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조각
이다 투르페이넨 지음, 정보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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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들은 반짝이는 물고기들, 투명한 물고기들, 날아오르는 물고기들, 집채만 한 물고기들, 촉수로 거대한 전투선을 휘감고도 남을 괴물들을 본 적이 있었지만, 고래만 한 바다소에 대해서는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탐사대가 출발하기 전에 스텔러는 아바차만의 원주민들과 면담하며 그들이 진저리를 칠 때까지 그 지역에 사는 동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고, 실제 동물들의 이야기가 다 떨어지자 그들은 지어내기까지 했지만, 스텔러에겐 그것도 괜찮았다... 어떻게 이런 동물이, 인간에게 알려진 바닷가에, 언급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수 있을까?                p.59


어릴 때부터 사라져 버린 존재들에게 이상하게 관심이 갔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뼈들과 화석, 발자국들을 보면서 우리가 잃어 버린 세계에 대한 상상을 해보곤 했었다. 그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시대는 현실에서 전혀 체감되지 않는 아득한 옛날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인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마치 과거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1741년, 태평양과 북극해 사이,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바다를 거쳐 베링의 탐사선이 항해를 시작한다. 북방 항로 대탐사 여행의 참가자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새로 생긴 과학 아카데미의 저명학 학자 세 명과 여섯 명의 조수, 여섯 명의 토지 측량사, 그 외에 화가와 군인, 통역, 기술자 등등이 충분한 물질적 지원을 받으며 떠났다. 길고 힘겨운 5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정의 반도 통과하지 못했고, 동쪽으로 향할수록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병자들이 늘어갔고, 건강한 선원들도 피로와 탈수로 사망하기 시작했을 즈음이다. 날씨도 안 좋고, 돛은 찢어졌고, 선원들도 다 죽어 가고 있었으니 모두가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때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짐승들이었다. 바다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 준다는 전설 속 인어가 길 잃은 탐사선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훗날 '스텔러바다소'라 불릴 거대 포유동물이었다. 




그뢴발은 여러 날을 사라진 것들과 함께 보낸다. 동물들은 가버렸지만, 그는 동물들의 기억을 보관하고, 나중에 올 사람들이 그 앞에 멈춰서 동시대를 투영해 볼 수 있도록 뼈와 껍데기의 부식을 정지시킨다. 스텔러는 바다소에게서 신의 손자국을, 거대한 사슬로 이어진 세계의 연결 고리를, 변하지 아 ㄶ는 것의 일부를, 아름다운 질서를 보았고, 그는 죄책감이나 걱정을 모르고 바다소의 배를 열고 머리뼈를 갈랐을 것이다... 그는 부러진 가시 돌기를 바로잡고, 부서진 척추뼈 자리를 대체할 석고를 새로 주조하고, 몸을 구부린 자세를 바다소에게 새로 부여한다.                p.333


핀란드 작가 이다 투르페이넨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사라진 세계를 우리 눈앞에 완벽하게 데려다 준다. 역사상 가장 빨리 멸종한 동물인 스텔러바다소의 발견과 실종, 추적과 복원에 이르는 긴 여정을 그리고 있는데, 역사와 픽션을 오가며 자연 탐사와 동물의 멸종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과학과 예술의 역사를 문학으로써 정교하고 아름답게 엮어 낸 결과물'이라는 문구처럼,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책처럼 느껴져 더 좋았다. 이미 오래전에 멸종되어 만나볼 수 없게 된 동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복원된 뼈대를 통해서이다. 누군가 그것을 찾아 바다를 누비고, 흩어지고, 파묻힌 뼈들을 모아 한데 이음으로써 그것을 되살리고, 박물관에 전시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 존재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3세기에 걸쳐 과학자, 수집가, 복원가들이 부단히 노력해온 과정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지구에 생명이 태어난 뒤로 약 40억 년이 지났고,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물들이 사라졌다. 멸종과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모든 세대가 죽은 것들과 사라진 것들을 복원시키기 위해 자기들만의 방법을 고안해 낸다. 우리는 박물관에 전시된 그 과거의 시간들을 통해 사라진 종들을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린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바라본다. 1741년 태평양을 가로지르며 길을 떠난 탐사대의 여정으로 시작된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라앉은 뼈들을 현재의 우리들에게 다시 복원시켜 보여준다. 저자는 헬싱키 자연사 박물관에서 스텔러바다소의 웅장한 골격을 보고 완전히 사로잡힌다. 인간이 처음으로 멸종시킨 해양 생물이자, 발견된 지 27년 만에 종적을 감춘, 지금까지 남아 있는 완전한 골격은 단 3구뿐인 거대 포유동물. 이 동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왜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을까? 이 작품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인간에 의해 멸종된 존재를 다시 인간의 손으로 되살리려는 유구한 역사를 통해 자연과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사라진 모든 존재들에게 바치는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운 부고'를 지금 바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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