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명에서 스물다섯 명. 시를 들으러 오는일반적인 수요를 가리키는 숫자다. 사실 나는 그 숫자가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이토록 바쁘고 놀거리도많은 시대에, 돈까지 내고 금요일 저녁을 내어주는게 얼마나 고마운가. 시를 읽겠다고, 시인에게 귀 기울이겠다고.
그런데 만오천 명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자리에있었던 친구를 생각하니 잠시 초라해지는 거다. 그에게 내 공간이 너무 작을까봐. 내 직업의 너무도 적은수요가 한눈에 느껴질까 봐.
물론 친구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조차 꺼낸 적도없다. 그의 커다란 성취가 나를 초라하게 하지도 않는다. 모든 지표가 숫자로 대변되는 시장 질서에 익숙한 내 시선이 잠시 나를 관통하고 지나갈 뿐이다. -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