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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서점이니까 - SE.1 페가수스 서점 기치조지점
아오노 케이 지음, 임지인 옮김 / 오픈하우스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들 평대만 신경 쓰지만 서가에 책을 꽂아두는 방식도 중요하다. 5밀리만 튀어나오게끔 정돈한 뒤 일직선으로 책등이 보이게 한다. 가름끈이 책등 쪽으로 삐져나오지 않게, 매출 전표도 튀어나오지 않게 책 마지막 페이지에 끼워 넣는다. 그런 세세한 부분을 챙기는 것이 바로 서점 직원이다. 시간을 들여 한 단씩 정돈한 서가는 보기만 해도 즐겁다. 손바닥의 감촉으로 책을 실감하게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 작업을 게을리하면 그 근처는 공기가 침체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p.49
페가수스 서점의 부점장 리코는 올해 마흔으로 최근에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남자는 거래처인 대형 출판사의 영업부 차장으로 서글서글하고 평범한 면을 좋아했었지만, 결국 어린 여자 직원과 바람이 나서 삼류 드라마같은 결말에 이르고 말았다. 더는 젊지 않은 나이에 다음 연애가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졌다. 게다가 이제는 남자 보는 눈도 까다로워졌고 자존심도 강해져 남자에게 연애 감정을 품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스물일곱인 직원 아키는 예쁘고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스타일로 여직원들 사이에서 겉도는 존재다. 서점에서 인기있는 남자 직원과 사귀다가 헤어지고 출판사의 만화부 편집자와 사귀더니 몇 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말이다.
아키의 결혼식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보수적인 워커홀릭인 40대 싱글 부점장과 자유롭고 솔직한 20대 직원, 이렇게 두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실판 서점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평소에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리코와 아키가 부딪히는 일이 벌어져 결혼식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작은 오해로 아키는 음치인 게 만천하에 들통나버렸고, 전 남자친구의 이름이 식장 내에 울려 퍼지기도 해서 기분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본의아니게 아키가 던진 부케가 리코 쪽으로 가서 받게 되는데, 일부러 자신을 망신 주는건가 싶어서 리코도 기분이 확 상한다. 그렇게 말다툼이 시작되어 급기야 아키가 리코가 낸 축의금 봉투를 돌려 주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과연 이 파란만장한 결혼식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그래도 상관없어. 좋은 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 게다가 이왕이면 우리가 좋아하는 책을 좀 더 응원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잘못돼다는 게 아니라, 그 의욕을 이용당하지 않게 조심하는 게 좋아. 서점 직원을 홍보에 이용해서 싸게 해치우려는 출판사도 많으니까. 교정지를 읽거나 감상을 보낸다한들 돈을 받는 것도 아니잖아? 자기가 쓴 문장이 홍보 문구로 쓰여도 원고료가 나오는 것도 아닐 테고." p.174
이 작품은 출판사 편집자였던 저자의 경험이 녹아든 현실판 서점 이야기로, 1권의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가 7권까지 나왔다. 일본에서 누계 5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로 곧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직장인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일상과 관계에서 빚어내는 갈등이 세심하게 그려져 있고, 서점과 출판사의 리얼한 디테일들이 담겨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한번쯤 책장에 꽂힌 책등을 만져보며 책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기울여 본 적이 있다면, 좋아하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쓰며 그런 글을 쓰는 기분이 어떤지 느껴본 적이 있다면, 책을 펼치고 상상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을 사랑한다면, 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매혹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서점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작품들은 판타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해 이 책은 정말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세상에 재미있고 매력적인 책은 많지만, 그런 책을 소개하는 것은 재미있거나 매력적이기 쉽지 않다. 서점은 책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잘 몰랐던 책을 '발견'하거나 좋은 책을 '소개'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서가에 책을 진열하는 방식부터 잡지 부록을 일일이 래핑하고, 클레임 손님을 대응하고, 재고를 확인해 반품시킬 종류를 선택하고, 새로 주문을 하며, 이벤트를 기획하고, 작가와 행사를 계획하는 등 실제로 서점과 출판사에서 책을 팔기 위해 하게 되는 모든 과정을 하나씩 보여준다. 또한 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고민들은 여느 회사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서 직장인들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삼사십대가 된 커리어 초중반의 여성들이 겪게 되는 고민들과 스트레스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누구나 어떤 일을 하고 있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일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지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건가 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도 하니 말이다.
매일 새로운 책이 나오고 세상에는 책이 넘쳐흐르니까 어지간해서는 눈에 잘 안 띈다. 좋은 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사람이 꼭 필요한 이유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를 만나보자. 서점이라는 공간을 좋아하고, 책을 사랑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