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의 우리들
나카무라 아스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늘 아쉬워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시간이 흘러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고, 지난 시간을 그리워 하니까.

<아베 소년과 쿠로하 소녀>는 선생님과 제자,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한 여학생의 이야기다. 사제관계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조금은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라 생각한다. 그리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선이 존재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 선을 넘는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정말 그 선을 넘는 것이 불순하기만 한 걸까? 쿠로하 소녀는 담임 즈카쌤과 학급위원인 아베 소년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되고, 처음에는 보통 사람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만 이들을 지켜 보면서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는 이들의 사이에 도움까지 주게 된다. (도움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가?)

이 작품은 언젠가의 이별을 상정한 채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좋아하지만 결국은 안된다는 걸 알기에. 그게 겁쟁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질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이 만남을 미련과 아픔으로 마무리하기 보다는 소중한 기억으로 마무리했으니까.

<불청객 흡혈귀>는 대학 교수와 그를 찾아온 흡혈귀가 그 주인공으로 나카무라 아스미코의 색깔 - 작가의 기본 서식지인 BL삘 - 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재미는 반전에 있다. 두가지의 반전.

<모두가 반짝반짝>은 딸바보 아빠 이야기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둔 아빠가 유치원의 미남 선생님에게 질투를 하는 모습이 유쾌하기도 하지만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져 무척이나 따스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대견하지만 때론 너무 빨리 자라나기 때문에 그 모든 시간이 아쉽다고 한다. 딸바보 아빠 역시 그런 인물이다. 때론 아빠의 로망이 무너져 어른스럽게 굴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마도 지금 이시간이 흐르면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벚꽃 바랑에 피는 등>은 오랜만에 재회한 소꿉친구의 이야기와 브라더 컴플렉스를 가진 소녀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오빠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요코, 그리고 그런 요코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마리. 난 오빠가 없어서 - 심지어 언니도 없다. 첫째이기 때문에 - 브라더 컴플렉스란 걸 잘 모르겠지만 때론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고, 다정한 오빠를 가진 아이가 부러운 걸 보면 나도 이런 타입의 아이가 되었을지도... 음, 나의 형제자매가 결혼을 한다는 건 분명 축복할 일이지만, 유난히 사이가 좋았다면 요코처럼 떼를 쓸 정도로 상심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요코곁에 마리가 있어 다행이야.

표제작인 <길모퉁이의 우리들>과 <흔들리는 우리들>은 학원제를 두고 건 내기가 우연찮게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기가 없었다면 소심한 성격의 아유미는 미도리에게 좋아한단 고백도 못했을 걸. 근데 난 나머지 둘인 몬짱과 사야가 연결될 줄 기대했더니, 또다른 반전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가의 작품이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 중 <불청객 흡혈귀>를 제외한 작품들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보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고교생, 매일매일 조금씩 성장해가는 딸아이들 둔 아빠, 늘 자신곁에 있을거라 생각했던 오빠의 결혼에 상심하는 여동생 등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늘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빠른 변화가 허탈해지는 건 세상 모두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순간이 소중하게 여겨져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열심히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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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입니다. 비가 오더니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2011년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연말을 어떻게 보낼까 하고 생각하다가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벌써 다섯번째 해더라구요. 전 올해가 처음입니다만...



모자뜨기 키트 세개를 구매했습니다. 실뭉치가 작은 건 이미 뜨고 남은 실이죠. 남은 실은 조각 담요를 만들거나 또다른 모자를 뜨면서 사용할 예정입니다.







처음으로 모자를 뜨는 것이라 엄마에게 배워서 같이 떴습니다. 제가 만든 모자는 오른쪽 아래에 있는 것이지요. 엄마가 뜬 것은 나머지 두 개입니다. 사진상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실제로 보면 제가 뜬 게 좀 허술하긴 합니다. 일단은 두가지 색을 조합해서 떠봤고, 지금 시작한 것은 (두번째 사진) 좀더 알록달록 귀엽게 떠보려 합니다.

전 뜨개질 초보입니다. 물론 왕초보는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뜨개질을 해 본 것이 십 몇년 전이니 거의 다 까먹었습니다만 그래도 이틀만에 모자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겉뜨기와 안뜨기만 할 줄 알면 모자를 뜰 수 있어서 뜨기도 쉽습니다.

빈곤 국가에서는 신생아 사망이 많다고 합니다. 매년 전 세계 200만명의 아기들이 자신이 태어난 날 사망하며, 400만명의 신생아들이 태어난지 한 달 안에 사망한다고 합니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신생아를 위한 모자를 떠서 보내주는데 그것이 체온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작은 정성이 모여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 된다는 걸 알고 올해부터 앞으로 쭈욱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세이브 더 칠드런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된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캠페인은 2월 29일까지입니다. 이번에는 잠비아와 방글라데시에 모자를 보낸다고 하더라구요. 작은 정성으로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데에 동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세이브 더 칠드런 : http://www.s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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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04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할머니께서 뜨개질 여왕이셨는데 ㅎㅎ

아, 정말 뜻깊은 캠페인 참여하시는 것 같아요.
초보치고는 잘 뜨셨습니다!
사진 상으로는 빈군데도 없이 꼼꼼하게 하신것 같은걸요 ~

스즈야 2011-12-11 20:19   좋아요 0 | URL
오오, 그러시군요.. ^^

저도 올해가 첨이랍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해보려구요. 뜨개질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데 동참한다는 의미가 크더라구요.. 이것말고도 4개 더 떴답니다.. 나중에 사진으로 올려볼까 봐요.. ㅎㅎ
 
고양이는 안질려 4 - 완결
유메지 코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때론 무심한척 시크하지만 알고 보면 순어리광쟁이인 고양이 로즈, 호기심 많고 때때로 요상한 것에 홀릭하며 낯선 인간의 등장에는 투명 고양이 증후군을 가진 스우쉬, 기분 좋으면 자체로 태풍을 만들지만 겁 먹으면 그대로 쉬야를 해버리는 시바견 와라비. 그리고 이들과 동거중인 중년의 만화가 유메지 센세의 따스하고 소박한 일상을 그린 이야기, 그 네번째이자 마지막.

『고양이는 안 질려』네번째 이야기는 약간의 특별한 일과 대부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을 묘사하고 있다.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활동 범위는 집안에만 한정되니 손에 꼽을 정도로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이 만화에 질렸을까? 글쎄, 그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은 늘 똑같은 것 같아도 똑같은 날은 없다. 고양이 로즈, 스우쉬, 견공 와라비, 그리고 유메지 센세의 나날도 그렇기 때문에 비슷비슷해도 똑같지는 않아 질리지 않는 것이다.

고양이들이 새로운 식구 와라비와 함께 보내는 일상은 조금씩 더 친밀해졌다. 아침 인사를 거르지는 않지만 여전히 와라비에게 새침하게 구는 로즈, 와라비에게 털을 뜯기면서도 맨날 당해주는 스우쉬의 모습은 늘 똑같아 보여도 보는 사람에겐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다. 겨울이면 사람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온기를 나누는 모습도, 매일 밤 자기 전의 의식도, 아침 인사도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손님이 찾아 왔을 때 손님을 대접하는 모습도 세 마리 모두 다르다. 로즈는 인간 아이를 잘 참아주고, 스우쉬는 전엔 무조건 내뺐지만 지금은 밥 먹을 때 정도는 얼굴을 비춘다. 와라비는 여전히 태풍을 만들면서 사람을 반기는 등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다.

물론 새끼 참새 키우기와 모이터 마련, 벼룩 잡기 행사 등 특별한 일을 그린 에피소드도 있지만 대개는 일상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따스함, 그리고 동물들이 주는 의외의 즐거움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만화는 소박하고 따스하다. 작화면에서도 고양이 그림을 아무리 뜯어 봐도 미묘라 할 수 없는 그림체지만 - 어찌 보면 실물보다 귀여운 면도 많다 - 자꾸 보다 보면 정이 간다. 특히 눈물 글썽하는 로즈의 모습이나 때론 도도하면서 때론 주체할 수 없는 어리광쟁이 모습을 보이는 로즈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기만 하다. 땡그란 눈이 매력적인 스우쉬나 보통 시바견보다 많이 작은 와라비의 다양한 모습도 사랑스럽기만 하다.

일상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특별한 것을 바라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상이 즐겁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똑같은 일상 속에서 다른 점을 발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특히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팔불출이라 여겨질 정도로 자기의 반려동물에 대해서는 매일매일 다른 점을 발견한다. 그러니 평범한 일상을 그린 만화라도 질리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3권에서는 약간 주춤해서 좀 질리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4권을 보면서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어 무척 아쉽기만 하다.

로즈, 스우쉬, 와라비, 건강하게 잘 지내렴.
유메지 센세, 욘석들과 언제까지나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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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0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싶어요!...
고양이 만화라니,
코믹인가요? 아니면 에피소드...?

스즈야 2011-12-04 22:36   좋아요 0 | URL
에피소드가 주욱 나열되어 있습니다. 제가 고양이 만화를 무척 좋아해서 많이 읽는데 그중 하나입니다. 다른 재미있는 작품도 많지요. ^^
 
남자미로
아니야 유이지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어디서 봤더라.. 하여튼 누군가가 그랬다. 사랑이란 뇌속의 화학작용이라던가 뭐라던가..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렇게 생각하기 싫다. 사랑이란 건 일단은 로맨틱한 감정이잖아.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기 싫은 이유 하나 더. 곰곰히 생각해 보자. 사랑이 끝나 이별을 맞이했을 때 등을 생각해 보면 머리가 아픈게 아니라 가슴이 아팠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장이 있는 쪽이. 그런데도 뇌속의 무슨무슨 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 반한다. 그리고 사랑하게 된다. 이런 것은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참 많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꼭 그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좀더 멋지고 조건 좋은 사람이 있는데도 그쪽이 아니라 다른 쪽에 끌리는 이유,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니 사랑이 복잡미묘한 것이고 신비로운 것이겠지. 좀 나쁘게 말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이는 정도가 아니라 눈이 뒤집히는 일도 생기는 것이겠지.

아니야 유이지의『남자미로』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하게 사랑을 찾고 사랑을 얻게 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각 성격도 다르고 취향이나 취미도 다른 사람들. 그들 중 어느 하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 만큼이나 사랑의 모습도 다양한 것이라 그렇겠지.

사랑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싶은 요코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코다마는 자신을 짝사랑 하던 신과의 특별한 시간을 통해 우정이 사랑으로 변할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인기많은 스타일리스트와 엔조이한 관계를 즐기던 바텐더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자신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밤과 낮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대학 행정직원은 자신의 쌍둥이 동생이 저지른 일에 휘말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른의 여유를 부리며 자신의 연하 연인을 애태우던 학원 강사는 오히려 자신이 연하의 연인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등 여기에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하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중 자신이 사랑에 있어 강자라 여기던 바텐더, 대학 행정직원, 학원 강사 등이 자신 역시 사랑을 함에 있어서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경위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사실 사랑에 있어 강자가 어디 있고, 약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혹자는 상대방보다 자신이 상대를 더 사랑하면 약자라고 하던데, 그건 절대적인 게 아니다. 어른의 여유를 보이는 사람도 속으로는 발발 떨고 있을지 누가 알쏘냐.

또한 남의 사랑에 있어서는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하는 사랑 앞에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참 많다.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는 관계가 되면 더 바랄 게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경우는 참 난감하다. 빼앗고 싶다고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발만 동동 구르자니 가슴이 미어지고. 사랑이란 건 어떻게 보면 그 자체로 미로인지도 모르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복잡한 곳이라도 함께 헤쳐나가겠지만, 혼자 갇히면 빼도 박도 못할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곳.

그래도 언젠가는 모두 제 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니, 지금은 이들도 복잡한 미로를 함께 헤쳐나갈 자신의 반려를 만난 것이겠지? 비록 처음엔 내 짝인지, 남의 짝인지 분간도 안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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耳をすませば (德間アニメ繪本) (大型本)
히이라기 아오이 / 德間書店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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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난 꿈이 참 많았다. 아니 꿈만 많았다. 난 크면 뭐가 되고 뭐가 하고 싶고 등등등. 하지만 그 꿈을 위해 무언가를 해본다거나 내 재능을 시험해 볼거야 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질 않았다. 중고교 시절을 거쳐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꾸자꾸 미루기만 했다. 조금더 기다려보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길거야, 라면서. 그러다 결국 하고 싶던 일을 20대 중반에서야 찾긴 했다. 하지만 난 다시 방황하고 있다. 30대 중반에. 뭔가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선뜻 앞으로 나설 생각을 못하고 있다, 여전히. 그런 내게 이 작품은 찌르르한 감동과 따끔따끔한 아픔을 느끼게 해줬다. 뭘, 아직도 주저하는 거야, 라면서.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츠키야마 시즈쿠는 책읽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로 어느날 도서관 카드에서 아마사와 세이지란 이름을 발견한다. 이 이름은 시즈쿠가 빌린 책 모두에 적혀 있었다. 즉 시즈쿠보다 먼저 책을 읽었단 뜻으로 시즈쿠는 이 아마사와 세이지란 사람이 누굴까 하면서 혼자 두근거린다.

그러던 어느날, 시즈쿠는 아버지에게 도시락을 전하러 도서관에 가는 길에 전차를 탄 고양이를 만난다. 동화속 이야기처럼 신기한 고양이를 쫓아 올라간 언덕길엔 자그마한 골동품 가게가 있었다. 시즈쿠는 신기한 시계, 아름다운 고양이 인형 등 자신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것들로 가득한 가게에 정신이 팔려 도시락을 가게에 두고 오지만, 그 도시락을 수수께끼의 소년이 전해준다. 그 소년은 전에 학교에서 만나 시즈쿠의 책을 읽고 있었던 소년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만남으로 시작된 시즈쿠와 소년의 인연이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부분 - 결국 한 줄기지만 - 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사랑이고, 또다른 하나는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다. 일단 사랑이란 것에 포커스를 맞춰보면 아직은 어린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와 괘종시계 속의 주인공인 엘프의 왕녀와 드워프의 왕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고양이 인형인 바론 남작과 얽힌 할아버지의 이루어지지 못한 아픈 사랑 이야기가 있다. 또한 시즈쿠의 친구 유코의 짝사랑과 시즈쿠를 짝사랑하는 남자 아이도 나오는 등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심이 되는 건 역시 시즈쿠와 수수께끼의 소년 - 아마사와 세이지- 의 이야기로 순수하고 풋풋하며 따스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특히 세이지가 책에 얽힌 사연을 말해주는 장면이나 마지막 장면에서 고백을 하는 부분은 어찌나 귀엽던지... 둘은 그 약속을 꼭 이루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또다른 하나인 꿈을 위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는 푹 퍼질러져 주저앉아 있는 나를 따끔하게 야단치는 듯 했다. 바이올린 장인이 되기 위해 이탈리아로 연수를 가는 세이지나, 그런 세이지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재능을 시험하기 위해 기간을 정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시즈쿠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리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대견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난 저 나이에 뭘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뭔가를 하기 위해 노력을 해보긴 했을까, 재능을 시험해 보기 위한 일을 해보긴 해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동품 가게 할아버지의 말대로 이들은 아직 미숙하고 미완성이다. 시즈쿠와 세이지는 이제 겨우 한 발을 내딛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실패를 거듭하며 자신을 갈고 닦아가는 동안 숨겨진 원석은 아름다운 보석으로 거듭나겠지. 더불어 서로를 격려하며 꿈을 향해 가는 동안 둘의 사랑도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세이지와 시즈쿠가 언덕 위에서 함께 봤던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귀를 기울이면』은 올리비아 뉴튼존이 부른 - 원곡은 존 덴버가 불렀다 - Take Me Home, Country Roads로 시작해 주인공 츠키야마 시즈쿠가 번안한 カントリㅡㆍロㅡド(컨트리 로드)로 끝난다. 이 부분이 굉장히 재미있는 대비를 주는데, 이는 가사의 내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Take Me Home, Country Roads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이지만, カントリㅡㆍロㅡド에서 고향은 정답고 그리운 곳이지만 이미 떠나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가사가 나온다. 그건 때론 힘들고 좌절감이 밀려와도 자신의 꿈을 향해 꿋꿋하게 전진하겠다는 내용을 의미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노랫말까지도 애니메이션 내용에 맞춰 바꿔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 한 번 전해준다.

이 작품의 또다른 재미는 지브리의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인『고양이의 보은』에 등장하는 바론 남작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고양이의 보은』에서도 그렇지만,『귀를 기울이면』의 시즈쿠의 이야기 속에도 등장하는 바론은 주인공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존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귀를 기울이면』의 무뚝뚝한 고양이 문은 『고양이의 보은』에 등장하는 무타를 연상시킨다. (문은 말을 못하지만, 돼지라 불리는 건 똑같다. 뮤타와 부타) 이처럼 지브리의 작품은 그 자체의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나 설정이 겹쳐나오기도 하는 데 그런 걸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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