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의 기도 - 불꽃같은 열정의 기도 사람
마틴 루터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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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아 역사에 이름이 남은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규칙적인 말씀 묵상과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여 그 심령에 말씀이 충만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뭇사람들처럼 하루에 세 번 - 식 전에 짧게하는 기도 - 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 시간을 기도하여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큰 일을 일으키고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모범 되시는 주님을 보자. 그분은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지 무슨 일을 하시든지 항상 기도를 먼저 하신 후에야 할 일을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하루 세 번, 식사 전에 짧게 하는 기도 외에 하루 중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흔히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한다. 대화란 서로의 생각을 나눔으로써 서로에 대해 더 많이. 더 제대로 알아 보다 가까워지기 위한 수단이다. 더 가까워지면 무슨 이로움이 있을까? 언제든 거리낌 없이 서로를 도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는 대화 - 기도를 통해 보다 더 가까워져 서로를 언제든 도울 수 있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기도가 많아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 많이 도와주시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분께 더 순종하고 헌신하게 된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우리의 겁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마음속에 확신이 가득차 보다 담대하게 된다. 그로 인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더 활발히 운행하시게 된다. 때문에 기도의 사람은 큰 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그만큼 그 심령을 통해 활발히 역사하시는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활발히 운행하지 못하시니까. 

 

 마틴 루터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도하지 않고 일에 힘쓰는 것은 뿌리를 내리지 않은 채 위로만 치솟으려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본문 5p) 하루도 거르지 않고 네 시간씩 기도 했다는 그의 말이니 그 말에 신뢰감이 더한다. 이 책은 그런 기도의 사람 마틴 루터에 관한 책이다. 아니 책 제목과 같이 마틴 루터의 기도에 관한 책이다.  

 루터는 그의 친구이자 전속 이발사인 페터 베스켄도르프에게 "어떻게 하면 제대로 기도할 수 있는지 방법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책을 쓰게 된다.  

 총 2부로 구성 되어 있는 이 책은 전반부에서는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을 통한 기도의 방법 그리고 순수한 기도의 습관을 루터가 이야기 한다. 후반부에서는 스펄전 칼리지의 학장을 지낸 레이먼드 브라운의 '네 명의 영적 거장들' 이라는 저서에 담긴 루터의 기도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였다.  

 1부에서 말하는 루터의 기도 방법은 루터가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으로 어떻게 기도를 드렸는지 설명한다. 한 가지를 예를 들면 이렇다. 루터는 열 계명에서 하나하나 각 계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은 어떠한 내용으로 기도를 하는지, 각 계명을 바탕으로 무엇을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2부에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레이먼드의 루터의 기도에 관한 주석을 싣고 있는데 그 내용의 반이 1부의 내용과 겹친다. 1부의 내용을 좀더 자세한 주제에 맞게 분류 했기 떄문이다. 

 루터의 기도라고 하기에 무척이나 기대했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그는 어떻게 기도 드릴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의 기도를 보고 나니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특별한 내용의 기도를 드릴 줄 알았는데 거창한 미사여구가 없고,그의 명성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하고, 기본적인 내용으로 기도를 했기 떄문이다. 물론 이 책 - 편지 - 은 기도에 대해 잘 모르는 그의 친구가 이해하기 쉽게 썼기에 내용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으니 이해 할 만도 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라, 투박 할지라도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느냐 담겨 있지 않느냐이기 때문에 나의 기대는 적절치 못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용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꽤 만족스럽다. 다만 2부 내용의 절반이 - 2부의 내용은 1부의 내용보다 더 많다! 그러한 가운데 그 반이 1부와 겹친다! - 1부 내용과 같기 때문에 큰 실망감이 들었다. 새로운 내용이 나와도 그것에 만족할까 말까인데 상당히 많은 내용이 중복되니 실망감이 안 들 수 있겠는가!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조금이지만 루터의 기도와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별점으로 이 책을 평가하고,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다섯개를 만점으로 하여 세 개 반을 주고 싶다. 내용은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바로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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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크리스천 - 크리스천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실수 10가지
마크 애터베리 지음, 마영례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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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많은 말씀을 남기셨다. 사랑하라, 용서하라, 당신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는 것 등이었다. 이 중 특징적인 것은 마지막 말씀일 것이다. 어느 종교인들 전도를 안 하겠냐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전도하라는 종교가 또 있을까? 저 말씀 이외에 특징적인 말씀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이었다.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이 되고, 제 맛을 잃은 이 세상에 소금이 되라셨다. 그러나 전체 크리스천들 중 그 말씀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 이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 전체를 100으로 봤을 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잘잘못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그러한 삶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리스천들에게는 윤리, 도덕적으로 자신들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 때문에 그 선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고, 자칫 어기기라도 하면 맹비난을 퍼붓는다. 여기서 간과한 사실은 크리스천들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따르는 신을 내적으로 결코 완벽하게 닮은 이들이 아니다. 단지 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저지르면 관대하고, 크리스천들이 저지르는 것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나 - 죄로 인해 엄중한 재판을 받는 것은 크리스천과 그렇지 않은 이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 크리스천들이 정말로 비난 받아야 할 부분은 섬기는 심을 따르지 않는 것, 명력한 말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 비난 받아 마땅한 것이다. 

 어쨌든 크리스천들도 인간이기에 슬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으로서 저지러서는 안 되는 실수들에는 뭐가 있을까? 뒤짚어 생각해서, 크리스천들이 저지르는 실수에는 뭐가 있을까? 이 책에서 그 대표적인 10가지를 제시한다.

 1. 그리스도의 신부에게 흙탕물을 튀기는 것
 2.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대신 교회로 데려가는 것
 3. 우리의 신앙수준 이하로 살아가는 것
 4.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 그 이상으로 말하는 것
 5.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는 것
 6. 우리끼리 서로 싸우는 것
 7.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
 8. 대충하고 마는 것
 9. 양떼 속에 이리가 살도록 허용하는 것
 10.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을 용납하는 것

 이 유형들은 저자가 목회를 해오며 관찰하고, 연구한 것들을 종합한 것이다. 이 유형들은 크리스천들이 교회 내에서 흔하게 저지르고 있는 실수들이다. 이 실수들 중 우리 각자는 과연 몇 가지나 저지르고 있을까? 아마 하나도 저지르고 있지 않다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처럼 실수나 죄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없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무난하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없다. 모두 공감가는 내용이다. 그래서 기신자라면 자신도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지 돌아보게 하고, 초신자라면 자신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기준이 된다. 

 가장 뒷 부분에는 10가지 실수에 해당하는 그룹 토의나 개인적인 묵상을 위한 질문이 있어 조금 더 묵상을 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다만 그 냐용이 그리 많지 않아 깊이 있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10가지 실수는 크리스천들이 교회 내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들이다. 그러나 몇 가지 실수는 교회 외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실수들이다. 앞서 크리스천들은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윤리, 도덕적 잣대로 평가 받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교회 외적으로 드러나는 실수들은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도 그러한 모든 실수는 온전한 교회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내외적으로, 본질적으로 주께서 바라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고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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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 신앙에서 벗어나라 - 영적 각성과 부흥을 불러오는 개혁의 외침 토저 대표작 시리즈 6
에이든 토저 지음, 이태복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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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피해야 할 행동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게으름', '습관' 등이다. 게으름이야 전적으로 부정적인 행동이지만 습관은 무엇을 어떻게 들이냐에 따라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행동이 된다. 
 
 사전에서는 습관을 '버릇'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버릇이란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 버린 행동'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습관이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행하여 몸에 깊게 배어버린 행동이다. 몸에 뿌리 깊게 고착 되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통제 할 틈도 없이 행해지는 까닭이다.

 신앙생활에도 습관이 있다.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는 이들이 그 예 - 이들을 비난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이기 때문에 언급한 것이다. - 이다. 모든 선데이 크리스천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일요일에 교회를 가야하기 때문에 간다. 처음에는 신앙과 교리로 인해 교회에 갔겠지만 그것들이 마음에 차지하는 면적이 줄어들게 됨에 따라 형식적으로 가게 된다. 그때부터 교회에 가야하는 분명한 목적을 잊은 채 습관적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문제를 진단하고, 2부에서는 해걀책을 제시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행동을 촉구한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본서에서 말하는 습관적 신앙이란 앞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개개인의 행동적 습관이 아니다. 교회의 습관을 말한다. 좀더 원론적인 부분인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습관을 말하는 것이다. 본문을 다 살펴보는 것은 무리가 따르니 한 부분만 살펴보자. 

 1부 4장 '습관적인 종교의식에 빠진 교회'를 보자. 저자인 토저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가 습관적인 상태에 빠지는 것은 바로 개인들이 습관적인 상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p56) 

 교회란 무엇인가?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 혹은 집합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몸을 구성하는 개개인이 습관적인 상태에 빠지면 교회 또한 습관적인 상태에 빠지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습관적 상태의 문제점이 무엇일까?

  "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적 감성이 점점 무뎌지고 한때는 아주 선명하게 들리던 하나님의 음성이 점점 더 희미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p58) 

 습관적 상태의 문제는 목자의 음성을 듣으려 하지 않는 혹은 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양들처럼 중구난방 제 갈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순종, 변화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는 기독교의 중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복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p58) 

 개신교가 어떻게 탄생 했는가? 신앙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부패한 로마 교회에 대한 저항으로 생겨났다. 올바른 것으로의 변화를 꾀하여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복음의 요소이다. 핵심이다. 바로 잘못된 것에서 올바른 것으로의 회귀 말이다. 그렇다면 왜 습관적인 상태에 머무를까? 저자는 그것을 세 가지로 말한다.  

 1) 진정으로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훈련을 위해 사탄에게 넘겨졌기 때문이다.
 3) 죄 때문이다. 

이 습관들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죄를 자백' 하라고 말한다. 회개 만큼 강령한 자기 부인과 낮아짐은 없지 않음을 누구도 반박 못할 것이다. 

 지면 관계상 한 장만 살펴보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토저 목사답게 명료하다. 핵심을 바로 찌른다. 여느 작가들처럼 미사여구가 많지 않다. 비유나 예화를 통해 에두르지 않는다. 그래서 요점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초신자는 내용이 조금 어려울수도 있겠다. 교회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신자는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고, 미국 교회 이야기라는 것이 조금 걸리긴 한다. 하지만 우리 교회가 미국 교회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내용에 거리감은 들지 않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인 토저 목사는 1960년 대에 소천하였음에도 그 말씀이 오늘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통찰력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다르게 보자면 50년이 다 되도록 교회가 전혀 변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로마 교회는 교권이 강해지면서 세속화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것에 반박하여 생겨난 것이 '개신교'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개신교도 중세의 교회와 같이 모양은 다르지만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개신교의 특징은 흐르는 물이라는 것이다. 개신교는 변혁이 생명이다. 그러나 오늘의 개신교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습관에 젖어 점점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영적 각성과 부흥은 둑을 헐어 물이 흐르게 할 때에야 찾아온다. 개혁은 고여서 썩은 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둑을 허물기 전에는 결코 이룰 수 없다. 개신교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명령을 어기고, 자기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전도를 핑계 삼아 불신자를 개종시켜 함께 썩게 만들고 있다. 개신교의 사명이 무엇인가? 믿지 않는 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개신교는 어떠한가? 새 생명은 커녕 죽음을 주고 있다. 이것이 모두 습관적 신앙, 죽은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능력 잃은 교회. 썩어 가는 교회는 다시 능력을 회복하여 다가올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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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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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위기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으며 살고 있다. 경제 위기, 기초 학문의 위기. 위기, 위기, 위기... 위기라는 말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보면 위기란,

  "위험한 고비나 시기"

이다. 한 마디로 '안 좋은거'다.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위기 없는 삶이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인생 자체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인생 자체가 위기속의 삶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지금 당장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바로 몇초 후에 나에게 사고가 닥칠지, 닥치지 않을지 예상할 수 있는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인생 자체가 위기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부정적인가?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보자.

 '전화위복( )'이라고 위기 없이 성장한 사람, 그것 없이 꿈을 이룬 사람은 없다. 소위 성공 했다 불리는 사람은 숱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이다. 실패를 거듭함으로 성공의 비결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실패를 통해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위기는 단지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Homo bookus'
 이 무슨 괴이한 말인가? 굳이 번역(?) 하자면 '책 사람'이 되지 않을까? 책 사람? 말이 복잡하니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바꾸자. 책을 읽는 사람. 이제 쉬워졌다.

 책이란 무엇인가? 인류의 지적 재산이 담긴 정보의 보고요, 인류가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 할 것이라는 흔적과 증거이다. 왜 인간은 책을 쓰기 시작 했고, 책을 쓰며 책을 남길까?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자면, 그것은 '인간은 어디서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철학적 논제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책을 남기는 것은 앞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인간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거, 인류의 존재를 증거하는 것이다. 왜 인간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할까? 그것은 존재의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유는 삶의 이유이다. 내가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명확하다면 삶의 방황은 현격히 줄어들게 된다. 물론 그것이 없어도 전혀 지장 없이 잘 사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말이다.

 앞서의 이야기는 철학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실제적으로 살펴볼까? 인간이 책을 읽고, 쓰는 이유는 가르침을 얻고, 전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왜 필요한가? 후손들에게 더 낳은 삶을 물려 주고 싶은 지극히 자연스런 종족 보전 본능에 따른 것이다. 자식이 더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더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다. 무엇보다 내 지식이 모자라니 이 얘기는 여기서 그만 하련다.



 한국출판연구소가 실시한 '200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2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조사 됐다"고 한다. "그게 어째서?"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어째서... 그게 어쨌냐 하면 독서는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 조사 결과는 매우 '안타까운' 결과인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알아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 새로운 것이 나와야 남을 이길 수 있다. 그래야 앞서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독서는 그 원천이다.

 시중에 독서법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있다. 많은 이들이 독서에 대한 도움을 얻고자 그 책들을 보지만 낭패를 겪는다. 왜 그럴까?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책 한 권도 읽지 않던 사람이, 책을 별로 읽지 않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제시해 놓은 독서법을 따라한다고 결코 하루 아침에 그 사람들과 같아질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기초부터 착실히 쌓아야 노하우와 실력이 쌓이는 법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발전 속도가 붙는 다. 그러니 독서법을 보고 따라 한다고, 그런 꼼수를 쓴다고 해서 당장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평소에 꾸준한 독서가 선행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책 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지 상당히 궁금 했다. 그래서 읽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독서를 종용하는 책'이다. 그러면 내용을 살펴 보자.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의 제목은 '왜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2부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다.

 1부에서는 지겹도록 들었을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그 말을 지겹게 들었을 사람들을 더 지겹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번 더 지겹게 하기 위해 책의 내용을 잠깐 언급해 보겠다.

  "영상 시대인 오늘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다."(p55)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책에서 나온 것처럼 책 읽기는 '정서적 안정과 치유'를 주고, '글 잘 쓰기'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생산자가 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엘빈 토플러'가 '제 3의 물결'에서 처음 언급한 프로슈머(prosumer)가 여기에도 살짝 적용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자연스레 글을 쓰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고 싶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그것들을 통해 자기 발전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남을 앞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다해서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책 읽기는 그것을 포함한다는 말이다.

 2부에서는 책 읽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책 읽는 방법이라...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타인의 독서법을 나에게 적용한다고 내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타인의 독서법이 나에게 꼭 들어 맞을 수 없다. 나만의 독서법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꾸준한 독서를 통해 스스로 찾아야 한다. 다만 참고서 겪으로 타인의 독서법을 들여다 보면 시행착오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독서법은 무엇이 있을까? '천천히 읽기', '겹쳐 읽기', '깊이 읽기', '독후감 쓰기' 등 몇 가지가 제시 된다. 혹시라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이 책을 읽어봐라. 말 그 자체와 같이 별거 아니다.

 2부에서는 독서법만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독서 실태에 대한 현재의 문제점을 짚고, 다음 세대를 위한 책읽기 방안을 제시한다. 

 이 책의 차례만 살펴보면 내용의 범위가 넓고, 중구난방으로 느껴진다. 그렇지만 읽다보면 주제가 한 가지로 축약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책을 읽자'는 것이다.



 논리적이진 않지만 내 나름대로 앞에서 책 읽기의 중요성을 장황하게 살짝 이야기 했다. 이 책을 읽으면 그것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200 페이지가 조금 넘어 그리 두껍지 않고, 내용 또한 재미있게 잘 씌어져 있기에 누구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책 읽기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혹은 처음으로 알고 싶은 사람, 독서법에 대해 살짝 알고 싶은 사람 등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내용이 포괄적인데 반해 두께는 생각보다 얇기에 그것들에 대해 깊이 알기 원하는 사람은 2%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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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기독교 이야기
유재덕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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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확한 연대에 오차가 있지만 주후 2천 년이 지났다. 기독교의 역사가 2천 년이 된 것이다. 2천 년을 지구 역사에서 봤을 때는 순간에 불과하지만, 인류 역사로 봤을 떄는 만만치 않은 기간이다. 그 기간 동안 종교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수많은 토속신앙과 원시종교가 기독교와 이슬람에 정복 되어 사라졌다. 그 두 종교가 세계 종교사의 중심 축이 되었고, 인류 2천 년 역사의 중심 또한 차지 했다. 기독교만을 봤을 때는 성경이 정경으로 채택 되었고, 교리가 정립 되었다. 이단과의 대립, 그리고 내부 대립 등 크고 작은 대소사가 끊임없이 발생 했다.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은 단지 한 종교를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서양사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독교라는 종교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양사에 기독교가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 혹은 뒤에서 서양사를 쫓기도 하였다. 이것이 서양에만 국한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또한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 종교적 사명으로 시작된 전도 - 넓은 의미로 선교- 에 의해 기독교는 아프리카는 물론 아시아, 그리고 수많은 - 문화 사대주의 관점에서 - 미개 민족에까지 전해졌다. 때문에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서양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전세계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면 기독교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우리가 흔히 기독교라고 하는 말 중 '기독(基督)'이란 '그리스도 Χριστός(크리스토스)'라는 그리스어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아', '구세주'를 뜻한다. 그리고 '크리스트Christ'란 앞서 말한 그리스도의 영어식 발음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주후 125년 시리아의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많은 이들이 혼동하는 용어인 기독교는 '개신교(루터, 장로, 침례, 감리, 순복음, 성결 등)', '로마 가톨릭(천주교)', '성공회', '정교회(그리스, 로마)' 등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를 - 무리가 따르겠지만 -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수많은 대립과 반목의 역사'라고 하고 싶다. 물론 짧지 않은 2천 년 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 동안 조용할 날이 없었으니 나의 표현이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 2천 년 역사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 역사를 책으로 정리하면 엄청나게 장대한 분량을 이룰 것이다. 그렇기에 굵직한 주요 사건 중심으로 정리하고는 것이 현명하다.


 시중에 기독교사를 정리한 책은 많다. 각각이 맞추고 있는 초점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떄문에 한 권만 읽고 기독교 역사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기독교사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한두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학자가 아닌 이상 여러 권을 읽을 필요는 없다. 단순 흥미나 얼마의 지식만 필요한 사람이라면 잘 정리된 한두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기독교사 책 중 어떠한 것을 봐야할까? 그 선택의 문제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한 고민을 줄여주기 위해 한 권의 책이 출간 되었다. 그것은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만 다룬다 하여도 상당한 분량이 나온다. 그렇기에 이 책 또한 400 페이지가 넘는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덜 신학적이라는 것이다. 덜 자세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단점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이 된다. 책 표지에 나온 광고 문구처럼 '2천 년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쏙쏙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기독교 역사를 빠짐없이 다루고 있으면서도 깊게 들어가지 않기에 쉽고 빠르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물론 400 페이지가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기에 읽다보면 지루할 수도 있으나 책의 부제처럼 - 완전히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 재미있기에 기존의 기독교사 책에 비하면 덜 지루하다.
 
 이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라는 책은 앞서도 말했듯이 신학생들에게는 마음에 쏙 들 책이 아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이빨 빠진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깊게 들어가지 않았기에 내용이 상당히 빈약하다. 그러니 이 책은 신학생이든 신학생이 아니든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쉽게 즐길 이들에게는 추천한다. 파노라마로, 개괄식으로 볼 이들에게는 추천하지만 자세히 알고 싶은 이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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