 대화에서 하워드 진은 미국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총 8개의 주제로 되어 있는데, 아래에서는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몇 개의 주제와 그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제 2장 '지배계급의 논리에 저항해야 한다'에서는 마틴 루서 킹 2세 등 지배 계급에 저항한 몇몇 인물과 그러한 사례 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주요 내용이 우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킹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몇몇 이야기, 이를테면 그는 사회주의를 꿈꾸었다는 사실 등에 대해서만 흥미가 갔다. 
 내용상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장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저항해야 합니다.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더라도 말입니다." 라고만 언급하고 다른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왜 지배계급에 저항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은 채 말이다.

 제 4장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테러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전쟁과 테러에 대한 이유와 그 결과의 모순에 대해 꼬집는다. 공감 갔던 그의 말 중 몇 가지를 인용하면,
 "테러가 그럴듯하게 포장된 정치적 이유로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짓이라면, 아무리 테러를 응징한다는 이유로 미화되더라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천 명을 죽인 행위는 명백한 테러입니다."
 "중동에서 침략 전쟁을 벌이느라 무기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면서 어린 학생들을 위한 급식을 지원할 돈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작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끔찍한 기사였습니다."
 미국의 행태에 대한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실익과 명분 없는 막무가내 행패라는 것이다.

 제 6장 '비판적 사고와 의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에서는 그것들이 국민들에게 결여되면 정부에게 어떻게 끌려 다니게 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 준다.
 
 이 책에서 하워드 진은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한결 같이 유지한다. 정부의 잘못된 행태와 꿍꿍이를 과감하고도 정확하게 밝힌다. 누군가가 해야 하지만 하지 않는 것을 그가 대신 한다. 그런 그의 말이 나의 뇌리에 남는다.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고 싶다면 우리를 대신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일부 종교 지도자에게 무작정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정말로 생각하는 존재라면 혼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우리에게는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가 100% 주어져 있지 않기 떄문이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가운데 놓여 있다. 하루에 인터넷에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정보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고, 그런 까닭에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거두어 들인다. 그런데 그렇게 얻는 모든 정보에 대한 진위 여부를 100% 판가름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정보의 은폐 및 조작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민감한 정보일 수록 더욱 그렇다.

 지난 세기들에서 국민들은 대개 정보 습득자에 불과 했다. 중요한 정보일수록 더욱 그랬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배포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등 기술 문명이 진보한 덕분이다. 그것은 곧 정보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부와 언론이 결탁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철저한 정보 조작과 은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 정부의 첫 과업이 언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건 암묵적으로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어느 언론은 정부에 동조하고, 또 어느 언론은 반기를 든다. 어쨌든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다. 언론의 생명은 사실 보도인데 정부의 편에 선다는 것은 그것을 어기겠다는 결심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힘으로 정부와 언론의 결탁을 견재한다. 그것의 단적인 예가 지금은 약간 수그러들었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촛불 집회이다. 그것은 가히 정보 생상자 및 감시자 역할의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정부와 언론의 정보 조작 및 은폐에 국민은 맞대응하여 그들의 행태를 힐난하고, 그들만이 힘과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국민은 정부에 반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이어서도 안 된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입바른 말을 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일정한 거리가 유지해야 바른말을 하기가 쉽다.

 정부가 아무리 밉상을 보이더라도 국민은 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마틴 루터가 애써서 개인에게 준 성경 해석의 권리를 일부 종교 지도자들에게 빼앗겨 다시금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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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간접경험', '기분전환', '사고력향상', '시간활용', '정보습득', '지식확장'  

등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들이 목적이 되어 책을
읽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표지나 목차 그리고 간략한 내용 등을 보고 마음이 갑작스레 반응하여 '아, 이
책 괜찮은데.' 라며 읽기도 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목적으로 인한 책읽기가 아닙니다. 단순한 동인(動因)에 따른 책읽
기 입니다.

 우리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책을 읽을 떄 가장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자세
는 '비판적 사고'와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책이 출간 되기 전에 출판사에 의해 그 안에 담긴 사상과 주장이 검열되고, 저
자와 합의 하에 출판사의 성격에 맞춰 어느 선까지는 수정을 합니다. 출판사도 하나
의 업체이기에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식과 정보, 사상 전파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책을 읽을 때 그 책의 내용에 마음을 열되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무
별한 자세는 결코 옳은 자세도 가능한 자세도 아닙니다. 그 책의 내용이 진리가 아닐
뿐더러 자신의 생각과 상충되는 부분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충 되는 부
분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그 책을 읽을 만큼의 견문과 사고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자
신만의 생각을 정립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책을 바르게 읽기 위해서는,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용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물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그 안에 담긴 내용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물음은 긴장감을 계속적
으로 유발하여 집중도를 높임니다. 그리고 흥미를 돋우어 능동적 책읽기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것은 책 내용을 단순히 훑는 것으로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씹게 만듭
니다. 소화를 시켜 내 것이 되게 합니다. 
 물론 매구절, 모든 내용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물음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켜 지
치게 만듭니다. - 그것은 책읽기를 방해합니다. -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자신의 의견과 다르거나 궁금한 부분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물음은 책읽기
에 많은 도움을 주니 책읽기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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