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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작가들의 글들은 한국인의 정서를 잘 반영한다. 그만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같이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읽게 된다. 또 읽으면서 생각하지 않아도 술술 그냥 술술 읽힌다. 그중에 최고라면 아마 조정래선생님이 가장 최고가 아닐까
주인공들의 이름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많은 인물들의 이름을 지어내 10권의 대하소설이면 아.. 생각만 해도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아마 외국소설이었다면 그 이름들을 적어가며 읽어도 헷갈려했을테지만 굳이 기억해 내려 하지 않아도 인물의 특성까지 고려한 이름은 금방 익숙해진다.
중편이지만 장편 같은 느낌을 들게 하는 <황토> (2011.5 해냄) 의 주인공 점례,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네 할머니쯤 되는 분 한국의 역사와 함께한 굴곡진 인생을 겪은 여인네다.
1974년에 이미 발표된 소설이지만 37년만에 내용을 수정하여 새롭게 발간된 이 책은 조정래 특유의 황토라는 제목이 말해주는 느낌처럼 구겨지고 짖밣혔던 우리나라 역사와 맞물린 여인의 비참한 삶을 보여준다.
처음 등장하는 동익이의 조난사고,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한통으로 가슴이 철렁한다. 경자만 들어도 깜짝짬짝 놀라는 점례에게 과연 그녀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동생의 사고소식에도 걱정하는 것이아니라 인디언 어쩌구 하는 욕설부터 하는 큰 아들 태순, 그리고 그런 큰오빠를 나무라는 세연이까지 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다.
큰아들과 막내 동익이는 왜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지 .. 다음장을 또 다음장을 넘기게 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그들의 숨은 이야기에 어머니 점례과 뗄 수 없는 삼남매의 아버지들 (세남매의 아버지는 모두 다르다)까지 일제시대, 전쟁, 그리고 미군정의 한국역사가 고스란히 담아 있었다.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일본지주 야마다에게 당하고, 큰이모에 손에 이끌려 박항구라는 사람에게 재혼을 하고 한때 오붓한 삶을 살지만 전쟁으로 인해 풍비박산나고 북으로 간 남편때문에 옥고를 치르면서 딸 세진이의 죽음을 눈으로 봐야했던 참혹함까지 감내하고 나니 거부할 수 없었던 운명의 소용돌이앞에 굴복할 수 없던 모성애로 혼혈아를 키워내 감싸안은 여인내의 삶은 한마디로 기구하다.
놀라운 사실은 지금도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어 혼혈이라든가 애비가 다른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에게 던지는 시선은 따뜻하지 않다. 70년대라면 두말없이 더 심했을 텐데 그런 사회적 시선에게 과감하게 세연의 입을 통해 던지는 말, 이세상 사람들이 널 어떻게 보든 그건 그들의 천박함이고 야함일 뿐이야라고 눈물로 호소는 시대적 아픔을 향한 일침이었다.
애들아빠가 쇼파에 있었던 책을 아침 출근길에 잠깐 읽는다는 것이 하마터면 지각할 뻔했다는 말을 들었다. 궁금해서 일을 할 수 없었다는 데 결말을 말해주지 않았다. 늘 결말부터 읽는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조정래님의 글은 읽기 시작하면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