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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증인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로등은 길 양쪽에 세 개씩, 모두 여섯 개가 늘어서 있는데 그중 하나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도스가와에게는 그게 우연한 고장으로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을 이곳에 데려온 사람은 아주 주도면밀한 자다. 외딴섬에 실제 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았을 뿐 아니라 바 '로맨스' 안에는 작년 달력에 작년 살인 사건 기사가 실린 신문까지 갖춰 뒀다. 이 모든 게 계획된 것이 틀림없다.... '역시' 하고 도쓰가와는 생각했다. 범인은 1년 전 살인 사건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하려는 것이다. p.41
경시청 수사1과에서 일하는 도쓰가와 경부는 새벽에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던 중 둔기에 맞아 그대로 쓰러진다. 얼마 뒤 낯선 섬에서 깨어 난다. 그곳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콘크리트 도로 끝에 건물이 늘어서 있고,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사거리 신호등이 깜빡거리고 있어 꼭 죽은 도시 같았다. 실제 도시의 한 구역을 통째로 떼어다 옮겨 놓은 듯한 이곳은 어딜까.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걸 만든 걸까. 곧 도쓰가와는 자신 외에 일곱 명의 남녀가 같은 방식으로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 노인이 나타나 1년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감옥에서 병사한 아들의 무죄를 밝히고 싶다고 말한다.
일년 전, 스물한 살인 사에키는 바 '로맨스'에서 술을 마시다 같은 자리에 있던 남자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인다. 마담의 중재로 그 자리는 일단 가라앉았지만, 가게를 나선 뒤 치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피해자를 뒤쫓아 당시 지니고 있던 15센티미터 남짓한 칼로 그의 등을 찔러 살해했다. 가해자는 강도 전과 1범으로 주소 불명, 무직으로 전형적인 살인범의 프로필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피해자는 손꼽히는 대형 상사의 영업과장으로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사건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두 사람의 사진과 약력만 보더라도 영랑없는 범인과 전형적인 피해자로 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일곱 명의 증인이 하나같이 그의 범행을 증언해 9년행을 받는 걸로 사건은 끝이 났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 사건을 다시 재조명하겠다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서 당시 증인이었던 사진작가, 재수생, 바의 마담과 단골, 은행 부지점장과 여직원까지 일곱 명과 사건과 관련이 없는 형사 한 명이 필요했다. 그렇게 증언이 차례로 재현되면서 조금씩 모순이 드러나는데... 과연 그는 죽은 아들의 무죄를 밝혀낼 수 있을까.

“내 아들을 위한 일이니까. 남의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매달리지 않았을 거야.”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사사키 씨의 반론이 훌륭했다고 해서 그 추리가 옳다고 증명된 건 아닙니다. 그 점은 사사키 씨도 잘 아실 겁니다. 다만 증명은 아니더라도 아드님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은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증인 다섯 분도 지금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p.278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이다. 데뷔 이후 6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누적 판매부수 2억 부를 돌파한 일본의 국민 추리소설가인 니시무라 교타로는 열차나 관광지를 무대로 도쓰가와 경부가 활약하는 트래블 미스터리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을 꽤나 오랜 전에 읽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국내에 2014년에 소개되었던 <종착역 살인사건>과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작가이고, 이후 <살인의 쌍곡선>을 마지막으로 읽었는데 그게 2020년이었으니 개인적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블루홀 6에서 2022년 <화려한 유괴>, 2024년 <묵시록 살인사건>으로 꾸준히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을 소개해 오고 있는데, 이번 작품을 계기로 놓쳤던 작품들도 다시 찾아 읽어보려고 한다.
이번 작품은 살인 사건 당시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실제 거리와 건물 들을 외딴섬에 고스란히 옮겨 놓은 뒤, 증인들을 한 곳에 모아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본다는 설정부터 매우 흥미로운데, 이미 재판이 끝나고 범인까지 확정된 사건이 다시 무대 위에 올려지는 과정이 굉장한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1977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니 니시무라 교타로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 전 초기작인데도, 수준급의 완성도와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 새삼 감탄하며 읽었다. 거의 50여 년 전에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낡거나,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 지 않는 것도 대단했고, 고전적인 플롯으로 만들어 나가는 미스터리로서의 매력도 인상적이었다. 법정에서 오간 증인들의 증언은 정말 진실일까, 아니면 각자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왜곡된 사실의 조각일까. 각자의 발언이 복원되고, 대조되고, 비교되는 과정을 통해 모순점이 드러나고, 논리가 무너지는 과정이 대단히 흡입력있게 전개된다. 사적인 재심이지만, 그 과정은 흠잡을 데 없이 논리적으로 펼쳐진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무인도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논리 대결이 궁금하다면, 고전 추리소설과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