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가공되지 않은 원석과 같다.
 
그래서 그것을 자기 스스로 가공하면 지금까지
다른 누군가 가공한 보석과는 다른 빛과 가치를
드러낸다.
 
그리고 스스로 가공했을 떄 지금까지 가공된 다
른 것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만의 다른 맛이
우러 난다.
 
성경을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나만의 보석으로
만들라!!!
 
그것은 평생에 걸쳐 해야 할 방대한 작업이지만,
작업이 진행 될수록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짧은 글

 다음은 미국에서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이고, 사회비평가이며 희곡 작가 등으로 유명한 하워드 진의 말이다.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고 싶다면 우리를 대신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일부 종교 지도자에게 무작정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정말로 생각하는 존재라면 혼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가운데 놓여 있다. 하루에 인터넷에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정보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고, 그런 까닭에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거두어 들인다. 그런데 그렇게 얻는 모든 정보에 대한 진위 여부를 100% 판가름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정보의 은폐 및 조작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민감한 정보일 수록 더욱 그렇다.

 지난 세기들에서 국민들은 대개 정보 습득자에 불과 했다. 중요한 정보일수록 더욱 그랬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배포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등 기술 문명이 진보한 덕분이다. 그것은 곧 정보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부와 언론이 결탁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철저한 정보 조작과 은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 정부의 첫 과업이 언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건 암묵적으로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어느 언론은 정부에 동조하고, 또 어느 언론은 반기를 든다. 어쨌든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다. 언론의 생명은 사실 보도인데 정부의 편에 선다는 것은 그것을 어기겠다는 결심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힘으로 정부와 언론의 결탁을 견재한다. 그것의 단적인 예가 지금은 약간 수그러들었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촛불 집회이다. 그것은 가히 정보 생상자 및 감시자 역할의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정부와 언론의 정보 조작 및 은폐에 국민은 맞대응하여 그들의 행태를 힐난하고, 그들만이 힘과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국민은 정부에 반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이어서도 안 된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입바른 말을 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일정한 거리가 유지해야 바른말을 하기가 쉽다.

 정부가 아무리 밉상을 보이더라도 국민은 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마틴 루터가 애써서 개인에게 준 성경 해석의 권리를 일부 종교 지도자들에게 빼앗겨 다시금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데이비드 바사미언.하워드 진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미국에서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이고, 사회비평가이며 희곡 작가 등으로 유명한 하워드 진과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영어권에 방송되는 얼터너티브 라디오의 진행자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대담을 담은 책이다.
 미국의 정치와 역사, 예술 등을 주요 골자로 하여 '자본주의의 위기는 구조적 위기다', '예술가들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역할이 있다', '역사는 기억되어야 한다' 등 총 8개의 주제로 세 장소에서 각기 다른 날 이야기 하였다. 
 내용은 참으로 흥미로웠는데, 두 사람과의 대화에서 하워드 진은 미국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총 8개의 주제로 되어 있는데, 아래에서는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몇 개의 주제와 그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제 2장 '지배계급의 논리에 저항해야 한다'에서는 마틴 루서 킹 2세 등 지배 계급에 저항한 몇몇 인물과 그러한 사례 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주요 내용이 우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킹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몇몇 이야기, 이를테면 그는 사회주의를 꿈꾸었다는 사실 등에 대해서만 흥미가 갔다. 
 내용상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장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저항해야 합니다.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더라도 말입니다." 라고만 언급하고 다른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왜 지배계급에 저항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은 채 말이다.

 제 4장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테러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전쟁과 테러에 대한 이유와 그 결과의 모순에 대해 꼬집는다. 공감 갔던 그의 말 중 몇 가지를 인용하면,
 "테러가 그럴듯하게 포장된 정치적 이유로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짓이라면, 아무리 테러를 응징한다는 이유로 미화되더라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천 명을 죽인 행위는 명백한 테러입니다."
 "중동에서 침략 전쟁을 벌이느라 무기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면서 어린 학생들을 위한 급식을 지원할 돈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작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끔찍한 기사였습니다."
 미국의 행태에 대한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실익과 명분 없는 막무가내 행패라는 것이다.

 제 6장 '비판적 사고와 의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에서는 그것들이 국민들에게 결여되면 정부에게 어떻게 끌려 다니게 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 준다.
 
 이 책에서 하워드 진은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한결 같이 유지한다. 정부의 잘못된 행태와 꿍꿍이를 과감하고도 정확하게 밝힌다. 누군가가 해야 하지만 하지 않는 것을 그가 대신 한다. 그런 그의 말이 나의 뇌리에 남는다.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고 싶다면 우리를 대신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일부 종교 지도자에게 무작정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정말로 생각하는 존재라면 혼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우리에게는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가 100% 주어져 있지 않기 떄문이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가운데 놓여 있다. 하루에 인터넷에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정보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고, 그런 까닭에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거두어 들인다. 그런데 그렇게 얻는 모든 정보에 대한 진위 여부를 100% 판가름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정보의 은폐 및 조작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민감한 정보일 수록 더욱 그렇다.

 지난 세기들에서 국민들은 대개 정보 습득자에 불과 했다. 중요한 정보일수록 더욱 그랬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배포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등 기술 문명이 진보한 덕분이다. 그것은 곧 정보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부와 언론이 결탁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철저한 정보 조작과 은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 정부의 첫 과업이 언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건 암묵적으로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어느 언론은 정부에 동조하고, 또 어느 언론은 반기를 든다. 어쨌든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다. 언론의 생명은 사실 보도인데 정부의 편에 선다는 것은 그것을 어기겠다는 결심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힘으로 정부와 언론의 결탁을 견재한다. 그것의 단적인 예가 지금은 약간 수그러들었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촛불 집회이다. 그것은 가히 정보 생상자 및 감시자 역할의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정부와 언론의 정보 조작 및 은폐에 국민은 맞대응하여 그들의 행태를 힐난하고, 그들만이 힘과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국민은 정부에 반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이어서도 안 된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입바른 말을 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일정한 거리가 유지해야 바른말을 하기가 쉽다.

 정부가 아무리 밉상을 보이더라도 국민은 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마틴 루터가 애써서 개인에게 준 성경 해석의 권리를 일부 종교 지도자들에게 빼앗겨 다시금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간접경험', '기분전환', '사고력향상', '시간활용', '정보습득', '지식확장'  

등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들이 목적이 되어 책을
읽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표지나 목차 그리고 간략한 내용 등을 보고 마음이 갑작스레 반응하여 '아, 이
책 괜찮은데.' 라며 읽기도 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목적으로 인한 책읽기가 아닙니다. 단순한 동인(動因)에 따른 책읽
기 입니다.

 우리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책을 읽을 떄 가장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자세
는 '비판적 사고'와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책이 출간 되기 전에 출판사에 의해 그 안에 담긴 사상과 주장이 검열되고, 저
자와 합의 하에 출판사의 성격에 맞춰 어느 선까지는 수정을 합니다. 출판사도 하나
의 업체이기에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식과 정보, 사상 전파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책을 읽을 때 그 책의 내용에 마음을 열되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무
별한 자세는 결코 옳은 자세도 가능한 자세도 아닙니다. 그 책의 내용이 진리가 아닐
뿐더러 자신의 생각과 상충되는 부분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충 되는 부
분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그 책을 읽을 만큼의 견문과 사고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자
신만의 생각을 정립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책을 바르게 읽기 위해서는,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용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물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그 안에 담긴 내용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물음은 긴장감을 계속적
으로 유발하여 집중도를 높임니다. 그리고 흥미를 돋우어 능동적 책읽기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것은 책 내용을 단순히 훑는 것으로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씹게 만듭
니다. 소화를 시켜 내 것이 되게 합니다. 
 물론 매구절, 모든 내용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물음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켜 지
치게 만듭니다. - 그것은 책읽기를 방해합니다. -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자신의 의견과 다르거나 궁금한 부분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물음은 책읽기
에 많은 도움을 주니 책읽기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골든 슬럼버'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황금졸음', 단어 자체의 뜻은 알겠지만 도대체 진정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이야기의 구성은 참으로 특이하다. 퍼즐식 구성으로, 1부 '사건의 시작', 2부 '사건의 시청자', 3부 '사건 20년 뒤', 4부 '사건', 5부 '사건 석 달 뒤'로 이어진다.
 1부와 2부는 같은 대형 사건을 목격하는 다른 두 무리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 3부는 그 사건에 대한 훗날의 이야기, 4부는 본론, 마지막 5부는 사건이 종결된 후의 이야기다. 처음 맞는 구성방식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맞는 톡특한 구성이기에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미 2부에서 사건에 대한 윤곽이 밝혀지고, 결말이 맺어진다. 그리고 3부에서는 사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부연 설명을 하여 이미 결말이 난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4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퍼즐이 맞춰지듯 사건의 진실이 하나하나 밝혀진다. 앞의 세 장에서의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설명된다.

 4부에서 주인공인 '아오야기 마사하루'의 뒤를 쫓아가며 2부에서 밝혀진 사건의 전말이 싫은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조작된 사실들이 하나하나 뒤집혀 조금씩 진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상당했다.
 그러나 과거를 회상하는 씬에서는 가끔 지루함이 들었다. 소설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는 독자들에게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인데 굳이 이 내용을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부분들이 꽤 있었다. 그렇게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에 지루함이 들었다. 그리고 자세히 설명되지 않은 채 은근슬쩍 넘어간 부분도 있었다. 페이지가 상당히 넉넉한데 뭐가 급해서 그냥 지나쳤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생겼다.
 가장 큰 아쉬움은 주인공에 대한 결말이 바랐던 대로 이루져 기뻤지만 사건에 대한 진실을 끝내 밝히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독자의 상상에 맡겨 버렸다는 점이다. 일을 상당히 크게 벌려 놓고,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않은 것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지루한 부분은 4부 초, 중반에 몰려 있고, 그 이후부터는 내용이 나름대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해 책을 계속 붙들게 되었다.



 살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때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정말 피말리는 기분이 든다. 아무리 해명하려 해도 "됐어." 라는 반응은 나를 절망케 한다.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인공인 '마사하루'가 수사관에게 자신은 "범인이 아니다" 라고 부인하는 대목이다. 몇 번이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수사관은 "범인들은 다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한다며" 그의 말을 잘라 버린다. 그는 범인이 정말 아닌데 결코 믿지 않는 수사관을 소설속으로 들어가 때려 눕히고 싶은 심정이 들기까지 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소설의 한 대목에 공감이 간다.

 '다수 의견이나 여론, 시청자의 흥미나 취향에 맞지 않는 정보는 내보내지 않는다, 아니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이 매스컴의 속성이다. 그래서 매스컴은 안 된다고 말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매스컴이란, 그리고 보도란 그런 것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내보내는 정보의 취사선택은 한다.' p346
 
 언론의 생명은 사실과 정확성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사실만을 보도한다. 아무리 중요하고, 정보 습득자에게 필요한 내용일지라도 자신의 성격과 필요에 맞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는다. 여기서 진실 왜곡이 발생한다. 진실 같지만 사실은 진실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윗 선에서 압력이 들어오면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기도 한다.

 한 사람을 다수가 매장시키는 것은 매우 쉽다. 소위 말하는 왕따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집단의 광기는 한 사람에 대한 왜곡을 낳는다. 죄의식 따위는 없다. 이미 목적에 눈이 멀어 도덕이 마비된 까닭이다. 다수에 의한 사실 조작과 술수 앞에 한 사람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진실된 목소리보다 다수의 일치되는 거짓된 목소리가 더욱 설득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보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정보들이 넘쳐난다. 그중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우리는 이미 조작된 정보에 놀아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보, 다 믿을만한 것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