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주말에 친구들과 근처 park에 다녀왔다. 1년만에 만나는 사람도 있어서 반가웠고, 혼자 걸어도 좋을 법한 곳에 함께 걸으니 몸과 마음이 흥겨웠다. 그런데, 불편하고 또 불편한것..들. 내가 상대적으로 예민한 것 같지만,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작은 것 하나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 행동, 그 관련된 모든 것들. 그리고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괴로워하며 더 작아져 버린 마음.
나의 보스는 화가 많다. 정확하게 말하면, 감정의 기복이 널을 뛴다. 기분 좋음과 나쁨의 격차가 심하고 왔다갔다하는 주기도 매우 짧다. 그분의 기분과 상관없이 반응하는 나의 태도는 마치 AI인양 프로토콜화 되어있다. 나름의 방어기전을 사용하며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행동의 프로토콜화는 비교적 쉬운 반면, 내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느껴지는 감정이 내 안에 스며들고, 그것이 나의 마음을 괴롭히고, 부정적인 생각과 말이 떠오르며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곤 한다. 느닷없이 짜증내고 화내는 그분의 잘못이라고 탓을 해봐도, 끝내 내가 그것들 잘 대응하고 견디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책한다. 의연해 보이는 동료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냐고...그런데, 자기도 괜찮지 않다고, 보스가 난리치는 날에는 자신의 느끼는 감정과 현실을 비현실화 하려고 집에가서 SF 소설을 읽는다고 한다. 아.(한숨) 문제는 인간사..어딜가든 이런 군상들과 함께 일하며 지내야 한다는 사실. 또 화들짝 정신 바짝 나게 하는건, 혹여 나도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존재였고, 존재이고,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런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잔인하고 극단적인 폭력은 사소하기 그지 없는 부당함과 폭력들이 켜켜이 쌓여, 작은 이로 불려지는 수많은 이들의 고통으로 현실화, 구체화되어 드러나게 된다. 자유,평등, 존중에 대한 거대한 인간성 회복함을 논하기 앞서 우리는 반드시 각개인 앞에 놓여 있는 삶, 그리고 그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이웃들을 먼저 바라보고 그들의 디테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은 중요하다. 폭력이 단순히 폭력이라는 한 단어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폭력안에 포함된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들이 있으며, 하나하나 디테일과 마주할 때 비로소 그 폭력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의 디테일을 담고 있다. 프리모 레비가 겪어내어야 할 추위, 배고픔, 폭력, 노역, 목마름, 비인격적 대우 등이 점령하고 있는 그의 삶. 폭력을 가하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휘두르는 채찍, 혐오적인 발언, 자신과 다른 인격체로 대하는 태도들이 그들의 디테일이다.
수용소의 일상을 통해 레비도 우리에게 말한다 '아무런 의문 없이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ebook, 89%지점). 자본주의, 능력주의로 점철된 사회에서 결과 위주의 평가가 중요한 세태에 기대어 여러가지 모습으로 자행되는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말, 행동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도 못한 채, 동물적인 본능에 이끌려 좌지우지 되는 감정들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사람들의 민낯. 그런 사람들일 수록 사회적인 성공을 거머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또는 그 반대). 힘을 갖게 된다는 것,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 곧 자신의 가꾸어지지 않은 모습조차도 아무런 제지, 통제없이 타자를 향해 드러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능력주의의 자체가 폭력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시대조류의 저항없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단순히 복종하는 자세만 취하는 많은 사람들. 무리들. 그들의 일상을 볼록렌즈를 들이대고 어떠한 위험요소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배제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주류 흐름에 나의 삶이 잠식되어, 소소한 일상이 어떻게 빚어지고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한체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사람을 대한다. 자신의 삶 망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삶을 망치지 않고 잘 가꾸어 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혜윤 작가님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아닌 인간만이 간직한 고귀한 특성으로 우리들의 하루에 희망과 소망을 걸어보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상상력과 호기심, 다른 사람을 덜 수치스럽게 하는 배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 남들이 알든 말든 개의치 않는 고독한 열정, 내가 이러면 안되지 하고 자제하는 마음..." (아무튼,메모, 정혜윤, ebook 27% 지점) 그리고 "우리의 몸을 잘 가꾸고 기쁨과 슬픔, 분노와 환희, 비탄등이 정서들을 잘 가꾸는 것, 그래서 이승에서의 좋은 삶의 기억을 갖는 것이야말로 얼만나 중요한 일인가" (철학자와 하녀, 고병권,ebook, 110p) 두 분이 어느정도 힌트를 주신것 같다. 마음이 잘 다듬어진 한 인간이 최소한의 비폭력적인 삶의 모양을 갖추게 되면, 그 덕으로 본인 포함한 뭇 타자들이 인간다움에 가까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불가능한 환경일지라도 만에 하나) 수용소에 그런 사람 한명이라도 존재했다면, 그곳 역시 회복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