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집'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단순한 주거 공간 그 이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집이란 아파트를 말할 수도 있고, 부동산불패를 말할 수도 있고, 가장 이율이 높은 재테크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집=아파트라는 통념을 깨고 소위 집=빌라 구매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왜 사람들은 빌라 구매 보다는 아파트 구매를 선호할까. 아니 왜 당연히 주택구입하면 아파트구입을 떠올릴까. 그 가장 주된 이유는 가격이겠지. 빌라는 구매 시점 아니면 신축분양 시점에 가장 가격이 높고 세월이 흐를수록 가격이 내려가는 것만 남는데(물론 재개발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제 새로 지은 빌라가 재개발이 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리므로 논외로.) 아파트는 절대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오르기만 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하다) 아니 낡고 오래될 수록 가격이 더 올라가는 실로 특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파트 구입기는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지만 빌라 구입기는 처음이라 신기했다.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서 자라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가 그냥 늘 사는 곳일 테지만 어려서 아파트에서 살지 않은 사람이나 다른 주거 형태를 경험해 본 사람에게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와 나에게) 아파트는 현재 그 가격과 미래의 가격 상승 가능성을 빼놓고 단순주거공간으로 간주했을 때 그리 바람직한 주거형태는 아니라는 것에 동감한다. 대형 셀의 한 부분이 되어 살아가는 느낌, 층간 소음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는 느낌,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아파트내 스피커폰 방송과 시도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소독원과 검침원. 뭔가 집단 생활을 한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정해진 시간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재활용품을 분리해 배출한다.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봐 비판적인 견해는 내비치지 못하고, 다같이 우리 아파트 가격을 올리자는 분위기에 동참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의 양태를 우리의 아파트를 정중앙에서 측면으로 갈라놓고 바라본다면 정말 우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똑같은 구조를 지닌 고층 아파트의 한 켠을 차지해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혹시 여기는 디스토피아? 그도 아니면 카프카의 '변신'이 절로 떠오를 수도 있다. 


혹자는 집=아파트라는 등식에 반기를 드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솔직히 한국의 가옥 구조가 아파트가 아니면 빌라인데 소위 제대로 지어진 빌라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살 만 한 집=아파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 이야기는 바로 아래의 책에 나오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가구나 다세대부터 옥탑방, 반지하, 고시원, 하숙, 원룸, 고시텔, 오피스텔 등등 소위 건물주님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임대형 주택들이 난무하니 이 논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기생충'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비안간적인 주거 형태에 대해 다들 알고 있지만 암묵적으로 그런 시스템에 동의하면서 '그러니까 억울하면 돈 벌어서 너도 아파트 사'라는 논리에 편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책은 이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위 아파트 키드들의 이야기. 이집저집 이동을 하면서 살아온 아파트 키드들의 부모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다보면 이 책이 서울 개발의 역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부모님들이 아파트로 재테크에 성공 혹은 실패하셨는지를 당시의 시점과 현재의 시점에서 자식들이 논한다. 어릴 때는 이렇게 알았는데 커서 알고보니 이렇더라는 식의. 그리고  읽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때 이 집을 팔지 말걸, 저 집을 살걸, 이 집을 끝까지 가지고 있을 걸 등등의 아파트선택과 매매에 대한 후회들이 정말 많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통해 재산을 불려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부자아빠 로버트 기요사키는 '집은 자산이 아니라 부채'라고 했다. 다만 그 집을 여러 채 소유하면서 임대를 할 때 그 부채는 자산이 된다고 했었다. 이 주장은 임대소득자를 찬양하고 너나 할 것없이 부동산 임대업에 뛰어들게 만드는 주장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 이야기는 오히려 미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집을 여러 채 보유해서 세를 놓으면 세제 혜택을 주는 미국의 이야기인데,  그럴 법한 것이 미국에서 주택 보유 세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여러 채를 보유하면 그 세금을 감당할 길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집을 사놓기만 하면 저절로 오르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세차익을 꿈꿀 수도 없다. 우리는 양도소득세라고 해서 아파트를 양도했을 때 소득이 생기면 그 소득에 해당되는 부분을 기준으로 그에 대한 세금을 매기지만 미국은 무조건 부동산을 살 때와 팔 때, 보유할 때 각각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야 한다. 집값이 샀을 때보다 더 떨어졌는데도(얼마든지 가능하다.) 매매를 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세금을 떠안아야 한다. 그러니 집은 자산이 아니라 부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유지보수비도 만만치 않다. 오래된 집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비싼 인건비도 한 몫 한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현저히 달라진다. 일단 사 놓기만 하면 오르고 은행대출금리는 아주 낮고, 요즘 들어 보유세가 오른다고 난리지만 미국에 비하면 과장을 보태 거의 백분의 일 수준이다. 그러니 보장된 꿈의 재테크가 아닐 수 없겠다. 이런 이야기도 이제 각종 부동산 정책 때문에 옛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은 아무리 빽빽하게 부동산 정책을 개선해도 다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는 것 같고, 법이나 각종 규제는 있는 자들의 편에 아니면 적어도 아파트 보유자 편에 있는 듯하다. 


여러 이야기들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 개발독재 시절에 남편이 학벌이 있어서 탄탄한 직장에 다니며 아파트를 사고 옮겨다니며 재산을 불려 현재는 유명 건축가가 지은 멋진 단독주택에 살며 건물과 몇 개의 임대용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부부(이후에 시부모)가 있었다. 그 자녀가 결혼을 하니 자녀들은 서울 안에 살고 싶은 지역을 골라 말하기만 했는데도 시부모는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지역의  30평대 아파트 전세금을 턱 내주었고 이어 자녀 부부가 자녀도 낳고 세간도 들어나자 40평대 아파트 전세금을 또 턱 내주었다는 이야기. 실제 그 자녀 부부 자신들은 소득이 그리 높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위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집값걱정을 하지 않는 극소수에 해당됐다. 그런데 이들의 삶이 가장 수월해 보였고 사연의 분량도 가장 짧았다. 이에 반해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실로 파란만장할 정도. 역시 행복의 이유는 하나고(짧고) 불행의 이유는 다양한(긴) 것인가. 


아파트를 향한 한국인의 열망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 열망은 대대손손 이어지고 있으며 작금의 실태를 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 열망은 계속될 것 같아 만감이 교차한다. 정말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책의 내용 자체는 흥미진진했다. 지금 우리의 삶도 이후에 기록되겠지. 지금 이 시점은 어떻게 기록될까. 먼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봐야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하지만 골치가 아프다고 언제나 외면할 수는 없는 문제가 우리의 주거 시스템에 대한 문제이기에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재미도 동시에 있는) 책들이었다. 문제는 좀 심하게 머리가 복잡해지고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었지만. 


+ 위의 책 '생애최초~'에 '자고 나란' 이라는 표현을 봤다. 이게 뭔가 싶어 생각해 보니 '나고 자란'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자동 수정 기능인가. 너무 얼토당토 않는 오타였다. 신기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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