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 표류기
오츠이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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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이치는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들 중 한 명이다. 고교생 시절에 데뷔한 만큼 십대들의 잔혹한 이야기를 많이 그려내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성장소설이지만, 어찌보면 잔혹동화에 더 가깝에 느껴지는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때로는 아이들의 마음에 자리한 어둠의 깊이가 더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다크계 작품들을 그의 퓨어계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같은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또 그의 수필을 읽어 보면 참 독특한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뭐랄까,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랄까. 凡人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의 작품은 독특하고 독창적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후루야 우사마루의 경우, 그의 책을 딱 한 권 읽었기에, 뭐라고 해야 할지 참 막막하지만 이 한 마디만큼은 할 수 있다. 그는 천재다. 오츠이치 역시 천재 작가라 일컬어지지만, 내가 보기엔 후루야 우사마루도 마찬가지였다. (뻥치시네, 딱 한 권 읽고 그런 생각이 드냐? 라고 물으신다면... 그래도 그렇더이다, 라고 답할 수 밖에) 내가 처음 접한 후루야 우사마루의 작품은『파레포리』로 도대체 한 사람이 그린 그림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작화와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죽여 주는 데생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런 두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니!!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땐 후루야 우사마루의 그림이 삽인된 소설책인 줄 알았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오츠이치의 작품이 만화화 된 것도 여러 편인데, 후루야 우사마루는 만화가인데. 뭐 어쨌거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뭐? 내용물이니까.

『소년소녀 표류기』는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최종화에서 모든 등장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1화 <침몰기>는 등교거부 소녀, 2화 <개미의 세계>는 개미에 푹 빠진 소년, 3화 <마법소녀 사키>는 여전히 자신이 6살이라 믿는 소녀, 4화 <학교의 중추>는 열등생, 5화 <과자제국>은 다이어트 소녀, 6화 <몬스터 엔진>은 만화 소년과 불량 소년, 7화 <타이토님을 만난다면>은 엄마와의 관계가 소원한 소녀, 7화 <회오리 바람 사육의 권>은 학급임원 소년 등이 등장한다. 얼핏 봐도 고민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아이들의 망상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각각의 에피소드로 구성되는데, 이 망상이란 게 어쩌면 우리들도 학창 시절 한 번쯤 해봤을 만한 이야기이기에 읽으면서 움찔움찔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침몰기>같은 경우 온 세상이 물에 가라앉아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소녀를 보며, 난 학교가 지진으로 가라앉아 버리거나 불에 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걸 떠올렸다. 이렇다 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물론 지금은 그 시절보다 두 배쯤 나이를 먹어버려 굳이 떠올리지 않는 한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하진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예전 학창시절의 일을 문득 떠올리게 된달까. 뭐, 좋은 기억이라면 웃겠지만, 안좋은 기억이라면 떠올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의 빛, 혹은 돌파구를 보여줄 수도 있고, 나처럼 어른이 된 사람들에겐 옛생각을 떠올리게 하는『소년소녀 표류기』의 결말은 희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 이르는 길은 안타깝고 슬프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왜 그런 망상을 하게 되었을까, 를 떠올려 본다면. 특히 입시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있어 <학교의 중추>에 등장하는 마더와 나사들의 모습은 끔찍하게만 보일 것 같다. 오래 전에 입시지옥에서 벗어난 나 역시 그때를 떠올리면 끔찍하긴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그 상상력에는 박수가 절로 나오게 된다.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기괴하지만, 그것만큼 현재 입시 지옥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건 없을 정도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십대의 청소년들이 지닌 다양한 문제와 사회 문제까지 두루 망라해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이들의 세상을 그려낸 이 작품은 십대라는 폭풍 속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폭풍 뒤에는 햇빛이 비친다는 희망을 가지라 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물론 어른인 나로서는 그 폭풍우가 지나면 사회라는 사막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미리부터 그런 이야기를 해줄 필요는 없겠지. 아이들이 지나는 그 폭풍우가 각각의 아이가 가진 고민과 힘겨움의 무게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에겐 그게 가장 큰 폭풍우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사막으로 나가야 해, 라고 말해 봤자, 아직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런 결말이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다.

잡담 조금.
이 작품은 일본판과 한국판 표지가 다른데 한국판은 폭풍우에 휘말려 날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라면, 일본판은 구름 위에서 무언가를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참으로 묘한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는 한국판 표지가 더 낫단 생각이 든다.

음. 그리고 일본판 표지의 밑부분을 보다 빵 터져 버렸다. 왜냐하면 거기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후루야 우사마루와 오츠이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본문 뒤에 두 사람의 대담이 실려 있습니다) 그중 후루야 우사마루가 토끼로 그려져 있다. 우사마루(兎丸)에서 兎가 토끼 '토'이기 때문에. 뭐랄까, 작지만 작가의 센스가 느껴지는 부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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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스크램블 Core Scramble 1
전유호 지음 / 이코믹스미디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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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호 작가의 전작인『젤로』(제목부터 몰캉몰캉 달달하다)가 황태자 X 기사 커플이라는 달달한 판타지였다면, 후속작 『코어 스크램블』은 미친 존재감을 가진 상남자들이 등장하는 짜릿한 판타지이다. 워낙 데생이 좋아 보는 것 자체로도 좋은데, 그들의 성격이나 능력이 그걸 배가시켜주기 떄문이다. 아흑, 멋져.

나에게 특수한 능력이 있다는 건 신의 은총일까, 악마의 저주일까. 만약 그 능력이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을 만큼의 것이라면 신의 은총이겠지만, 반대로 숨겨야만 하는 것이라면 악마의 저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악마의 저주라 느꼈던 한 남자가 이젠 그걸 신의 은총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는 바로, 신채언이다.

채언의 능력은 인간세상에 나타난 홀과 홀에서 튀어나온 괴생물들로 인한 피해를 막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채언은 그것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꼈던 아이였다. 정체 모를 그것들을 소멸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기 전까지. 그 남자는 바로 현재 채언의 팀에서 팀장으로 있는 가윤이란 남자다.

채언과 가윤이 속해있는 비밀조직인 클라러스 오비스는 홀과 홀에서 튀어나오는 괴생물들을 소멸시켜 인간세상의 평화를 지키고 있다. 그에 반해 코어 헌터들의 모임인 '검은 올빼미'란 조직은 홀이 가진 에너지 코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채운다. 라고만 본다면 선과 악의 싸움이란 구도가 딱 떠오르지만, 실제로 코어 헌터의 수장인 문후를 보면 그 마음이 싹 가신다.

오히려 채언의 팀장인 가윤이 악마고, 코어 헌터의 수장인 문후는 채언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처럼 보인달까. 가윤은 막말에 폭력은 기본이고, 자기 주위의 사람에게 관심은 커녕 오히려 죽든 말든 내버려두는 조직 생활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다. 작가는 가윤을 개아가라고 하지만 난 가윤이란 남자는 4가지를 안드로메다 저 너머로 귀양 보낸 무개념의 *랄 맞은 남자로만 보인다. 그런 그가 왜 클라버스 오비스란 조직에 몸담고 있는지는 참 궁금하지만 어쨌든 그는 능력자들 중 능력은 최고라 할 수 있다.

문후는 채언의 전투장면을 보며 채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남자로 능글능글 에로 작렬의 사내다. (가윤은 남자고, 문후는 사내? (내가 써놓고도 웃긴다. 그치만 내가 받은 이미지가 그래서...) 채언을 놀리기도 하지만 채언을 받쳐주기도 하는 남자, 문후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렇다 보니 문호는 백사자, 가윤은 흑표범처럼 보인다. (실제 흑백 작화를 보면 가윤은 흑발, 문후는 백발처럼 보이기 때문에) 성격도 좀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내가 백사자의 성격이나 흑표범의 성격은 알지 못하지만, 이미지가 그렇단 뜻입니다)

채언은 그런 두 남자, 백사자와 흑표범 사이에 끼인 불쌍한 어린 양.... 처럼 보인달까. 특히 가윤에게 심하게 굴려지는 채언을 보니 가엽기도 하지만 그런 가윤의 팀에서 꿋꿋이 버티는 채언이 미련해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을 해봐도 뾰족한 답이 안나오는 건 역시 난 채언이 아니기 때문이지. 아, 몰라.

하루라도 폭언이나 무시, 폭력을 당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채언, 인간으로서는 최악이지만 능력자로서는 최고인 가윤, 능글능글 색기 넘치지만 숨겨진 능력이 (어쩌면) 가윤을 넘어설지도 모르는 문후. 일단 겉보기에 눈요기로서도 손색 없지만, 그 능력과 성격(성격면에서 가윤은 미달)에 더욱 반하게 되는 멋진 남자들의 이야기. 아, 정말이지 오랜만에 맛있는 부페를 먹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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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냥들과 처음 만난 날은 정확하지 않지만 1월 중순이었습니다.
울 나라(강쥐)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쓰레기장에서 후다닥 뛰어나오는 아깽이들을 발견했습니다.
겨우 2~3개월 정도 되었을 녀석들이었죠.

그후 다시 만나면 사료를 줘야겠다 싶어서 가방안에 사료를 넣어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비슷한 시간에 나가봤죠.
역시나, 아파트 화단에서 기웃거리는 녀석들을 만났습니다.

자, 사료를 어떻게 주면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사료를 뿌렸습니다. 다가가서 주면 도망갈 건 뻔한 일이니 말이죠.
뿌려진 사료에 놀란 녀석들은 후다닥하고 피했다가 금세 사료 냄새를 맡고 몰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죠.

 

 

 

 

사료맛을 보였으니 멀리 도망가지는 않겠지 싶어서 근처에 두었던 사료그릇을 가져왔습니다. 사료그릇이 있는데 왜 뿌렸냐고 물으신다면..
그거 가지러 가는 사이 없어질까봐 걱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사료를 한그릇 비운 녀석들에게 또다시 사료를 주러 다가가니 멀리 피하진 않더군요. 오히려 사료를 붓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다리는 녀석들. 그만큼 배가 많이 고팠다는 뜻이겠지요.

1월 18일. 처음으로 사진을 찍은 날.
나중에 큰놈이, 줄무늬, 노랑이, 까망이라 이름이 붙게 될 녀석들의 모습입니다.

얼핏 보면 네 마리가 비슷비슷한 덩치같지만 큰놈이가 조금 더 큽니다.
어미라고 하기엔 작고, 한배 새끼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혹시 어미없는 고아 녀석들이 어쩌다 모인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지요.
얘들이 말을 안해주니 알 도리가...(쿨럭)

 

 


흰놈이는 2월에 급식소 멤버들과 합류했습니다. 아직 어린 녀석처럼 보였죠.
중고양이쯤 되려나. 얼굴라인이 갸름해서 암코양이라고 생각했지요.

혹시 집나간 아꺵이들의 어미? 란 생각도 해봤지만, 이 녀석 역시 수컷이었다능.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아직 경계심이 많이 남아 있어서 표정이 좀... (ㅡㅡa)

여하튼, 급식소 멤버는 이렇게 구성되었습니다.

덧붙임 : 위에 있는 사진은 핸폰으로 급하게 찍은 사진이고, 밑에 있는 건 카메라로 제대로(?) 찍은 사진입니다. 앞으로도 몇몇 사진은 핸폰 사진이라 화질이 좀.. 별로겠지만 요즘은 매일 제대로(?) 찍고 있으니 훨씬 선명한 사진이 올라가게 될겁니다.. (아니, 무슨 예고편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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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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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 세상을 나누는 기준은 다양할 것이다. 나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세상은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두 가지이다. 보이는 세상은 동경하는 세상과 혐오하는 세상으로 나뉘고, 보이지 않는 세상은 말그대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세상과 눈으로는 보고 있어도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으로 나뉜다.

내게 보이는 세상은 협소하다. 동경하든지 혐오하든지 여부에 상관없이 딱 아는 만큼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동경의 대상이던 것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이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내게 보이지 않는 세상 중 그 존재 여부도 알 수 없는 세상은 어쩌면 언젠가는 내게 보이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눈으로 보고도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은 어떤 연유로 그런 세상에 속하게 되어버린 걸까. 그건 나의 관심 대상 밖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의 발동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애써 보지 않으려는 세상 속을 들여다 봐야할 것 같다.

바람의 아이, 제이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10대 미혼모에게 태어난 제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용케 그 운명은 비껴나갔고 제이는 돼지 엄마라 불리던 한 여성의 양자로 양육된다. 돼지 엄마가 세들어 살던 집 주인의 아들 동규와 함께 지내던 시간은 제이에게 있어 한 곳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시간이었다. 스스로 말문을 닫아버린 동규의 통역사 역할을 하던 제이. 그때 동규와 제이는 둘이자 하나였고, 하나이자 둘이었다.

즐거운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동규가 말문을 트면서 제이와 동규의 연결이 느슨해져갔다. 게다가 재개발 바람으로 동규와 제이는 더이상 한곳에 살 수 없게 된다. 그후, 돼지 엄마는 약물중독자 기둥서방과 집을 나가고, 제이만 홀로 남겨진다. 그후 시설에서 잠시 살던 제이는 그곳을 나와 혼자의 삶을 시작한다.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바람처럼 떠돌게 된 것이다. 그후 제이는 가출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곳을 전전하다 폭주족의 리더가 되었다가 태풍의 소멸처럼 사라져 버린다. 남은 아이들에게 신화가 되어.

고슴도치들

10대들은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같다. 누가 자신을 공격할까 싶어 미리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 그 가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줘도 가시를 뉘일줄 모른다. 제이가 시설에서 탈출한 뒤 만났던 가출 청소년들은 가시를 뉘일줄 모르는 고슴도치같았다. 오히려 서로 상처를 주고 살아간다. 누군가 그 아이들에게 도대체 왜 그렇게 사는거야, 라고 물어본다면 돌아오는 건 비웃음 정도가 아니라 욕설과 폭력일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 가출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어른들이 보기에 그 아이들은 스스로 하수구에 몸을 던진 거나 진배없는 삶을 사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제이도 처음엔 그 아이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고 말려 보려고도 했지만 돌아오는 건 폭력뿐이었다. 또한 아이들 스스로 그곳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기에 제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제이 역시 그런 길을 걷는다.

그후 제이가 속하게 된 그룹은 폭주족들. 이 아이들 역시 고슴도치들이다. 그들의 가시는 오토바이. 오토바이만 타면 무서울 것이 없는 아이들은 제이가 일으킨 태풍에 차츰 동화되어 간다. 처음엔 동규와 세상을 이어주던 작은 바람이었던 제이가 태풍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폭주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이 사회의 시스템에서 튕겨나간 이 아이들의 유일한 해방구이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왜 그렇게 삶과 죽음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는 것일까. 뾰족한 가시로 스스로를 찔러대는 것일까. 어쩌면 이 아이들 역시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그 진짜 이유를 찾고 싶어 그런 것일까.

천산갑들

우리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갑옷을 두르고 살아간다.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 있으면 온 몸을 돌돌 말아 갑옷만을 내보이는 천산갑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를 위험요소로부터 지키기 위해 철저히 방어태세를 갖춘다. 태어났을 때는 누군가의 천사같은 자식이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거리의 아이가 되는 순간부터 천사는 없어지고 박멸해야만 하는 더러운 병균 취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병이 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어부터 한다.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동규의 엄마는 동규가 말문을 튼 후, 동규가 다니던 특수 학교의 교사와 아이들을 그렇게 취급했다. 우리 아이는 너희들과 달라, 이 병신들아 라고. 동규가 그들과 있을 때를 좋아했다는 걸 꿈에도 모른채 말이다. 극단적인 예같지만, 실제로 동규 엄마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는 게 아픈 진실이다. 말로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 하면서 실제로는 수많은 선을 긋고 구획을 나누어 살아간다. 내게 해로울 것 같은 사람,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 모두가 부정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천산갑의 갑옷을 두르고 우리는 살아간다.

통역사

우리가 외면하고 살아가는 거리의 아이들을 보듬어 주는 존재가 있다. 그들은 폭주족 아이들을 만나는 봉사자들과 경찰 승태, 진샘 등이다. 이들은 이 아이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배척하지도 않는다. 특히 진샘의 경우 떠돌아 다니던 제이를 따스하게 품어주었다. 엄마란 존재와 엄마의 따스함이라고는 알지 못했던 제이에게 허락된 유일한 따스한 품이었다. 비록 그 시간은 짧았을지라도.

세상의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과 이 세상과 연결된 가느다란 끈, 바로 이들 통역사이다. 하지만 이들 통역사들의 수는 너무나도 적고, 스스로를 고통으로 내모는 고슴도치들과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천산갑들은 너무나도 많다.

통로 끝 반쯤 열려 있는 문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십대 청소년들의 문제를 통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가정과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도 않고 해결책을 찾으라 말하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가 철저히 선을 긋고 구획을 나눈 세상에서 추방되어 있는 길 위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향하는 통로의 끝에 반쯤 열려 있는 문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보고 싶지 않았던 곳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든다. 즉, 이 소설에 나오는 통역사들의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이 작품이라 생각한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었는가. 쥐뿔도 없는 주제에 부모에게 반항하고 나와 끼리끼리 몰려 살면서 추접한 짓이나 하고 있으니 10대에 미혼모가 되어 자식을 버리는 일이나 생기고, 그 아이가 커서 문제아가 되는 거 아니냐. 개떼처럼 모여서 벌떼처럼 웅웅거리며 폭주하는 건 겉멋든 행동일 뿐이지 않냐라고 욕을 하거나, 귀를 막고 눈을 막고 그 문을 봉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비록 그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지는 못해도 그 문을 닫지는 말자. 시끄럽고 무례하며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듯한 목소리 속에 숨어 있는 작고 떨리는 목소리가 마음속으로 스며 들어올 날이 곧 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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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박구리 발견!


 


                        털고르기에 여념없는 직박구리


                 단장을 마친 후, 급 거만해진 직박구리

예전부터 강아지나 고양이, 꽃, 곤충 등의 사진을 간간히 찍었습니다만, 새는 별로 없었습니다. (까치나 해오라기 정도)
특히 직박구리는 올 겨울 처음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직박구리란 이름도 몰랐었죠.

그러다 직박구리란 새를 알게 되고 눈여겨 보게 되고, 사진도 찍게 되고...
이젠 울음소리만 들어도, 날아가는 품새만 봐도 직박구리를 알아 보게 되는 제가 신기합니다.
앞으로 좀더 많은 새들을 만나보고 싶네요.

그러려먼 아무래도 조류도감을 하나 사야할 듯...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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