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벚꽃
유즈키 유코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일에는 뭔가 내막이 있는 것 같아."

지카가 나이프와 포크를 움직이면서 툭 내뱉었다. 말은 들었지만 뜻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야?"

이즈미가 묻자 지카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아직은 말 못 해. 어쩌면 단순히 내 착각일지도 모르고. 그래도 조사해 볼 가치는 있어... 네가 나한테 찍은 배신자라는 낙인을 기필코 지우고 말겠어."                  p.41


스물한 살 여대생이 스토킹하던 남성이 휘두른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와 손님으로 알게되어 집요하게 치근덕거리다가 급기야 협박하고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스토킹 행위가 점점 더 악질적으로 변하자 부모가 경찰을 찾아갔지만, 담당자는 여러 달 동안 피해 심고서 접수조차 해주지 않았고, 수사 결정을 하고 나서 얼마 뒤 살해당했다. 언론은 경찰의 부실 대응으로 인해 여대생이 목숨을 잃었다고 몰아붙였고, 경찰 조직 전체가 거센 비난에 휩싸이게 된다. 거기다 경찰이 신고 접수를 미룬 이유가 직원들의 워크숍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경찰서에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한다. 




현경 홍보과 직원 모리구치 이즈미는 사건을 단독 보도해 특종을 얻은 요네자키 신문사의 기자이자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쓰무라 지카를 의심한다. 경찰 내부에서 흘러나온 정보가 기사화되었으니 말이다. 이즈미와 지카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둘 다 모자 가정이라는 공통점으로 더욱 가깝게 지냈던 친구 사이다. 대학을 진학한 뒤로는 소원해졌다가, 두 사람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재회하게 되면서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밥을 먹는 사이였다. 저녁을 먹다가 자신이 무심코 워크숍 건에 대해 말을 했었고, 절대 기사화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했었다. 그런데 이 사단이 났으니 이즈미 입장에서는 친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카는 자신이 기사를 쓰지 않았다며, 이 일에는 뭔가 내막이 있는 것 같으니 자신이 조사해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주일 뒤, 지카는 강 하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렇지만,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고통스러운 숨 사이로 간신히 짜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헨미는 눈앞에 놓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잔이 비었다. 이소카와가 술을 채웠다. 

이소카와가 따라 준 술을 단번에 비운 헨미의 고개가 푹 꺾였다.

"넌 이 일에 더 이상 깊이 개입하지 마."

그건 불가능하다. 절친이 살해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이즈미를 생각하면 여기서 손을 뗄 수는 없다.              p.265


이즈미는 친구의 말을 믿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지카가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으로 그녀가 죽기 전에 무엇을 조사하고 있었는지 추적해보기로 한다. 분명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지카는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고, 오명을 벗기 위해 그 점을 조사할 거라고 말했었다. 절친을 잃었다는 슬픔보다 절친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물론 자신은 형사도 아니었고, 지카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이 최선을 다해 수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짝 친구였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거라고 믿었다. 사건을 추적하는 주인공이 형사도 수사관도 아닌 경찰 홍보과의 사무직원이라는 점이 진실을 향한 추적을 더 공감하며 따라갈 수 있게 해주었다. 경찰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내부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약간의 거리감과 피해자의 친구라는 입장에서 정의를 밝히고자 하는 마음이 서사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고독한 늑대의 피>, <반상의 해바라기>, <최후의 증인> 등의 작품으로 만났던 유즈키 유코의 신작이다. 여대생 스토킹 살인 사건, 경찰서 출입 기자의 죽음, 기자가 접촉을 시도한 여성의 자살, 신문의 특종 기사와 제보자, 사이비 교단의 존재 등 각각의 사건은 끊어질 듯 가늘면서도 몹시 억센 실로 이어져 있는 듯 연결되어 있다.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 그것들을 연결하는 실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데, 흩어진 조각들은 어디서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경찰이 아닌 여주인공은 과연 이 조각들을 연결하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유즈키 유코의 기존 작품들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 작품 역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탄탄한 미스터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뜨겁고 치열한 남성 주인공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죄책감과 의심, 진실을 향한 추적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죄와 맞서는 일에는 늘 부조리한 면이 섞여 있다. 범인이 확실한데도 증거가 불충분해서 체포하지 못하고 풀어 줘야 할 때도 있고, 범인을 체포하고 송치하더라도 기소까지 못 갈 때도 있다. 공판까지 원활하게 진행되더라도 말 도 안 되게 가벼운 형이 선고될 때도 있다. 선과 악을 단순하게 나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애쓰는 것이 삶이라는 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벚꽃이라는 암호명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진실이 궁금하다면,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찰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