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무거울까? - 크리스티나 로제티
무엇이 무거울까?
바닷모래와 슬픔이.
무엇이 짧을까?
오늘과 내일이.
무엇이 약할까?
봄꽃과 청춘이.
무엇이 깊을까?
바다와 진리가.
배려 – 최승호
아무것도 모르는 눈사람에게 왜 사느냐고 묻지 말기
바랍니다. 그는 자신이 어린애인지 늙은이인지 모를 뿐
더러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릅니다. 온 곳도 모르고
가는 곳도 모르며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채 우는
듯 웃는 듯 멍청하게 서 있는 고아 같은 눈사람에게 집,
식구, 고향에 대해 묻는 일도 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진은영
봄, 놀라서 뒷걸음질 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사랑의 이유 - 김재진
당신이 꼭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당신이
완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은 장점보다
결점이 두드러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결점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연인들이 그러하듯
어쩌다 보니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쉽게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향한 그 사랑은 결국 나를 위한 것입니다.
당신이 없으면 힘들던 마음
역시 내가 아팠기 때문입니다.
슬픈 자화상:나혜석을 다시 읽으며 - 김영란
꽃이 피었다 한들
그대 위해 핀 건 아냐
금지된 소망 앞에
슬픈 꽃말 피어난다고
세상에 맞춰 살라는
그런 말 하지 마
수없이 피고 지는
삶이 곧 사람인 걸
덧칠해도 더 불안한
세월은 마냥 붉고
한 시대 행간을 건너는
여자가 거기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