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와카는 얼마전 공동멘션에서 어엿한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비록 건너편의 학원 때문에 강사가 학생에게 외쳐대는 "너희 바보야? 쓰레기야? 죽어 멍청아!" 따위의 소음이 들리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5층 까지 헥헥대며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게의치 않는다. 요는 온전히 개인적인 공간을 가졌다는 점이다.

 더 이상 목욕을 하기 위해 대중탕을 이용할 필요도, 추운 겨울날 일일이 가운을 걸치고 화장실까지 갈필요도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스스륵 직행하면 된다. 욕실 말고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아니 가장 중요하다. 침대를 새로 놓았다. 그것도 혼자 사는 여자에게는 다소 안 어울릴지도 모르는 더블 사이즈 침대. 혼자 자기엔 넓고 둘이 자기엔 좁은, 하지만 그것이 이 침대의 목적이다. 남자를 눕힐 수 있는 침대.

 침대는 갖추어져 있으니 이제 남자를 찾아야 한다. 굳이 찾을 것도 필요도 없는 것이 그의 침대에 오고 싶어하는 남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부단하게마치 5월의 장맛비처럼 절절하게 들이대는 스타일'의 스미타니 아저씨, '오로지 과감하게 쫓아다니기만 하는 스타일'인 후미오. 하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우에모토가 나타났다. 사실 오래 전 부터 회사에서 함께 일했으니 그가 나타났다기 보다는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요리도 어느 여자 못지않게 훌륭하고 보통 남자들이 신경쓰지 않는 정리까지 깨끗하게 하는데다 대화까지 잘 통하는 이 남자. 하지만 침대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저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마시면서 밤새 수다를 떨 뿐이다. 게다가 어린 여자는 싫고 이혼한 여자가 더 좋단다. 그 이유라고 하는 말이, 그럴 때 인간의 자아가 드러나요자아가 없는 여자는 더는 못 해먹겠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얼렁뚱땅 포기하거든요계속 파묻히기만 할 거예요저는 그런 게 싫어요더는 못 살겠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자아를 가진 여자가 좋아요”. 일리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왠지 모르게 찜찜하다. 

 신체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혼한 여자를 더 좋아한다는 걸 보니 다행히(?)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여자건 남자건 간에 친구와의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사실 만나면 여자, 축구, 군대 심하게는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뿐인 남자들과의 대화보다 얘깃거리가 화수분 처럼 끊임없이 나오는 여자들과 수다 떠는게 더 재밌을 때가 있다. 아무튼 와카의 '침대의 목적'에는 자격미달이다. 우에모토는 신경도 안쓰겠지만. 그런데 이 남자, 멋있어 보인다. 물론 외모의 덕도 있으리라. 골동품 가게에 있는 오히인형 같은 외모에 날씬하고 하얀 얼굴은 '잘 생겼다'를 넘어 '고상하다'라는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고상한 외모에 요리도 잘하고 밤새도록 여자와 재밌게 수다를 떨 수 있는 남자. 스미타니 아저씨 처럼 사람을 녹이는 입담으로 여자를 '후리는' 남자 보다 '여자를 꼬이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양 돌진하는 후미오보다 우에모토 쪽이 내 눈에는 훨씬 멋있어 보인다. 나 역시 그의 고상함에 빠져든 걸까. 

 사실 내가 우에모토 처럼 되고 싶어서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또한 멋있어 보였을 것이다. 고상한 외모는 그렇다치고(나로서는 불가능하다), 여자'친구'와 울고 웃고 남의 욕도 하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남자. 그저 희망사항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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