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3 박상우

 

 

어둠이 졸졸졸 고이는 공터

구석에 널브러진 폐타이어

속도의 중력에 실려 살아왔던 한 생애의

최후를 나는 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달려왔을 그 많은 길과 일별했던

풍경들을 그는 기억하고 있을까

누구에게나 한때 생의 절정은 있는 법이다

속도란 마약과도 같은 것

망가지고 부서져 저렇듯 버려져서야

실감되는 무형의 폭력인 것이다

가속의 쾌감에 전율했던 날들은 짧고

길고 지루한 남루의 시간 견디는

그대 생의 종착

생은 언제나 돌이킬 수 없을 때에는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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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뛰어오르는 꼴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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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지 않는 섬 - 원재훈


 
 
섬이 그리운 것은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와
나와 섬 사이에 있는 바다는 다르다.
섬이 섬을 보는 것과
내가 섬을 보는 것은 다르다
섬은 아무런 그리움이 없이 섬을 본다
나는 생각을 가지고 섬을 본다.

그대여 나는 한때 섬처럼 그대를 그리워했다
항상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그대여
나는 왜 그대가 되지 못했을까
그대가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왜 항상 나의 생각만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대여
바다가 섬에 스미듯
이제 나는 그대에게 스민다.
달빛이 바다에 와 저의 색을 버리고 프르게 빛나듯
그대의 섬, 그대를 바라보기 아주 적당한 거리에서
나도 하나의 작은 섬이 되고 싶다
그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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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남 - 김재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통째로 그 사람의 생애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아픔과, 그가 가진 그리움과

남아 있는 상처를 한꺼번에 만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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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성의 고리 -조용미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았다 목동자리, 처녀자

, 사자자리, 봄의 대삼각형, 목성과 토성

  토성의 고리 대부분은 얼음

  내 영혼의 성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무얼까

 

  처녀자리 스피카는 신비한 푸른빛이 돈다

  다른 별에서 지구를 보아도 이렇듯 집요하고 혹독하

게 아름다운가

  황금측백나무의 어느 한 부분을 눈이 멀 듯 뚫어지게

바라보다 깨어나는 오후 3, 지구인의 고독한 하루를

짐작할 수 있을까

 

땅은 컴컴한데 몸이 휘청거리듯 가볍다 몸은 고요

한데 머리는 어지럽다

 

  토성의 고리처럼 내게도 어떤 영이 줄곧 따라다닌다

  나뭇잎이 내뿜는 기운, 꽃가루가 떠 있는 물의 움직임

  비가 오기 전 대기의 꿈틀거림

 

  토성의 고리처럼 보이지 않는 붉은 차가움, 우리의 심

장은 잠시 뜨거웠지만 오래 식어가고 점점 차가워지고

  우리의 심장은 오래 뜨거울 수 있지만 점점 차가워

지고

  순식간에 미지근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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