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한 병풍은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짧은 구절로 <병풍>은 시로 완결된다.
이것으로 우리는 상가에서 김수영이 얼마나 고인의 죽음을 서러워했는지, 혹은 고인을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설움을참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죽은 자를 보내는 산 자가 마지막으로 할수 있는 최선의 의무다. 그렇지만 꾹꾹 눌러 참는 설움만큼 서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자신의 설움을 감추느라, 서둘러 달에 시선을돌리면서 시를 마무리한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을 제작한 육칠해사의 인장을 비추어 주는 것이었다‘고말이다. 이제 김수영의 서러운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달빛에 비친 김수영의 등이 경미하게 흔들리면서 설움은 더 극적으로 강화된다. 결국 ‘병풍‘은 주검을 주검처럼 막고 있지만, 죽음에 직면하는 것마저 막지는 못한다. 오히려 ‘병풍‘은 죽음을 더 강렬하게 직면하도록만든다. 설움의 리얼리즘, 혹은 설움의 모더니티도 이 정도면 압권이아닌가? - P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