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에서 나오는 '말들의 흐름' 시리즈 중 하나. 커피와 담배, 담배와 영화, 영화와 시, 시와 산책, 산책과 연애. 이런 식으로 일종의 끝말잇기처럼 책들이 이어져 나간다. 10권이라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발상이 좋다. 얼마나 더 멋진 시리즈물들이 쏟아져 나올지 새삼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마음결이 남다른, 삶의 자세가 남다른 그의 글들을 읽노라면 내가 어딘가에서 소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성소자가 되고 싶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저자의 이력에는 나와있지만 이 책은 성소자가 되려는 결심으로 마무리된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다 다른 에세이들 속에서 다 비슷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다들 남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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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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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내가 귀하게 여기는 한 구절이다.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 내가 힘겨워하는 내 앞의남은 시간을 그는 다 살아냈기 때문이다. 늙음은 버젓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한 결과일 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열차가 완전히 정지하기 전에 그러하듯, 흔들림 없이 잘 멈추기 위해서 늙어가는 사람은 서행하고 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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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말로만 아니 글로만 무성히 듣던 그 이슬아를 만났다. 물론 책으로.  우리의일상 모든 것이 글감이  될 수 있고 책이, 글이 부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서비스가 아닌 먼저 찾아가는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이슈가 되었던 바로 그 작가. 


처음에는 그냥 아이들 글쓰기 가르치는 이야기인가 보다 했다. 초중반부에 아이들 이야기가 많아서 처음에는 새롭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지만 좀 늘어진다 싶을 때 이슬아의 글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해서 글로 옮기는 능력을 갈고 닦은 느낌이었다. 


다년간 경험한 초등학생 글쓰기 교사로서의 관록도 묻어났다. 학생들 다루는 솜씨가 좋고 그러면서도 귀여워서 소위 선생님같지 않은 선생님이었다. 최대한 아이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려는 자세가 돋보였다. 글감도 좋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주는 것도 좋았다. 공교육 제도교육에도 이런 선생님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이슬아 선생님에게 글쓰기를 배운 학생들은 참으로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이슬아선생님에게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은선생님과 어딘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존재여야 하는데 요즘은 그게 참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특히나 '코로나 시대의 글방 꼭지'가 의미심장했다. 줌으로 하는 글쓰기 수업. 올 한 해도 아무래도 계속 이 상황이 지속될 테니 더 시사점이 크다고 하겠다. '나의 유년과 어딘 글방' 꼭지도 좋고. 


에세이는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면서 교묘히 뺄 것은 빼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소위 드러내고 싶은 부분만을 드러낸다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 부분에선가 작가가 솔직한지 솔직하지 않은지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튼 이슬아는 모든 것을 드러낸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솔직했고 그의 성장을 계속 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물론 그가 거쳐온 길도. 부지런히 그의 전작들을 찾아봐야 겠다. 간만에 포근하면서도 톡톡 튀는 글들을 읽은 것 같다. 요즘 참 재주많은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우울은 평생 자주 보는 친구 같은 것이다. 10대 후반의 아이들이 감당중인 우울은 20대 후반인 나에게도 종종 찾아온다. 아마 30대 후반이나 50대 후반에도 비슷할 거라고 우리는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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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21-01-08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JYOH님 서재에 와서 프로필 사진 클릭해보고 빵터졌어요. 평소에는 북플로 접속하니까 잘 모르지만, 가끔 이렇게 PC로 접속할 때마다 한번씩 웃게 되네요. 하하하하. 재밌는 사진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JYOH 2021-01-08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요. 재미있으셨다니 기쁩니다. ^^
 
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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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외국어로 말하는 일이 이전까지가지고 있던 모국어 중심의 인식 틀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어떤 의미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모국어로 지어진 집 한쪽에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내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낸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을 때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얼마나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가득할까?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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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는 이번 여름 우연히 교보문고에 갔다가 베스트셀러 소설 코너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봐서 너덜너덜해진 책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책이 바로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 였다. 진열된 책이 너덜너덜해졌다니 요즘에는 실로 보기 드문 일이다 싶어서 인상적이었다. 요즘엔 서점엘 가도 전혀 속을 들여다볼 수 없게 투명 비닐로 꽁꽁 싸매어 놓는 책도 많기 때문이다. (만화책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일반 인문 서적도 신간이면 그렇게 꽁꽁 싸매어 놓는다. 매우 아쉬운 대목.) 얼마나 재미있길래 책이 저렇게 됐을까. 그런데 다들 왜 사서 보지는 않고 다 여기서 봤을까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도 틈 날 때마다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를 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늘 대출중이었다. 역시나 인기가 있나보군 싶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온 책은 백수린 작가의 다른 짧은 소설집이었는데 내가 짧은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한 두 작품을 읽고 그냥 읽기를 그만두어버리고 말았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의 신간 소식을 접했다. 내가 좋아하는 제빵과 책의 만남이라 신기했다. 거기에 백수린 작가의 조합이라니. 바로 구매해서 보고 싶었지만 절약모드라 꾹 참고 샘플을 보니 예전에 읽었던 다른 책이랑 비슷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바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소설과 음식, 번역 이야기로 모아지는 이 책에도 서양음식들이 많이 나온다. 소설 번역을 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와 관련된 서양 음식을 이야기한다. 이 책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어찌보면 비슷한 조합일 수 있겠다 싶었다. 요즘은 이런 분위기가 유행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조금 딱딱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백수린의 '다정한 매일매일'은 '생강빵과 진저브레드'의 소위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만큼 더 유연했다. 


백 작가 말로는 책을 소개하기 위한 글을 연재했던 것을 산문집으로 모은 것이라는데 책 소개라고 하면 딱딱하고 그 책을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다양한 빵과 케이크와 얽힌 이야기들, 그리고 책이야기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서양빵이 많으니 서양의 이곳저곳으로 독자를 데려다주기도 하고 서양빵과 관련된 여러 상식에서부터 자신의 추억 등등을 어우러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나도 제빵을 좋아하는데 작가와 제빵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다. 제빵을 해서 선물하는 것은 자제. 왠지 맛있다는 반응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정확한 양을 계량하는 것과 순서를 잘 지키는 것이 생명인 서양빵 굽기에서 그것을 그리 정확하게 지키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맛이 완벽하지는 않고 게다가 빵을 굽다보면 나만의 레시피라는 것이 생겨서 본인의 기호에 따라 뺄 것은 빼고 줄일 것은 줄이고 버터는 식물성 오일로 바꾸는 식으로 굽게 되기도 한다는 것. 그래서 더더욱 선물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제빵을 포기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내 경우는 바로 막 구었을 때의 그 맛 때문이다. 또 구워지는 동안의 그 향긋한 기다림의 순간 때문이다. 집에 퍼져가는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와 마술처럼 부풀어져 나온, 오븐에서 갓 꺼낸 빵은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그 감동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정도이다. 반죽하기는 꽤 노동집약적인 일이라서 체력소모가 크지만 우리 식구가 먹을 만큼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굽는다면 이보다 더 마법같은 일이 또 없을 것 같다. 다 처분하고온 내 제빵 기구들이 새삼 그리워진다. 맛있는 빵이 널려있는 서울에서라면 제빵은 이제 접어도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왔지만 역시나 빵을 직접 구워서 먹어본 사람에게는 그 맛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있는 요즘이라 이 책이 더 향긋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제빵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조금 나오는 편. 


슈톨렌, 바움쿠헨 등 이 책에는 요즘 시즌에 맞는 빵들도 많이 나오는데 나도 성탄 전야에 귀국 후 처음으로 사과호두파이를 구웠었다. 원래는 애플피칸파이인데 피칸은 구하기 쉽지 않아 그냥 집에 있는 호두로 대체했다. 이런 것이 제빵의 묘미이기도 하니까. 덕분에 집에 있던 설탕은 바닥이 났고 지금도 바닥인 채로 있지만 오랜만에 제빵을 하니 평화로워졌다. 모든 것이. 식구들도 모두 추억에 젖고. 


이렇게 빵을, 파이를 굽는다는 것, 소중한 것들을 추억하는 것, 따끈하고 향긋한 갓 구운 빵의 풍미를 느낀다는 것, 빵에 어울리는 와인이나 차를 준비하는 것. 이 모든 소소한 것들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요즘이다. 그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참으로 고운 책이다. 곱다.  


+ 옥의 티라면..내가 좋아하는 '애프터눈 티'가 '애프터티'로 되어 있었다는 것. 이렇게도 쓰이나 싶어서 찾아보았지만 아닌 것 같다. '애프터눈 티'나 '하이 티'로 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홍차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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