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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뚜의 책은 내가 기존에 읽은 책들의 조합 같았다. 


젊은 여성이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가꾸고 강아지를 키우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각종 음료와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이야기. 


에세이에 파묻혀 이것저것 보다보니 교보문고가 정한 작년 한 해의 출판계 키워드는 '에세이'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각종 독립출판사들이 차려지고 그에 따른 독립출판물이 다양하게 세상에 나오게 되면서 더이상 유명인의 에세이가 아닌 보통 사람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거기에 브런치 등등의 채널도 이런 분위기에 불을 붙이는 격이 되었고.슛뚜는 반대로 유튜브에 올린 브이로그가 대박이 났기 때문에 책을 낸 사례이다. 보통 사람의 일상이지만 영화처럼 만들어진 그의 영상들에 사람들이 열광을 했고 결국 영화처럼 영상찍는 방법도 책으로 나왔다. 그랬더니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유튜브 소식도 책으로나 알게 되는 구시대인인 내가 뒤늦게 검색을 해 보니, 세계 각지로 여행다닌 것도 브이로그로 만들어 올리고. 강아지랑 노는 모습, 음료 만드는 모습, 그냥 하루를 집순이로 잘 지내는 모습, 일주일 동안의 프리랜서의 일상 등등을 담은 영상들이 검색이 되었다. (하지만 유튜브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영상을 보지 않았다. 그냥 영상 리스트만 봤다. 참고로 나는 유투브 영상 링크를 톡으로 보내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보내줘도 거의 열어보지 않는다.) 더불어 슛뚜 하고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슛뚜 제네시스 검색어도 떴다. 20대가 성공해 마련한 첫차라나..그래서 아이들의 장래희망 일순위가 유튜버겠지. 


내용은 이러저러한 책의 조합 같은데 제네시스로 보여지는 차이를 만들어낸 이유는 바로 영상 때문이었다. 자고로 너투브의 세상이라 그런 것. 격세지감이다. 독립서점은 망해가고 독립출판도 쉽지 않고 출판의 기회를 얻거나 만드는 것도 쉽지 않고 출판이 되어도 주목받기는 더 어렵고 인세는 고작 10퍼센트이고 그나마도 선인세를 받고 2쇄나 들어가야 인세를 받게 되는 경우도 많고..출판계의 상황은 쉽지 않은데 영상의 세계만은 승승장구한다. 물론 컨텐츠가 트렌디하고 시류를 잘 파악했고 영상기술도 좋았기 때문이겠지만 왠지 씁쓸한 이 느낌은 무엇때문일까. 그저 내가 구세대이기 때문일까. 출판계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까. 그냥 알라딘에서처럼 책소개하는 알라디너 티비 정도로 시류에 맞춰가면 되는 것일까. 정말 한치앞도 못 내다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 책들의 출간연도를 고려하니 슛뚜의 브이로그가 '최소취향~' 보다 더 먼저였겠다. 하지만 '최소취향~' 부류의 책은 그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잘 모르겠다. 혹시 그럼 슛뚜가 소재를 선점한 것이 성공비결이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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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 신간이 나오면 반갑게 클릭을 해서 미리보기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의 의미를 좀더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반려병'이라니..이게 무슨 뜻일까. 나는 요즘 하도 반려동물 이야기가 많으니 '반려동물에 대한 병적인 애정' 뭐 이런 것일까 싶어 친구에게 이 책 이야기를 하며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니 친구는 오히려 '반려자 때문에 생기는 병' 이야기가 아닌가 했단다. (반려자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니..50,60년대도 아니고 그냥 이혼해 버리거나 스릴러 소설에서처럼 총으로 쏴버리면 되지 흥 화병이라니 말만 들어도 혈압이 올라왔다. 그런 내용이면 절대 안 본다. 이 책.)


하지만 제목의 뜻은  '늘 나를 따라다니는 병' 이라고나 할까. 늘 어딘가가 아프고 일이년에 한 번씩 중병을 진단받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이것은 역시나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래서 코로나 와중에도 대형병원을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다. 웬만하면 안 가고 싶은데도 말이다.) 내 이야기구나 싶어 얼른 클릭해 구매해서 읽은 것은 아니고, 얼른 구립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했다. (그랬더니 2주 정도 걸리니 책이 준비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세상에나 도서관이 나를 위해 책도 구매해주어 새 책을 읽는 기쁨까지 만끽하게 해주다니. 거기다가 예약까지 할 수 있어서 따끈한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아무도 보지 않은 새 책을 희망도서 신청 사유 한 문장 정도 써서 제출하면 구매해 준다. 그런데 올해는 이제 예산집행이 완료되어서 나를 위한 올해의 마지막 희망도서가 되었다. 내년에 예산이 책정되면 또 신청해야지.) 


기쁘게 받아본 이 책은 정말 술술 읽혔다. 가독성이 뛰어나 한 시간 정도면 휘리릭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에게 비교하니 늘 어디가 아팠던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아플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중병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인 것인가 싶지만 당사자는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거기다 친언니도 그렇다니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얼마나 걱정하실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치료와 약물 복용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 이 책을 읽으며 뭔가 근본적인 치료를 해야하지 않을까. 과로와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 주어진 체력에 비해 일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이렇게 늘 병을 달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가도 뭔가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놓이면 자신의 생활습관 특히나 식습관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남들이 보기에 튈 만한 것들을 먹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나 그 가족들은 이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 특히나 면역체계의 교란이 원인인 자가면역 질환 등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더더군다나 먹거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저자와 연락할 길은 없고 괜한 노파심에 혼자 심각하게 우리의 몸이란 무엇이고, 병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문체는 내용과 달리 시종일관 발랄해서 재미있게 키득거리며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내용과 대비되는 문체가 비는 오지만 발랄한 노란 스웨터를 입고 노란 우산을 쓰고 있는 표지의 소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책의 골골거리는 내용과는 다르게 귀여운 책인 것 같다. 표지처럼. 


+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상호 신뢰 관계가 생기면 그것을 라포르(lapport)라고 부른다는데,' 라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의사와 환자, 상담사와 내담자 사이의 상호 신뢰 관계를 말하는 라포르, 라포는 Lapport가 아니라 Rapport이다. 


++ '아무튼, 스웨터'에서도 이상한 표기를 봤었다. 분명히 영문으로는 swing sweater라고 되어 있는데 한글로는 '스윌 스웨터'라고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반복 기재되어 있었다. 그것도 약간 폰트가 다르게 말이다. 스웨터의 종류별로 챕터가 구성되어 있지만 해당 스웨터에 대한 사진이 나와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구글에서 스웨터 별로 찾아가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구글링해 보면 스윙 스웨터는 있었지만 스윌 스웨터는 어디에도 없었다. 왜 이런 일 이 생기는 걸까. 


+++요즘 들어서는 읽은 책에서 비문찾기, 오타찾기, 맞춤법 오류 찾기 섹션을 따로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일교, 이교, 삼교, 크로스교를 한다는데 이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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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일 교수와 김현진 사이에 오갔던 편지를 책으로 엮어내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거기에 나이 차이도 엄청나게 나는 두 사람이 편지로 어떠한 대화를 펼쳐나갈지 궁금했다.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100이 있다고 하면 보통은 80 정도를 표현하는데 김현진은 120을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의 당돌함, 날카로움, 좀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그 느낌이 항상 그를 지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다소 모가 난 사람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야 마는 김현진의 독설을 노교수가 어떻게 풀어나갈까 궁금했다. 초반부에는 서로 예의를 지키며 조금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대화를 주고 받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의 서간 토론이 정말 볼만 했다. 극과 극의 사람이 만나 이렇게 논리적으로, 이렇게 우아하게, 이렇게 감정을 다치지 않고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경우가 우리에게 있었던가. 토론 문화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이런 대화가 있었고, 이런 책이 출간되었었다는 사실에 새삼 기뻤다. 


보편적 30대 여성의 목소리를 낸다고 여겨지는 김현진은 소위 헬조선의 논리를 펼친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만 유독) 이렇잖아요. 이런 문제가 있잖아요. 하고 독설을 날린다. 그러면 역시나 연륜과 세계 각지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라교수답게 드넓은 시야로 그것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그런 문제는 (아니면 또 다른 문제가) 어디에든 있다고 말한다. 나도 동감한다. 왜 한국을 벗어나 살아 보지 않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이상향은 다른 곳에 있고 왜 한국에만 유독 문제가 가득하다고 여기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거칠게 예를 들어보자면 서울대생의 자살확률이 높은가? 서울대생이라면 선택받은 부류이고 요즘은 서울대생도 취업이 어렵다지만 아직은 여지가 있다. 누구나 안다. 서울대만 나오면 그 자부심으로 평생을 한국에서 잘 살 수 있다고. 그래서 너도나도 서울대에 들어가려 한다고. 하지만 미국의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곳에서의 학생 자살률은 끔찍할 정도로 높고 그 이유로 그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부모들도 의외로 많다. 자녀가 성적이 매우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십여년전 미국인 친구에게 한국사람들 중에 한국이 너무 경쟁적이라고 생각해서 미국을 이상적인 곳으로 생각하고 이주를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했더니 놀라워하면서 미국이 더 경쟁적이라고, 미국의 젊은이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 해서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있다. 모두 자신들의 문제가 가장 큰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이기 때문에 내 우물만의 문제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우물에만 심각한 문제가 엄청나게 많다고 여기는 것이다. 소위 청년실업 문제는 이 시기를 살아가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가장 큰 화두이자 어려움이다. 그런데 이 거친 논리에 라교수는 때로는 점잖게 때로는 다소 가혹하게 김현진의 비논리를 지적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일갈한다. 의외의 면이었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주장을 펼치지는 못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 두 저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지 하며 서로 봐주는 것 없이 정면승부를 펼치는 느낌이었다. 


'누구 좋으라고 애를 낳아?'' 하는 김현진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험은 자녀 넷을 낳아 키운 경험이라고 주저없이 말하는 라교수. '고래는 자기 아픔만 생각하고 상처와 싸우려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밧줄을 쥐고 고래가 지쳐 죽기만 기다리면 되었다'는 '모비딕'의 내용을 예로 들면서 서른이 넘도록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를 줄곧 넋두리하는 현진에게 라교수는 '영리하다는 사람들도 자기 상처만을 끌어안고 그 상처와의 싸움에 빠져 결국 인생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특히 지적이고 예민한 그리고 자기에게 집착이 강한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있다면서' 말이다. 다소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지적이지만 읽는 이로서는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모두들 성장과정에 나름의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자신만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 되었다는 그의 논리는 읽는 나도 좀 과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인데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못 한다고 하다니. 도대체 그 평범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역시 주저함이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말해버리면 어떻게 뒷수습을 하지 하는 주저없이 돌파하는 것이다. 역시 김현진 스타일. 


한화그룹인가? 김승연 회장의 딸이 되어 자신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게 모조리 되갚아 주고 싶다는 현진에게 라교수는 '어떤 경우이건 사람과 사귀다 상처를 입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도록 허용한 본인의 잘못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답한다. 보통은 김현진의 독설과 궤변에 대화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텐데 라교수는 이성을 잃지 않고 이렇게 지적해 주는 것이다. 실로 대단한 지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한판 정면승부가 아름다웠다. 간만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책을 읽는 경험을 했다. 


+ '~한 채로'와 '잘난체하다' 는 분명 다른데 이 '채'와 '체가 그냥 이 책에서는 몽땅 '채'로 되어 있었다. 왜 이런 일이 거의 모든 책에서 발견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자동수정기능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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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아파트 키드의 이야기. 정말 우리들 모두는 끔찍한 성장기를 살아냈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의 미묘한 관계, 그들의 심리를 따라가노라니 아스라히 나의 어린 시절 경험들이 겹치면서 어른이 된 것이 새삼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 모두는 이유없이 이 땅에 내던져 졌는데도 이렇게 살아남은 것이다.   


아파트 문화, 학원 문화 등등 한국 고유의 것들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이 책은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됐었다고 한다. 그 반응들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 창비 만화 시리즈 마음에 든다. 다 읽어봐야 겠다.





이어서 잠자는 고딩들의 모습을 담은 현직 국어교사의 글/그림집. 이들도 이렇게저렇게 마지막 미성년의 시기를 살아내고 있었다.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자는 모습과 뒷모습은 참으로 무방비라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다. 아름답기도 하고 솔직하기도 하고. 


+ 아주 지엽적인 이야기지만, 자신이 추천한 책을 사 보고 그것을 되팔기를 원하는 학생에게 감동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권장도서를 도서관에서 대출과 반납만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한 학생이 교사(저자)에게 무슨 책을 봐야할까 질문하고 그렇게 추천받은 책을 직접 사봤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도 본인에게 권장도서에 대한 질문을 직접 했다는 것보다 책을 '구매'했다는 것을 더 높이 산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왜 도서관에서 대출과 반납하는 것은 그것'만'하는 것이고 구매한 것은 '직접 구매'한 것이고 감동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을 되팔려는 노력까지도. (그래서 알라딘중고서점을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왠지 '이러다 우리 정말 잘 될지 몰라'에서 나온 '책 구매예찬'과 동일선상에 있는 이야기같았다. '이러다~'에서는 저자 본인은 휴대폰 비용도 한달에 십오만원 정도, 커피값도 한달에 십오만원 정도 지불하는데 (책구매는 이보다 많이) 정작 책구매에는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지불하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저자는 휴대폰과 커피보다 책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두에게 휴대폰보다, 커피보다 책이 더 절실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대부분이 십오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휴대폰과 커피에 지불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장기 불황 시기에 말이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덮친 이 상황에서 말이다. 정말 묻고 싶다. 왜 책을 사보는 게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인가? 너무 저자 관점 아닌가?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 때문에? 나라면 도서관에서 알뜰하게 책을 빌려보는 애들도 똑같이 아니 더 많이 예뻐보일 것 같은데. 우리의 세금을 알차게 이용하고 있고 나름 부지런을 떨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나는 다만 책을 사보든 빌려보든 그건 맘대로 하고 그저 책 이야기로 수다꽃을 피울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꿈꿔볼 뿐이다. 


그림이 정말 곱고 귀여워서 표지의 이 소년을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내용은 너무 어두운 것 같았지만 아이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했다. 아이의 관점은 어떨까 궁금했기에. (좀 이기적인가.) 그리고 아이에게 제일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정말 엄마아빠가 싸우면 아이는 죽음을 생각하냐고. 나는 그게 제일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아이는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생존 자체가 부모에게만 전적으로 매달려있는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의 격렬한 싸움은 생존 자체의 위기로 느껴지기에 충분히 가능하단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전반적으로 슬펐고, 가장 슬픈 부분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꿈) 이야기라고 했다. 그렇구나. 그래서인가 사이가 좋지 않아 매일 싸우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보다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이 더 낫다고. 


이 사계절 만화가 열전 시리즈도 마음에 든다. 


만화 시리즈를 탐독해 볼 일이다. 그런데 어떤 만화시리즈는 도서관에서 대출이 안 되고 어떤 것은 된다. 과연 그 기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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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집'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단순한 주거 공간 그 이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집이란 아파트를 말할 수도 있고, 부동산불패를 말할 수도 있고, 가장 이율이 높은 재테크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집=아파트라는 통념을 깨고 소위 집=빌라 구매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왜 사람들은 빌라 구매 보다는 아파트 구매를 선호할까. 아니 왜 당연히 주택구입하면 아파트구입을 떠올릴까. 그 가장 주된 이유는 가격이겠지. 빌라는 구매 시점 아니면 신축분양 시점에 가장 가격이 높고 세월이 흐를수록 가격이 내려가는 것만 남는데(물론 재개발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제 새로 지은 빌라가 재개발이 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리므로 논외로.) 아파트는 절대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오르기만 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하다) 아니 낡고 오래될 수록 가격이 더 올라가는 실로 특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파트 구입기는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지만 빌라 구입기는 처음이라 신기했다.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서 자라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가 그냥 늘 사는 곳일 테지만 어려서 아파트에서 살지 않은 사람이나 다른 주거 형태를 경험해 본 사람에게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와 나에게) 아파트는 현재 그 가격과 미래의 가격 상승 가능성을 빼놓고 단순주거공간으로 간주했을 때 그리 바람직한 주거형태는 아니라는 것에 동감한다. 대형 셀의 한 부분이 되어 살아가는 느낌, 층간 소음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는 느낌,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아파트내 스피커폰 방송과 시도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소독원과 검침원. 뭔가 집단 생활을 한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정해진 시간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재활용품을 분리해 배출한다.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봐 비판적인 견해는 내비치지 못하고, 다같이 우리 아파트 가격을 올리자는 분위기에 동참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의 양태를 우리의 아파트를 정중앙에서 측면으로 갈라놓고 바라본다면 정말 우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똑같은 구조를 지닌 고층 아파트의 한 켠을 차지해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혹시 여기는 디스토피아? 그도 아니면 카프카의 '변신'이 절로 떠오를 수도 있다. 


혹자는 집=아파트라는 등식에 반기를 드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솔직히 한국의 가옥 구조가 아파트가 아니면 빌라인데 소위 제대로 지어진 빌라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살 만 한 집=아파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 이야기는 바로 아래의 책에 나오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가구나 다세대부터 옥탑방, 반지하, 고시원, 하숙, 원룸, 고시텔, 오피스텔 등등 소위 건물주님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임대형 주택들이 난무하니 이 논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기생충'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비안간적인 주거 형태에 대해 다들 알고 있지만 암묵적으로 그런 시스템에 동의하면서 '그러니까 억울하면 돈 벌어서 너도 아파트 사'라는 논리에 편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책은 이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위 아파트 키드들의 이야기. 이집저집 이동을 하면서 살아온 아파트 키드들의 부모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다보면 이 책이 서울 개발의 역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부모님들이 아파트로 재테크에 성공 혹은 실패하셨는지를 당시의 시점과 현재의 시점에서 자식들이 논한다. 어릴 때는 이렇게 알았는데 커서 알고보니 이렇더라는 식의. 그리고  읽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때 이 집을 팔지 말걸, 저 집을 살걸, 이 집을 끝까지 가지고 있을 걸 등등의 아파트선택과 매매에 대한 후회들이 정말 많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통해 재산을 불려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부자아빠 로버트 기요사키는 '집은 자산이 아니라 부채'라고 했다. 다만 그 집을 여러 채 소유하면서 임대를 할 때 그 부채는 자산이 된다고 했었다. 이 주장은 임대소득자를 찬양하고 너나 할 것없이 부동산 임대업에 뛰어들게 만드는 주장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 이야기는 오히려 미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집을 여러 채 보유해서 세를 놓으면 세제 혜택을 주는 미국의 이야기인데,  그럴 법한 것이 미국에서 주택 보유 세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여러 채를 보유하면 그 세금을 감당할 길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집을 사놓기만 하면 저절로 오르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세차익을 꿈꿀 수도 없다. 우리는 양도소득세라고 해서 아파트를 양도했을 때 소득이 생기면 그 소득에 해당되는 부분을 기준으로 그에 대한 세금을 매기지만 미국은 무조건 부동산을 살 때와 팔 때, 보유할 때 각각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야 한다. 집값이 샀을 때보다 더 떨어졌는데도(얼마든지 가능하다.) 매매를 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세금을 떠안아야 한다. 그러니 집은 자산이 아니라 부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유지보수비도 만만치 않다. 오래된 집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비싼 인건비도 한 몫 한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현저히 달라진다. 일단 사 놓기만 하면 오르고 은행대출금리는 아주 낮고, 요즘 들어 보유세가 오른다고 난리지만 미국에 비하면 과장을 보태 거의 백분의 일 수준이다. 그러니 보장된 꿈의 재테크가 아닐 수 없겠다. 이런 이야기도 이제 각종 부동산 정책 때문에 옛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은 아무리 빽빽하게 부동산 정책을 개선해도 다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는 것 같고, 법이나 각종 규제는 있는 자들의 편에 아니면 적어도 아파트 보유자 편에 있는 듯하다. 


여러 이야기들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 개발독재 시절에 남편이 학벌이 있어서 탄탄한 직장에 다니며 아파트를 사고 옮겨다니며 재산을 불려 현재는 유명 건축가가 지은 멋진 단독주택에 살며 건물과 몇 개의 임대용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부부(이후에 시부모)가 있었다. 그 자녀가 결혼을 하니 자녀들은 서울 안에 살고 싶은 지역을 골라 말하기만 했는데도 시부모는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지역의  30평대 아파트 전세금을 턱 내주었고 이어 자녀 부부가 자녀도 낳고 세간도 들어나자 40평대 아파트 전세금을 또 턱 내주었다는 이야기. 실제 그 자녀 부부 자신들은 소득이 그리 높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위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집값걱정을 하지 않는 극소수에 해당됐다. 그런데 이들의 삶이 가장 수월해 보였고 사연의 분량도 가장 짧았다. 이에 반해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실로 파란만장할 정도. 역시 행복의 이유는 하나고(짧고) 불행의 이유는 다양한(긴) 것인가. 


아파트를 향한 한국인의 열망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 열망은 대대손손 이어지고 있으며 작금의 실태를 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 열망은 계속될 것 같아 만감이 교차한다. 정말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책의 내용 자체는 흥미진진했다. 지금 우리의 삶도 이후에 기록되겠지. 지금 이 시점은 어떻게 기록될까. 먼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봐야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하지만 골치가 아프다고 언제나 외면할 수는 없는 문제가 우리의 주거 시스템에 대한 문제이기에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재미도 동시에 있는) 책들이었다. 문제는 좀 심하게 머리가 복잡해지고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었지만. 


+ 위의 책 '생애최초~'에 '자고 나란' 이라는 표현을 봤다. 이게 뭔가 싶어 생각해 보니 '나고 자란'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자동 수정 기능인가. 너무 얼토당토 않는 오타였다. 신기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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