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의 말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좋을지 고민했다. ‘한국에 살면서 대학을 보낸다는 건가. ‘한국에 있는 대학‘을 보낸다는 건가. 발화와 청취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은 내 의무이자일이며 가치라서 숙려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나는 문장의기둥이 되는 명사 둘을 품이 넓은 전치사로 이었다. 그 방법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면 모건이 후속 작업중에 나를 부를 것이다.
정확하게 통역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모건은 당부했었다. 하지만 오해는 소통의 기본값이고, 오해를 줄이는 데 민감한 사람이 가장 괴로운 법이었다. 완벽한 소통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고. -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