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가 ‘넥서스‘에서 말하는 내용과 통한다. 트럼프에 대한 직설이 특히나 강렬하다. 그는 진실을 반대로 말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진실을 무시하는 아니 진실은 상관없어 하는 사람이다. 무시무시하다. 신문에서는 연일 인공지능이 우리의 생활 곳곳에 파고들어 우리 삶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외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정보의 동굴에 갇힌 상황, 진실이 요구되지 않는상황이라고 한다. 올더스 헉슬리가 두려워한 ‘멋진 신세계‘의 도래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민주주의의 기본 자세인 ‘경청‘의 자세가 없어지고 모두 다 소통이라 착각하며 되울리는 자기 목소리만 듣고 살고 있다. 어마어마하다.
너도나도 유투버가 되고 싶어하는 세상에서 강연을 영상자료로 배포하는 것에 반대하고 책으로 그것도 시리즈물로 출간한다는 발상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책. 백페이지 분량에 강연을 듣는 것 같은 편안함으로 하지만 생각은 계속 하면서 읽게 되는 책. 그랜드피아노 두 대와 꽃으로 가득한 그의 방에 방문해 보고 싶다. 특이한 분. 특히나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자본주의를 꿰뚫어보는 그의 통찰에 감탄할 뿐이다. 자기 실현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자신을 자발적으로, 열정적으로 착취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 시스템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이 된다. 조금만 아파도 진통제를 찾고 리질리언스를 강조해 오뚝이처럼 넘어져도 죽을 때까지 반복해서 일어나는 불굴의 의지를 높이 평가하는 서구 문명(과 그를 추종하는 모든 문명)에 대한 일침에 진정으로 공감이 되었다. 고통을 최대한 느끼지 않으려는 서구 문명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세계적 차원의 현상이 된 ‘무고통‘추구가 인간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진정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한 책.
회복력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는 트라우마의 경험을 성과 향상을 위한 촉매로 만든다. 심지어 트라우마 뒤에 오는 성장이라는 말까지 사용되고 있다. 영혼의 힘을 훈련한다는 회복력 트레이닝의 목표는 인간을 최대한 고통에 무감각하며 언제나 행복한 성과주체로 만드는 데 있다. - P11
오늘날의 미국인들은 아마도 고통 없는 삶을 일종의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처럼 생각하는 지구상 첫 번째 세대에 속할 것이다. 고통은 스캔들이다. - P12
고통을 주는 완두콩이 사라지면 인간은 부드러운 매트리스로 인해 고통받는다. 바로 삶의 지속적인 무의미함 그 자체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 P42
나는 오직 고통을 통해서만 그 각각의 것들이 내게 얼마나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게 되고, 고통의 이런 법칙이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 및 세상 만물이 내게 지닌 가치를 온전히 결정한다....가짜뉴스와 딥페이크가 존재하는 탈사실적 시대에는 현실의 둔감성, 나아가 무감각성이 생겨난다. - P53
하루만 유효한 인스타 스토리에 스토리를 올리는 것으로 스토리텔링이라 믿는 스토리셀링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울리는 경종.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듣고 흘려버린 내용들이 있을까봐 종이책으로 한 번 더 읽었다. 아포리즘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유의미해 허투루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왜 외롭고 우울하고 불안한지 정확하게 짚어준다. 네트워킹은 연결되어있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의 감기가 우울증이 된 것이다. 한병철의 글은 시적이고 압축적이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일단 적응이 되면 문장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게 된다. 그런데 분량이 길지 않아 휘리릭 읽어낼 수 있다는 장점까지. 그동안 몇 번 실패했었는데 이제 성공해서 뿌듯하다. 오디오북으로 듣고 종이책으로 다시 읽는 것도 종이책 완독의 문턱을 낮추는 방법이 되었다. 그의 모든 작품을 섭렵해야 겠다.
경청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되는 내용이 아니라 사람, 즉 타자가 누구인가다... 경청은 상대에게 이야기할 영감을 주고 이야기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소중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 사랑받는다고까지 느끼는 공명의 공간을 연다. - P118
커져가는 접촉의 빈곤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우리에게서 접촉이 완전히 없어지면 우리는 스스로의 자아 속에 불치의 상태로 사로잡힌 채 잔류할 것이다. 접촉은 우리를 자아 안에서 밖으로 꺼내준다, 접촉의 빈곤은 결국 세계 빈곤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우리를 우울하고, 외롭고, 불안하게 만든다. 디지털화는 이러한 접촉의 결핍과 세계 빈곤을 계속해서 악화시킨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은 늘어가는 연결성이다. 여기에 바로 파멸적인 네트워킹의 변증법이 존재한다. 네트워킹되어 있다는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 P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