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 있다니. 그
다음엔 뭐지?
문득 이런 대사가
떠오른다.
'시체들이 바짝 말랐잖아. 피가 한 방울도 없다고.'
그게 아니면 댄
커티스의 1970년대 TV 호러쇼
대사를 인용할 수도 있겠다.
'중위,
저 세체들,
시체들엔 피가........
한 방울도 없어!'
그리고 오르간
효과음.
피로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뉴욕의 JFK 공항, 최신 기종
보잉 777 대형여긱기 한
대가 착륙한 직후 관제탑과 통신이 두절된다.
완전한 암흑 속에 비행기는 완전히 작동을 멈춘 것처럼 보인다. 하이재킹 징후도 없었고, 화재경보도 없었고, 조종석의 이상경보도 없었으며,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승객들의 반응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비행기는 마치 죽은 것처럼 암흑 속에 있다.
탑승했던 백아흔아흡 명 중 구조요청 또한 한 건도 없었다. 대체 이 비행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에프 굿웨더 박사가
이끄는 미 연방 질병관리센터의 카나리아 프로젝트 팀이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방탄복에 방독면까지 착용한 그들이 기내에서 발견한 건은
시체들뿐이었다. 게다가
시체들엔 외상증후가 전혀 없었고, 표정 또한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시체들의 부검을 하면서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부딪히고, 대체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죽게 된 것인지 조차 알아낼 수가
없다. 뒤늦게 생존자 네
사람이 발견되지만, 그들 역시
별다른 기억을 하고 있지는 않았고, 화물칸에서 발견된 흙으로 채워진 검은 나무상자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마침 뉴욕
시는 4백여 년 만에 관측되는
개기일식을 맞아 온통 축제 분위기였는데, 달이 태양을 엄폐하는 짧은 순간 세상은 종말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검실의 시체들이 하나 둘 깨어나고, 에프의 앞에 전당포를 운영하는 세트라키안이라는
노인이 찾아와 알 수 없는 말을 건넨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뱀파이어들의 습격과 생존자 네 명 또한 모두 뱀파이어로 변하게 되면서 도시는 점점 살아난 시체들로
뒤덮인다. 그리고 에프는 이
상황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한 세트라키안을 찾아가게 되는데...
2권에서는 에프와 세트라키안을 필두로 한
사람들이 이 모든 재앙을 불러온, ‘고대 종족’ 혹은 ‘마스터’라 불리는
최초의 일곱 뱀파이어들을 상태로 문명을 지키기 위한 전투를 벌인다고 하니 너무 궁금해진다. 아마 이 시리즈를 아예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1권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1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마자 바로 연결해서 2권을 밤새도록 읽고 싶은 기분이 들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 시리즈는
<스트레인>에 이어
<더 폴>과
<나이트 이터널>로 이어지며 뱀파이어 삼부작으로 완결되니 일단 읽는
순간, 다른 모든 일을 제쳐
두고 빠져들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자네가 싸운 건 시체였어. 병균에 사로잡힌."
세트라키안이
대답했다.
거스는 뚱보의 표정을
떠올렸다. 텅 빈
표정. 갈망. 그리고
하얀 피.
"뭐요?............ 그러니까 좀비 같은 거요?"
"그보다는 검은 망토를 걸친 사나이 쪽에 더 가깝지. 기다란 송곳니에 웃기는 악센트
알지? 하지만 지금은 망토와
송곳니 같은 건 없네. 웃기는
억양도 없고. 거기서 우스운
건 다 빼버리라고. 어차피
웃을 일도 없을 테니까."
이 작품은 최근에 <세이프 오브 워터>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첫 번째 소설이다. 사실 <판의 미로>, <호빗> 등등 그가 연출하거나 참여했던 수많은
작품들을 익히 보아왔지만, 그의 소설은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되었다.
워낙 그의 작품 세계가 독특한 세계관과 뚜렷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연출
감각으로 판타지의 거의 최고였던 탓에, 소설이 어떨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살아있는 시체들의 이야기라고 하니,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워낙 그의 작품들이 B급영화의 정서를 가진 독보적인 색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뱀파이어
소설이야말로 그가 스크린으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기괴한 상상력의 끝판왕을 보여줄 거라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작품은 굉장히
치밀하고, 과학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진 뱀파이어 소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 때문에 페이지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이
만들어졌고, 그야말로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 않게 강렬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사실 죽었던 시체가 되살아나는
언데드물이나 인간의 피를 빨아서 생명을 빼앗는 죽은 자들이 등장하는 뱀파이어물은 너무도 유명한 작품들이 많다. 그런데 그 작품들과는 다르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은 그런 고딕 호러 장르의 법칙을 고스란히 가져와 그야말로 관 위에 가득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21세기에 걸맞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일종의 재난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도시에 뱀파이어가 창궐하고, 인류 멸망의 위기를 앞두고 국가재난의 상황으로 치닫는 전개는
9·11사태를 환기시킬 수밖에 없고, 전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알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들과 테러에 대한 두려움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2차 대전
당시 폴란드의 유대인 수용소 트레블린카에서 뱀파이어와 대면했던 동유럽 민속학교수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며 대량학살과 피로
얼룩진 20세기 현대사도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어 홀로코스트의 20세기와 테러의 21세기를 오가며 매혹적인 고딕호러를 완성시키고 있다.
덕분에 이런 작품을 이제야 읽었다는 게 억울할 정도로 눈을 뗄 수 없게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기예르모델토로는 21세기의 브램 스토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매력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앞으로는 그의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도 빼놓지 않고 챙겨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